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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의 편지에서 오늘의 흉부외과를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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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Department of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gery,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논문접수일:2009년 1월 22일, 논문수정일:2009년 3월 6일, 심사통과일:2009년 3월 9일 책임저자:김원곤 (110-744)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28,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Tel) 02-2072-2346, (Fax) 02-764-3664, E-mail: [email protected] 본 논문의 저작권 및 전자매체의 지적소유권은 대한흉부외과학회에 있다.

50년 전의 편지에서 오늘의 흉부외과를 되돌아 본다

1958년 4월에서 1981년 12월까지 고 이영균 교수와 닥터 릴리아이와 연관된 서신 39편의 분석

김 원 곤*

Analysis of 39 Letters Concerned with the Late Professor Lee YK and Dr Lillehei and the Letters Were Written between Apr. 1958 and Dec. 1981

Won Gon Kim, M.D.*

Dr Lillehei (1918∼1999) pioneered cardiac surgery with his landmark operations using cross-circulation in 1954 and 1955. With his dedications to open heart surgery, he is generally considered to be the father of open heart sur- gery by many medical historians. Dr Lillehei expanded his contributions to cardiac surgery with training 134 car- diothoracic surgeons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Hospital and he trained an additional 20 surgeons at the Cornell Medical Center. Dr Lillehei's trainees came from all over the world and Dr YK Lee (1921∼1994)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was among them. He joined the University of Minnesota Hospital in 1957 as a part of the Minnesota project. During his stay for two years, in addition to experimental research, he learned clinical cardiac surgery as part of Dr Lillehei's team. In 1959, after returning to Korea, Dr Lee began his career as a full-time cardiac surgeon with establishing the Division of Cardiac Surger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Yet he en- countered many difficult barriers in the process. During that time, Dr Lillehei was willing to share his experience and he provided many valuable resources for cardiac operations. With Dr Lillehei's kind help, the open heart sur- gery program was gradually and successfully establishe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These two surgical titans from across the Pacific Ocean died in 1994 (Dr Lee) and 1999 (Dr Lillehei). They are gone, yet the proud Korean people have not forgotten them.

(Korean J Thorac Cardiovasc Surg 2009;42:543-559) Key words: 1. History

2. Heart surgery

배 경

닥터 릴리아이(C. Walton Lillehei; 1918∼1999)는 1954년 교차순환법(cross circulation)에 의한 기념비적인 심장수술 이후 ‘개심술(open heart surgery)의 아버지'로까지 불리고 있는 세계적인 흉부외과의사이자 의학자였다[1,2]. 1953년 닥터 기본(John H. Gibbon)이 오랜 연구 끝에 심폐기를 이

용하여 심방중격결손 환자에서 첫 개심술을 성공시켰지 만 이후 잇따른 실패로 인하여, 이른바 ‘sick human heart' 의 비관적 개념 하에 개심술(open heart surgery)은 또 한 번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였다. 이때 릴리아이(Dr Lillehei) 는 교차순환이라는 기법으로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1954∼1955년에 걸쳐 45예의 개심술을 성공적으로 시행 함으로서 그 후 개심술의 발전에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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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그는 의학적 업적이외에도 후학의 교육에도 큰 관 심을 기울여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만 134명의 국내외 의 학자들을 양성하였다. 이 중에서는 심장이식 수술기법을 정립한 Dr Norman Shumway, 첫 심장이식을 성공시킨 Dr Christian Barnard, 기포형 산화기를 공동 개발한 Dr Richard Dewall 등이 대표적인 그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대열에 합류한 한명의 한국 의사가 있었는데 그가 바 로 고 이영균 교수이다.

이영균 교수(1921∼1994)는 1941년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의대 외과학교실에 재직 중 1957∼1959년 2년간 당시 미네소타 프로젝트(The Minne- sota project)의 일환으로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연수 중 Dr Lillehei와 인연을 맺게 된다[3].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전쟁 후 1955년부터 1961년(공식 계 약 기간: 1954.09.28∼1961.06.30)까지 당시 한국의 대표적 국립대학이었던 서울대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된 교육재건 프로그램이었다. 이영균 교수는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의 연수이후 귀국하여 당시 심장외과학의 태동기 과정에 있 던 한국에서 초기 개척자 중의 한 사람으로 큰 역할을 하 게 된다.

이러한 Dr Lillehei와 이영균 교수의 인연은 그 시점 상 국내 심장외과학의 발전사적인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 미를 지니고 있으나, 지금까지 연수 당시나 그 이후의 구 체적인 정황에 관해서 단편적인 기술 이외에는 일체의 객 관적인 자료가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저자에게 입수된 1958년부터의 두 사람 간 또는 그 외 관련자 간의 39편의 서신들은 초창기 한국 심장외과학 특히 개심술의 정립에 대한 귀중한 정보 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큰 가치가 있는 사료로 생각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초창기 한국 심장외과학의 정립에 직간 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한국과 미국의 두 흉부외과 의사, 이영균 교수와 Dr Lillehei간에 연관된 서신들을 통 하여 초기 한국 심장수술의 정립에 관한 정황을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조사자료

본 논문의 주 분석 대상인 이영균 교수와 Dr Lillehei간 관련 서신들은 미국 Princeton 대학 출신의 젊은 사학자인 John P Dimoia의 도움으로 미네소타 대학 기록보관소를 통해 입수되었다[4]. 입수된 자료들은 지금까지 국내에는

그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총 39편의 서신 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영균 교수의 미네소타 대학병원 연수 기간 중인 1958년과 1959년간의 서신 12 편, 귀국 후 개심술 시작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되고 있는 1964년까지의 서신 18편, 1965년 스웨덴 연수에 즈음한 편지 4편, 그리고 1969년부터 1981년 까지 크리스마스 카 드를 포함한 서신 5편이 각각 포함되고 있다.

