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반도 통일과 국제정세
한반도 통일 문제는 한국과 북한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관계의 특징으로부터 비롯된다. 현재 순수한 남북관계는 찾을 수 없으며, 모든 남북관계는 다 자관계의 일부가 되고 또한 글로벌 프로세스의 일부로 작동되고 있다.
한반도 남북관계는 각 시대, 각 정세관계의 특징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1980~1990년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러시아 학자 V.D. 티코미 로프(Tikhomirov)는 국제정세와 한반도 문제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하면서『한국 문제 와 국제 요인』1)이라는 주제로 단행본을 낸 적이 있었다. 본 논문은 간략하게 70년간의 국제 정세 주요 경향들 속에서 통일 (분단)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한반도 분단의 시작
1945년 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군이 동유럽에 주둔하면서 좌파운동을 한 결과 동
국제정세와 한반도 통일:
과거와 현재 (새로운 접근법의 주요 방향)
S.O. 쿠르바노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교수
1) В.Д. Тихомиров. Корейскаяпроблемаимеждународные факторы(1945 -начало80-хгодов). М.,«В осточнаялитература»РАН,1998. (V.D. 티코미로프, 『한국 문제와 국제 요인 (1945~80년대 초)』(모스크바: 러시아 과학원 동양 문학 출판사, 1998).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국되었다. 이와 함께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1920년대에 뿌리 내린 좌파 운동 역시 활발해졌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동부 진영과 서부 진영으로 나누게 되었다.
남북 분단을 한반도 북쪽에 주둔한 소련군정이 실시한 특별 정책2)과 한반도 남쪽 에 주둔한 미군정의 정책으로만3)해석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한반도 북쪽의 사회주의 국가형성과 남쪽의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은 1945년 2차 세계 대전 결과들 중 하나인 국제질서가 동서진영으로 갈라지는 과정의 불가피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6・25 한국전쟁
1950년도에 일어난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이 전쟁도 단순히‘김일성, 모택 동, 스탈린의 침략적인 정책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한국전쟁의 본질을 분석하기에 부족하다. 6・25 한국전쟁도 동북아 다자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1945년 소련군은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을 패배시키면서 다량의 무기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중국공산당‘해방군’을 무장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1945 년에 중국에서 소위‘인민혁명 (내전)’이 일어났다.4)
전쟁 당사자는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인민해방군’과 국민당의 중화인민공 화국 국군이었다. 즉, 중국의 북쪽은 - 공산당, 남쪽은 - 국민당이 장악한 것이다. 1949
2) Ю.В.Ванин. Советский Союзи Северная Корея, 1945-1948. М. ,ИнститутвостоковеденияРАН , 2016 (Yu.V. 바닌, 『소련과 북한, 1945-1948』(모스크바: 러시아과학원 동양학 연구소, 2016).
3) Н.Н. Ким. ЮжнаяКорея 1945-1948 гг.: политическая история. М ., Наука-Восточнаялитература, 2015. (N.N. 김, 『1945 -1948 남한: 정치역사』(모스크바: 과학- 동양문학, 2015).
4) ИсторияКитая.ПодредакциейА.В.Меликсетова. М., ИздательствоМосковскогоуниверситета,1998. С.
579- 617. (A.V. 멜리크세토프 감수, 『중국사』(모스크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출판부, 1998.), pp. 579~617).
년에 중국 공산당은 내전에서 승리하였으며 토지개혁을 추구하면서 10월 1일 중화인 민공화국 건립을 선언하였다. 1949년 6월 통계에 따르면 당시‘인민해방군’은 4,000,000명이 넘었다.5)즉 중국의‘인민혁명’은‘공산주의 이데올로기 + 소련의 협력 + 강한 군대 육성 + 토지개혁 실시’의 공식(formula)을 따라하여 공산당이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원인은 국제정세, 특히 동북아 국제정세의 직접적 영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북한 정권은 모택동의 군대와 소련의 지원과 함께 중국 의‘인민혁명’공식을 한반도에 적용한 시 도로 볼 수 있다.
