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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이 점은 작품 내 다른 부부들의 불화와 관련해서도 반복적으로 말해진다. 문양공주가 정천흥 이 자신을 박대하자 상에게 아뢰는데, 상은 부부의 “금슬 후박은 위셰로​핍박지 못​디라.”라 고 말하며 공주를 자제시킨다(권26, 41면). 문양공주와 정천흥의 불화를 눈치 챈 부친 정연이 이를 태부인께 고했을 때에도 태부인이 같은 말을 한다.

양씨를 향한 정세흥의 무자비한 폭력은 한 인간의 폭력이 방치되었을 때 초래할 수 있는 참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참상은 부인 양씨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 세흥으로 인해 양씨의 주변인물은 모두 불행해진다. 양씨에 대한 정세흥의 일상적인 폭력은 그저 ‘강인함이 싫다’라는 매우 감정적인 이유에서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양 씨가 폭력에서 벗어날 해결책을 스스로 마련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 품 내에서 정세흥의 개과는 천경을 통해 이루어지는바,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를 변화 시킬 방법은 모색되고 있지 못하다.

광패한 남성 주인공에 의해 삶을 말살 당하는 여성인물의 이야기는 한글장편소설에 서 자주 보인다. <유씨삼대록>에서 유옥영의 남편 사강은 유옥영이 재상가의 딸로서 시부모의 총애를 받자 말이 방자하고 행동이 교만한 데다가 성품이 편협하고 투기가 심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유옥영의 앞에서 창기들을 희롱한다.179) 사강은 반복적으로 유옥영에게 이와 같은 폭력을 행사한다. 이를 견디지 못한 유옥영은 병에 걸려 앓다 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한 뒤에야 부부가 화락하게 된다.180) <소현성록>에서 화씨 는 지속적으로 소현성을 향해 불만을 표출하고 이 때문에 박대 받는데, 스스로 뉘우 치고 반성하자 둘의 관계는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정세흥의 폭력에는 달리 이유가 없으므로 여성인물은 반성할 이유도 없다. 정세흥의 폭력은 작품 속에서 폭력 사태를 주도하는 여러 인물들의 결탁과는 무관하지만, 이유와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폭력이 타인의 일상을 말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상통하는 면이 있다. <명주보월 빙>에서는 지속적으로 폭력의 잔혹한 속성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주보월빙>에서 악행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최후는 어떻게 그려질까.

앞서 <명주보월빙>이 정의를 상실한 채 타락해버린 세계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야 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았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명주보월빙>은 결탁을 통해 득 세하며 세계를 장악해가는 폭력적 주체들로 인해 타인의 삶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를 여실히 고발하고, 이를 통해 삶의 처절함과 비극성을 담아내는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폭력은 피해자의 일상의 삶을 완전하게 망가뜨리기 때문에 피 해자의 의지로는 결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작품은 ‘천형(天刑)’의 방식으로 이들을 처벌하는 결말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유부인의 개과에 ‘꿈’이라는 장치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때 유부인은 직접 형벌을 체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교아가 배를 갈 린 채로 울고 있는 모습과, 신묘랑이나 세월, 비영 등이 피를 흘리고 우는 모습 등을 보고 ‘두려워’한다. 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81) 자신이 저

179) <유씨삼대록>권5, 10면-60면.

180) 사강이 유옥영에게 자행한 폭력에 대해서는 한길연, 앞의 논문, 2010 참조.

181) “뉴시 울며 ​​여 디옥 밧긔 가 눈을 들​, 교​​를 갈니여시며, 머리 ​로 나고, 일신의 피를 흘니고, 우​​​온​, 온갖 튝​(畜生)이 침노​ ​디라. (중략) 교​바야흐로 셜운 말을

지른 행동을 ‘천경’을 통해 보고 돌아온 그는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유부인의 감정은 ‘후회’가 아니라 ‘슬픔’과 ‘부끄러움’이 주를 이룬다. 신묘랑은 유부인의 꿈속에서도 다시 세상에 나와 윤가를 어지럽히겠다 고 엄포를 놓는다. 한편 윤부와 정부의 인물들을 향해 갖은 폭력을 자행하고 역모를 꾀하기도 했던 구몽숙은 진광과 정천흥의 몇 마디 말에 용서받기도 한다.182) <명주보 월빙>에서 폭력의 원인을 탐구하거나,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진정한 관계 회복에 관 심을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신 폭력의 잔혹성을 조명 하는 과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 속에서 폭력이 악인의 행동으로 형상화 되고, 그리하여 폭력의 책임 또한 악인에게 전가된다는 것은 너무 간편하고 손쉬운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가 되는 점은 이 과정에서 폭력의 원인이나 폭력적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고 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 작품은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나 화해의 방법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명주보월빙>이 그려내고 있는 폭력의 의의는 그것이 주체와 대상을 막론 하고 한 인간, 혹은 집단의 정신과 육체를 말살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잔혹성을 보 여준다는 데 있다. 특히 <명주보월빙>은 불행한 사람들의 분별없는 욕망이 분명한 이유 없이 결탁하여 행해지는 극단적이고도 집단적인 폭력에 의해,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현상을 포착해 냈다는 점에서 그 성취를 인정할 수 있다.