이외에 본 논문에서는 대한순환기학회 30년사의 개심술 회고담[5], 이왕준의 박사학위 논문인 ‘미네소타 프로젝트 가 한국 의학교육에 미친 영향’[6], 미네소타 프로젝트 당 시 모두 14차례에 걸쳐 작성하였던 ‘6개월 간격 진행 보 고서’[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흉부외과학교실사, 그리고 개인 이력서 및 기타 관계자 증언 등이 참고 되었다.

서신 내용 1) 미네소타 대학 시절 - 연장 체류

한국전쟁 후 진행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교육지원 프로 그램인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주관은 당시 미국 정부 산하의 해외활동본부(Foreign Operation Administra- tion, FOA)와 그 후신인 국제협력본부(International Coopera- tion Administration, ICA)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미네소타 대학교가 실무 사업진행자로 선정되면서 이후 통칭 미네 소타 프로젝트로 불리게 되었다[6]. 공식적으로 국립서울 대학교 협력사업(Seoul National University Cooperative Pro- ject)으로 이름 지어진 이 사업의 주된 내용은 교환교수 프 로그램, 시설복구 및 장비지원 등이었으나 그 중의 핵심 은 단연 인적 교류 부분이었다. 당시 의과대학에서는 모 두 77명의 교수요원들이 3개월에서 4년까지 미네소타대학 연수를 다녀와 당시의 첨단의학을 직접 보고 한국에 전수 하였는데, 이영균 교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영균 교수는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의해 공식적으로 1957년 8월 23일부터 1년 동안 미국에 체류 예정으로 출 발하였으나, 1년 연장 체류를 하여 공식적으로는 1959년 8월 19일까지 2년 동안 미네소타 대학에서 근무하였다.

본 조사에서 찾아낸 서신들의 첫 부분은 이러한 연장 체 류에 대한 미네소타 대학 관계자들의 서신에서 시작된다.

먼저 1958년 4월 8일 자로 된 편지에서 Dr Lillehei는 당 시 연수자들의 연장체류에 대한 행정 책임자였던 미네소 타 대학 보건대학장 Dr Anderson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 고 있다.

“Dr Lee는 한국에서 온 외과의사 중 한 사람으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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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밑에서 심혈관외과 실험실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심폐기를 이용한 개심술에 대해 적절한 수련을 받기 위해서는 1년 더 연장 체류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를 통해 그가 심혈관외과 임상 수련과 수술전후 환자관리 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 무쪼록 Dr Lee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Dr Yung Kyoon Lee, one of the Korean surgeons who is spending a year here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Medical School, has now been working in the Cardiovascular Surgical Research Laboratory under my supervision. In order for him to acquire adequate training in the open heart surgery techniques with the use of the pump-oxygenator, we feel it would be advanta- geous and necessary for him to spend an additional year here. This would give him an opportunity to also spend some time on the clinical cardiovascular surgical service here and enable him to assist with the care of patients both pre- and postoperatively. Any help you could give Doctor lee would be appreciated..).”

이후 Dr Anderson으로부터 연장 체류에 대한 한국 측 승인을 요구 받은 당시 서울대 의과대학에 파견 나와 있 던 총괄 자문관 Dr Mattews는 1958년 5월 23일자 편지에 서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낸다.

“(전략)...명 학장(당시 서울의대학장이었던 명호진 교 수; 저자 주)과 다른 관계자들 모두 Dr Lee의 연장 체류에 적극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 측으 로서는 명확한 입장입니다(...Dean Myung and all others concerned here are anxious to award this extension to Dr Lee. It is now a closed matter as far as our records are concerned.).”

이러한 제반 행정 절차를 마친 뒤 당시 미네소타 프로 젝트의 미국 측 현지 조정관이었던 Prof. Tracy는 1958년 5 월 29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영균 교수에게 통고하 고 있다.

“(전략)...본인은 당신이 미국에 도착한 이후 보인 노력 에 대한 이러한 인정(1년 연장 체류; 저자 주)에 대해 축 하를 보냅니다. 이 추가 공부 기간이 앞으로 당신이 귀국 하였을 때 교수직을 훨씬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합니다(...I congratulate you on this recog- nition of the efforts you have put forth since your arrival in the United States. I trust that this additional period of study will serve to make you a much more effective member of the faculty of the College of Medicin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upon your return to your faculty post.).”

2) 미네소타 대학 시절 - 임상 수련

연장 체류 승인을 받고 추가 연수를 한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영균 교수는 그간의 실험실 근무를 끝내고 Dr Lillehei 밑에서 임상 수련을 받기를 절실히 희망하였 다. 이영균 교수로서는 귀국 후 심장수술을 시작하기 위 해서는 일정 기간의 임상 수련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남은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매우 절박 한 심정이었을 것이 쉽게 짐작이 된다. 또 임상수련을 받 게 되면 그동안 관련을 맺었던 Dr Lillehei 팀에서 계속 받 고 싶어 하려 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에 이영균 교 수는 당시 미네소타 대학병원 외과과장이었던 Dr Wang- ensteen에게 1959년 2월 27일자로 다음과 같은 장문의 부 탁 편지를 보내게 된다.

