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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화해와 폭력의 지속 : <유효공선행록>

<유효공선행록>은 임치균에 의해서 <유씨삼대록>과 연작관계가 밝혀지는 한편,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 성격이 논의되면서 본격화되었다.73) 이때 임치균은 이 작품 이 효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에서 쓰여졌다고 보았다.74) 이로써 이후의 연구들은 작품이 형상화하는 ‘효’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매달려 왔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유정경의 폭력적인 형상과 이에 순응하여 결국 부친을 개과시 키는 유연의 효성스러운 모습이 부각된다는 작품의 전체적인 성격에는 동의하면서도, 유연의 효행이 정씨의 불행과 우성의 비행으로 이어지는 점, 이로써 우성의 부인인 이씨가 불행에 빠지게 되는 점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였다. 요컨대 작품의 주제가 효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효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관념적인 것인가가 폭로되고 있다고 본 경우와,75) 작품의 주 제를 효라고 단일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며 가부장의 행동을 통해 유발된 여러 문 제들이 부각되는 것은 곧 가부장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라고 본 경우로 대별된 다.76) 이와 같은 의견 차이는 특히 작품의 후반부에 비교적 간략하게 제시되고 있는 유우성과 이씨의 서사에 대한 견해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다. 부인 이씨를 대하는 유 우성의 형상은 기이할 정도로 광포(狂暴)하게 그려지는데, 이를 유정경-유연 부자의 불화와 관련시켜 이해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 이다.

이와 같은 점에 유념하면서 본고에서는 유정경-유연 부자의 불화를 통해 초래되는 다른 인물들의 불행과 갈등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 작품이 중점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유정경-유연 부자의 불화임이 틀림없지만, 유홍의 존재를 감안했을 때 작품이 제시하 고 있는 불화의 책임은 이 두 사람에게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갈등으로 인해 주변인물들이 겪게 되는 삶의 변화와 굴곡이 이후의 서사에서 비중 있 게 다뤄진다. 따라서 이 지점을 제대로 살펴야만 작품 속 폭력이 지닌 의미를 온전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폭력이 난무하는 유부에서 자라난 유연의 아들 유우성

73) 임치균, 유효공선행록 연구 , 관악어문연구 14,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9.

74) 위의 논문, 226면.

75) 박일용, <유효공선행록>의 형상화 방식과 작가의식 재론 , 관악어문연구 20,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5.

76) 양혜란, <유효공선행록> 에 나타난 전통적 가족윤리의 제 문제 , 고소설연구 4, 한국고소 설학회, 1998.

이 이부인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한글장편소설을 통틀어 가장 잔혹한 수준 으로 형상화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문제는 그 형상의 잔혹함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 내용이 작품 후반부에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소략하다는 등의 이 유로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77) 유우성의 폭력은 유정경과 유연의 갈 등이 해소된 이후, 그야말로 작품의 후반부에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중 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왜 대단원의 결말을 바로 앞두고 그렇게 폭력적인 인 물 형상을 내세웠는가 하는 의문에 답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1) 성격적 결함에 의한 폭력

유정경은 부인이 죽은 뒤 서모 주씨, 장자인 연, 차자 홍과 함께 살고 있었다. 성품 이 편벽된 유정경은 연을 미워하고 홍을 편애한다. “댱​의 졀칙효슌​믈 낫비”78) 여 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홍이 범죄자인 요정의 뇌물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간신 요정이 강형수의 처가 미색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범하려하였는데, 그 만 강형수의 처 정씨가 자결을 하고 만 것이다. 강형수의 보복을 두려워한 요정은 유 정경의 차자 유홍과 결탁하게 되고, 유홍은 형 유연과 이 사건을 두고 쟁론할 것을 예상하고 지레 부친에게 참소를 한다.