​​더니, 믄득 셰월 비영 신묘랑 등이 다 몸의 피를 흘니고 나와 악​울며, 저​죽으미 뉴시 탓이라 ​여 븟들고 원망​며, 신묘랑은 다시 셰샹의 나 윤가를 어​러여 보렷노라 ​더 라. 남녁 디옥(地獄)으로셔 형봉이 ​다라 버힌 머리를 두다리며, 뎡병부의게 잡혀 원억히 죽으 믈 원망​니, 뉴시 심혼이 비황(悲惶)​믈 니긔디 못​여 어린​시 말을 못​고 (후략).” (권73, 12-13면)

182) 황상은 정천흥과 진광을 기특히 여겨, “딘광과 뎡텬흥이 몽슉을 구​믄, 그 의기현심(義氣賢 心)으로 후​(後嗣) 멸졀(滅絶)​믈 잔잉히 넉이고, ​현심을 발​여 브​살오고져​미 아​ 다오니, 엇디 몽슉의 일명을 빌니셤​디 아니리잇고?”라고 말하고, 몽숙을 안무사로 삼는다(권 61, 48-49면).

Ⅳ. 폭력 서사의 전략

지금까지 <소현성록>, <유효공선행록>, <보은기우록> 및 <명주보월빙>에 나타난 폭력의 형상과 그 의미 대해 살펴보았다. 이 네 작품은 작품에 폭력적 장면이 만연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폭력의 주체와 대상, 이에 대한 주변인물이나 서술자의 반응 등은 모두 상이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폭력과 관련하여 작품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 다른 점도 주목된다.

한글장편소설 전체를 고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상의 분석은 네 작품의 수준이나 소설사적 위상을 감안했을 때 매우 유의미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판 단된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폭력의 속성에 대한 이해 방식과 그 수준에 편차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현실세계의 폭력을 환기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서 논의한 것과 같이 반드시 의도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고, 폭력이라는 행동 양 식 자체가 지닌 문제적인 성격에 기인한 바 크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에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화합의 가치를 추구하는 한글 장편소설에서 개인의 삶이 망가지도록 방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글장편소설의 주 요 독자는 상층의 여성인데, 독자층의 성격과 작품 속에 만연해 있는 폭력적 장면들 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독자들은 작품에 나타난 폭력의 문제에 대해 얼마만큼 유념하면서 독서했을까? 여성적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논의되어 온 작품에서조차 폭력 이 난무하고 있는 점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한 다.1)

관건은 작품이 의식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과 독자들이 유념하는 것이 언제나 일 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2) 앞의 논의에서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실제 이 야기 된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해 일부 다루었는데,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면 작품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거나 몰입하는 문제에 대해 단언하기가 더욱 어렵다. 분명한 것 은 한글장편소설사가 전개되는 수 세기 동안 폭력과 관련한 인물, 장면, 이야기 등이 작품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게 된 까닭은 폭력 서사가 독자를 유인하는 핵심적인 기제 로 작용했던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떤 중요한 삶의 문제도 독자의 무관심 속에서는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형상화될 수 없을 것이다. 독서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흥미의 문제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모든 서사의 전략이기도 하다.

1) <완월회맹연>을 예로 들 수 있다. <완월회맹연>의 여성적 성격에 대해서는 정병설, 18세기 조선의 여성과 소설 , 18세기연구 2, 한국18세기학회, 2000 참조. <완월회맹연>의 폭력적 여 성 형상에 대해서는 한정미, 앞의 논문 참조.

2) 이와 관련하여 김종철은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실제로 작품 속에서 이러한 다기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지 도덕적 관념을 늘 되새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김종철, 장편소 설의 독자층과 그 성격 , 고소설의 저작과 전파 , 아세아문화사, 1994, 4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