“이 편지는 과장님께 현재 본인의 트레이닝에 관한 상 황을 알려 드리려고 쓰는 것입니다. 심혈관외과는 서울 본교의 정책과 본인의 개인적 관심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중략)...본인이 이 과에 온 이후 현재 최종 임상 수련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기본적인 심혈관외과 수 련을 다음과 같이 잘 받아왔습니다; red and white service 5개월, Dr Lillehei의 개실험 연구실 8개월, 심도자 검사실 2개월, Dr Lillehei의 진단 검사실 2개월(이달 말까지). 그 런데 본인은 금년 8월 5일에는 귀국해야 하고 전술한 기 본 과정들을 다 거쳤기 때문에 이제는 Dr Lillehei에게 임 상 수련을 받고 싶습니다. 이 점은 Dr Lillehei도 동의하였 습니다. 만일 제가 최종적으로 임상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이 시점에 Dr Lillehei 팀을 떠난다면 저로서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심폐 기능검사실 이 만들어져 심도자를 시행하고 있고, Dr Schimert는 레지 던트 수련을 위해 인공심폐기에 대한 개 실험을 시작하였 습니다[8]. Dr Schimert는 개심술에 필요한 장비들을 한국 에 가져갔습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도움으로 서울대병원 방사선과, 심장내과, 심장소아과, 마취과 등 분야에서 심 장수술팀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중략)...이들 팀 멤버들 과 개심술 장비, 학교와 병원 당국의 도움, 그리고 본인의 의지로 Dr Schimert의 개심술을 이어나가거나 새롭게 시 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기억이 될 것으로, 만일 최종적인 임상 수련의 시점에 Dr Lillehei 팀에서 나가게 된다면 본교의 학장이나 외과 과장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 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수련 기회를 미국에 도착한 이후 1년 반 동안 기다리며 준비해 왔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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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저는 과장님이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셔서 저에게 도움을 주어, 이 새로운 수술 분야가 머나먼 나라 한국의 국민과 저의 모교, 그리고 저의 열정을 위해 시행될 수 있 도록 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This is inform you on the situation about my training field, Sir. The C V surgery field was chosen for me as the policy of the school in Seoul by my department chief and the dean. In addition this is my per- sonal interest also. ...Since I came to your department, I have been trained in basic CV surgery well as far as time can allow except the final clinical CV surgery training; 5 months on red and white service, 8 months in Dr Lillehei's dog lab, 2 months in cardiac catheterization lab, 2 months in Dr Lillehei's diagnostic section (up to end of this month). As I am going back to Korea on August 5, this year and I have been through with these CV basic preparations, it is time to be trained in his clinical service. And I understand Dr Lillehei also agreed in that way. As you might know, they set up cardio-pulmonary function test lab and doing cardiac catheterization. Dr George Schimert has started pump-oxy- genator in dog lab for training residents. Equipment has been taken by him and is arriving there, for open heart surgery.

Due to the planning and helps from your College, CV sur- gery team personnels are available in Seoul University Hospital, in X-ray, cardiology, pediatric cardiology, anes- thesiology, etc...With these personnels for a team, equip- ment for opem heart, every possible help from the school and hospital authorities, and my earnest desire I will and can fol- low Dr Schimert's open heart or start it. It will not only be my heart-breaking memory during whole my life but also a great disappointment to the dean and the department chief back in Seoul, if I miss my final critical clinical training, by being out of Dr Lillehei's service. I have been waiting and prepared for this for one and half years after my arrival here, sir. I am sure that with your benevolent consideration and understanding of this situation you would grant help to me, so that this new field of surgery can be started in a far away country, Korea for the benefit of my country people, my school, and my sincere desire, Sir.).”

이러한 이영균 교수의 요청에 대해 외과 과장 Dr Wang- ensteen은 1959년 2월 28일 자 편지에서 전공의 스케줄 안 배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내고 있 다.

“자네의 편지를 받아보았네. 우리 과에서 레지던트 스 케줄을 담당하는 중요한 업무는 Dr Zimmermann에게 맡겼 는데 그는 이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네. (중략)...그가 말하기를 Dr Varco[9]가 특별히 자기 팀에 자네를 원하고 있다고 하네. 우리 병원 심혈관외과에는 두 팀이 있네. 심 혈관외과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Dr Lillehei는 환자 수가 많지만 Dr Varco도 한사람의 외과의사가 할 만큼은 하고 있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외과의사 중의 한 사람 이네. 자네가 배울 것이 많을 걸세. 만일 자네가 이번 스 케줄이 끝나고 나서도(7월 1일) 계속 심장외과 수련을 더 받기를 원하면 Dr Lillehei 팀으로 보내 줄 것을 내가 보장 하네. (중략)...자네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믿네.

