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로동신문』 보도를 보면 1956년 12월 김일성의 강선제강소 현지지도 이후 천리마운동이 전개되고 주요 공장과 기업소의 생산량이 크게 높아진 것과 비슷하게 1967-68년에도 천리마작업반 운동의 활성화가 생산 현장의 증산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룡성기계공장에서는 1967년 연료와 원료의 장 입 작업을 기계화하고 전기로 내부 용적을 늘려 일일 생산량을 50% 높였다고 한 다.196) 『로동신문』에 따르면 강선제강소 역시 1967년 2만 톤의 강편을 증산했으 며, 황해제철소도 생산 공정 과정을 개선함으로써 대형 압연기의 이용률을 훨씬 높여 1967년 7월에 이미 7개년 계획 말의 생산 수준 목표를 넘어섰다.197) 성진제 강소의 기술자와 노동자들도 여러 가지 새로운 작업 방법을 도입하여 강철 용해 시간을 단축하고 강편의 일일 생산량도 60% 높였다고 한다.198) 룡양광산의 경우 1967년 하반기 생산 계획이 같은 해 상반기 그것보다 1.3배 높았지만 이를 40%
초과달성했다고 보도되었다.199) 『로동신문』은 성흥광산에서도 1967년 새로운 형
194) 백재욱, “사회주의 건설의 혁명적 고조와 천리마작업반 운동”, 『근로자』 1967. 10, 31-37쪽, 특히 32-34쪽.
195) 김일성, “사회주의 건설의 위대한 추동력인 천리마작업반운동”, 279-281쪽.
196) 『로동신문』 1967. 8. 11 197) 『로동신문』 1967. 7. 22, 7. 28 198) 『로동신문』 1967. 7.30.
199) 『로동신문』 1967. 8. 8.
태의 착암자동추진기를 도입하여 매 작업조마다 인원을 3명씩 줄이고도 착암기 (鑿巖機) 대당 낙광(落鑛) 양을 두 배로 높였으며, 그 해 계획을 8월 초에 완수했 다고 보도했다.200) 1968년에도 황해북도 내 광산들이 일 생산량을 계획의 두 배 이상 초과했다는 등 각 공장, 기업소의 초과 생산 보도가 계속되었다.201)
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생산 현장에서 일어난 위와 같은 ‘혁신’들에 힘입 어 1967년 공업 총 생산액은 원래 계획한 12.8%를 초과한 17%였고 알곡 생산량 도 전해보다 16% 늘었으며, 1968년에도 공업 총 생산액과 알곡 생산량이 각각 15%, 11% 증가했다고 한다.202) 1967년 평양 시내가 수몰될 정도로 대홍수가 발 생했고, 1968년에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때문에 안보 위기가 극도로 높아졌음 을 감안하면 이 수치가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이 기간 북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1966년에 비해 활력을 회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에 김일성도 1968년 공업 총 생산액 성장률이 “본래 계획했던 것보다는 좀 낮은 수자이지만 우리나라 공업의 규모가 매우 커진 조건에서 대단히 높은 것”이라면 서 만족감을 표시했다.203)
갑산파 숙청에 뒤이은 천리마작업반 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그에 힘입은 경 제 성장 속에서 김일성과 당 주류는 자신들이 지난 수 년 동안 주장해온 사상 우 위의 노선을 정당화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은 1967년 12월 열 린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프롤레 타리아 독재를 강화하여 한편으로는 계급투쟁을 계속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주의 경제건설을 힘 있게 밀고” 나가야 할 북한 정부의 10대 정강을 발표했다.
이때 그는 ‘정치・경제・국방 등 국가 전 영역에서 주체사상 구현’, ‘통일을 위한 준비’에 이어 ‘사회 모든 성원들의 혁명화, 노동계급화’를 북한 정부의 세 번째 과업으로 꼽았다.204) 앞선 두 가지 항목이 국가의 총론적인 목표에 해당하는 내 용이었음을 감안하면 사상혁명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은 것이다.
김일성과 당 주류는 경제가 2년 연속 회복세를 유지하던 1968년 하반기 들
200) 『로동신문』 1967. 8. 18.
201) “광물 생산에서 일어난 거대한 혁신”, 『로동신문』 1968. 4. 30.
202) 『조선전사』 31, 83, 120쪽.
203) 김일성, “1969년 새해를 맞이하여”(1969. 1. 1), 『김일성저작집』 23 (평양: 조선로동당출 판사, 1983), 224-233쪽, 특히 228쪽.
204) 김일성, “국가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 자립, 자위의 혁명정신을 더욱 철저히 구현하 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강”, 『북한최고인민회의자료집』 제3집, 76-107쪽, 특히 86쪽. 이 외에도 김일성은 혁명적 군중 관점 확립, 사회주의공업화와 기술혁명 실현을 통한 자립적 민족 경제 강화, 과학기술 발전 촉진과 사회주의 문화 건설, 국방력 강화, 프롤레타 리아 국제주의 원칙과 평등 및 호혜의 원칙에 기초한 대외 무역, 해외 동포의 이익과 권리 옹호, 자주적 대외 정책 견지 등을 북한 정부의 10대 정강으로 꼽았다.
