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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毉山問答」의 형식과 세계인식의 관련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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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1 2 年 2 月

敎育學碩士(漢文敎育)學位論文

「毉山問答」의 형식과 세계인식의 관련 양상

Rel evantaspect soft heForm andt heWor l d’ spe r c e pt i on Ques t i onsa ndAns weri nMt .Eui s a n

朝鮮大學校 敎育大學院

漢 文 敎 育 專 攻

金 坤

(2)

「毉山問答」의 형식과 세계인식의 관련 양상

Rel evantaspect soft heForm andt heWor l d’ spe r c e pt i on Ques t i onsa ndAns weri nMt .Eui s a n

2012年 2月

朝鮮大學校 敎育大學院

漢 文 敎 育 專 攻

金 坤

(3)

「毉山問答」의 형식과 세계인식의 관련 양상

指 導 敎 授 鄭 吉 秀

이 論文을 敎育學碩士(漢文敎育)學位 請求論文으로 提出합니다.

2011年 10月

朝鮮大學校 敎育大學院

漢 文 敎 育 專 攻

金 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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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坤의 敎育學 碩士學位 論文을 認准합니다.

審 査 委 員 長 朝鮮大學校 敎 授 韓 睿 嫄 審 査 委 員 朝鮮大學校 敎 授 임 준 철 審 査 委 員 朝鮮大學校 敎 授 鄭 吉 秀

2011年 12月

朝鮮大學校 敎育大學院

(5)

目 次

ABSTRACT

··· ⅲ

Ⅰ. 서 론

··· 1

1. 연구 목적 ··· 1

2. 연구사 검토 ··· 2

3. 연구 방법 ··· 4

Ⅱ. 「毉山問答」의 형식

··· 7

1. ‘虛’ 와 ‘實’의 대립 구도 ··· 7

1) ‘虛’ 와 ‘實’의 개념 ··· 7

2) ‘虛者’ 와 ‘實翁’ 의 인격화 ··· 10

2. 問答體 ··· 13

1) 問答體의 기원 및 효용 ··· 13

2) 問答體 형식 ··· 17

3. 소설적 구성 ··· 21

1) 허구적 인물과 배경 ··· 21

2) 서사 속 허자의 역할 ··· 23

Ⅲ. 「毉山問答」의 세계인식

··· 26

1. 實心實學의 學問 ··· 26

1) 虛學에 대한 批判 ··· 26

2) 實學의 本質 ··· 29

2. 心性論과 人間ㆍ自然의 關係 ··· 34

1) 陰陽五行論 비판 ··· 34

2) 人物均論 ··· 41

3. 중화주의 비판 ··· 48

1) 華夷論 ··· 48

2) 域外春秋論 ··· 50

4. 새로운 우주론 ··· 53

1) 虛學 宇宙論 비판 ··· 53

(6)

2) 氣中心 宇宙論 ··· 55

Ⅳ. 「毉山問答」의 형식과 세계인식의 관련 양상

··· 67

1. 세계인식의 형상화 방식 ··· 67

2. 형식과 세계인식의 상호작용 ··· 73

Ⅴ. 결 론

··· 77

참 고 문 헌

··· 80

(7)

ABSTRACT

Rel evantaspect soft heForm andt heWor l d’ spe r c e pt i on Ques t i onsa ndAns weri nMt .Eui s a n

Kim Gon

Adviser:Prof.ChungKil-SooLitt.D.

MajorinSino-KoreanLiteratureEducation GraduateSchoolofEducation,ChosunUniversity

This study aims to define the nature of Hong Dae-yong's system of thought.

For the purpose, the study analysed the forms of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which shows the philosophy system of Hong Dae-yong, a representative scholar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considering the content of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it is roughly divided into three parts: First, it is the theory that people are equal and inherits the theory that people and animals are the same. Second, it is about the world and universe theory. It expands attention and understanding of the universe and the nature based on specific scientific facts and a number of calculating methods on the world.