나는 Dr Zimmermann에게 이 문제에 관해 자네와 Dr Lille- hei와 상의하라고 하였네. 만일 자네가 많은 우리 레지던 트들이 가고 싶어 하는 Dr Varco 팀에 가는 것을 꺼려한 다는 것을 그가 안다면 그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일 것으로 확신하네(Your letter has come to my notice. In this Department, I charge Dr Bernard Zimmermann with the im- portant responsibility of arranging the schedules for our Residents. It is a task which he does not undertake lightly...Dr Zimmermann told me that Dr Varco had specif- ically asked for you on his Service. in this Hospital, we have two cardiovascular surgical services. Dr Lillehei, who con- centrates largely on cardiovascular surgery, has the larger number of cardiac cases. However, Dr Varco does as much cardiovascular surgery as is done by a single surgeon in many area. Dr Varco is without question one of our best surgeons. You will learn a great deal working with him. If at the end of that tour (July 1st), you still want additional expe- rience in cardiac surgery, I am certain it can be arranged for you to return then to Dr Lillehei's clinical service...I hope that this arrangement will be acceptable to you. I have asked Dr Zimmermann to discuss the problem with you and with Dr Lillehei. It would be very embarrassing to Dr Varco, I am quite certain, If I were to tell him that you protested an assignment to his Service, for which so many of our residents clamor.).”

Dr Wangensteen은 이영균 교수의 배치 문제에 대해 1959년 3월 2일자 편지에서 Dr Lillehei에게도 직접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 과에는 수년 동안 멀리서 일 하러 온 사람이 많 은데, 이들을 분야마다 로테이션 시키는 것이 나의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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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Dr YK Lee with Dr Lillehei at Minnesota University Hospital in 1959.

이네...(중략)...당신 팀 사람들의 문제는 약간 다르 네...(중략)...과내에서 규정을 어기고 있는 것은 당신 팀 의 사람과 Veteran 병원의 몇 사람뿐이네...(중략)...Dr Lee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당신에게도 보여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복사본을 동봉하네. 그 편지에 대 한 내 회신은 이미 받았을 것으로 믿네. (중략)...지금까지 당신과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두 당신에게 배정하였 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계속 원하는 사람을 모두 받고 나 또한 그런다면 외과 내에서 인력을 제대로 배치할 수 없 을걸세...(중략)...앞으로 어떤 사람이 당신과 일하고 싶 어 하면 그 편지를 외과 사무실에 보내 확답을 할 수 있게 해 주게...(중략)...당신이 이 제안들을 받아들일 것으로 믿고 싶네. (후략) (Men have been coming to work in this Department from afar for many years...Our problem with your men is somewhat different...The only offenders in the Department have been men working with you and a few at the Veterans' Hospital...Whether Yung-Kyoon Lee showed you his recent letter addressed to me, I am not quite certain.

In any event, I am enclosing a copy thereof. You already have my reply to Dr. Lee, I believe...Up until now, every man who has affected an interest in working with you has been assigned to you. However, if you were to continue hav- ing every man who expressed such an interest continue to work solely with you and if I were to do the same, you must know we could not staff the Division of General Surgery...When someone writes concerning an appointment, or an opportunity to work with you, it would serve every- one's interests best if you acknowledged the letter and re- ferred it to this Office for a definite reply or commit- ment...These suggestions I would like to believe are accept- able to you...)”

전술한 Dr Wangensteen의 편지에 대해 Dr Lillehei는 1959년 3월 9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3월 2일자 과장님 편지의 의견에 동의하고 이는 우리 팀이 평소 지키려고 하는 바입니다....(중략)... 문제는 과거 저에게 온 레지던트 지원서를 모두 과 사무실에 보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원자에게 확답을 주기까지 수개월이 걸 렸습니다...(중략)...만일 현 제도를 계속 유지하시려면 반대는 하지 않으나 지원자들에게 신속한 답을 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후략) (Your letter of March 2nd is certainly agreeable with me and in general is the proce- dure we have tried to follow...It concerns the fact that I

have in virtually all instances referred all correspondence concerning resident applications to the main Office but on the majority of occasions in the past, months have gone by before any definitive answer was given to the applicant...If you wish to continue the present system, I have no objection as long as we do get a fairly prompt answer out to these men...)”

그러나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이영균 교수의 계 속된 요청과 Dr Lillehei의 노력으로 이영균 교수는 Dr Lillehei 팀에서 일하게 된다(Fig. 1). 다음은 3월 17일자 편 지로 Dr Lillehei가 이영균 교수의 미국 학회 참석 허가를 담당자에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Dr Lee는 현재 우리 팀에서 심장외과 수련을 받고 있 는데, 아주 믿음직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4월

212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되는 미국흉부학회에 참

석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 학회는 매우 중요하여 우리 레 지던트들과 스탭도 많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Dr Lee도 참 석이 허락된다면 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이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Dr KY Lee has been working with me in cardiovascular surgery for the past year and has proved to be a very reliable and thoroughly dependable worker. He has spoken to me about his desire to attend the annual meeting of the American Thoracic Association to be held this year in Los Angeles on April 21, 22 1nd 23rd.

Many of our residents and staff will be attending this meeting since it is one of the more important ones for workers in this field and I certainly think that Dr. Lee would benefit by this experience if it can be arranged as far as you are concer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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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ertainly would be happy to give him the time off from our service.).”

3) 한국으로 귀국한 직후

1959년 8월 이영균 교수는 2년간의 미네소타대학 연수 를 마치고 귀국하게 된다. 다음은 그가 귀국 후 Dr Lillehei 에게 보낸 첫 인사 편지로 8월 6일 시행되었던 Dr Schi- mert의 첫 개심술에 대한 소식을 담고 있는 내용으로 1959년 8월 24일 자이다.

