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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공 슈 놉피 것고 아미 거리며 크게 소 딜너 지저 왈, “셕현의 과 양문광의

은 너 등 간뷔 못 식을 나하 나의 일(一生)을 그 고 나죵은 거말노 님군긔 하리뇨?.” 태부인이 연 노 왈, “좌우인은 엇디 뎌 발부(魃婦) 드려 왓뇨?니 등 미 러 내티라.” 공 대로야 난간을 박며 온갖 슈욕(羞辱)이 참혹디라. 태부인이 크게 노

야 셕부인으로 더브러 졍히 쳐티(處置)코져 더니, 믄득 승샹이 졔(諸子) 더브러 드러오거

, 공 뎌 보매 분긔대발(憤氣大發)야 더욱 고셩 왈, “필부(匹夫) 소경아, 네 므 연고 (緣故)로 내의 허물을 셩샹긔 소(讒訴)다? 내 널노 더브러  칼 죽으리라.” (권8, 66면)

아니라. 내 임의 위친발분(爲親發憤)야 며리 죽이려

매 엇디 말닐 쟤 이

시리오? 며리 비록 친식과 다나

 슬해(膝下)라, 엇디 내의

댱듕의 잇디 아니며, 가듕(家中)의 더러온 일을 타인(他人)의게 들니미 불가(不可)나 내 가듕 (家中)의 집법슈(執法修行)믄 가히 빙옥(氷玉)의 비겨도 붓그럽디 아니리니, 공 내 집을 더러이니 만일

지저 도라 보내나 반시 긴 혀

놀녀 허언(虛 言)으로

소(讒訴)딘대 님군이 엇디 듯디 아니시리오? 이러 야 화근(禍根)

〃리니  녀염 녀와 달나 후 (厚待)고 공경

적은 극진(極盡)려니 와,

 다

릴 적은 등한(等閑)이 못리니 엇디 금지옥엽(金枝玉葉)이라

야 요

(饒貸)

배 이시리오? (중략)

만일 사이 날노 과도(過度)타



쟤 이시면 이부모 혜디 아닛  라. 셰샹 사이 며게 어버이 욕뵈고 위셰와 호의  입을 봉 쟤 이시리오?

나의 위친의 비로서 이 거죄 나시니

히 과도탓 말을 드디언뎡 구챠 용녈며

불효읫 사이 되디 아니리니 고인은 부모 감지 위야

식을 무더시니 며

나의 부모 욕슬하 죽이려

미 엇디 불가리오. 금일 명공의 치미 이에

니믄

각디 못 배라 감히 명을 밧디 못

이다.” (권8, 69-71면)

집안의 일을 굳이 널리 알리고 공주를 죽이기까지 하냐는 석공의 말에 소현성은 위 와 같이 대답한다. 그는 공주의 갖은 악행이 집안사람들을 통해 들려왔을 때에도 자 신은 오히려 그들의 입을 단속하기에 힘썼고, 아들 운성을 죽이는 강상의 죄를 범하 려고 했을 때에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에 가만두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죄가 이제

“편모”와 “선친”에 이르니 이제는 공주를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명현공주를 향한 살해 의지가 ‘효’를 명목으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소현성이 가내의 불미스러운 일이 타문(他門)에 들리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내 가듕(家中)의 집법슈(執法修行)믄 가히 빙옥(氷玉)의 비겨도 붓그럽디 아니리 니” 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행동을 ‘제가’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행동은 주목을 요한 다. 더불어 “만일 사이 날노 과도(過度)타  쟤 이시면”, “과도탓 말을 드디 언뎡” 이라는 등의 발언을 통해 스스로의 행위가 지닌 과도함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소현성은 명현공주를 징치하는 자신 의 폭력적 행동이 제가의 일환이므로 마땅하다고 여기면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기 확인의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감정의 결과 가 아니라 가문을 위한 합리적 판단의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소현성록> 속 인 물들은 제가의 수단으로서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 정당화의 반복과 실패

살펴본 것과 같이 <소현성록>에서 폭력은 가부장에게 제가(齊家)의 수단으로 그려 진다. 이때 제가라 함은 자녀를 훈육하고 불효부를 징치하여 이로써 가문의 명예와 존속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처리하는 행위로 요약된다. 전통적인 주자학에서 부자친 (父子親)․군신의(君臣義)․부부별(夫婦別) 등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곧 ‘악(惡)’으로 여겨졌음을 상기하면,29) <소현성록>에서 가부장의 폭력이 망설임 없이 자행되는 것 이 일견 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적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통하기에 이른 교영의 처사나, 투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가부장에게 대드는 화수은과 명현공주의 행 동은 가부장적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교정되어야만 했을 것이기 때문이 다.30) 양부인과 소현성 등으로부터 자행되는 개인적 폭력은 바로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제가의 수단으로서 효과적인 가치를 지닌 폭력은 작품 속에서 매우 의심 없 이 자행되고, 그 대상은 주로 가내의 인물들을 향해 있다. <소현성록> 속 폭력의 형 상이 문제적인 까닭은 가부장의 행위를 옹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폭력의 수단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렇다면 가내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행해졌던 <소현성록> 속 인물들의 폭력은 합리적 판단의 결과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면 사태에 임 하는 주인공들의 태도가 매우 감정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감정적이라는 점 자체 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작품 속에서 그 감정의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이에 대한 주변인과 서술자의 반응이 어떠한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여기 에서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소현성록>에서 폭력이 담론화되는 방식을 살펴보고 자 한다.