Finally, it discusses the nature of human and the past and present, and refutes Sinocentrism.

Th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is composed of questions and answers by Silong and Huja as characters. Huja was a scholar of Joseon who was familiar with Confucianism. Silong lived in Ouimuryosan, a borderland with China and Joseon. To see the names of characters, the subject of the discourse can be easily identified. Th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focuses on questions and answers of Silong and Huja rather than behaviors of persons or events, and the subject of the discourse was Silong. As Huja was reprimanded and taught by Silong, he accepted Silong's academic theory and realized it. th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8)

deals with criticism of confucians who sought for Confucianism, an academic climate at that time and natural sciences centering on astronomy which was unavailable yet in Joseon period. As such contents are unusual in Joseon society, they were materials to be understood and persuaded. In this aspect, narration through questions and answers is an appropriate method to effectively deliver the contents of th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It focuses on discussion between Huja and Silong and they exchanged questions and answers in opposite relations beyond the exchanges of information. They expressed their opinions and senses of value each other. Through the opposite relations, they could present their opposite viewpoints. Questions and answers were not completed once and kept rotating between the characters. The questions and answers were continuously presented, which tended to be dramatic and narrative. The more questions and answers are repeated, the further relationships they had. Huja realized and sought for the truth through questions and answers.

However, the questions and answers were made of reprimand by Silong.

Two characters appeared in th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but one did not complain against the other or present alternatives to him, but the superior advised the inferior to do or not to do. Therefor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is considered as an expository or admonition writing in Hong Dae-yong's position although it has a form of rhetorical writing. He intended to let readers know what he realized to encourage them to go right ways. So he chose the question and answer style discourse. If he had wanted to dispute, he would have chosen rhetorics, discussion or narration. Though discourse between Silong and Huja could be delivered through narration of questions and answers, in this case, Huja disputed what Silong said as well as listened to it. Then, Silong repeated disputes to consolidate his opinion.

To read the entire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as a writing, we can find more value from it than a theory book or discourse. Theories of natural sciences, philosophy and political thoughts have fun as stories rather than abstract and conceptual theories. It has a unique atmosphere having literary fun and structure, profound philosophical depth, reality of the universe and ideological innovation.

It is literature, but not literature. It is philosophy, but not philosophy. It says about science, but does not say only science. If one of those features

(9)

had been omitted, its creativity would have not been recognized.

The form and content of the writing are united into one to search for attitude to life and understanding of the world. The form of a writing is not only intended to decorate writing. It contains life of an author, and political and philosophical decision. In this meaning, Questions and Answer in Mt.

Euisan shows Hong Dae-yong's opinion who desired to present right viewpoints on the universe.

Research on literary works can have satisfactory results through many-sided consideration such as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purposes of writing, and author's thoughts. That is, general understanding of works needs organized analysis rather than a single method. When Hong Dae-yong's literature is identified in this context, philosophical and socio-historical meanings Hong can be extracted and more objective explanation on reasons of forming can be ob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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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 론

1. 연구 목적

18세기 조선후기 사회는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湖洛論爭의 영향, 천주교와 서구적 지식의 유입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 현실 속에서 집권층인 老論 출신의 실학자들이 활약하였다. 우리는 이 들을 ‘利用厚生學派’ 혹은 ‘北學派’라 하는데, 湛軒 洪大容(1731~1783)은 바로 이 학파의 선구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홍대용은 철학ㆍ자연ㆍ과학사상ㆍ인간관ㆍ사회관등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 심을 가지고 있던 학자였다. 燕行을 통해 새롭고도 실질적인 경험이 홍대용의 학문 에 대한 열의와 사상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1) 홍대용의 燕行이 그 전의 燕行과 구별되는 것은 淸 선비들과 親交를 맺고 그들의 관계가 귀국 후에도 계속 되었다는 점과 淸 문물을 단지 신기하고 규모가 큰 것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배 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식이 전환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이런 자세는 實學의 선구적인 입장의 朴趾源을 비롯한 주변의 문인,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홍대용의 다방면적인 관심은 그의 저서인 湛軒書 에 포함되어 있 고, 특히 자신의 사상을 담은 「毉山問答」에 종합적으로 담겨져 「毉山問答」은 자연 과학서 또는 철학서, 정치사상서ㆍ학문서등 다양한 방면으로 정의된다. 일부에서는