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한 시기에 조선인민군에 중국에서 귀국한
‘조선족’의 비율을 좀 더 자세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즉 1945년까지 군대가 없 었던 상황에서 해방된 지 5년 만에 전쟁의 경험도 없었으면서 전투력이 뛰어난 군대를 육성할 수 있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5년의 전쟁 경험이 있고 무장과 훈련 이 잘된 중국‘인민해방군’이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잘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4. 한국전쟁 경험과 2016년 북한의 전쟁 위협
1950년 한국전쟁 역사와 국제 정세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2차 한국전쟁 도발’
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로부터 군사, 경제, 정치 (UN에서 소련의 역할) 등 협력 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전세계에서 군사 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6・25 한국전쟁은 국제정세, 특히 동북아 국제정세의
직접적 영향으로 발발
5) 中國人民, 解放戰爭 三年 戰績. 中國 人民 解放軍 總部, 一九四九 七月. (본 책에는 쪽 번호 표시가 없으므로 자세한 쪽 번호 기재하기 불가).
거의 없으며 군사 동맹에 (임시로 동맹관계라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군사 작전에 개 입하지 않는 추세이다. 따라서 군사 동맹의 비회원 국가는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 는 현실이다.
21세기 초 북한은 어떤 군사 동맹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1961년부터 전쟁 발생 시 북한을 군사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가진 소련은 1991년에 없어지고 2000년 2월 9일에 새롭게 체결된 러시아 연방과 북한 사이의 협정6)2항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 시 북한 을 보호 할 의무가 없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1950년 한국전쟁 경험과 전술에 따르면) 단독 전쟁을 계획하거나 도발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00년 8월 12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공격할 계획도 없으며 2~3대의 미사일을 가지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의 인공위성을 미국의 우주선을 통해 궤도에 보내준다면 북한은 미사일 프로그램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 고 했다.7)
5. 1972년 첫 남북접촉
1972년 5~6월에 진행된 남북 비밀접촉과 남북방문, 그리고 7・4 남북공동성명과 이어지는 남북 협상과 교류의 시도 역시 국제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1970년대 초는 동서 진영간 데탕트가 시작되었다. 1971년에 소련과 미국은 전략 무기 감축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1972년 2월 21~28일 미국 닉슨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공산주의 중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했다. 그에 따라 서구권
6) Договородружбе, добрососедствеисотрудничествемеждуРоссийскойФедерациейиКорейск ойНарод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Республикой(2000년 2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연방 사이의 친 선,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
7) Korea Now, August 26, 2000, pp. 14~15.
은 북한에 대한 입장, 동구권은 남한에 대한 입장에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이 있었다.
1973~74년도에 북한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8)소련도 대한민국 선수들이 1973년 8월 모스 크바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6. 1990년대 (2000년대 초까지) 남북교류와 접촉
1990년대 초부터 (부분적 으로 1980년대 중순부터) 다시 복원된 남북교류와 접촉, UN 동시 가입 등 남북의 긍정적인 프로세스도 그 때 당시 국제정 세 변화의 결과들 중에 하나로 분석할 수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고 그 후 동구권은 소련과 함 께 붕괴되었다. 그 결과로 구 소련은 평화 및 포괄적 군비 축소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북한은 구 소련의 보호 및 전면적 지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구 소련의 몰락으로 인해 북한은 과거과 같은‘침략 도발자’의 모습이 한정된 기간 동안 없어졌고 또한 북한은 남한을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한민족’으로 받아 들 이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한반도 주변 데탕트’는 2001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8) КурбановС. О. ИсторияКореисдревностидоначалаXXIвека. СПб, Изд- воС. -Петербургскогоунив ерситета, 2009 . С. 554. (S.O. 쿠르바노프, 『한국사: 고대부터 21세기 초 까지』(상트 페테르부르크 :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출판부, 2009), p. 554).