“미네아폴리스에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 다. 이 달 초 Dr Schimert가 VSD 환자에서 개심술을 시행 하였는데 수 시간 생존하였습니다[10,11]. 우리는 Dr Schi- meret가 가능하다면 적어도 몇 개월 더 한국에 머물러 주 었으면 합니다(Thank you very much for everything you have done to me during my stay in mpls. At the beginning of this month, Dr Schimert had done an IVSD case, several hours survival. We want like to have Dr Schimert stay several months more at least, if he can.).”

(이때 Dr Schimert의 수술은 저자의 다른 논문[8]에서 심방중격결손(ASD)으로 잘못 표기되어 학회에 정정 공 고가 된바 있다.- 저자주)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이영균 교수는 Dr Lillehei에게 편지 를 보내는 것 이외에도 약간의 선물로서 감사의 뜻을 표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1960년 1월 5일자로 Dr Lillehei의 이영균 교수가 보낸 선물에 대한 답신이다.

“멀리 한국에서 완벽한 상태로 배달된 아름다운 화병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으로 앞으로 오래 동안 우리 부부가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새해에는 당신의 일 이 잘 되길 기원합니다(I wish to thank you for the beautiful vase which arrive after its long journey from Korea in per- fect condition. It is truly an exquisite and beautiful piece of art and you may be certain that it will be treasured by Mrs Lillehei and myself for many years to come. I hope that the new year will be a happy and prosperous one for your work at the University.).”

또 다시 해가 바뀌어 1961년 3월 14일에 이영균 교수가 Dr Lillehei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시 초창기 한국 심장외과 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이 편지에서 이영균 교수는 심장수술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과 함께 당시 한국의 비참했던 재정적 환경에 대해 숨김 없이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학장과 두 교수들이 3

번의 수술에 필요한 혈액을 살 수 있는 돈을 도와주었습 니다.’라는 글에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상상하 기조차 힘든 당시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어렵지 않게 파 악할 수 있다. 또 특히 편지 말미에 쓴 ‘저의 집에서는 심 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심지어 저의 4살 된 딸조차도 뜻도 모르면서 심폐기를 말 하기도 하고 어린 한국아이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당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발음하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서는 초창기 심장수술 개척자들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져 사뭇 숙연해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에 돌아 온 이후 당신에게 소식을 전할 만한 가치 가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개심술 시작 에는 여전히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마침 내 심폐기 개심술을 시행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 습니다. 돈 문제와 환자 확보가 두 가지 주된 어려움이었 지만 오랜 시간 끝에 3건의 수술이 예정되었습니다. 그간 의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장과 두 교수들이 3 번의 수술에 필요한 혈액을 살 수 있는 돈을 도와주었습 니다. 그런데 이 세 수술은 저 같은 초보자에게는 위험성 이 커 보입니다. 이 달 안에 수술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환 자는 활로씨 사징증을 가진 25 kg 소아 2명과 심방중격결 손에 폐동맥협착이 동반된 청소년 한명입니다. 3명 모두 청색증이 심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처음부터 이런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지만 환자를 임의로 선택할 여지가 없습니다. Dr Long과 Dr Gault (1959년 8월 30일에서 1961년 8월 19일까지 근무 하였던 서울의대 파견 미네소타 대학 총괄 자문관-저자 주) 두 분도 항상 저를 격려하며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6]. 보내 주신 산화기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의 실험

과 수술에 사용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수술 환자가 생길 것으로 확신하며 재정만 뒷받침된다면 언젠가 성공 사례 를 알려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날이 빨리 오 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심장수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금년 한국외과학회에서 는 3명의 회원이 심장수술에 대한 연제를 발표하기로 되 어있습니다. 폐쇄식 심장수술, 저체온 수술, 심폐기 개심 술 등 3연제인데 심폐기 개심술은 제가 발표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실험연구와 현재까지의 임상 증례들에 대해 발 표하려고 합니다. 현재 일의 진행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다 허사로 끝나곤 해서 고민이 큽니다. 일전에 Dr Gault에게 재정 문제에 대한 조 언을 구했습니다. 그의 제의대로 미국 국립심장재단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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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조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Abbott사에 부탁하여 실리콘 코팅 수혈병도 한 다스를 확보하였습니 다. 편지에는 학장과 Dr Gault와 함께 당신의 이름도 보증 인으로 올렸습니다. 저는 당신이 대단히 열악한 조건에서 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이전 레지던트를 흔쾌히 도와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부인과 가족에게도 저의 가족과 함께 안부를 전합니다. 저의 집에서는 심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심지어 저의 4살 된 딸 조차도 뜻도 모르면서 심폐기를 말하기도 하고 어린 한국 아이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당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발음 하고 있습니다(Since my return I have been trying to do something worthwhile to write you. But still now I am strug- gling to get things started for open cases. But at long last there seems possibility I am going to handle pump-cases now.

Since fund and surgery candidates are two main difficulties to solve, it took me so long to schedule three cases for sur- gery, though I never forgot even a moment. The dean and two professors provided me some money to buy blood for the pump, enough for three cases. And these charity cases agreed to take big risks, which are expected to a beginner like me.