「毉山問答」을 자연과학서로만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ㆍ인간ㆍ사회를 총망라 하는 종합적인 저작이다.

그러나 기존의 「毉山問答」 연구는 홍대용의 대표작, 또는 實學思想ㆍ科學思想ㆍ 華夷論에 대한 중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체계적인 분석 및 검토는 매우 개별적이 고 부분적으로만 다루어져있다. 현재까지 홍대용에 대한 연구를 검토해보면, 그를 현실비판가, 사회변화ㆍ발전에 기초를 둔 實學者, 淸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과 자연 과학에 기초를 둔 사상가로 평가하기도 하였으며,2) 홍대용의 자연과학 지식을 조

1) 홍대용의 사상적 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60일간의 북경방문은 湛軒書 下, 外集 卷7, 「燕記」 속에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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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후기 시대성과 관련하여 政治思想史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王朝體制에 대 한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制度改革論을 제시한 인물로 浮刻시키기도 하였다.3) 또한 地轉說에 입각한 새로운 天文觀을 제시한 점에 주목하기도 하였으며,4) 北學 思想家들과의 교유, 淸 문물 수용 및 燕行을 통한 世界觀 확대로 傳統的 華夷論에 서 벗어나는 점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왔다.5)이 때문에 홍대용 사상에 대한 구체 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는 다소 미흡하다.6)

문학작품의 연구는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학적 구조와 더불어 역사ㆍ사회적 인 맥락, 작품의 저작 목적, 작가의 사상 등 다각적인 조명을 통해서야 만족할만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곧 작품의 총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의 방법으 로는 불가능하며 체계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홍대용의 思想體系를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 毉山問答」을 체계적으로 분석 검토하여 홍대용 사상의 본질을 정의하는데 목적이 있다.

2. 연구사 검토

홍대용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문학ㆍ철학ㆍ역사학ㆍ천문학ㆍ경제학ㆍ예술 등 여 러 측면에서 이루어져서 그 양이 많을 뿐 아니라, 주제도 다양하다. 그만큼 홍대용 의 사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철학논문들에서 다뤄진 논의는 첫째로, 홍대용 실학사상이 형성원인에 대 한 문제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내적원인으로 주로 김원행 의 문하에서 洛論의 人物性同論의 영향을 받아서 物性重視로 나아갔고, 석실서원의 분위기상 자연과학 중시로 인해 자연과학식 名物度數에 관한 중시로 渾天儀 제작

2) 김인규, 「哲學의 近代志向的 性格에 關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3) 조 광, 「洪大容의 政治思想史 硏究」,『민족문화연구』1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9.

4) 천관우, 「洪大容 地轉說의 再檢討」, 曉城趙明基博士 華甲記念佛敎史學論叢, 論叢刊行委員會, 1965.

5) 박성래, 「洪大容의 科學思想」, 韓國學報 23, 일지사, 1981.

6) 김혜원, 「毉山問答을 통해서 본 洪大容의 新學問觀」, 首善論集 11,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1986, 86면 참조; 小川晴久, 「慕華와 自尊 사이」, 月刊朝鮮 7, 조선일보사, 1981, 4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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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天體觀測등 자연과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둘째, 외적원인으로 주로 내적 발전계기보다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과학의 영향을 받아 實用之學을 중시하는 학문을 이루게 되었고, 주로 淸의 考證學의 영향 을 받아 實證主義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연행을 통한 청나라 선진문물 견학을 통해 받은 충격과 영향으로 북학사상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견해이다.

