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보월빙>은 윤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윤노공에게는 두 부인 정실 황씨와 재 실 위씨가 있는데, 윤현은 황씨의 소생이고 윤수는 위씨의 소생이다. 윤현에게는 딸 명아가, 윤수에게는 딸 경아와 현아가 있다. 윤노공과 황부인이 죽자 위부인은 집안의 어른으로 득세하고, 자신의 아들 윤수로 종통을 이으려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장자 윤현은 금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자결하고, 부인 조씨만이 혼 자 남아 광천․희천 쌍둥이 남아를 출산한다. 위부인은 장차 이들이 종통을 앗을까 걱정하며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명주보월빙>의 전반부 서사는 위부인의 종통에 대 한 욕망에 견인되어 흘러간다.
일일은 위시 고식(姑媳)이 상
여 조부인 모녀 업시
계규(計規)를 의논
,158) 이상택은 이와 같은 <명주보월빙>의 세계에 대해, “신이 처음부터 부재했거나 숨어버린, 또 는 죽어버린, 비극적 세계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이상택, 총론 : 한국 고전소설의 개념과 특질 , 이상택 외, 한국고전소설의 세계 , 돌베개, 2005, 21면).
위시 왈,
“엇디면 현뷔(賢婦) 긔자(奇子)를
(生)
여 윤가 종통을 닛게
고 조시 모녀를 아오로 업시후, 현부로
여곰 윤부 죵부(宗婦)를 삼아 일가(一家)의 듕망 (衆望)이 온젼케
고, 십만산(十萬財産)이
손으로
여곰 난호
일이 업게여 부안락케
리오. (중략) 힘을 다고 계교를 의논여 조시 모를 아오로 육장 (肉醬)을
라 평의 밋친 분을 쾌히
고, 현뷔 블
(不幸)여
을 두지 못
면 일가의 아
다온
들을 어더 슈의 명녕(螟蛉)을 뎡면, 슈의
이오 나의
손니, 황시의 쇼
손이 업셔지면 엇지 쾌치 아니리오.” (권3, 5-8면)위의 인용문은 위부인이 유부인에게 그의 계획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조씨 모자 녀를 없앤 뒤 유부인으로 종부를 삼으며, 그에게서 아들을 얻어 ‘명령(螟蛉)’으로 정하 는 것, 그리하여 종통을 잇게 하는 동시에 재산을 나눠 갖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목표 였다. 위씨는 유씨가 아들을 낳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하며, 그저 조부인 모자녀 만 없애면 된다고 강조해 말한다.
그런데 윤수는 조씨의 소생인 희천으로 계후를 삼는다. 이에 분노한 위부인과 유부 인은 희천을 매질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희천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광천이 있기 때문 에 슬하에 자식이 없는 유부인은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있음은 자명하다. 이를 자각 한 유부인은 희천과 광천, 심지어 조부인의 딸 명아까지 모두 없애기 위해 골몰한다.
광천 형제가 과거에 급제하거나 혼인을 하는 등 삶에 중요한 진전을 보일 때마다 그 들의 분노는 깊이를 더해 간다. 그리고 이 분노는 결국 무분별한 폭력행위로 표출된 다. 심지어 윤현의 딸 명아의 혼사를 방해하기 위해 위방이라는 자로 하여금 그녀를 납치․겁탈하게 하고, 광천과 희천 형제를 난타하고 밥을 굶기기도 한다.
평일 조부인을 굿여 난타(亂打)
일은 업더니, 뉴녜 존고
도도아 온가지로 참소여 일마다 악을 도으니, 위시 졈졈 흉포
여 태우와 구패 나간 후 일삭이 계오 디나, 친히
를 들고 조부인긔 다라드러 차마 못
말노 욕며 치기를 낭
(狼藉)히
니, 쳐음은 광텬 형뎨 아지 못더니 여러 번이 되엇지 모르리오.태부인이 조부인의 운발을
러잡고 금쳑(金尺)을 드러 두골(頭骨)노브터 나리치며 슈죄(數罪)
, ‘간부(姦夫)를 드러와 화락고 샹셔의 죽으믈 슬허 아닛다.’
며,‘광텬과 희텬은 윤시 골육이 아니오, 간부의
식이라.’
여,
마 듯지 못
말을 무슈히
디라. (권7, 67-68면)조부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씨는 어머니 위씨를 부추기고, 위씨는 조부인의 머리 카락을 쥐고 금척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것도 모자라, 광천과 희천이 윤문의 자녀가 아니라며 조부인의 정절을 의심하는 말까지 내뱉는다. 정천흥과 성혼한 조부인의 소 생 명아가 친정에 돌아왔을 때는 위부인과 유부인, 유부인의 소생 경아가 합심하여
조부인과 명아를 벙어리로 만들고자 독약을 먹인다. 위씨 고식(姑息)은 윤현의 자녀뿐 아니라 그들의 네 부인에게도 가혹한 폭력을 휘두른다. 유씨는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네 부인 중 아무라도 위방에게 넘겨줄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명주보월빙>에서 가장 잔혹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은 바로 이 유씨인데, 희천의 처 하영주를 결박하고 폭력 을 휘두르는 장면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흉억(胸臆)의 뎍튝(積蓄)믜오믈 플녀
, 깁으로 쇼져의 두 팔흘 뒤흐로
고, 두 다리를 단단이 동히고, 쳥운
녹발(綠髮)을 플쳐 쇼져의 목을 휘감아 소를 못게
고, 텰편을 드러 강악(强惡)힘을 다여 머리로브터 낫과 몸 을 혜디 아니코 즛두다리기를 시작니, 텰편을 포집어 별학
디라. (중략)
인여 츈월을
각고 슬허
거
, 뉴시 비영을 디극히 위로
며, 하시를 궤듕의 너허 쇄금(鎖金)으로 잠은 후, 비영으로
여곰 심복튱학을 블너,
마니 닐오
,“네 본튱근
여 대를 맛졈
디라. 금일 큰 궤를 줄 거시니 남강의 가 물 의 드리치고 도라오면, 금
으로 상샤
미 각별리라.” (권47, 39-43면)유부인은 하부인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단단히 묶고, 머리를 헤쳐 목을 휘 감아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한 뒤 그녀를 구타한다. 이로써도 화를 풀지 못해 심복 충학을 시켜 궤 속에 가두어 강가에 버리고자 한다. 그렇다면 유부인이 이토록 잔혹 하게 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씨의 욕망이 종통을 향한 것으로서 매우 단순하게 그 려지고 있다면, 유부인의 욕망은 중층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뉴시쳑연(惕然) 탄식(歎息)
왈,“존고(尊姑)의 가군(家君)을 위신 념녀와 쳡을
휼(愛恤)시
셩덕이 가지록 더시니, 쳡을
골감은(刻骨感恩)
여 졍셩과 힘을 다와 셩교를 밧들고져
오
, 일이
과
치 되디 아니
오니 갓 심녁(心力)만 허비 올
이라.
