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성록>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양부인이 유배지에서 실절한 딸 소교영에 게 약을 내려 죽게 한 일이다. 한글장편소설에서 자식에게 죽으라고 폭언을 내뱉거나 죽일 듯이 폭력을 자행하는 부모의 모습은 종종 보이지만, 양부인과 같이 자식을 정 말 죽이는 이야기는 드물다.9) 이 사건은 작품의 첫머리에 등장하여 이후의 서사에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10)
어머니 양부인은 교영의 실절을 안 순간 수치심과 화를 견디지 못하고 독주를 내려 자결을 명한다. 다만 “죽은 아비와 사랏 어믜게 욕이 미며 조션의 불을 깃치 니”11) 어찌 살려두겠냐는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행위의 목적은 교영을 죽이는 것 자체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부인의 명령은 교영의 실절 행위가 가문 에 오명(汚名)을 씌울 것이라는 판단으로 행해진 축출의 한 방식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12) 그렇다고 해도 양부인의 행위는 신체와 생명에 대한 교영의 자기결 정권을 박탈하면서 자행된 심각한 폭력이다.
“네 스로 네 몸을
각면 죽으미 타인의촉을 기리디 아니려든 어
면목르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아예 별개의 작자가 창작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다. 그 근거로 각각의 남주인공 소경과 소운성이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소경의 인물 형상 이 달라진 점, 양부인의 성격이 크게 바뀐 점, 별전인 <소씨삼대록>에만 장회(章回) 투식이 사 용된 점 등을 들었다(정길수, 17세기 한국 소설사 , 알렙, 2016, 278-281면).
9) 성적 방종을 이유로 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이야기는 <장화홍련전>과 같은 단편소설에도 보인 다. 이 점에 대해서는 ‘Ⅴ. 한글장편소설 폭력 서사의 소설사적 의의’에서 자세히 다룬다.
10) 이와 같은 이유로 <소현성록>의 가문의식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양부인이 교영을 죽인 행위가 빠짐없이 다루어지고 있다. 양부인의 가권(家權), 치가(治家), 리더십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반 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1) 권1, 39면.
12) 선행연구에서는 양부인이 교영을 죽인 사건에 대해 ‘명예살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공혜란, 앞의 논문, 2018).
으로 용샤(容赦) 두
나뇨? 내의식은 이러티 아니리니 날려 어미라 일 디
말나. 네 비록 뎍소(謫所)의셔 약므로 졀을 일허시나 도라오매 거졀미 올커 믄 득 서 만나믈 언약야 거듀(居住)
쳐 이에
자 와시니 이날을 토목티 너기미라. 내 비록 일 녀나식은 쳐티
리니 이런 더러온 거가듕(家中)의 두리 오. 네 비록 구쳔의 가나 니과 네 부친을 어 로 볼다.” (권1, 39-40면)양부인은 용서해달라며 애걸하는 교영에게 ‘더러운 것’이라며 폭력적 언어로 매몰차 게 대한다. 실절을 하였으니 시가의 선산에는 묻힐 수 없게 되었다며 소부의 선산에 장사를 지내자는 소현성의 말에도 ‘더러운 딸’을 선산에 묻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교영이 유배지에서 돌아온 날 밤, 손을 잡고 ‘정절을 잃었는가’ 물었던 양부인 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양부인은 자식을 향해 세상에서 가혹 한 훈육의 방법을 사용하고도 당당하다. 가문을 위한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부인은 작품의 첫머리에서 가문을 위해서라면 자식을 죽이는 일도 마다하 지 않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양부인의 훈육관은 소부의 인물들의 자녀 교육 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이 작품의 여러 국면에서 포착되는데, 이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일화가 바로 스승 단생과 관련된 사건이다. 소현성이 집에 들인 단생이 아이들에게 심한 체벌을 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자 소현성의 첫째부인 화씨는 단 생이 방자하게 군다면서 단생에게 배우는 일을 중단하도록 한다. 그러나 석부인은 스 승이 매질을 한 것은 아이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며 도리어 아이들을 또 꾸짖는 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생의 행위가 아니라 그에 대한 화부인과 석부인의 상반된 반응이다. 석부인은 살에 피가 흐를 정도로 호되게 자녀들을 매질하 였고, 이에 석파가 놀라 양부인, 소현성, 소월영을 찾아간다. 