유봉학은 洛論을 論理的 기초로 하여 ‘人物均’의 논리를 이룩했고, 이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物論의 전개에 이르렀다. 「毉山問答」의 논리전개는 심성론에서 출발하 여 자연과학을 거쳐 經濟之學에 이르는 홍대용 사상의 성장 확대과정을 상징한다 고 주장하였다.7)

허남진은 유봉학의 주장에 대해 홍대용의 북학사상이 洛論의 내적발전 및 전개 라고 하는 데에는 매우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나, 같은 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 당 대의 학자들과 홍대용의 차이를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고, 천문학 을 비롯한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가 기존의 비실증적이고 가치중심적인 성리학 세 계관에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게 했고, 이로 말미암아 人 物性同異라는 가치중심의 심성론에서 人物均이라는 물가치적인 심성론으로 나아갔 다고 반론 하였다.8)

류인희는 허남진의 견해와 동일하게 홍대용이 성리학 이론들을 비판하고, 科學思 想을 이론적 기초로 삼고, 발전시켜 새로운 철학을 확립시킨 것이고, 나아가 實學 의 反 또는 脫性理學이 아니라 그 문제를 繼承的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였다.9)

다음은 홍대용 실학사상의 긍정적 의의에 대한 논의이다. 여기선 주로 근대사회 로의 이행을 위한 근대지향의 시작이라는 견해와 華夷論의 탈피를 통한 민족주의 의식 수립과 洛論的 人物論의 영향으로 物性의 중시를 불러일으켜 현대사회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生態學的 의의 등이 주로 논의 되고 있다.

김인규는 홍대용의 地球說ㆍ地轉說ㆍ宇宙無限說 등 과학적 세계관을 통하여 기 존의 華夷論을 탈피하고, 以天事物의 객관적 태도로 人物均論을 정리하였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 위계적 자연관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과 도덕관ㆍ가치관 등을 비판

7) 유봉학, 燕巖一派 北學思想 硏究 , 일지사, 1995, 90~96면 참조.

8) 허남진, 「朝鮮後期氣哲學硏究」,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4, 59면 참조.

9) 류인희, 「洪大容 哲學의 再認識」, 東方學志 73, 연세대학교 국사연구회, 1991, 141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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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이러한 모든 사상적 변화는 利用厚生論으로 귀결된다. 利用厚生論은 과학 기술의 진흥, 농업기술의 개발, 상공업의 진흥 해외통상의 장려 등을 통하여 새로 운 四民官의 정립, 신분을 탈피한 능력있는 인재의 등용, 국방의 개혁 등 개혁사상 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근대성의 萌芽를 확인 할 수 있다는 점이다.10)

조성을은 홍대용의 역사인식은 단순히 중국 중심의 질서를 부정하는 데 그친 것 이 아니라 인간의 위치를 자각하여 인간과 자연의 균등을 전제하여 문명의 문제점 을 잘 인식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고, 이런 점에서도 홍대용의 사상은 단순히 중세 를 부정하고 근대로 가려는 것 이상의 것이라고 평가한다.11)

박희병은 홍대용의 인식론과 존재론은 궁극적으로 생태적 마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홍대용 사상의 생태적 지향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 전반에 걸쳐 두루 투영되고 있다고 말한다.12)

이상으로 홍대용 사상에 대한 견해차와 홍대용의 실학사상의 긍정적 의의를 검 토했다. 위의 논의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홍대용의 실학사상은 “무엇인가?”란 문 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단편적인 연구는 많지만 홍대용의 문학적인 차원에 서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연구는 아직 많지 않다.13) 현재 연구자들은 세분화된 전공분야의 제한된 가치기준으로만 「毉山問答」을 세분화하고 있다. 즉 홍대용의 문 학에 대한 규명이 선행 되어야 철학사적 의미와 사회 역사적 의의를 도출해낼 수 있고, 비로소 형성원인에 대해서도 더욱 객관적인 해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연구 방법

홍대용의 사상에는 사물ㆍ자연ㆍ인간ㆍ민족 사이에는 ‘物我’의 관계가 포함되어

10) 김인규, 「北學思想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151면.

