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인물들은 그 참혹함에 놀라기 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지만 쉽게 개입하지 못하며, 개입을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고 여긴다. 주변인물들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폭력 사태를 관망하는 현상은, 폭력이라 는 문제적인 상황이 타인에게 주는 위협과 공포의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작품에서 직접 그 이유가 설명되기도 한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과거 폭력 사건을 재담론화하는 인물들의 태도이다.
셕패 역쇼 왈,
“낭군의게 돗쳡이 다토록 아니 잇더냐.”
이 쇼왈,
“쳥오챵은 이 명기라 엇디 인뎨(人彘)리오.” (<소현성록>권9, 39면)
평쟝이 우쇼 왈,
“다니아디 못거니와 소병부쳥오챵이 어가니잇고.”
샹셰 응셩 답왈,
“쳥 기녀 임의 귀향얀디 오라거니와 명공의 긔롱시미 가티 아니토소이 다.” (<소현성록>권9, 106면)
인용문 는 <소현성록>에서 석파가 소운성에게 농담을 건네는 장면이다. 석파가 말한 ‘돼지 첩’이라 함은 운성과 희롱했다는 이유로 명현공주에게 코와 귀가 베여 인 체(人彘)가 된 창기들을 가리킨다. 인용문 는 운현이 운성에게 농담을 건네는 장면 인데, 이때 언급한 ‘소병부의 다섯 창기’ 역시 명현공주에게 벌을 받아 인체가 된 창 기들을 말한다. 명현공주가 소운성에게 먼저 반한 뒤 황상의 힘을 얻어 소부로 들어 오게 된 후 심각한 박대를 받았다는 점, 이에 대해 가부장과 양부인 등의 거듭된 설 득에도 불구하고 운성은 끝내 명현공주와 하룻밤도 보내지 않고 그를 사지로 내몰았 다는 점을 상기하면, 명현공주가 다섯 창기를 인체로 만들어버린 사건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체(人彘)를 만드는 형벌은 살아있는 사람의 손과 귀를 자르는 매우 잔혹한 처형 방식이다. 이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는 행 위가 가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이 현의 말을 듯고 다시 무러 왈,
“말은 다 올커니와 엇디 난의 혀 혀 혹형을
뇨.”
평쟝이 이에 말이 막히니 공이 즐왈,
“네 비록
리의 들 두디 아냐시나 말이 혐핍니 현인의 몰나 듯고 언
미 죄 크나 존당 시인이라 엇디
품 미 업시 쳐살리오 방 일관은 도망티 못
리라.”
드여 삼십 댱을 텨 내티니 평쟝이 알프 고 다시 올나 시좌니 졔이 눈 주며 웃더라. (<소현성록>권12, 28면)
한편 평장 운현이 시녀 난의를 죽인 일로 부친에게 매를 맞자 모든 형제들은 이를 보며 웃는다. 운현은 자신의 일을 화부인에게 함부로 고했다는 명목으로 난의를 백 대나 치고 죽은 난의의 혀를 잘라버리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는데, 소현성이 방자하게 여겨 장을 친 것이다. 참혹한 형상으로 죽어간 난의나 이 일로 가부장에게 혹한 매질 을 받았던 운현을 생각해보면 형제들이 웃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소현성록>에서 폭력적인 사건을 언급하면서 농담을 주고받거나, 폭력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웃는’ 주변인물들의 모습은 자주 보인다.53)
어시의 니시 원억(冤抑) 벗고 구고(舅姑) 툥(寵愛) 다시 니브나, 운명이 댱(杖責)이 듕(重)여 유병(有病)믈 블평(不平)야
더니 이 오라디 아냐
향차(向差)여 부친 쳥죄(請罪)니 승샹이 다시 일댱을 대(大責)고 그 죄53) 선행연구에서는 <소현성록>에 나타난 농담이 “경쟁, 폭로, 격하”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고 보았다(이주영, <소현성록>의 농담 기제와 그 의미 , 개신어문연구 32, 개신어문학회, 2010). 여기에서는 특히 폭력 사건에 대한 농담에 주목하는 것이다.
용샤매,
이 심듕(心中)의 감격(感激)
야 믈러 모친 뵈니, 부인이 눈믈려 승
샹의믈 며 가의 불명(不明)을 뉘웃더라
이 님시 보니 님시 향차 (向差)믈 티하(致賀)고 니셕 이패 다라 됴희며 우어 왈,“낭군아 우리 말 고디 듯디 아니터니 엇더뇨?”
이 참안(慙顔) 브답(不答)이라 셕패 왈,
“낭군은 부인을 곤(困)히
시나 니시
낭군의 유병(有病)믈려야 블안
시니 실로 녀랏 거시 고이디라. 비록 녀라도 내
면 엇디 일회나 념녜
도라가리오? 병이 듕(重)타면 더옥 깃브리로다.”이 쇼 왈,
“셰샹의 조모 쟤
업리니 모딘 싀회니라.”셕패 쇼왈,
“나싀회라도 칼 들고
식 죽이려 드디 아니리라.”
