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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진을 불러온 기술적 문제들

제2절. 기술혁명의 부진과 경제 침체의 심화

2) 경제 부진을 불러온 기술적 문제들

1960년대 로동당은 열악한 자연 환경, 대외 관계의 악화, 간부들의 비효율 적・이기적 사업 방식 등으로 인해 경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 경제의 주요 문제들은 단순히 기술외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경 제의 양적 성장세에 비해 낮았던 산업기술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아가 7 개년 계획 기간 북한의 기술 수준이 로동당이 기대한 만큼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 에 여러 문제들이 쉽게 제거되거나 완화되지 못했다. 앞서 서술한 북한 경제의 주요 문제점을 불러온 기술적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960년대 북한 경제에서 생산의 파동성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당시 북한 정 권이 1950년대 후반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양적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했던 설비의 부실함과 노동자들의 낮은 기술 수준이 1960년대에도 지속된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963년 1월 열린 로동당 중앙 위원회 부부장 이상 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이 한 발언을 보자.

우리가 공장을 빨리 건설하였기 때문에 지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 습니다. … 근로자들의 기술기능수준이 건설된 공장, 기업소들의 기술 장비 수 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 공장을 빨리 건설하였기 때문에 좀 조잡하게 건설되 었으며 골간은 꾸려졌으나 채 갖추지 못한 부문들이 많습니다. … 2.8 비날론 공장도 조잡하게 만든 설비를 놓았기 때문에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 다 른 부문에서도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없고 그래서 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100)

김일성의 발언을 보면 1950년대 후반을 거치며 기본 설비들은 갖추었으나 아직

98) 김 면, “구동독의 대북한 기밀보고서 분석”, 『평화학연구』 제7권 제1호(2006), 211-232쪽, 223-227쪽.

99) 리주연, “사회주의 건설과 외화 문제”, 『근로자』 1965. 12, 10-17쪽, 특히 16-17쪽.

100) 김일성, “당 사업과 경제 사업에서 나서는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1963. 1. 3), 『김일성 저작집』 17, 11-42쪽, 25-26쪽.

건설하지 못한 부대설비가 많았고, 건설된 설비도 부실한 것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로동당이 중공업 골간에 살을 붙이고 설비 가동률을 높이는 것을 7개년 계 획 전반기 중공업의 기본 과제로 결정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것 이었다. 1960년대 전반기 『로동신문』에도 생산의 정상화를 위한 설비 가동률 제 고와 부대설비 건설을 촉구하는 사설과 기사가 여러 차례 게재되었다.101) 그러나 1966년 10월 개최된 로동당 제2차 당 대표자회(이하 ‘당 대표자회’)에서 여전히 골간에 살을 붙이고 생산을 정상화하는 일이 공업 부문의 중심 과업이었을 정도 로 이 문제는 1960년대 전반기에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102) 결국 1960년대 전반 기 북한 경제의 파동성은 부실한 설비들이 자주 고장을 일으켜 생산이 중단되거 나, 필요한 부대설비가 없어 생산에 차질이 빚어져 발생한 것이다.

경제 각 부문의 낮은 기술 수준도 파동성을 일으킨 주원인이었다. 먼저 로동 당이 기술혁명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문으로 꼽았던 기계공업의 기술 수준 이 다른 중공업 부문보다 낮아서 기계 설비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했고, 이 때 문에 경제 각 부문에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103) 예를 들어 기계공업 부문 이 강선제강소에 제공하기로 한 인발강관 생산 설비를 제때 만들어주지 못해 경 제 각 부문에 필요한 인발강관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적지 않은 탄광과 광산 들도 압축기, 적재기, 착암기, 불도저, 굴착기 등을 정해진 기한에 공급받지 못해 생산을 정상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104) 금속공업 부문도 여타 공업 부문들에 필요한 다양한 품종과 규격의 강재를 생산할 정도의 기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로 인해 강철 생산량이 계속 늘어도 철제 일용품 생산에 필요한 금속재료가 없 어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105)