11) 조성을, 「洪大容의 歷史認識」, 震檀學報 79, 震檀學會, 2001, 231면.

12) 박희병, 한국의 생태사상 , 돌베개, 1999, 251면.

13) 김태준, 홍대용과 그의 시대 , 일지사, 1982; 홍대용 평전 , 민음사, 1987 등을 대표적인 성과로 꼽 을수 있다.

박희병, 「洪大容 硏究의 몇 가지 爭點에 대한 檢討」, 震檀學報 79, 震檀學會, 2001, 2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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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나와 남, 주제와 타자, 안과 밖,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 이 모두를 의미한 다.14) 物我의 관계를 중심으로 홍대용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저작은 「毉山問答」이 다.

「毉山問答」은 湛軒書 內集 4卷, 外集 6卷, 共10卷 중에서, 內集 4권의 6篇 마 지막 부분에 있으며, 이 작품은 제목이 벌써 말하고 있듯이 중국과 조선 사이에 위 치한 毉巫閭山에서 두 등장인물인 虛者와 實翁의 문답을 통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의산문답」을 내용상으로 보자면,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人物均論에 관한 것으로 洛論의 人物性同論을 계승한 것이다. 다음은 天地ㆍ宇宙論 에 관한 것으로 天文, 陰陽五行說중 易象에 관한 수많은 계산법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 자연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확장해 간다.

마지막으로 人物之本과 古今之變에 관해 논하고 華夷之分을 반박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의산문답」의 형식을 분석한다. 1절에서는 虛와 實의 대립형식에 대해서 알아본다. 虛와 實은 홍대용의 저술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핵심용어이 다. 「의산문답」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虛者와 實翁의 대립형식으로 진행된다. 우 선 虛와 實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의산문답」에서 虛와 實의 대립형식을 분석함 으로써 작품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절에서는 「의산문답」의 형식에 대해서 알아본다. 의산문답의 형식 중 첫째로, 問答體 형식에 대해 알아본다. 문답체 형식 은 기본적으로 상대적인 입장에 선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해 의문의 제기와 해소 과 정을 거쳐 가며 작품을 진행시키는 방식이다.15) 「의산문답」은 제목에서부터 문답 형식의 소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글의 서두와 사이사이의 간단한 지문을 뺀다 면, 거의 모두가 문답으로 이어간다. 허자와 실옹이 서로 문답을 이어가면서 내용 이 전개되고, 문답을 통해 실옹은 허자 학문의 해체를 꾀한다. 문답체를 사용한 작 가의 의도를 알아본다. 3절에서는「의산문답」의 소설적 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 의산문답」은 논문으로써가 아니고, 허구적 인문들의 문답을 통해 그 실학사상을 펴 고 있다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16) 제2장은 3장과 4장을 위한 선행작업이 될

14) 박희병, 한국의 생태사상 , 돌베개, 1999, 278면.

15) 김신중, 「문답체 문학의 성격과 <성산별곡>」, 고시가연구 8, 한국고시가회문학, 2001, 55~76면 참 조.

16) 김태준, 홍대용 평전 , 민음사, 1987, 219면.

(15)

것이다.