물며 가군이 쳡의 모녀를
노 보
고, 전혀 쥬(主)
광텬 형뎨와 조시 모녜라.경를 셩가(成家)여 셕낭의 박
악(嗟愕)
, 일분 잔잉히 넉이
의업 스니 비인졍(非人情)의
갑거
, 셕낭을
랑고 경
를 본믜워니, 텬의 그런 인졍이 어이시리잇고? (후략) ” (권3, 8-9면)“명공이 원텬뉸
(天倫慈愛) 남과
지 못여 경를 셩가(成家)
셕낭의 박를 엇게
고, 현를 대역(大逆)의 집과 뎡혼(定婚)여시나, 일시 희언(戲言)을 유신(有信)쳬시고, 공연이 하가를 위여
식을 폐륜지인(廢倫之 人)을 삼고져
시니, 쳡의 모녜
하리 칼죽어 명공의
을 쾌케
리라.”(권3, 55면)
인용문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유씨는 가군 윤수가 자기 모녀를 ‘행로 보듯 하고’, 광천 형제와 조씨 모녀만을 사랑하는 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인용문 에서 볼 수 있듯 남편의 박대를 받는 경아의 불행에 한결같이 무관심하고, 현아를 대역죄인의 집안이나 마찬가지인 하부로 보내려 하자 유씨는 크게 분노한다. 현아를 하부로 보내느니 죽어 가군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겠다는 유부인의 발언에서 그 감정 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유부인 내면의 가장 기본적인 층위에는 바로 가장 윤수를 향한 불만이 놓여있다. 따라서 유부인의 폭력은 종통 그 자체를 향한 욕망에서 비롯 되었다기보다는, 스스로 아들을 생산하지 못한 불안과 광천 형제와 조부인을 극도로 아끼면서도 자신을 혐오하고 친딸들의 불행에는 무관심한 가장 윤수를 향한 불만 등 이 뒤섞인 결과로 생각된다.
윤부의 가장인 윤수는 가내의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데다가 눈치가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부인이나 경아의 성품이 곱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 었다. 윤수는 유씨 모녀를 홀대하는 것도 모자라 유씨의 “생산(生産)”을 원치 않는다 고 하거나, 경아가 유씨를 닮아 가문의 “품질(品質)”이 아니라면서 이들을 향한 노골 적인 혐오를 드러낸다.159) 유씨가 윤부에서 홀대받는 본질적인 원인은 불인한 스스로 의 성품 때문이라는 점이 윤수의 발언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유씨 본 인은 불행의 원인을 종통을 생산하지 못한 채 광천 형제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데서 찾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부인의 폭력행위는 종통(의 생산)에 대한 욕망과 뒤섞이 며, 위부인과 작당하는 계기가 된다. 본질은 다르더라도 표면적으로 이들은 종통을 향 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의 욕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등장인물이 지속적으로 폭력적 행위에 가담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이들의 폭력적 행위에 가담하는 인물로 윤수의 딸 경아가 있다. 경아는 명아가 정천흥과 혼인을 하게 되자 모친에게 이를 망칠 계책이 있다며 의견을 내놓는다. 상처 후 절색을 구하는 위방에 게 명아를 보내고 금은을 갈취하기 위함이었다. 위부인과 유부인이 광천․희천 형제 를 매질하는 상황에서는 직접 금척을 들고 희천을 난타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유부인이 차녀 현아가 하원광과 혼인을 하게 되었을 때 이를 폐하고 권신 김후의 아 들과 혼사를 추진하려 할 때에도 경아는 현아를 압박하고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 친을 돕는다. 이후에도 조부인을 광천․희천 형제의 네 부인을 향한 폭력적 행위에
159) 태위 믄득 탄식 왈, “소뎨 실노 뉴시 산(生産)을 원치 아니 니, 현맛모풍(母風)이 업거니와 경만히 그 어미를 달마 그 위인(爲人)이 우리 집 품딜(品質)이 아니니 와
이다.” (권1, 28-29면)
다만 경의 조각 심졍(心情)이 현슉믈 엇디 못여, 은악양션(隱惡佯善)고 투현질능(妬 賢嫉能)여 외 가지 못 니, 그 부친 윤태위 의 어지지 못 믈 아지 못나 양 나모 라여 왈, “용모거동(容貌擧動)이 일분(一分)도 우리 집을 담지 아냣다.” (권2, 73-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