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성록>에서는 폭력이 훈육이나 징벌의 도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폭력은 지 속적이라기보다 간헐적인 방식으로 타인에게 가해진다. 소현성은 아들들이 창기들에 게 빠져있거나, 아내가 모친에게 함부로 굴었다거나 하는 판단이 들 경우에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그들을 몇 달씩 가두거나 방치해 두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그들의 삶 전반에 걸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효공선행록>이 나 <보은기우록>에서 유정경이나 위지덕은 타고난 성품이 폭력적인 인물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들의 폭력 앞에는 매번 문제가 되는 새로운 사건이 놓인다.
이와 같은 점을 상기해보면, <명주보월빙>에서 폭력의 주체가 결탁을 통해 세력을 늘려가며 대상을 향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장면에 관심을 가질 필 요가 있다. 위부인과 유부인의 폭력은 종통에 대한 욕망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폭력 을 지속시키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뉴시 희텬을 친식을 삼안지 슈슌(數旬)의 공동동쵹쵹(洞洞燭燭)효셩이
모의 감
미 업나, 뉴시 고요
와 이목이 업
즉 공를 블너 만단슈(萬 端數罪) 왈, ‘십 셰 전 쇼간흉요약여 태우긔
양 참고여 부모를 불화케 한 다.’
여 혹
가를 욕살지의 이셔 간계를
각
다
여, 그 몸을 혜지 아니코 강 악힘을 다여 치그 낫츨 상치 아니케
여 태위 모로게
니, 공구셰치(九歲稚兒)로사되오미 셩
츌텬고 역낭이 하
니, 양모의 간험믈 모 르지 아니, 셩효를 다여 감동기를
랄
이오, 일호(一毫) 질원(疾怨)치 아니
169) 권43, 70면
코,
모긔도 괴로오믈 고치 아니니, 조부인이 지극 춍명
고 광텬공남달니 신능 (神能)나, 오히려 뉴시의 그
도록
믈 모르니,
뉴시 희텬을 칠 젹마다 사
이 보디 못
곳의 가 치니 가듕(家中)이 모르더라. 공의 황황우구(惶惶憂懼)미 일야 방심치 아냐, 양모의 독
를 당면 알프미 극나 참기를 잘여, 화긔 여젼니 그 심회를 알니 업더라. (권4, 44-45면)위의 인용문은 유씨가 희천을 계후로 삼은 뒤, 아무도 보지 않은 때를 틈타 상습적 으로 희천에게 매질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고요한 때’를 틈타, 이목이 없으면, ‘사 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 가서 희천을 친다는 표현에서 그 폭력이 매우 잦은 빈도로, 은밀하게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광천과 희천을 향한 폭력은 일상적인 곳까지 침투하는데, 단적인 예로 먹는 음식마 저도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위부인과 유부인은 두 공자가 먹는 음식에 독약을 넣고, 그들은 이를 알면서도 먹는다. 위부인과 유부인은 두 공자 의 일상에 아주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그들의 신체의 자유마저 빼앗는데, 그 과정은 그들에게 밤낮없이 천역을 시키고 음식의 섭취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집의 도라와 존당과 두 모친긔 뵈옵고 전토 화(貨賣)믈 고니, 태부인 이 은를 혜여 밧고, 뉴시 녀의 거쳐 모로믈 슬픈 가온나, 공의 쇄락(灑落)
미 날노
로오믈 믭고 분여, 태부인을 도도아 못 견도록 보기를 시작니, 냥 공를 즐타(叱咤)기
니르지 말고, 긔괴(奇怪)한 쳔역(賤役)이 말셔동의셔 더 으니, 측간(廁間)과 마구(馬廏)를 츼이고, 싀초(柴草)를 식이며 강졍의 미곡을 날나오 라
고, 우마졔양(牛馬猪羊)을 보살펴, 한헐(閑歇)믈 엇지 못게며, 됴셕(朝夕) 음식은
반(麥飯)을 날이 반오의 일긔식 주어 먹으라
며, 밤이면 삿츨