제 3장에서는 「의산문답」의 세계인식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소설적 구성, 허와 실의 대립구조, 「의산문답」 형식의 특징을 통해 효율적으로 홍대용의 의도를 형상 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절에서는 전통 주자학으로부터 받았던 洛論的 소양이 확대 발전된 홍대용의 實 心實學에 대해 다룰 것이다. 2절에서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湖洛論爭 에서 홍대용의 시대까지 100년을 끌어온 학문적 전통과 관련한 人物性同論과 관련 하여 홍대용이 생각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즉 人物均論을 설명한다. 3절에서는 「 의산문답」속 중화주의 비판에 대해 검토한다. 華夷論과 관련지어 살펴봄으로써 그 특징과 의의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의산문답」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域外春秋 論을 고찰한다. 4절에서는 「의산문답」에 나타나는 새로운 우주원리 및 우주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정리한다. 우주구조론 가운데 특히 地圓說, 地轉說, 無限宇宙 說을 중심으로 다루도록 한다.

제4장에서는 「의산문답」의 형식과 세계인식의 관련 양상에 대해 고찰해본다. 「의 산문답」은 18세기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사상과 변화를 고찰할 수 있는 소중한 자 료이자 산문양식의 발전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더없이 중요한 문학텍스트이다.

(16)

Ⅱ.「毉山問答」의 형식

1.‘ 虛’와 ‘ 實’ 의 대립 구도

1 )‘ 虛’와 ‘ 實’ 의 개념

학문적 성격을 지칭하는 虛와 實의 대대적인 의미는 홍대용이 처음으로 사용 한 것이 아니며 유구한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고 변화해왔다.

虛의 최초의미는 큰 언덕을 지칭하는 데로부터 크다는 뜻의 상징으로 연역되고 환하게 비었다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實은 원초적 의미가 부유함과 식물의 열매를 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풍족함과 시작이나 끝을 이루는 원초적인 실체라는 뜻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최초의 의미에서 허와 실은 장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풍부한 의미를 가진 개념으로 발전되어 왔다. 본 논문은 뜻풀이가 목적이 아니므로 주로 학문적 성격을 두고 대비적으로 사용되어온 虛와 實의 용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虛學과 實學은 발생초기부터 비판과 추구라는 양극의 의미를 가지 고 배타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虛學은 해체되어 가는 실용성이 텅 빈 비판의 대상 이고, 실학은 가득 차 있는 실속 있는 학문으로 추구의 대상이 된다. 程ㆍ朱를 비 롯한 宋代 유학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漢ㆍ唐 유학의 詞章之學과 老ㆍ佛의 허 무를 허학이라 비판하고 韓愈(768~824)가 내세운 堯ㆍ舜ㆍ禹ㆍ湯ㆍ文ㆍ武ㆍ周公 ㆍ公子ㆍ孟子로 이어지는 유학의 道銃論을 전면으로 부각시키면서 재정립한 신유 학인 성리학을 실학으로 내세우면서부터 허와 실의 철저한 대비적 성격은 이미 규 정되었다.

朱熹(1130~1200)는 성리학의 최고 범주인 ‘理’ 의 본체론적 특성을 말하며 성리 학 자체를 실학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明末淸初에 이르면 정주도학 자체의 폐단 이 도리어 허학으로 규정되어 새로운 異端인 陽明學과 더불어 비판받게 된다. 그중 양명학에 대한 비판17)도 격렬하거니와 특히 성리학의 말폐와 老ㆍ佛에 대한 비판

17) 李甦平 中國ㆍ日本ㆍ朝鮮 實學比較 , 安微人民出版社, 1995, 99면 재인용.

(17)

도 거셌다.

허와 실은 고정개념이 아니라 항상 時宜性을 가지고 내용을 달리해온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즉 정주도학은 漢唐시기 文華로 치닫으며 老ㆍ佛의 영향으로 점차 유 학의 요체를 잃어 가는 말폐를 치유하고자 인간행위의 근원인 心性에 天理를 부여 하고 그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유학의 實理를 강조하며 실학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明淸에 이르면 그동안 탐구를 거듭했던 정주도학도 말류들에 의해 空理空談化 되 고, 현실상황과 밀착하는 학문적 탄력성을 상실해가고 다시 경직화된 허학으로 치 부된 것이다.