I am going to start within this month. They are two 25 kg tetrads and an adolescent ASD with PS. All of them are very cyanotic. Even by myself I doubt the wisdom to tackle with such highly risky cases from the beginning. It is simply im- possible to get open heart candidates, none the less choosing out of stocks. Dr Long and Dr Gault are encouraging me al- ways and helping me very much.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bag oxygenators. With greatest gratitude I will use them for experiment and clinical cases. From now on, I am sure, I can get surgery candidates and if fund is available, some day I can report you survival cases. I hope sincerely the day may come in the near future. Here in my country interest in cardiac surgery is rising sharply recently. For this year's Korean surgical congress three members are assigned to sub- mit papers on cardiac surgery. One is for closed method pro- cedure cases, second for hypothermia, and the third is for open heart surgery with p-o. I was assigned to the last subject. I would like to prepare lab work and clinical cases to present. To my greatest distress I am still trying hard in vain to find some means to support my work. The other day I talked my problem with fund to Dr Gault and asked for his advice and help. With his suggestion I wrote to National

Heart Institute, INH asking for grant application, and Abbott laboratories for the possibility of silicone-coated transfusion bottles. I have a dozen bottles with me now. I wrote in the letters your name with our dean's and Dr Gault's name as reference, believing that you would be kind enough and will- ing to help a former resident who is trying to do work in a very adverse condition. Hoping this may find you, Mrs Lillehei, and all of your family in the best health. Best wishes from the member orf my family. A day doesn't pass without a talk of p-o in my home. Even my four years old daughter mentions p-o without the knowledge of it and pronounces your name correctly which is rather difficult for a small Korean kid to do.).”

다음은 1961년 6월 8일자 편지로 역시 이영균 교수가 Dr Lillehei에게 보낸 개심술 진행에 관한 보고내용이다.

이 편지에서도 거듭된 개심술 실패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실망과 함께 수술 성공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재차 피 력하고 있다.

“Dr Gault 사무실을 통해 요청 드린 심페기 부품을 승

인해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최근에 여과장치통과 새로 운 여과기 그리고 동맥카테타 원격자동기록 온도계를 받 았습니다. 4월에 당신에게 보낸 편지 이후로 5월에 활로 씨 사징 환자 한명을 수술하였는데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 하였습니다. 저는 마음이 급한데 한국에서의 상황은 그렇 지 못해서 겨우 한 달에 한번 수술을 할 정도입니다. 이 달에는 승모판페쇄증 환자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 같은 초보자에게 이런 위험하고 어려운 환자들만 나타나 마음 이 매우 착잡합니다. 그렇다고 덜 위험한 증례들만 기다 린다면 수년 동안 단 한예도 수술을 못할 지도 모릅니다.

현재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일주일에 세 번씩 심폐기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가까운 장래에 당 신에게 한국에서의 첫 개심술 성공 사례를 보고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귀국한 이후 당신의 일에 관해 몹시 알고 싶은데 그간 논문들을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당신과 가 족 모두에게 안부 전합니다(Thank you very much for your approval of the pump-oxygenator parts which I asked for through Dr Gault's office. I have received recently canisters, new type filters, arterial catheters (# 14 and # 16), and telethermometer. Since my letter to you in April I did another tetrad case with situs inversus (proven by autopsy) with stainless steel sponge bag oxygenator in May. No good luck this time, too. Even though I would like to go faster,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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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Dr YK Le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one day in 1960s.

in Korea move rather slowly, and I can do only an open case a month. This month I have scheduled a Mitral Insufficiency case. I am very unhappy that only risky and dif- ficult cases are available for a beginner like me. But if I wait for less risky cases I wouldn't be able to do a case at all for several years at least. I am running pump three times a week in the dog lab with all my efforts, now. I sincerely hope that I could report you my first survival case (in Korea) in the near future. As I am very anxious to know about your works since my return (August 1959) I shall be more than happy if you could send me reprints of your articles. Best wishes for you and your family from me and my family, Sir.).”

다음은 1961년 7월 10일 자로 된 Dr Lillehei가 이영균 교수에게 4월 11일자의 편지에 대해 보낸 답장이다. 이 글 에서 Dr Lillihei는 디스크 수술을 받은 그의 개인적 근황 과 함께 이영균 교수가 요청한 헤파린 용액을 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항응고제인 헤파린조차 미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였던 당시의 정황과 함께 제자의 요청들에 흔쾌히 응하고 있는 Dr Lillehei의 모습에서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을 쉽게 엿볼 수 있다.

“4월 11일자 편지에서 당신이 요청한대로 헤파린 용액 500 cc 72병을 무료로 보냅니다. 이 500 cc병에는 1,500 units의 Penheparin이 들어 있습니다...(중략)...답장 늦게 해 서 미안합니다. 최근에 경추 디스크 받고 퇴원했습니다...

(후략) (Your April 11 letter asked us to supply you, no charge, a quantity of our Heparin Solution for your use in the University. We will be pleased to cooperate by supplying our list 4,529, a quantity of 72×500 cc bottles. Each of these 500 cc bottles contains 1,500 units of Penheparin...Please accept my apologies for the delay in acknowledging your letter. I have had spinal surgery for an extruded disc which occurred between the 6th and 7th vertebrae in the cervical area of my spine and I have recently been released from the hospital...)”

다음은 1961년 7월 22일 자로 된 이영균 교수가 Dr Lillehei에게 보낸 편지이다. 역시 헤파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리프린트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중략)...일전에 아보트 사에 헤파린 병 기증을 요청하였습니다...(중략)...

수술 때문에 헤파린 병이 정말 절실히 필요합니다...(후략)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reprints...The other day I

asked for heparin blood bottles donation from Abbott Laboratories...I need them very badly for clinical use...)”