1972년 남북접촉, 1990년대 남북교류와 접촉도 당시 국제정세 변화의 결과들 중 하나로 분석
이 북한을 방문한 것도 국제정세의 결과로 한반도 데탕트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2001년부터 한반도 주변 국제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7. 2001년‘테러시대’ 의 시작과 남북관계
2001년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부드러운 대북정책’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 해 180도로 변하게 되었다. 대북정책의 변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3월 방미했을 때 분명하게 밝혀지게 되었다.9)
게다가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타워 테러 사건 이후 전세계는 다시 한번 갈라지게 되었다. 한쪽은 소위‘테러 국가’로 지정된 나라들이며, 반대 쪽은 테러 국가들과 테러 행위에 대해 투쟁하고 있는 나머지 국가들이다.
2000년대 초부터 북한은 미국 등의 나라로부터‘테러 국가’로 지정 받은 후 남북 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변화되었다. 통일로 향하는 정책보다 북한에 의한‘테러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각종 정책들이 우선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 러한 상황 속에서 통일의 기초원칙들 중에 하나인‘대북평화 정책’은 불가능하게 되 었다.
8. 국제정세와 통일의 가능성
본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반도 분단의 문제가 국제상황에서 비롯되었고, 특 히 동북아 지역의 국제환경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었을 때 남북관계는 개선되었
9) Korea Now, January 13, 2001, p. 13.
고 반대로 심각해졌을 때 남북관계는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과 북한의 당사자적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세계화와 함께 양자적 국제관계는 완 전히 없어지는 경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간장 완화와 통일정책의 구현은 한반도 각국의 정치인 들과 지도자들의 노력보다 한반도 주변 국 가와 전세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다.
그런데 동북아 지역에 언제, 어떻게 포괄적인 안전체제를 구성할 수 있을 것
인지 큰 문제가 있다. 동북아 각국들 사이에 국제관계는 완벽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 각종 문제 (독도, 위안부, 역사 교과서), 중국과 미국 사이 문제, 중・일 문제 등).
그래서 한반도 문제 해결법은 아래와 같이 제기 할 수 있다:
1) 동북아 소속 국가들 사이에 관계 개선 정책
2) 위에 1항에서 지적한 새로운 동북아 국제관계 체제에 북한 참여 유도
3) 북한 체제 보장을 확고히 제공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핵 프로그램 등 단계별로 해결해나가는 정책 실시
4) 한반도 교류 통일 정책 실시
위에 지적한 한반도 문제해결 4가지 정책은 현재 러시아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입 장을 반영한 것이다. 즉, 2016년 6월 14일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한-러 대화’제2차 정치경제 포럼에서 러시아 측 대부분 발표자들은10)한반도의 복잡한 현황 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과 무조건적 대화와 경제 교류 필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었다.
10) 그스프롬 주식회사 이사회 부의장 V.A. Golubev,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호치민 연구소» 소장 V.N. Kolotov 등.
한반도 긴장완화와 통일정책의 구현은 한반도 주변 국가와 전세계의 공동 노력이 필요
9. 한반도 통일관 원칙에 대하여
‘한반도 문제’는 다각적인 문제이다. 그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중에 북한의 인권문제, 북한의 정치 체제의 붕괴 아니면 정치 체제 유지, 핵 무기 개발 (포기) 문제, 미사일 프로그램과 미사일 발사, 한반도 통일 등이 있다.
위에 지적한 문제들은‘한반도 문제(Korean Question, Korean Problem)’에 속하 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이 문제들을 부분적으로 해결해도 그 것이 통일 과제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많은 전문가들의 입장은 북한이 핵, 미사일, 인권, 정치체제 등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통일이 가까워진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문제는 그렇지 않게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남북교류와 통일 정책이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 소련도 사회주의 체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핵무기 등을 보유하 면서도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다양한 교류를 유지하면서 끝내 페레스트로이카와 정치 경제 개혁의 시대가 왔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러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 호기심, 경험 등이 소련 내부에 전달되었고 또한 그 교류는 개혁의 주도적 원인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 문제도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 정치체제 등 문제들을 명확 하게 구별(분리)하면서 단계별로 풀어나가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 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