이고 초 리(草履)를 삼겨 쳔역의 일분이나 염고(厭苦)미 이시면
장(笞杖)을 시작여 긔 진(氣盡)여 죽기를 죄오니, 조부인의 심장이
회
기를 면리오마, 태부
인이 온 가지로 보니,
월누 문을 잠그고 조부인을 협실의 두고 쥬야 조르니, 공
형뎨 작인이 비상고
죄 만의 신긔므로 괴이쳔역이라도 본닉은 사
여 싀포(猜暴)호령이 나지 아냐셔 못미
시나, 모친의 쳔단곡경(千端曲 境)을 슬허 형뎨 밤을 당면 쳬루비읍(涕淚悲泣)기를 마지 아니
,
혀도 조모
와 슉모를 원망
업
디라. (권8, 57-59면)광천과 희천은 측간과 마구를 치우고, 시초를 해오며, 미곡을 나르거나 집안의 가축 을 보살피는 등 집안의 막내 하인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한편 음식은 한 나절에 한 그릇씩 밖에 먹지 못하고 고된 노동에 착취당한다. 배불리 먹지 못하고 힘겨운 노동 을 하면서 잠깐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이면 매질이 시작된다. 광천과 희천의 삶은 두 부인에 의해 철저히 감시당하며 통제된다. 뿐만 아니라 겨울이 되어도 따뜻한 옷을
주지 않고 여름 옷(베 옷)을 입히며, 음식으로는 ‘언 재강과 찬 조밥’, ‘소금’ 등을 줄 뿐이다. 차가운 방에 불도 때지 못하게 하고 밤낮으로 일만 시킨다. 조부인에게도 침 선수질 등의 일을 수없이 시켜 밤에도 자지 못하게 한다. <명주보월빙>에서 폭력은 신체상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방식뿐 아니라, 음식을 통제하고 신체의 자유를 박 탈하며 잠도 자지 못하게 하는 등, 일상적인 삶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방식으로 자행 된다. 작품은 이처럼 위부인과 유부인으로부터 시작된 폭력이 점증적으로 그 잔혹성 을 더해가며, 광천과 희천, 주변인의 일상 깊은 곳까지 침투하는 양상을 매우 자세하 고도 곡진하게 그린다.
위부인과 유부인은 광천과 희천의 네 부인들에게도 천역을 시킨다.
긔 고식(姑息)의 블인(不仁)이 낫타날가 두리므로 쳔역을 식이, 일졀 남이 알 게 아니며,
(四) 쇼져를 태부인 침젼의 일시도
나지 못게
고, 뉴시 하․댱․이쇼져의 비홍(臂紅)을 날마다 상고여 딕를 원거(遠居)라 당부고, (중략) 브그 금슬을 버혀 일졈 골육(骨肉)을 깃치디 못고, 쳥츈의 쇽졀업시
진(自盡)케
려 뎡고, 정․진 냥인은 비홍이 업셔시니 위뇌 딕희기를 더옥 엄히
여 부뷔 상키를 못게
고, 조로고 보미 긋칠
이 업니, 뎡․딘․하․댱
쇼져의 비고신셰 혈육지신(血肉之身)이 보젼치 못
거시로, 텬신 이 셩녀(聖女) 텰부(哲婦)를
마니 보호여 슈복을 누리게
나, 하쇼져
화란의 상고 남다른 약질이라, 뎡시의 쳘옥디심(鐵玉之心)과 댱시의 송지긔(松柏之氣)를
바라지 못여, 옥골이 날고 슈경(瘦骾)여 보기 위
나 뉘 잇셔 념녀리오. 어
등 부부 뉵인의 졍
참졀(慘絶)미 가히 업더라. (권20, 8-11면)끼니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며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고, 측간이나 마구를 치우게 하고, 새끼를 꼬게 하는 등으로 타인이 모르게 그들의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 네 부 인을 향한 폭력은 가장 은밀한 곳에서 극심한 수준에 이르는데, 바로 그들의 잠자리 를 관리․통제하는 것이다. 위부인과 유부인은 광천 형제가 부부관계를 통해 혈육을 생산하는 것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이들의 생산은 곧 그들의 종통을 향한 욕망에 방 해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하부인과 장부인의 앵혈을 확인하고, 이들이 부부관 계를 했는지 확인하며, 혹시 광천이나 희천과 가까워지는 기색이 있는지 수시로 감시 한다. 결국 광천이나 희천, 그리고 부인들은 먹고 자고 입고 쉬고 부부관계를 하는 일 상의 모든 과정에서 위부인과 유부인의 폭력과 감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폭력이 끔찍한 것은 그것이 대상에게 일정 수위 이상으로 지속되면 피해자가 길들 여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쥬야(晝夜)로 조모(祖母)와 양모(養母)의 감화키를 바라고 셩효(誠孝)를 갈진(竭盡)