그러나 소현성은 별다른 반응 없이 웃을 뿐이었고, 소씨는 ‘어진 처사’라며 그 현숙함을 칭찬한다. 양부인 역시 단생과 석부인의 처사가 옳았음을 이야기하고, 화씨에게는 질책을 가한다. 화씨의 행 위는 가부장이 스승으로 삼은 단생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소현 성의 두 부인을 향한 양부인의 반응은 훈육의 과정에서 아이의 몸이 상할지라도 책임 을 묻지 않아야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서술자 역시 자식들을 옹호한 화부인의 행동 에 대해 ‘어미 된 사람이 이렇게 약하니 엄한 기운이 없다’고 하면서 화부인보다는 석 부인의 행위를 지지한다.13) 양부인에게서 시작된 훈육관은 며느리 석부인에게 이어지 며, 이는 다시 양부인과 서술자에 의해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양부인의 훈육관을 물려받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현성이다.
13) 이와 같은 점에 주목하여 정선희는 어머니로서 화부인이 부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보았다(정선 희, 가부장제하 여성으로서의 삶과 좌절되는 행복―<소현성록>의 화부인을 중심으로 , 동방 학 20,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1, 68-70면).
소현성은 특히 셋째 아들 소운성에게 가혹한 아버지로 형상화된다. <소현성록> 별전 의 전반부에는 소운성의 성격과 기질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개의 삽화가 연달아 삽입되 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석파가 자신의 팔에 앵혈을 찍은 일에 분노한 운성이 석파의 질녀 소영을 겁탈하는 사건이다. 소운성이 소영을 겁탈하는 것은 심각한 성적 폭력으 로, 아버지 소현성은 물론이고 어머니 석부인 등을 분노케 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그 려진다.
이 사건이 가문 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소운성이 형강아와의 혼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운성은 형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 해 혼인을 주도하였는데, 석파가 이를 먼저 알고 석부인에게 말한다. 소영의 거취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던 석파는 소영이 수절하려고 한다는 말도 함께 전한다. 석부인 은 운성의 행동이 소현성의 분노를 살 것이라 짐작하고 이를 감추려하다가 발각되어 도리어 더 큰 화를 부른다. 소현성은 자식의 잘못을 감추려하는 석부인의 훈육 방식 을 문제 삼고 비슷한 급의 모자라며 폭력적인 언어를 내뱉더니, 운성 앞에서는 부자 의 의를 끊겠다면서 의관을 풀고 앉아 더러운 물을 직접 마시는 시늉까지 한다. 자식 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부 인은 결국 운성에게 “형시, 쇼영 리고 살녀니와” 자신들은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면서 운성에게 죽음을 재촉한다.14)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훈육의 과정에서 소영을 겁탈한 폭력적 행위 자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운성에게 잘못을 지적하며 빨리 죽으라고 재촉 했던 석부인 역시도 소영을 첩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한 때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 고 일축한다. 양부인은 운성이 앵혈을 그대로 두었다면 유약한 것이라며 이를 두둔하 기까지 한다. 석파가 소영의 일을 소현성에게 말했을 때, 소현성은 운성에게 첩을 들 이면 그의 장래를 어찌 이르겠느냐며 거절의 뜻을 내비친다.15) 훗날 소영이 소부에 들어와 아들을 낳은 이후에도, 석부인은 그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소부인에게 불편 한 기색을 드러내며, “저 뉴(類)쳔만 인이 이셔도 블관(不關)이다.”16)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점을 감안했을 때,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삽화는 소영을 향한 소운성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17) 소운성이 소영을 겁
14) “너 몹 나하시니 죽어도 죡거니와 네 부모 이러 들고 텬하 죄인이 되리니 사라
업디니 리 죽으라. 네 쇼영은 므 일노 겁틱며 형시 어 가 엿보뇨? 네 일로 브터 형시, 쇼영 리고 살녀니와 우리뵈디 못리라.”(권5, 83면)
15) 태부인이 소영의 출신에 대해 옹호하면서 운성에게 신의를 지키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자 소현 성은 어쩔 수 없이 소영을 첩으로 들이도록 허락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한심하다’면서 불 쾌함을 드러낸다(권5, 91-92면).