1960년대 북한 경제에서 자원 낭비 현상이 만연했던 배경에도 낮은 기술 수 준과 그에 따른 전문화의 부진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61년 말 북한의 제철 공업 은 강철 생산 시 다른 나라에 비해 코크스는 2배, 전력은 1.5배, 내화물은 3배나

101) “설비 관리를 개선하여 생산을 정상화하자”, 『로동신문』 1963. 4. 29; “생산을 정상화하 기 위하여 광석과 석탄 생산에서 전환을 일으키자!”, 『로동신문』 1965. 12. 12; “생산을 정 상화하기 위하여 대중적 기술혁신의 불길을 높이자!”, 『로동신문』 1965. 12. 14 등.

102) 김일성,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1966. 10. 5), 『근로자』 1966. 10, 2-54쪽, 특히 28 쪽; “현존 경제토대를 효과있게 리용하며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채취공업을 결정적으로 앞세우자!”, 『로동신문』 1966. 12. 9 등. 당 대표자회는 로동당 중앙위원회가 당 대회 사이 에 필요에 따라 소집하는 회의로서 당 노선과 정책, 전략전술의 긴급한 문제들을 토의・결 정한다. 당 대표자회는 1958년 3월, 1966년 10월, 2010년 9월, 2012년 4월 개최되었다.

103) 김일성, “기술혁명수행에서 과학자, 기술자들의 임무”, 182쪽.

104) 김일성, “기계공업 부문 앞에 나서는 몇 가지 과업”, 31-32쪽.

105) 김일성, “현 시기 우리나라 인민경제의 발전방향에 대하여”(1963. 9. 5), 『김일성저작집』

17, 371-406쪽. 387-388쪽.

더 썼을 정도로 기술 수준이 낮았는데, 1960년대를 거치면서 이런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106) 당시 북한에서 낮은 기술 수준에서 비롯된 자원 낭비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품종과 규격의 강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미흡하여 철강 생산량이 높아져도 실제 제품 생산 또는 건설 과정에 서 버려지는 강재가 많았다. 각 부문의 공장들이 금속공장에서 강재를 공급받은 뒤 이를 자신들에게 필요한 규격에 맞추어 다시 깎거나, 규격에 맞는 철근이 생 산되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굵은 철근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통조림용 철판 과 같이 간단한 철제 일용품도 자체 생산하지 못해 수입해야 할 정도였다.107) 채 취공업 부문에서도 지질탐사 기술 수준이 낮아 유색(有色)금속이 없는 곳을 파헤 치는 등 자재와 노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았다.108) 전력공업 부문은 설비의 유 지・보수 수준이 낮아 송전 및 기계 가동 과정에서 손실되는 전력량이 매우 컸 다.109) 심지어 포장재 기술마저도 낙후하여 수송 도중 유실되는 알곡의 양도 많 았다고 한다.110) 이처럼 당시 북한에서는 크고 작은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곳곳 에서 자원 낭비가 지속되었다.

낮은 산업기술 수준은 1960년대 북한이 외화 부족을 타개하는 데에도 걸림 돌로 작용했다. 1960년대 초 소련과 관계가 악화된 이후 북한은 수출 품목 및 수 출량을 확대하여 자체적으로 외화를 확보하려 했다. 예를 들어 로동당은 1960년 대 들어 12만 정보 늘어난 과수 면적을 이용해 과일 수출 확대를 시도했고, 금 생산 및 수출을 늘려 기계 설비 수입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다.111) 특히 당시 로 동당이 가장 역점을 두었던 수출품은 광물과 경공업 제품이었는데, 광물이나 그 일차 가공품을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 경공업 제품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수출 했다. 문제는 수출품의 질이 낮아 높은 가격에 수출할 수 없었고, 북한의 낮은 기 술 수준 때문에 품질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경쟁력도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1964년 10월 소련과 관계가 호전되기 시 작한 이후에도 수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63년 봄 로동당은 외 화 획득을 위해 내화 벽돌로 쓰이는 마그네샤 크링카(magnesia clinker) 증산을

106) 김일성, “모든 힘을 여섯 개 고지의 점령을 위하여”, 381쪽.