먼저 양부인이 교영을 죽인 사건에 대해 살펴보자.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념에 부합한 결정이었으며, 이를 통해 치가(治家)에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31) 이 행위 를 두고 가문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여가장의 과단(果斷)이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해석일 수밖에 없다. 조선사회는 여성의 성적 일탈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29) 이숙인, 조선 유학에서 감성의 문제 , 국학연구 14, 한국학진흥원, 2009, 401면. 이와 더불어 이숙인은 “주자학의 체계에서 가족은 애정을 확인하고 사랑을 교환하는 감성과 감정의 공간이 기보다, 예를 실천하고 천리를 실현할 수 있는 이성의 공간”이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숙인의 논의는 감성에 중심을 두면 이와 같은 선과 악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 데 핵심이 있다.

30) 이들의 행동이 감정이나 감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 감정 과 감성이 세계질서에 부응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선악(善惡)을 달리 규정했던 주자학적 관점에 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뜻이다(위의 논문, 401면).

31) 대표적으로 양민정은 이와 같은 양부인의 치가(治家) 행위에 대해, “烈節의 절대적 덕목을 가 문 전체에 새롭게 구현시킴과 동시에 가문의 ‘父’의 상실로 초래된 가문 위기의 공백에 가문 질 서를 엄격하게 회복하고 있다.”라고 하였다(양민정, 앞의 논문, 118면).

갖고 있었고 따라서 실절한 여성들이 자살을 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종용하던 사례가 존재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여성이 욕(辱)을 입었을 때 부모가 위협하 여 죽음을 종용하기도 했다는 흠흠신서 의 기록은 여성, 특히 딸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가능했던 당대의 정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32) 여성의 성(性)적 방종에 대 해 조선사회가 지니고 있었던 강박증에 가까운 혐오는 수많은 규훈서, 열녀전 등의 존재만으로도 그 심각성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실절 (失節)에 대한 누명을 쓴 것만으로도 심각한 모멸감을 느끼고 자살하기도 했던 정황 등을 감안했을 때,33) 양부인의 단호한 태도는 그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기보 다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말과 작품 속에서 사건이 담론화되는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현실 반영의 결과라고 단순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이 사건을 반복적으로 언급 하는 주변인물들의 태도와 분위기를 통해 양부인의 행위에 대한 회의와 원망의 시각 을 읽을 수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언필의 약을

촉야 교영을 먹이니 월영이 머리두

려 걸 

고 셕파 등이 계 하(階下)의

러 슬피 비러 살기

 

라, 부인의 노긔(怒氣) 등〃고

긔(使氣) 녈〃

야 삭풍한월(朔風寒月) 니, 소 은 눈물이 금포(錦袍)

저저 좌셕의 고이

입을 닷고  소비

말을 내디 아니니 그 쥬의(主意)아디 못

너라. (권1, 40면)

양부인이 잔혹한 행위로 딸 교영을 사지로 몰아넣을 때 가문의 일원들은 모두 살려 줄 것을 애원한다. 매우 간략한 서술이지만, 머리를 두드리며 애걸하는 월영과 석파 등의 모습은 양부인의 처사에 대한 주변인의 반응을 포착할 수 있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교영은 어머니가 내리는 약을 먹고 죽게 되었을 뿐 아니라 소부의 선산에 도 묻히지 못하게 되는데, 이에 석파는 소현성을 찾아가 애원한다. 어찌 동기가 죽어 나가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른 체 하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때 소현성의 반응이다. 소현성은 석파와 교영 등이 양부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걸을 할 때도, “입을 닷고  소 비 말을 내디” 않는다. 슬 퍼하기는 하나 어떤 적극적인 의사표시도 하지 않은 것이다. ‘동기지정(同氣之情)’을

32) 흠흠신서 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김몽득 형사 사건은 양가(良家)의 시집가지 않은 처녀가 갑자기 혹시 강간을 당했다는 시커먼 모함을 입게 되면 가문에 티가 되는 욕이 되어 부 끄럽고 분통스레 여겨 부모가 협박하여 죽게 함도 있고 처녀가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判付曰, 金夢得獄事,良家未笄之女,忽遭強暴之汚,或被䵝䵢之誣,則玷辱家門,羞愧憤痛,父母之逼死 者有之,處子之自殞者有之).” 번역문은 정약용, 박석무 옮김, 흠흠신서 3, 현대실학사, 1999, 110면에서 가져왔다.

33) 이와 같은 여성의 자살에 대해서는 송병우, 조선시대 개인의 자살, 사회적 타살 , 동양한문 학연구 40, 동양한문학회, 20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