16) 권9, 58면.
17) 박은정, ‘소운성’을 통해 본 <소현성록>의 성장소설적 성격 , 어문학 108, 한국어문학회,
간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당사자인 운성의 태도나 소영의 반응이 아니라, 소 운성을 훈육하는 소현성과 석부인, 이들을 설득해보려 하는 석파의 행위가 초점이 되 고 있다. 따라서 당초 석파가 소운성의 팔에 앵혈을 찍는 행위나,18) 이에 분노하여 소 운성이 소영을 겁탈하는 행위가 지닌 문제점은 서사의 관심에서 밀려나게 된다.19) 특 히 ‘소영’에게는 거의 인격이 부여되어 있지 않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소영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도 없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소현성 록> 속 인물들은, 소영에 대한 소운성의 행위를 ‘폭력’이기 때문에 문제 삼는 것이 아 니라, 그것이 자식의 거센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라고 여기기 때문에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식 교육은 제가(齊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소현성은 아들들이 자신이 없는 틈을 타 창녀들과 잔치를 벌인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아들들을 결박하여 내당에 가두어 버린다. 아들들이 애걸하고 석파 역시 용서를 빌지만 소현성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심지어 이후로 몇 달이나 그대로 가두어 둔다.
이에 대해 화부인과 석부인이 원망하는 듯한 기미를 보이자, 양부인은 손자들을 불러 소현성의 행동을 두둔한다.
“식이 불쵸 어버의게 욕이 니니 어버이 이고 문호의 불을 기티
식은 히 독(獨子)
두엇다가도 후도라보디 말고 죽어야 일의 올디 라. 부텬뉸(父子天倫)이 비록 듕나 강녈 의 므드디 아닐디니 내 이제 일개 부인이나쇼(自少)로 이
디 이셔 네 아비 만일 불쵸 내 당〃이 몬져 죽여 문호의 욕을 더으디 아니코 버거 내 죽어 셜우믈 니려 쥬의 뎡엿더니 (중략) 경은 븟그려 훈(訓子)되 어미 도로혀 다리 줄을 호고 아들은 제 죄디 못야 후회
줄을 아디 못고 쳐
각〃 싀아비 과도히 너기니 엇디 무리 녜의(禮儀) 모 아니리오? 내 아 모미 부 졍니 거리디 말고
물히 다려 열 아로 야곰 방 뎌 사의 욕 바드미 네의 부쳐
(夫妻)로븟터 다 못 나와 너의 부친밋디 말어다.” (권5, 123-125면)양부인은 불초한 자식의 존재는 어버이에게 욕을 끼친다면서, 그러한 자식은 “독
(獨子) 두엇다가도 후 도라보디 말고 죽어야” 옳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들 소현 성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망설임없이 먼저 죽일 마음을 먹었다고 말하며 굳이 ‘죽음’을
2010.
18) <소현성록>에서는 석파의 행위에 대해, “뎌의 긔운이 츙텬믈 보고 소기고져”했다고 말할 뿐 이다(권5, 59면). 운성이 석파의 장난에 대해 욕을 하자 서술자는, “운셩의 이티 넘나고 믜온디라.”라고 말하며 석파에게 동조한다(권5, 62면).
19) 상층 남성이 하층 여성을 강간했을 때 법적 처벌을 받은 예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소운성의 겁간 행위에 대한 관심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된다. 조선의 강간범죄의 처 벌사례에 대해서는 장병인, 앞의 논문, 199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