조선의 경우 또한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이단을 배척하고 유학의 도를 새로 밝 힌 주자학의 가치를 발견해 성리학이 수입되면서 중국유학의 허학 비판마저 수용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조선조에 허와 실을 학술적 관점에서 처음 사용한 것은 李齊賢(1278~1367)과 鄭道傳(1337~1398)이다. 이제현은 佛敎와 訓詁ㆍ詞章에 치중하는 유학적 말폐보 다 性理學의 우월성을 강조하여 실학이라 지칭18)하고 정도전은 불교에 대비된 성 리학의 우월성을 두고 실학으로 보았다.19) 이들의 공통점인 訓詁ㆍ詞章ㆍ佛敎를 허학으로 성리학을 실학으로 지칭한 점은 중국유학의 虛實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老ㆍ佛의 虛無에 대한 대안으로 성리학의 핵심인 “理”의 실체성을 주장함으로써 유학의 실학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주장한 학자는 晦齋 李彦迪(1491-1553)이 다. 그는 ‘無極而太極’을 “도는 아직 사물이 있기 전에 실제로 만물의 근거가 됨”이 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理는 지극히 높고 지극히 妙하지만 그 실체가 깃들여 있는 소이를 구하 면 또한 지극히 가깝고 지극히 實하다. 만약 이 理를 강명하고자 하여 아득하 고 허원한 곳으로 내달리기만 하고 다시 지극히 實하고 지극히 가까운 곳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단의 空寂한 데에 빠지게 될 것이다.20)

18) “今殿下, 誠能廣學校, 謹庠序 尊六藝明五敎, 以闡先王之道, 孰有背眞儒而從釋子, 捨實學而習章句者哉.”

(徐居正, 東文選 前集1, 「櫟翁稗說」)

19) 此則曰 “酬萬變.” 彼則曰 “隨順一切其言似乎同矣. 然所謂酬萬變者, 其於事物之來, 此心應之, 各因其當然 之則制而處之, 使之不失其宜也. 如有子於此使之必爲孝而不爲賊, 有臣於此使之必爲忠而不爲亂. (중략) 若 釋氏所謂隨順一切者, 凡爲人之子, 孝者自孝, 賊者自賊, 爲人之臣, 忠者自忠 亂者自亂. (중략) 則是近世佛 學詖淫邪遁之尤者, 而欲移之, 以亂古人明德新, 民之實學, 其亦誤矣. 使之設檻置阱而不至於齩人. 蓋亦各因 其所固有之理而處之也.” (鄭道傳, 三峰集 卷9, 「佛氏雜辨」ㆍ「儒釋同異之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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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언적은 理가 형이상학적인 실체임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는 현실세계에 내재해 있다는 논리로 결국 實理임을 주장하 였다.

李滉(1501~1570)은 허와 실을 氣에 대비한 理의 우월설과 그 정밀한 구현에 사 용했다. 理를 만물의 근원적 내지는 주재자로 위치시키고 있다.

이것이 지극히 虛하면서 지극히 實하고 지극한 無이면서도 지극한 有이다.

움직이되 움직이 없고 고요하되 고요함이 없다. 매우 깨끗하고 매우 맑아서 털끝만치도 더할 수 없고 털끝만큼도 감할 수 없다. 음양ㆍ오행ㆍ만물ㆍ만사 의 근본이 되면서도 음양ㆍ오행ㆍ만물ㆍ만사에 얽매이지 않는다.21)

그러나 李珥(1536~1584)는 이황과 달리 理 못지않게 氣도 중시하면서 성리학에 임하는 입장으로서 實의 특성을 강조한다. 實效와 實功으로 표현되는 務實은 그의 학문 성격이기도 한다. ‘格致之實’ㆍ‘誠意之實’ㆍ‘正心之實’ㆍ‘修身之實’ㆍ‘孝親之實’

ㆍ‘治家之實’ㆍ‘用賢之實’ㆍ‘去姦之實’ㆍ‘保民之實’ㆍ‘敎化之實’22) 이라는 말들에서 볼 수 있다시피 格致로부터 修己ㆍ安人에 걸쳐 다 務實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엔 조선전기 통치의 폐단이 누적됨에 따라 그 시대를 조선의 中衰期로 규정하고 그 허에 대한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다.

