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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지도교수 : 김동규

경 어 진 (국어국문학과)

인생교양 : 활과 리라(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인생교양 : 활과 리라(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이 순간에도 수많은 닭과 소는 죽임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인간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 서 맴돌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를 넘어 우리 안에서도 끊임없이 ‘위계’를 나누고 경쟁한 다. 이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곤, 즉 ‘경합’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붙이고 심지어 는 이를 기본 원리로 삼아 정치적 도구로까지 활용했다. 그 결과 사회는 경쟁을 ‘발전’의 척도로 보고 ‘훌륭 한 것’이라는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나무로 엮은 월계관”을 위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산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자가 진정한 삶의 ‘주인’이라지만 우리는 계급사회에서의 경쟁에 빠져 어쩌면 더 좋은 것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자기 자신을 ‘노예’로 전락시 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살아있음’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만든 현재의 ‘어려움’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코로나 바이러 스 극복과 이후의 문제 해결은 MUNUS, 즉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면서도 ‘선물’인 셈이다.

우리는 비단 면역의 측면이 아닐지라도 자기와 비자기를 철저히 구분한다.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대상에 대해 의무와 책임, 나아가 특권을 배제하고 그들을 명확한 ‘비자기’로 구분한다. 또한 면역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쟁’으로 보고 이방인을 배제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면역은, 면역’력’은 이 방인을 수용하고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를 둘러싼 타자들로부터의 불가피한 위험에 부딪힐 수 있는 힘이자 이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며, 끝내는 이를 기억해 낼 수 있는 ‘용기’이다. 우리는 경쟁이 아닌, 공생 으로서 면역을 바라보고 공동체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함께 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함께 살아있 음’으로서의 ‘Life’를 영위해야한다는 말이다.

기억과 가치의 매개에 있어서도 유전자의 ‘형질도입’ 사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이들로부터 ‘협력’을 배워 야한다. 세균을 감염하는 바이러스가 이 세균 저 세균 감염하고 다니며 실수로, 우연히 감염했던 세균에 서 그 DNA 일부를 묻혀와 수평 유전자 이동을 매개하듯 우리도 서로를 경쟁상대로 두기보다는 기억의 매 개에 ‘함께’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힘을, 나아가 ‘살아있음’의 가치를 모아 새로운

‘Life’의 의미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랑. “누가 사랑에 대해 멋지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경합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이제 의미가 없을 것이 다. 우리의 ‘부러진 날개’를 치유하는, 인간 고유의 정신적 에너지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함께 ‘살아가는’ 존 재로서의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삶이란, ‘살아있음’이란 사랑의 실감이자 실현이다.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이해할 수 있는 인간, 그게 우리 의 진정한 가치이자 Life이며, 참된 사랑일 것이다.

1) ‘Life’, 생명과 생물, 그리고 ‘살아있음’

일상 속 심심찮게 보이는 단어, ‘Life’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그 많은 의미 중 코로나 이후 달라질 ‘Life’는 무엇일까. 나는 수업을 통해 이를 ‘살아있음’의 측면에서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우리에게 ‘Life’는 ‘삶’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살아있음’의 상징으로서 그 가치가 바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방식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뜻이다.

