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기우록>은 “구질서의 붕괴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정병욱의 평가 이래 로 조선후기 새로운 인간형의 등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다.112) 아버지 위지덕과 아들 위연청의 갈등이 심각한 차원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관심을 끌었는데, 특히 새로운 질서나 제도가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으로 표상되는 문학적 관 습과 달리, 유교적 가치라는 구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들로, 화폐경제라는 신질서 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버지로 설정되어 있어서 여타의 한글장편소설 속 부자 관계와 는 차원이 다른 형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야기되기도 했다.113) <보은기우록>이
대인(大人)의 구튝(驅逐)시믈 닙어, 피(彼此) 인연이 그처시나, 실노 냥녀(兩女)의 무죄(無 罪)미 극(極)고, 이녜(二女) 비록 쳔챵(賤娼)이나 사의게 허신(許身)미 업시 군의게 도라와 군을 위여 죽기로 졀(節)을 딕고 타셩을 좃디 아니니, 군 위 녈뷔(烈婦)어
, 당초 비록 엄명(嚴命)을 두려 디 못나 연쇼(年少) 녜 쳔신만고여 니로매, 대인이 임의 용샤(容赦)셔 가(家內)의 두시고 존당이 후(厚待)라 경계시거, 홀노 군이 낙시니 인졍의 박미 심디라. 쳥컨 군 규(閨內)의 원언(怨言)이 업고 가 화평키
힘샤 존당 경계져리디 마르소셔.” (<유씨삼대록>권1, 32-33면)
112) 정병욱, 이조말기 소설의 유형적 특징 , 고전문학을 찾아서 , 문학과 지성사, 1976, 233-269 면.
주목을 받은 것은 폭력의 수위나 빈번함의 정도가 다른 작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 준이라는 점, 부친의 폭력을 감내하는 아들의 형상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 등에 기인 한다.
작품 속 부자 갈등이 문제적이라는 동일한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해 상반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연구자에 따라 유교적 가치관을 고수한다 고 여겨지기도 하고,114)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을 내세운다고 판단되기도 했다.115) 작 품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도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기한바 부자간의 대립과 갈등 이 매우 치열하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결과적으로는 아들 위연청이 과거 급제를 하고 가문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활약하긴 하지만, 그것을 곧 위연청이 추구하 는 유교적 가치의 승리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은기우록>이 “화폐 이윤 추구가 현실적으로 묵인되면서 도덕 적으로 부인되는 이율배반적이고 과도기적인 현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절충적인 해석이 제시되기도 했다.116)
아버지 위지덕의 태도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아들 위연청이 ‘효자’라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유효공선행록>과 <보은기 우록>에서 효를 실천하는 아들의 고통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효’의 문제점을 부각시 키기 위함이라는 의문이 제기된 적은 있지만,117) 여전히 작품의 주제가 ‘효’라는 사실 에는 동의를 표했다.
작품 속 신체적 폭력은 위지덕에게서 일방적으로 시작되지만 이에 대한 위연청의 대응이 순응적이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본 고에서는 작품의 주제가 진정 ‘효’라는 가치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보은기우록>이 그리고 있는 ‘폭력’의 의미는 여타의 우순(虞舜) 서사를 변용하거나 차용한 작품들과 다름이 없는 것인지 진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앞서 <유효공선행록>의 유연과 비교했을 때, 위연청은 부친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와 같은 점에 유념하면서, <보은기우록>에 나타난 부자의 대립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폭력의 양상과 의미를 규명할 것이 다.118)
113) 조광국, 앞의 논문, 2005, 155면.
114) 이재춘, <報恩奇遇錄>硏究 ,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최길용, 조선조 연작소설 연 구 , 아세아문화사, 1992 등.
115) 조동일, 한국고전소설에 나타난 父子 갈등 , 일본연구 15,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2000.
116) 하성란, 조선후기소설에 나타난 현실인식―특히 화폐경제인식을 중심으로 , 동국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2000, 35면.
117) 이지영, 앞의 논문, 2015, 85면.
118) 여기에서는 부자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를 진행하는바, 위지덕-녹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1) 가치관의 대립으로 인한 폭력
기왕의 연구에서 위지덕을 지칭하는 말들로 ‘못된 아버지’, ‘문제적 부성(父性)’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위지덕과 위연청의 부자 관계에 대해 ‘악부효자(惡父孝子)’ 등의 표 현을 사용한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위지덕이 ‘악인’의 형상으로 이해되어 왔음은 부 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위지덕을 ‘악인’으로 규정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의 ‘폭력’은 악인의 행동 범주로서만 이해될 가능성이 크다. <소현성록>을 통해 확인했듯이 가부 장의 폭력은 마땅한 사유가 있으면 작품 내적으로는 용인되는 경우 또한 많다. <유효 공선행록>에서와 같이 부친의 폭력은 타인의 계교에 의한 것일 뿐 전적으로 부친에 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위지덕의 폭력이 진 정으로 그의 악한 성품에 기인하는 것인지 면밀한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위지덕은 양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푸줏간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조선시대 푸줏 간 운영은 천역(賤役)으로 취급되었으며, 특히 도축을 담당하는 이는 천민에 속했음을 상기하면 매우 파격적인 설정이다.