4) 개심술 성공 소식

1963년 이영균 교수는 마침내 첫 개심술 성공 사례를 기록하게 된다. 이는 이영균 교수가 미국에서 귀국한 후 약 3년 반 만에 이룬 성과로, 이 결과에 대한 그의 기쁨은 Dr Lillehei에게 쓴 이 편지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Fig.

2). 그리고 편지 말미의 추신에서 이영균 교수가 Dr Lillehei의 자필 서명 사진을 요청한데서 볼 수 있듯이 이 영균 교수가 이러한 성과를 이루기까지 Dr Lillehei의 물심 양면에 걸친 도움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 수 있다.

“보내 주신 리프린트 감사합니다. 앞으로 논문이 나올 때 마다 리프린트를 보내 주시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당신 덕분에 마침내 7번쩨와 8번째 심폐기 수술에서 생존 례를 기록하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예는 승모 판폐쇄부전증 환자였는데 당신이 고안한 방법대로 판막 성형술을 시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펌프시간은 55분이었습니다. 또 다른 예는 심방중격결손증 환자였습 니다. 이 성공은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제가 귀국한 이후로 졸곧 되었던 저의 목표였습니다. 당신의 가르침, 도움, 그리고 호의는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저의 바람 은 단지 동물실험과 환자수술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가족 모두에게 안부 부탁드 립니다. 학장과 두 교수들이 3번의 수술에 필요한 혈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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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 있는 돈을 도와주었습니다. (추신) 당신의 자필 서 명이 된 사진을 보내 주신다면 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항상 큰 격려와 자극이 될 것입니다(Thank you very much for your reprints. I shall be very happy if you would send me your articles whenever they come out. I would like to thank you from my heart that at long last I have survival cases on my 7th8th p-o run. One is MI case who was operated on with your original method of mitral valvuloplasty resulting in good effect. 55 minuted pump-run. Another is ASD secundum with (글자 해독이 어려움-저자 주) minutes perfusion with good result. This success, even though very trivial one, has been my goal since my return. Your teachings, helps and fa- vorable considerations to me will be cherished in me. I only hope I could continue dog lab operation & clinical case hereafter. Thank you again very much, sir. Please remember me & my family's best regards to mrs. Lillehei & all your family. P.S. If you could send me a copy of your auto- graphed picture, it will give me encouragement & inspiration whenever I am in hardship for my work..).”

이러한 편지에 대해 Dr Lillehei는 1963년 4월 4일자 답 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월 27일자 편지 잘 받았습니다. 당신의 이번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계속 정진하길 바랍니다. 리프린트 문제는 염려마세요. 부탁한 사진은 따로 보내 드리겠습니 다(Many thanks for your nice letter of March 27th. I heartily command you on your successes. Keep up the good work.

You are on our reprint list. In regard to the picture you re- quested I am happy to send that and it will follow along un- der separate cover.).”

이어서 1963년 5월 14일 편지에서 이영균 교수는 Dr Lillehei에게 사진을 잘 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세 번째 개 심술 성공 뉴스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된 재정적 어 려움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시 한 번 Dr Lillehei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이 편지에서 승모판막 수술시 준비 된 인공판막이 없기 때문에 성형수술 이외에는 달리방법 이 없어, ‘좌심방을 열 때 마다 제발 인공판막이 필요할 정도로 판막이 손상되어 있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새삼 당시의 처절한 만큼 열악한 상황과 어려움을 느끼게 해 준다.

“보내 주신 편지와 자필 서명된 사진에 감사드립니다.

당신 사진은 저 연구실 책상 위에 두었는데 볼 때 마다 항 상 좋은 자극과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5월이 시작하자마