앞서 <소현성록>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양부인이 교영을 죽인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이것이 작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언 급하였다. 이와 같은 점을 감안했을 때 <유효공선행록>의 세계가 요정이라는 간악무 도한 인간의 폭력으로 열리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유홍과 유연의 불화가 시작되는 지점에 바로 요정의 패악질이 자리하고 있고, 이로써 비롯된 두 사람의 반 목이 가족과 가문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이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러나 작품은 이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오히 려 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유홍을 개입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 홍은 스스로 뇌물을 받은 일이 발각될까 우려하여 형 유연이 연루되었다고 부친에게 참소한다. 이 일로 유연은 부친에게 꾸짖음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심과 불신을 받는 존재가 된다. 이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유연과 유홍 사이의 직접적인 갈등은 없

77) 작품에서 소홀하게 다뤄진 유연과 부인 정씨의 갈등에 관심을 두고 효제(孝悌)의 수행이 부부관 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조혜란의 논의에서도 유우성과 이소저의 갈등이 “상대적으로 분량도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독립된 인물로서의 이소저의 비중 역시 매우 적”다는 이유로 논의에서 제 외한 바 있다(조혜란, <유효공선행록>에 나타난 효제(孝悌) 수행이 부부 관계에 미치는 영향―

유연과 정소저 부부를 중심으로 , 고소설연구 39, 한국고소설학회, 2015, 각주 11번 참조).

78) 권1, 6면.

었다. 그러다 유연이 자신의 부인 정씨의 처소 앞에서 유홍이 음심을 품은 가사를 읊 는 것을 목격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유연은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조용히 유홍을 불러 그의 행동에 대해 훈계한다. 더불 어 전일 강형수의 일로 뇌물을 받았던 일을 거론하며, 이를 고치지 않으면 용납지 않 겠다고 유홍을 강하게 책한다. 이에 억한 심정을 품은 유홍은 다시 부친을 찾아가 형 이 자신을 요정에게 뇌물을 받고 형수 정씨를 흠모한다는 내용으로 모함했다고 눈물 을 흘린다. 유홍에게 속은 유정경은 유연을 불러 벼루로 머리를 내리친다.

공​답지 아니​고 바로 부젼의 니​니, 공이 노긔(怒氣) 엄열(嚴熱)​여 친이 니 러​공​의 관을 벗기고 머리를 프러 손의 잡고 댱​

셔안 우희 옥셕연(玉石硯)으 로 곡직(曲直)을 뭇지 아니코 어즈러어 치니 공​님의 유모의 말이 올흔 쥴 알되 참아 홍의 불인(不仁)을 니르지 못​여 다만 소​를 온화이

​

​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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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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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블효​미 크거니와 죄 잇시면 시노로 댱​(杖責)을

​ ​

셔도 늣지 아니​옵 거​

엇디 셩톄​

이럿틋 잇부게

​

시​니잇가.” (권1, 50-51면)

유연은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부친 걱정뿐이지만, 유정경은 도리어 유연이 자 신을 조롱하고 공격한다며 분노한다. 유정경이 매질을 멈추게 된 것은 유홍이 죄를 나누겠다고 나서면서였다. 유정경은 유홍의 마음을 어질게 여겨 결국 유연의 죄를 사 한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로 자신의 능력과 인품으로는 결코 형 유연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홍이 결국 유연을 없애고자 마음먹기에 이른다.

“샤군(舍君)의 대효(大孝)와 인​후즁(仁慈厚重)​문 내 본​아​

​​

오, 형뎨 화 목​며 봉친 졔가​문 인가의 경​라. 비록 무식​​촌뷔라도 알녀든

​

물며 나 뉴홍 이 엇디 아지 못​리오. 다만

​

각건​

남​셰상의 나셔 군유(群類)​

압두

​

​

학(才學)이 내 우​오르 리 없셔 바야흐로 남​되여 븟그럽지 아니리니 그러무로 녜붓터 유를

​

고 양(兩)을 년탄(蓮嘆)이 이시니 내

​ ​

문이 비록 강하​

​ ​

나젹연​​ 도학이 형만 못

​

고 그 말단은 션비되여 열친 사군지도를 밧드니 날

​ ​ ​ ​

니​

무 용​​

​ ​ ​

이라. 엇디 즐겨 참을

​

리오? 그러므로 형을 업시​여 영빈(潁濱)의 우 희 동​(東坡) 잇단 말을 듯지 아니랴

​ ​

니 대인긔 두 번 형의 허믈을 고​여 긋치 님의 이러시니 그치지 못​

지라. 그​

​ ​

죠흔 계교​

가라쳐 업시​미 엇더

​

뇨?” (권1, 63-64면)