이 쇼이 브답이라. (<소현성록> 12권, 43-44면)
<소현성록>에서 소운명은 정씨의 계교에 빠져 아내 이옥주를 오해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이 일에 대해 알게 된 소현성은 운명을 매질하고, 운명은 한참을 앓는다.
인용문 는 운명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들은 석파가 찾아가 농담을 건네는 부분이 다. 이파와 석파는 함께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이씨를 일방적으로 학대한 것을 조 롱하며 비웃는다. 운명이 소현성에게 매를 맞자 폭력의 피해자인 이씨가 도리어 불편 해 했는데,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도 덧붙인다. 그러자 운명은 석파에게 ‘모진 승냥이와 호랑이’ 같다며 원망을 드러낸다. 이때에도 석파는 자신이 아무리 모질어도
‘칼을 들고 자식을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운명이 이씨와 그 자녀들에게 행 한 패악질을 언급한다. 석파가 운명이 지난날 이옥주에게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직접 거론하면서 운명을 조롱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보면, 석파의 농담은 폭력을 가하는 남 성인물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작용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석파는 작품 속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인물에 속하 며 발언이나 행동에 있어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54) 석파는 소부의 남성 인물들을 향해 농담을 던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성이다. 석파가 여성이고, 서모이 며, 자녀를 낳지 못한, 소부에서는 중심보다는 바깥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은 그의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든다. 특히 운성에게 소영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장면 등을 떠올리면,55) 석파가 소부 내에서 지니는 위상이나 서사
54) 석파의 인물 형상에 대해서는 서경희, <소현성록>의 석파 연구 , 한국고전연구 12, 한국고 전연구학회, 2005 참조.
55) 석파가 운성에게 소영을 박대하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운성은 아무 곳에 도 쓸데없는 소영을 자신이 구제하여 팔자를 좋게 해주려 한 것인데 감사함을 모른다며 반발한 다. 그러자 석파는 그런 말은 삼척동자라도 곧이듣지 않을 것이라며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며
전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석파가 반복적으로 농담을 건네는 행위는 그가 폭력 사태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던 관찰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을 읽는 또 다른 관찰자 인 독자가 석파의 농담에 함께 웃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점 에 주목해서 석파의 농담을 다시 보면, 그의 발화를 통해 남성인물들의 지난 과오가 회자되고 이를 통해 작품이 비판적 시각을 확보하고 있는 지점은 미미하다고 생각된 다. 오히려 석파의 농담을 통해 폭력 사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담론화되는 것은 차단 되고 사건이 일정하게 마무리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석파가 웃을 수 있는 것은 남성인물들의 결함이 치명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기대고 있다.56) 석파의 발언을 통해 터져 나오는 웃음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적대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동일시의 과정 에 가까워 보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57)
운셩이 그 손을 잡고
을 어져 우어 왈,
“오뎨 진실노 약 남라 대댱부 내 알피 어둡고 뎨 올딘 그대록 구〃
랴 부인이 용납디 아니나 규방의 약 뎨골이 군
결우더냐 네후 말을 졍
다히야 네의 그믄 스로 그라야 녀
션복게고 의리로 것딜러 닐오
니샹셔 녕위봉안고 니시의 걸식을게 너겨 쥬림옥누 리고 봉관지녈의
두어 후니 비록 일시의 굿기나 은혜 듕
나 원젹으믈 수죄야 이럿틋
라 니부인이 비록 말이 깁고 우인이 견강나
연 이말은
답야 입을 열리라.”셜파의 모형뎨 대쇼니
이 웃고 믈러오니 이
화부인이 니시
블러 샤례 왈,“내 블명야 현부곤케
니 이제 뉘웃나 밋디 못디라. (후략).”
(<소현성록>권12, 46-47면)
<소현성록>이 폭력 사건을 재담론화하는 방식은 위의 인용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운명은 병이 다 나은 후, 이옥주와 화해하려고 해보지만 이씨는 쉽게 마음
비난한다(<소현성록>권14, 89-92면).
56) 이와 관련하여 블라지미르 쁘로쁘는 “조롱당하고 있는 결함이 비도덕성의 성격을 띠지 않으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때에만 웃음이 가능하다.”라고 하면서, 긍정적인 평가와 인정을 받 고 있는 사람의 결점이 타인의 사랑과 호감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블 라지미르 쁘로쁘, 정막래 옮김, 희극성과 웃음 , 나남, 2010, 219-230면).
57) 이와 관련해서 존 버거는 여성의 농담은 “농담에 대한 그녀의 태도와, 농담 잘하는 여성으로 서 그녀 자신이 타인들로부터 어떻게 대접받기를 바라는가에 대한 표지가 된다. 단지 남자만이 그 재밌는 짓거리로 농담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라고 한 바 있다(존 버거, 최민 옮김,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열화당, 2012, 55-56면). 이와 같은 견해는 석파의 농담이 남성을 향해 비판적 으로 작용하는 측면보다 본인의 지위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장치일 수 있는 점에 대해 생각하 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