올 초부터 유행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는 대부분 인간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코로나 블 루’(Corona blue,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류 문명이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마치 기계처럼 쉼 없이 움직이던 인류가 이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그 성장을 멈춘 듯하다. 세 계 각국은 국경을 닫았고, 더 이상 인적·물적 교류를 강조하지 않는다. 공장은 오래도록 움직임을 멈췄고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정부가 모든 가게의 의무 폐쇄를 명령한 국가도 있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말할 만큼, 온 우주의 중심을 자신에 두었던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조차 없는 작은 생명체에게 ‘침입’ 당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간 우리가 ‘살아있음’을 누린 방식과 그 가치 관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이러스가 있다. 박테리아보다 작은 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생명체는 오직 숙주 세포에서만 기생할 수 있다. 증식할 때도 세포 분열이 아닌 조립을 할 뿐이다. 즉 이 작고 힘없 어 보이는 ‘생명과 비생명 사이의 존재’가, 숙주를 통해서만 비로소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 생명체가 인간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연결망들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의 생명 뿐 아니라 우리가 쌓아온 인 간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듯한 모습은 적잖은 충격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는 어떤 ‘Life’를 누려 왔는가. 생각이 커지다보면 우리는 비로소 문제점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 안에는 ‘우리 인간’, 즉 인간만이 포함된 것이다. 우리는 ‘인간 중심주의’자들이다. 세계 1차, 2차 대전 이후 서구 문명과 전통 철학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등장하며 실제로 동물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 등 다양한 관점이 나왔다고 는 하지만 오늘 날 우리는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적 삶을 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체 간의 위계구조를 인정하고, 진리의 왜곡하며 살아간다. 자신과 유사한 동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차별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당장 오늘만 해도 우리는 생명체들의 ‘사채’가 가득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고, 집 앞 플라타너스 나무는 ‘무성해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가지가 잘려나갔다. 지금 인생교양 : 활과 리라(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인생교양 : 활과 리라(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인생교양 : 활과 리라(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많았다면 적어도 ‘활과 리라’ 수업만큼은 교재를 여러 번 곱씹고, 나만의 정리 자료를 따로 만들어 스스로 생각하면서 ‘나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다른 학우들과의 관계도 기억에 남는다. 그 어떤 수업에서 만난 학우들보다도 가장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 다. 때로는 학우들의 의견을 통해 교재의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를 마련하기도 했고, 책 내용에서 확장된 대화를 나누며 내 생각 또한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모방’에 대한 내용을 다루 며 ‘1인 미디어와 예술’을 제시한 학우의 견해를 통해서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모방과 욕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인간중심주의가 자연에 미친 영향을 질문한 학우와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신 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인간이 아닌, 자연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종의 ‘선’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엔 하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비단 토론에서만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학기 초, 게시판에 올린 자기소개 글을 보고 따로 연락을 주신 학우도, 모르는 내용을 물어봤을 때 친절하게 참고 페이지까지 알려주신 한 학우도, 소모임방에서 의견을 내면 ‘흥미롭다’며 집중해서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던 학우들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활과 리라’를 수강하 며 혼자 있지만 혼자 있지 않은, ‘공생’의 관계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어도 이 수업에서만큼은 비록 비대면 수업이지만 외롭거나 쓸쓸하기 보다는 늘 누군가를 ‘만난다’는 마음으로 즐거운 공부를 했다.

이 강의 이후 나는 이렇게 성장했다.

1) 미생(微生)으로부터 오는 배움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게 됐다.

미생(미생물)이 미생(未生)의 존재, 인간에게 주는 가르침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특히 ‘공생’의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비단 이 부분에서만이 아니더라도, 작은(微) 것에서 배움을 찾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들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교수님께서 아주 어린 시절 호박꽃으로 벌을 잡으셨던 이야 기인데, 스치듯 지나가는 하나의 ‘일화’에서 ‘개체’의 개념을 떠올리시고, 이를 성장과 성찰의 발단으로 삼 으시는 게 인상 깊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 ‘미생물’ 심지어는 이보다 더 작은 ‘미토콘드리아’를 시작으로, SNS 및 각 종 언론 매체를 통해 ‘형질 전환형’ 전달을 이해한다거나 Immunitas, Communitas와 같은 단어들의 어 원을 쪼개 그 의미를 유추해보고, ‘팝스타’가 생겨나는 과정을 통해 ‘모방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과정들을 함께하면서 작은 것에서부터 배움을 찾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주어진 것에서만 이해하고, 외우던 지 금까지와는 달리 ‘작은 것’들로부터 오는 사소한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고 생각을 확장해 능동적으로 ‘배움’

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