유홍은 부인 성씨에게 자신의 학문적 능력, 인성, 주위의 평가 등이 모두 형 유연보 다 부족하다면서, 이와 같은 이유로 부친께 여러 번 허물을 고하였음을 고백하고 있 다.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예 없앨 계책을 함께 궁리해보자는 뜻에서 한 말 이었다. 그러나 성씨는 용납하지 못할 일이라면서 개탄할 뿐이다. 이와 같은 유홍의

뜻을 짐작한 유연이 과거에 응시하지 않으면서 유홍이 과거에 급제하게 된다.

과거에 급제한 후 기세등등해진 유홍은 부친을 더욱 부추겨 유연을 폐장(廢長)하기 에 이른다. 이때도 유연은 아버지의 허물을 줄이기 위해 양광(佯狂)을 한다. 일족들에 게 자신이 장자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 일로 부친의 미움을 산 유연은 부인과 함께 후당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유정경이 유연에게 반복적인 폭력을 자행한 뒤에도 간헐적으 로 그를 안쓰러워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유정경은 유연을 가둔 지 십여 일 후 소식이 궁금하여 후당에 들르고, 이때 유연이 본인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 고 감동을 받는다. 양광의 이유를 알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그 온화하고 효순함에 감동하여 유정경과 정소저를 다시 처소로 보내고 음식을 권한다.

이렇게 유정경과 유연의 사이가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자 불안함을 느낀 유홍은 부 친에게 다시 유연을 참소하기 시작한다. 유연이 자신의 지위를 빼앗으려고 하며, 부친 을 죽이고 서모를 앗는 등 강상의 죄를 범하려 한다는 말에 유정경은 유연을 또다시 죽이려 든다. 그런데도 유홍의 참소는 그치지 않는다. 이후 천자의 사랑까지 받게 된 유연을 향한 유홍의 질시는 더욱 심해지고, 유연의 부인 정씨까지도 해할 계획을 세 운다. 유연은 유홍에게 속아 정씨를 매질하려 드는 부친을 설득하려고 나섰다가 더 큰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부친의 허물을 ‘자당(自當)’하고자 직접 정씨를 매질한다.

정씨는 거의 시신이 되어 정부로 돌아간다.79)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보건대 <유효공선행록>에서 유연을 향한 신체적 폭력의 주체는 부친 유정경이지만, 그 폭력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모두 유홍에게서 비 롯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홍은 요정의 악행을 눈감아 준 대가를 받고 이를 형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부친에게 참소하고, 형수인 정씨를 향해 음심을 품은 일이 발각되자 도리어 형이 자신을 오해하여 모해했다는 등의 말로 부친에게 고 한다. 부친과 형의 사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일 때마다 거짓말로 그들을 이간질하기도 한다. 유홍은 직접적으로 유연을 향해 정신적 폭력과 언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며, 부친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작품은 이러한 유홍의 행동이 유연과 유정경 부자 사이를 이간질하여 유연 부부를 참혹한 폭력의 희생자로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유효공선행록>은 작품 속 인물에게 벌어진 참상에 대해 유홍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홍이 왜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최초에 는 요정의 뇌물을 받는 등 스스로 저지른 부정에 대한 걱정과 이 일로 형과 “​논​​ 미”80) 있을 것이라는 의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장 79) 이때 정관은 아끼던 딸이 유혈이 낭자한 채로 집으로 돌아오자 매질을 한 사람이 누구냐 추궁

하고, 유연이 직접 매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 집안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