어 더욱 적극적으로 사상 우위의 전략을 정당화했다. 예컨대 김일성은 1968년 8 월 행한 북한 정부 수립 20주년 기념 연설에서도 사회주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여 한편으로는 계급투쟁을 계속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경 제건설을 힘 있게 밀고나가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적대계급에 대한 “독재를 강화 하며 사상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여 전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급화해야” 한다고 주 장함으로써 10대 정강에 담긴 사상혁명 선행의 입장을 재확인했다.205)
김일성의 이 연설 이후 1968년 말 출판된 『근로자』에는 경제와 국방의 병진, 국방력 강화와 경제의 고성장 전략, 정치사업 선행 등 김일성과 당 주류가 갑산 파와 논쟁을 벌일 때 주장한 핵심 내용들을 정당화한 글이 집중적으로 게재되었 다.206) 이 글들은 병진 노선의 정당성, 국방력 강화와 고속 성장 전략의 현실성, 정치사업 선행의 우월성, 천리마운동과 대안 체계의 본질(사상성 제고)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었지만, 공통적으로 “혁명과 건설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당원과 근로자들이 당의 노선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정치사상적 준비를 해 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207)
이처럼 1967-68년 사상성 제고에 기초한 고속 성장 전략, 사상혁명 선행에 기초한 공산주의 건설 전략이 로동당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러나 이것이 ‘사상의 절대화’ 또는 ‘극단적 주관주의의 정립’을 의미한 것은 아니 었고, ‘기술혁명과 경제 건설을 더 잘하기 위한 사상혁명’의 기조는 여전히 유지 되었다. 이는 1968년 말 당 주류의 노선과 전략에 대한 집중적인 정당화 작업의 시발이었던 김일성의 북한 정부 수립 20주년 연설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경험은 계급투쟁을 강화하여 근로자들의 계급적 각성과 사상의식 수준을 높이
20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 설의 강력한 무기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스무돐 기념 경축대회에서 하신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이신 김일성동지의 보고”,
『근로자』 1968. 9, 2-50쪽, 특히 28쪽.
206)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더욱 발양시키며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 힘 차게 전진하자”, 『근로자』 1968. 10, 12~20쪽;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우 리 당 로선의 정당성과 위대한 생활력”, 같은 책, 29~37쪽; 권진상, “천리마운동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우리 당의 총로선이다”, 같은 책, 38~47쪽;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프로레타리아 독재의 임무”, 『근로자』 1968. 11, 2~10쪽; “공산주의 교양의 강령적 지침”, 『근로자』 1968.
11, 32~38쪽; 허 학, “정치 사업을 앞세우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성과의 위력한 담보”, 같은 책, 39~46쪽; 김성태, “끊임없이 전진하고 끊임없이 높은 속도로 발전하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 법칙”, 같은 책, 47~56쪽;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10대 정강에서 제시된 자주, 자립, 자위의 혁 명적 로선을 더욱 철저히 관철하자”, 『근로자』 1968. 12, 8~14쪽; “위대한 주체사상을 빛나게 구현한 자주, 자립, 자위의 혁명적 로선, 사회주의 건설을 힘 있게 추동하는 강령적 지침”, 같 은 책, 15~36쪽; “대안의 사업체계의 본질과 우월성”, 같은 책, 43~49쪽 등.
207) “우리 당 로선의 정당성과 위대한 생활력”, 36-37쪽.
지 않고서는 사회주의의 이 우월성을 나타낼 수 없으며 근로자들이 안일과 해 이에 사로잡혀 경제건설과 기술혁명 과업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 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계급투쟁과 사상혁명만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 경제 건 설을 차요시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사상혁명은 사회주의 국가가 반드시 수행하 여야 할 중요한 혁명과업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혁명은 근로자들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을 뿌리 빼고 그들의 자 각적 열성과 창의창발성을 불러일으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성과적으로 건설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사상혁명만 강조하고 기술혁명을 소홀히 한다 면 근로자들을 고된 로동에서 해방하는 혁명과업을 완수할 수 없으며 사상혁 명 자체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208)
위 인용문에서 김일성은 계급투쟁과 사상혁명을 선행해야만 경제 건설과 기술혁 명을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어 사상혁명은 그 자체 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건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 적인 경제 건설과 기술혁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일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일성이 인용문 첫머리에 밝힌 “경험”이라는 말에서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고 로동당이 사상 우위의 전략을 확고히 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다. 즉, 김일 성과 당 주류는 1960년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모든 당원과 인민들 속에서 ‘노 동계급의 사상’이 아닌 모든 사상 잔재를 청산하여 모든 당원과 인민들이 당의 결정사항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갖게 만드는 것이 당 정책을 철저히 집행하는 첫 걸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1967-68년 잠시 침체를 벗어나는 듯했던 북한 경제는 1966년만큼은 아 니었지만 1969년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다.209) 1967년부터 국방비 가 폭증하여 전체 예산 대비 국방비 비중이 3년 연속 30%를 넘었고, 1967년 홍 수 피해와 1968년 안보 위기 고조 등 경제에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요인들이 너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1967-8 년의 고성장 과정에서 설비에 과부하가 걸린 것도 경제 침체의 요인이었던 것으 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강선제강소는 1950년대 말 천리마운동 기간 원래 공칭능력 6만 톤이었던 분괴압연기로 연 12만 톤의 강재를 생산했고, 1960년대 말에는 이 를 36만 톤까지 늘렸을 뿐 아니라 2만 톤을 추가 생산하기까지 했다.210) 북한에
208) “공화국 창건 스무 돐 기념 김일성동지의 보고”, 26-27쪽.
209) 이태섭, 앞의 책, 314쪽.
210) 공칭능력은 설계 또는 제작 당시 기술공학적 측면에서 타산하여 규정한 기계설비의 최대 생산 능력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