나, 포악호령과 독
벌이 긋칠
이 업셔 혈육이 셩
업니, 아모리
여도 됴흔 모(謀策)이 업셔 근심이 만단이나, 조곰도 양모를 원
이 업고
긔 효셩(孝誠)이 브죡여 외오 넉이시믈 어든가
(自責)
고,
모와 양부의 디 극졍을 도라보디 아니면
하리
번 죽어 가듕변난(家中變亂)을 보디 말고져
나, 경신이 위대
과
긔 죽
날이면 양모의 패덕(悖德)이 더윽 드러날 고로,
단
괴로오믈 견여 슬프믈
초고, 오딕 명도(命途)를 탄
며 가지록 효우(孝友)를 힘
,
모와 양모의 감화기를 바라더라. 댱공도라와 모친과 슉당의 뵈고 운학
당의 도라와
공의 누어시믈 보고 놀나 알
곳을 믓다가, 두상(頭上)이 상여시 믈 보고 반시 뉴시의 일인줄 짐작고
오
,“금일은 하고(何故)로 머리를
리
죄벌이 잇더뇨?” (권13, 49-50면)효성스러운 광천과 희천은 끔찍한 폭력에 매일 같이 노출된 채로 수년을 참고 살아 간다. 그러나 효심으로 폭력을 견디는 것과 학습된 무기력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희천 공자가 유부인에게 맞아 머리가 깨어진 채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광천은 “반시 뉴시의 일인줄 짐작고”, 무슨 이유로 맞았느냐고 묻는다. 광천 은 희천의 몰골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것이 유씨 때문이라는 사실에는 별로 놀라지 않 는 듯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폭력은 일상이었기에 그 자체로는 전혀 충격이나 공 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천이 희천에게 “식이 유죄부뫼 장(責杖) 시미 예로, 조모와 슉뫼 아등 벌 시믄 죄벌 유므를 니르디 아니시고 혈육이 상키를 그음시니, 진실노 보젼키 여려온디라, 나오히려 긔운이 댱셩거니와 너
약질의 쟝이 날 젹이 업니, 반시 죽으미 올디라.”170)라며 매질이 시작되 거든 피하여 사람이 많은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도록 일러주는 장면에서는, 이 들이 사실상 그들의 폭력을 저지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이다. 광천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요약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거듭 먹는다. 고된 천역으로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한 첩의 약도 먹지 않는데, “범연이 못 고칠 고질(痼疾)”171)이므로 약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자포자기의 상태인 셈이다. 따라서 서술자를 통해 광천 형제가 두 부인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언술이 반복될수록, 그들의 효성스러움보다는 피해자를 자책과 무 기력의 늪에 빠지게 하는 폭력의 잔혹한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역설이 발생한 다.172)
한글장편소설에서 다뤄지는 폭력은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가해지는 가정폭력의 성 격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한글장편소설에서 ‘부부 성대결담’은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
170) 권13, 51-52면.
171) 권23, 61면.
172) 광천과 희천이 보이는 무기력과 자포자기의 심정, 판단능력의 상실 등을 폭력의 원인으로 이 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느끼는 자책이나 무기력은 폭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피해의 일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