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당은 1961년 제4차 당 대회 이후 9년 만인 1970년 11월 제5차 당 대회 를 개최하여 1960년대의 위기와 혼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음을 선언하고 6개년 계획을 확정하였다. 이 대회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를 강화화기 위해서는 물질적 요새와 사상적 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6개년 계획 기간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들을 기술혁명, 문화혁명, 사상혁명 순으로 제시했다.2)
그러나 1970년을 전후로 가장 강조되고 그 내용이 집중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사상혁명 선행, 사상 우위였다. 1969-70년 『근로자』에는 사상혁명의 내용과 사상 혁명을 선행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한 글들이 제목과 강조점을 조금씩 달리 하면서 집중적으로 게재되었다. 예를 들어 1969년 5월 『근로자』에는 사상혁명의 필요성,
2)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1970. 11. 2), 『김일성저 작집』 25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232-356쪽, 특히 265쪽.
사상혁명의 구체적 내용,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김일성이 창시한’ 사상혁명론의 의의, 향후 사상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 등 사상혁명의 총론 격인 글이 게재되 었다. 이 글은 사상혁명이 인민들을 노동계급의 사상으로 무장시켜 그들의 혁명적 열의와 창조성을 고양시키며, 이에 힘입어 사상적 요새 점령뿐 아니라 사회주의 강화에 필요한 다른 과제들도 더 잘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3) 로동당은 사 상혁명이 “공산주의의 물질적 전제를 마련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복잡한 사업이며 장기성을 띠는 과제”라는 점도 사상혁명 선행의 이유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4) 이 글들이 게재된 이후 『근로자』에는 사상혁명과 거의 같은 의미였던 ‘전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들이 반복적으로 게재되었다.5)
1960년대 말-1970년대 전반기 로동당이 사상혁명을 강조한 가장 큰 목적은 당의 노선과 정책에 대한 사회적인 동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로 동당이 사상혁명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꼽았다는 사실에 서 잘 드러난다.6) 유일사상체계 확립은 갑산파가 숙청되기 직전인 1967년 초부터 제기되었고 갑산파 숙청 이후에 사상혁명의 첫째 과제로 더욱 강조되었다.7) 여기 서 유일사상체계란 말 그대로 전 사회가 단 하나의 사상과 노선을 따른다는 의미 로서, 당시 북한에서 유일사상은 ‘김일성의 혁명 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노선과 정책’을 의미했다.8) 즉, 로동당은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여 김일성을 절대화함으 로써 그의 사상을 구체화한 당 노선과 정책의 권위도 함께 높이고자 한 것이다.
로동당의 이러한 의도는 교육 사업 발전의 첫째 조건으로서 교원들 속에서 유일 사상체계를 확립하는 일의 의미를 설명한 다음의 글에 잘 드러난다.
전체 교원 인테리들은 무엇보다 먼저 현 시대의 탁월한 맑스-레닌주의자이신
3)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사상혁명,” 『근로자』 1969. 5, 2-14쪽, 특히 4-5쪽.
4) 김진용,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로 가는 길에서 반드시 점령하 여야 할 두 요새”, 『근로자』 1969. 8~9, 10-20쪽, 특히 16쪽.
5) “전 사회의 혁명화, 로동계급화는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 프로레타리아 독재의 중요임무,”
『근로자』 1969. 12, 2-8쪽; 권진상, “농촌에서의 사상혁명과 농민 혁명화”, 『근로자』 1970.
6, 36-42쪽; 로동혁, “사상혁명을 힘 있게 벌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혁명화하는 것은 우리 혁명 발전의 절실한 요구”, 『근로자』 1970. 9, 11-18쪽 등.
6) 당시 로동당은 심재성, “사람과의 사업을 잘하는 것은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심화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 『근로자』 1969. 5, 41~46쪽, 특히 42쪽;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 것은 우리 혁명 승리의 튼튼한 담보”, 『근로자』 1970. 8, 2-9쪽, 특히 5쪽 등에서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사상혁명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강조했다.
7) 예를 들어 1967년 3월 김일성은 당 사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 립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일성, “당 사업을 개선하며 당대표자회 결정을 관철할 데 대 하여”(1967. 3. 17-24), 『김일성저작집』 21, 135-258쪽, 특히 136쪽.