대명 가뎡 년간에 양쥬 강현촌에 사람이 잇스니 성은 위요, 명은
덕이니, 번 대 한문(寒門) 자졔(子弟)로 오대(五代) 제(帝) 건문(建文) 초(初)의 한림학를
졀 (辭絶)고 그후 자숀이 쇠미(衰微)야 지덕의 고죄(高祖) 쳔슈년간의 쇼년등과(少 年登科)여 셕일(昔日事)로 년미슌(年未三旬)에 죠
(早死)니 일로 죳
삼대 를 발신(發身)
업고 빈
더니 지덕에게 이르러
각하되,
‘오대(五個代)를 한로(宦路)의
지 업고 독셔(讀書)에 일을 못보고 션죠로붓
터 집이
엿더니 다시 현달
쳥년에 죠망니 베슬른 내 집에 불호지(不 好之事)요, 글 잘이 한갓 스
로 괴로올
름이요. 혯 이름을 즁히 여겨 평생 궁권(窮困)을 감심(甘心)미 어리지 아니리요. 부상슈(富商財主)의 가음열며 평안미
낙이라.’ (권1, 7-8면)
위의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위지덕은 무려 5대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해 집안 이 점차 패망해가는 상황에서 다시 현달을 바라는 것은 가당치 않은 것이라 판단한 다. ‘글을 잘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괴로울 따름’이라는 표현은 가난한 선비에게 공부 가 도리어 가혹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여긴 위지덕의 생각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위 지덕이 고귀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천역을 하게 된 것은 기존의 질서 속에 편입될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이는 자진해서 택한 결과라기보다는 타의적 결과
부부 폭력이나, 위연청에게 가해지는 사혼 등의 구조적 폭력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 는다. 다만 이들의 폭력을 다루는 시각과 위지덕-위연청 부자 관계의 폭력을 다루는 시각 사이 에 일치점과 불일치점이 모두 포착되는데, 논의의 과정에서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 언급하는 방 식을 취하고자 한다.
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몇몇 선행연구에서도 이 지점에 주목한 바 있는데,119) 이 서 술이 중요한 까닭은 위지덕의 인물 형상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 다. 위지덕을 태생적으로 물질을 추구하는 파렴치한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를 곧 악인 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5대가 넘도록 공명과 부귀를 누리지 못한 가문의 일원인 위지덕이, 미래가 불투명한 글공부를 하며 평생 가난하게 사느니 부상재주(富商財主) 로서 평안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을 두고 악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그와 같은 삶을 선택한 후에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어 재물을 취하는 등 악독 한 상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니까 그의 삶의 태도와 성격은 태생적이라기보 다는 후천적인 것이라 하겠다.120)
그런데 벼슬길과는 멀어지기로 다짐한 위지덕에게서 너무 똑똑한 아들이 태어난다.
아들 연청에 대해 곱고 정숙하며 욕심까지 없으니 ‘치산부가(治産富家)’할 재목이 아 니라고 말하는 위지덕의 말은 앞으로 부자가 겪게 될 갈등을 암시한다. 외숙에게서 수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위연청은, 위지덕이 우려했던 대로 그가 직접 푸줏간을 운영하는 것을 보자마자 그만둘 것을 간언한다.
부친이 ‘살육매매’하는 형상을 보고 있자니 세상에 낯을 들 수가 없다는 말에 위연 청은 내심 기쁘지 않았지만 바로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저 외숙에게 가서 시구(詩句) 나 읊고 오더니 생각이 잘못되어 못쓰게 되었다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위연청이 그 치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오문(吾門)이 연(百年) 교목 죡(喬木大族)으로 일 쳥엽이 잇거” “엇지 감히 엄위(嚴威)를 존졀 ”냐며 반복적으로 간언하여 위지덕을 분노케 한다.121)
둘의 대결은 다음날 위지덕이 손수 만든 고기 요리를 위연청이 먹지 않으면서 본격 화된다. 이 사건에서 먼저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 위지덕을 대하는 위연 청의 태도가 ‘착한 아들’, ‘효자’로서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아버지가 손수 잡아 온 고 기반찬을 먹지 않는 위연청의 행위는 그 자체만 본다면 위지덕에게는 심각한 모욕을 줄 수 있는 행위이다. 특히 앞서 푸줏간 운영에 대해 위연청이 간언을 하였을 때, 위
119) 문용식은 작가가 위지덕이 물질을 추구하게 된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점이 그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았다(문용식, 앞의 논문, 287면). 최수현 역시 위연 청이 과거에 합격한 뒤 벌열 가문들이 제기하는 반발이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 했을 때, 위지덕의 판단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내려진 것이라 보았다(최수현, <보은기우록> 연 구 ,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37-38면).
120) 다음과 같은 서술에서도 위지덕의 삶에 대한 일말의 연민이 느껴지는바, 그것이 타의적인 결 과였다는 서술자의 암시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원의 하 금고 놀나오니 치 퍼러 여 깃븜도 모니 스로 독쟝(毒杖)의 죽인 아이 사라 급뎨(及第)거오히려 여(餘事)요, 누셰(累世) 과갑(科甲)이 허디고 스 로 쥬 (財主)로 소님(所任)하매 지친(至親)과 원족(遠族)이 헛고 향환(鄕宦) 유 (儒生)도 벗 기 쳔여 니 엇디친님 례로 각 배리오. 아모리쥴 모르디라.” (권10, 35면) 121) 권1, 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