자 세 번째 성공 증례를 기록하였습니다. 53세 된 승모판 폐쇄부전증 환자인데 펌프시간은 50분이었습니다. 당신이 고안한 판막성형술에 마지막 남은 Ivalon pillow (판막성형 술 용으로 만든 폴리비닐 스폰지-저자 주)를 판막첨에 붙 였는데 결과는 완벽했습니다. 상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의 개심술은 비단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주변 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당신의 격려와 물질 적 도움이 없었다면 동물실험이나 임상 수술 모두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지금 개심술 환자들은 모두 무료 환자들 이기 때문에 산화기 소모품을 새로 살 재원이 없는 형편 입니다. 앞으로 유료 환자를 수술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수술 대상 환자 들이 몇 명 있지만 산화기 재고가 2명 분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디서 추가로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동 물실험에는 수술 후 버린 물품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품과 혈액을 절약하기 위해서 수술 전 먼저 동물실험을 통해 혈희석 관류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일을 계속 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절실히 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옛 제자에 대한 호의로 그런 곳을 알아봐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저의 일은 곧 결실을 맺을 것이고 장 차 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한국에는 개심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많습니다. 당신 대학의 도 움으로 만들어진 팀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학병원이 가장 심장수술에 적합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필 요한 장비와 협동 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팀 내의 동 료들로부터 좋은 협조를 받고 있습니다....(중략)....다음 승 모판폐쇄부전증 환자 수술에 대해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 다. 판막성형용 Ivalon pillow를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저 는 좌심방을 열 때 마다 제발 인공판막이 필요할 정도로 판막이 손상되어 있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공판 막이 없으니깐요. 그래서 좌심방을 열 때 마다 늘 초초함 을 감출 수 없습니다. Amplatz 대동맥조영술로 증명된 대 동맥판막폐쇄부전증 환자도 2명 있습니다. 아직 대동맥판 막을 직접 건드릴 자신도 없고 대동맥판막도 없기 때문에 장차 Hufnagel 판막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서는 아직 대동맥판막 수술이 시행된 바 없습니다. 보내 주신 사진과 격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Thank you very much for your nice letter and autographed picture. Your picture is over my desk in my office and emanates inspira- tions and encouragement to me hereafter. At the beginning of May I had my third successful open heart case. A 55 years old male was operated on for mitral insufficiency during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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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utes pump-run. After your original method of open mitral valvuloplasty, I sutured my last Ivalon pillow into the mural cusp, which made the valve competent completely. As you might imagine open heart surgery is a rather difficult field here in Korea due to environmental conditions in addition to the technical problems. Without your encouragement and ma- terial helps bestowed to me no dog lab operation nor clinical cases could have been done. As my open heart cases have been all charity patients who pays nothing at all to the hos- pital, either I nor the hospital can replace the expendable parts of the oxygenator. I imagine it will take a little more time till I can have paying patients. Now I have several open heart surgery candidates in the ward. My stock for helix is running very low, enough only for 2 cases. I am wondering where I could get the material for my cases. For my dog lab work I am using the parts discarded after clinical application. To save the material and blood I intend to do hemodilution perfusion in the dog lab before I utilize the method in the clinical case. I am longing for outside help to pursue this work for my life problem. If you could advise and help me to find one as a favor to your former foreign stu- dent, it will be appreciated very much. And my work will bring fruits in time and I can stand on my own feet in the future. There are mant patients open heart surgery can help in my country, when it is available. The most favorable in- stitution to perform this kind heart operation in my country is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due to the team training bestowed by your University. We have basic equipment and team personnels in the allied fields. I am lucky that I am en- joying good cooperation from the collegues of the allied fields... For my next MI case I would like to ask your help.

Could it be possible for you to bestow Ivalon pillows for my valvuloplasty cases? I only pray when I open the left atrium that the valve is not such a shape which needs replacement valve, which I don't have. I have two AI cases for surgery, confirmed by Amplatz aortography. As I think I am not ready to perform direct aortic valve attack nor I have any aortic valve material, I would be happy to insert Hufnagel valve if I could get one. No aortic valve lesion surgery have been done in Korea yet. Thank you again for your picture and encouragement.).”

앞의 편지에 대해 Dr Lillehei는 당시 남미에 공무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비서가 먼저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 낸 뒤 곧이어 6월 6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 다. 이 글에서 Dr Lillehei는 이영균 교수에게 ‘승리는 종종 가장 어두운 때에 온다’고 격려하면서 결코 목전의 어려 움에 좌절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다. 또 필요한 의료용 품을 기꺼이 보내는 내용에서는 당시 머나먼 이국일 수밖 에 없는 한국의 제자에게 보내는 그의 애틋한 정을 느끼 게 된다. 그리고 ‘대동맥판막이 확보될 때 까지는 후천성 대동맥판막 수술은 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는 내 용에서는 당시의 수술 환경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많은 생 각을 하게 해 준다.

“(전략)...나는 당신이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개심술 을 훌륭히 출발시킨데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기를 희망합니다. 왜냐하 면 승리는 종종 가장 어두운 때에 오기 때문입니다. 개심 술에 필요한 물품 구입에 돈이 필요한 것은 명백한 사실 입니다. 이 점에서는 Dr Gault가 반드시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승모판 pillow는 기꺼이 따로 보내내겠습니다.

앞으로 돈이 마련되면 Ivalon pillow를 만들어 쓸 수 있는 몰드를 아예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격은 몰드 5개 한 세트에 약 125달러 정도입니다. 대동맥판막이 확보될 때 까지는 후천성 대동맥판막 수술은 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과거 우리도 대동맥판막에 Teflon과 Dacron 등 인조물질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Starr-Edwards 판막을 사용해 보니 특히 퇴원 후 장기 결

과에서 더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인공판막은 다소 비싸 한 개에 225달러 정도 합니다. 만일 재원이 확 보된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이 필요한 최소 주문 가능 수 량에 관해 조언해 줄 수 있습니다(I am very proud to hear of your excellent start in open heart surgery despite the in- numerable problems. I do hope, however, that you do not be- come discouraged because many times victory comes in the darkest hours. Obviously, some money must be made avail- able for open heart surgery in order to replenish expendable and even permanent equipment. Dr Gault should certainly be able to help you on this score. In regard to the mitral pil- lows, I am happy to send you a supply under separate cover.

I imagine that Ivalon is available, and certainly it would be desirable as soon as funds are available to order a set of the molds for making these. The price is approximately $125.00 for the set of 5 molds. I would urge you not to undertake aortic valve surgery for acquired lesions until you have pros-

수치

Fig. 1. Dr YK Lee with Dr Lillehei at Minnesota University  Hospital in 1959.이네......(중략).....당신  팀  사람들의  문제는  약간  다르네......(중략).....과내에서 규정을 어기고 있는 것은 당신 팀의  사람과  Veteran  병원의  몇  사람뿐이네......(중략).....Dr Lee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당신에게도  보여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Fig. 2. Dr YK Le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one day  in 1960s.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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