8) “당의 유일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 『근로자』 1968. 4, 2~12쪽, 특히 2-3쪽.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그 구현인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듦으로써 수령의 교시와 당 정책의 철저한 옹호자, 선전자, 집행자로 되어야 한다.(강조는 필자) 9)
결국 김일성과 로동당이 사상혁명 선행을 명분으로 유일사상체계를 강화한 목적은 “당과 수령의 요구―이것이 곧 우리의 기준량이며 공칭능력이다”라는 구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당원과 인민이 무조건적으로 당 정책 실현에 참여하도 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10) 1960년대처럼 당 간부들과 개별 행위자들이 당 정책 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거나 따르지 않을 가능성을 차단하고 전체 인민의 “사상의 지 및 행동의 온전하고도 무조건적인 통일을 이룩하게” 함으로써 당 정책 실현 가능성을 높이려 한 것이다.11) 이런 맥락에서 로동당은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 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는 것’을 6개년 계획의 성공을 위한 첫째 조건으로 제시했다.12) 천리마작업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사상 혁명을 강화하고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운동 참가 자들이 ‘김일성의 저작과 교시, 특히 각 단위에 하달한 지시사항을 깊게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되었다.13)
김일성과 로동당은 당 정책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견을 제거하고 그들을 기술혁 명 실현에 동참시키기 위해 과학계 내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서둘렀고 이는 인텔 리 혁명화 정책의 강화로 이어졌다. 로동당은 1960년대 말 대대적인 사상 검열 과 정에서 나타났던 혼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1970년을 전후로 인텔리들의 당 정책 및 혁명 전통 학습, 인텔리에 대한 조직적 통제, 비판과 상호 비판 등을 강화함으 로써 인텔리에 대한 일상적인 통제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14) 김일성도 5차 당 대회 폐막 전날 연설에서 “인텔리 문제를 조급하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인텔 리 혁명화를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5)
강화된 인텔리 혁명화 정책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는 1967년
9) 양형섭, “교원 혁명화와 주체적인 교육 발전의 길을 명시한 력사적 교시”, 『근로자』 1970.
2, 26-33쪽, 특히 29쪽.
10) “<<강선속도>>로 계속 혁신, 계속 전진하여 상반년 계획을 앞당겨 끝냈다”, 『로동신문』
1970. 6. 9.
11) 리근모,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혁명적 실천”, 『근로자』 1973. 6, 8-13쪽, 특히 8쪽.
12) “새로운 투쟁 강령―인민경제발전 6개년 계획”, 『근로자』 1970. 12, 21-28쪽, 특히 27쪽.
13) 심재성, “천리마작업반 운동을 심화 발전시켜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더욱 촉진하자”, 『근 로자』 1970. 8, 43-50쪽, 특히 49쪽.
14) “인테리를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 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방침”, 『로동신문』 1970. 8. 7.
15) 김일성,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에서 한 결론”(1970. 11. 12), 『김일성저작집』 25, 357-377쪽, 특히 377쪽.
6월 김일성이 함흥을 방문하여 이 지역 인텔리들을 강하게 비판한 뒤 함흥의학대 학 당위원회가 교원들을 ‘혁명화’한 경험을 소개한 1971년 6월 『근로자』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 따르면 대학 당위원회는 김일성의 사상과 당 정책 으로 “무장하는” 것이 교원 혁명화의 첫걸음이라는 판단 아래 가장 먼저 교원들의 학습 규율을 강화했다. 구체적으로 당위원회는 매주 통일적인 계획에 따라 교원들 에게 주제별 학습 과제를 제시했고, 각 강좌들은 이에 의거하여 김일성의 노작 연 구 토론회를 진행했으며, 당위원회는 필요에 따라 해설 강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당위원회는 김일성이 이 학교에 준 교시와 교육・보건 부문의 교시도 발췌하여 각 강좌와 연구실에 비치함으로써 교원들이 연구 주제를 정하거나 강의를 준비할 때 이를 항상 참고하도록 만들었다. 당위원회는 학습 규율과 함께 교원들의 조직생활 도 강화하여 모든 교원들의 활동 계획 작성 및 그 집행을 집체적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즉, 각 교원들은 강의・연구・집필・학생 지도 등 자신의 모든 활동을 포괄 한 월간 활동 계획을 자세히 작성해야 했고, 이를 소속 강좌회의를 거쳐 확정한 뒤 집행해야 했다. 이 계획의 집행 과정에 대한 통제 및 집행 결과에 대한 평가도 집체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교원들은 소속 강좌는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당 세포 또는 직맹 및 사로청 조직에도 보고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다중의 통 제 과정에서 교원에 대한 비판과 자기비판도 크게 강화되었다.16)
연구소 소속 과학자들에 대한 통제도 연구 주제 선정 단계에서부터 엄격해졌 다. 예컨대 1970년 3월 과학원 15차 총회 당시 원장 오동욱은 과학자들이 김일 성의 “교시와 당 정책을 깊이 연구하여 그것을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들고 이를 연구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7) 김일성도 같은 해 11월 당 대회에서 “과학 연구 기관에 대한 지도와 통제를 강화하며 과학자들에게 연구과제도 똑똑히 주고 연구 성과에 대한 총화도 제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8) 1973년 당시 로동당 중 공업부장이던 홍성남도 과학자, 기술자들이 김일성의 당 5차 대회 보고, 최고인민 회의 5기 1차 대회 연설 등 과학기술과 관련한 김일성의 교시에서 과학연구 사업 의 방향과 방법을 찾음으로써 3대 기술혁명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학자들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무장하고 스스
16) 이상 함흥의학대학의 인텔리 혁명화 관련 내용은 리광현, “교원 인테리들의 혁명화와 대학 당 위원회”, 『근로자』 1971. 6, 44-50쪽에서 정리.
1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제15차 총회가 진행되였다”, 『과학원통보』 1970. 3, 55쪽.
18) 김일성, “로동당 제5차 대회 결론”, 375쪽.
19) 홍성남,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3대 기술혁명 수행의 중요 담보”, 『근로자』 1973. 3, 36-41쪽, 특히 41쪽. 1972년 12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는 북한의 ‘사회 주의헌법’이 제정된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를 더욱 강화 하자”라는 연설을 통해 향후 북한 사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3대 혁명을 지속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