107) 김일성, “현 시기 우리나라 인민경제의 발전방향”, 388쪽.

108) 김일성, “당 사업 강화와 나라의 살림살이”, 64-65쪽. 유색금속은 색깔이 있는 금속(금, 은, 동, 아연, 니켈 등)을 통칭하는 말로서, 철과 그 합금을 일컫는 ‘흑색금속’에 대비된다.

109) 김일성, “당 중앙위원회 4기 11차 전원회의 결론”, 381쪽.

110) 김일성, “지도일군들의 사업방법을 개선하며 지도수준을 더욱 높일 데 대하여”(1966. 4.

1), 『김일성저작집』 20, 299-324쪽, 특히 317-318쪽.

111) 김일성, “현 시기 우리나라 인민경제의 발전방향”, 389-390쪽; “평안남도의 10대 과업에 대하여”(1964. 8. 6), 『김일성저작집』 18, 392-431쪽, 특히 411쪽.

전 당적 과제로 결정했다.112) 그러나 북한산 마그네샤 크링카는 사회주의권 수출 시장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양질의 마그네샤 크링카를 생산하기 위 해서는 마그네사이트를 1,400-1,500℃ 이상의 고온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당시 북한은 용광로의 질과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충분한 열처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 이다.113) 김일성도 북한의 광물 가공품이나 경공업 제품의 질이 낮아 외화 획득 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여러 번 토로했다.114)

당시 북한의 낮은 기술 수준은 수출 부진을 불러온 데 그치지 않고 외화를 더 소비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당시 북한의 기계공업 부문의 수준이 낮아 광업 부문에 필요한 채굴 설비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거나 아예 만들지 못하 는 기종도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북한의 주력 수출품이었던 광물 증산이 더디 게 진행되었고 당연히 수출도 부진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외국에 서 채굴 설비를 사올 수밖에 없었다. 선광 기술 수준도 낮아서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던 텅스텐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속도강(高速度鋼) 생산에 필요한 텅스텐을 외국에서 비싸게 수입해야만 했다.115) 이처럼 1960년대 북한의 외화 부족 문제는 대외 관계 악화뿐 아니라 북한의 낮은 기술 수준 때문 에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었다.

1960년대 당시 북한의 기술 인력은 이처럼 낮은 기술 수준에서 비롯된 생산 현장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7개 년 계획 개시 당시 현장에서 활동하던 기술자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상황 이었다. 이는 북한 정권이 1950년대 후반 경제성장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생산 현장의 기술 인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기술자들을 속성으로 배출했기 때 문이다. 부족한 기술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년제 대학의 학생들을 3년 만 에 졸업시켜 현장으로 내보냈을 정도였다고 한다.116)

7개년 계획 기간 북한이 양성한 기술 인력의 수준 역시 당시 산적했던 기술

112) 김일성, “공장 당 위원회사업을 강화하며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더욱 발전시킬 데 대하 여”(1963. 5. 15), 『김일성저작집』 17, 298-322쪽, 특히 319쪽. 마그네샤크링카는 마그네사 이트를 약 1,500℃ 가량의 고온으로 열처리하여 얻은 광물덩어리인 마그네시아 클링커의 북한식 표기이다. 마그네샤크링카는 녹는점이 매우 높아 내화벽돌로 널리 이용된다.

113) 김 면, 앞의 글, 223쪽.

114) 김일성, “광물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자”(1964. 1. 24), 『김일성저작집』 18, 160-167쪽, 특히 166쪽; “평양시의 10대과업”, 353쪽.

115) 김일성, “당 사업 강화와 나라의 살림살이”, 147-148쪽. 고속도강은 크롬, 텅스텐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서, 일반 강철보다 단단하고 내열성이 강해 빠른 속도로 금속을 가공하는 공구를 만드는 데 쓰인다.

116) 김일성, “고등교육 사업을 개선할 데 대하여”(1965. 2. 23), 『김일성저작집』 19, 189-228 쪽, 특히 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