임진왜란이 휩쓸고 지난 17세기에는 무너진 강상 윤리를 회복하고 국가재건을 위해 우선 밑바닥부터 올바른 예의와 질서의 수립과 확고한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예학의 심화는 결국 대부분 성리학자들로 하여금 禮의 실천을 위한 심성수양을 중 시하게 만들었다.

홍대용 이전시기의 유학사에 허학과 실학은 시대에 따라 현실성을 잃어 가는 유 학의 고유한 생명력의 구현 및 異端에 대비한 유학의 우위성 강조에 이바지하여 오면서 주로 학문본연의 실천적 가치의 구현여부를 판가름하는 학문적 성격이었다.

20) “此理雖若至高至妙, 而求其實體之所以寓, 則又至近而至實. 若欲講明此理而徒騖於窅冥虛遠之地, 不復求 之至近至實之處, 則未有不淪於異端之空寂者矣.” (李彦迪, 晦齋集 卷5, 「書忘齋忘機堂無極太極說後」) 21) “此個物事 至虛而至實 至無而至有 動而無動 靜而無靜 潔潔靜靜也 一毫添不得 一毫減不得 能爲陰陽五行

萬物萬事之本 而不囿於陰陽五行萬物萬事之中.” (李滉, 退溪全書 上, 卷16, 「答奇明彦」) 22) 李珥, 「栗谷全書」 卷15, 「東胡問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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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虛者’와 ‘ 實翁’의 인격화

제1절에서 허와 실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허와 실은 비판과 긍정의 대명사 로서 양면처럼 대립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불가분적 관계에 있는 개념이다.

18세기 당시 詞章之學에만 치우치며 형식과 사욕을 추구하는 허학으로 변질시킨 성리학의 末廢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堯舜이래 학문의 發展史를 허학과 실 학의 간단없는 교체과정으로 파악하였다. 儒學을 집대성한 孔子의 제자들이 죽은 뒤 詞章에만 치우치는 末廢에 대한 반동으로 莊周가 격분하여 齊物論을 지었다든 가 程朱道學의 경직성과 현실감각의 상실로 인한 末廢에 대한 반동으로 王陽明이 致良知說을 지었다고 보는 견해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학문은 비판과 긍 정의 간단없는 반복으로 발전하여 왔다고 본 것이다. 동시에 학문의 健在여부에 따 라 천하의 흥망이 결정되어온 것으로 파악하여 학문에 인간사회에서 차지하는 근 본적인 위치를 부여하고 있다.

홍대용은 학문에 있어서 詞章之學 따위에만 치우친 경향을 ‘虛’로 보았으며 正德 과 利用厚生의 균형추구와 下學而上達의 실천을 ‘實’로 간주하였다. 본체론적 사고 에서 근대과학과 가까워진 자신의 理氣論을 기초로 하여 象數學的 연구성과와 풍 부한 서학의 天文學을 결부시켜 독특한 氣中心 宇宙論을 제시하고 있다.

陰陽五行說의 경직성과 억지로 장수 내지 영생을 얻으려는 仙術의 허망한 추구 등 인간의 사욕에 의해 우주순환의 법칙에 어긋나는 관념을 ‘虛’로 지목하고 있으 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항상 운동변화 속에 있는 현실상황에 입각한 우주관과 地界의 無中心說을 토대로 하는 자주적 天下觀의 확립을 ‘實’로 보았다. 심성론에서 는 사욕에 바탕한 허위의식을 ‘虛’로 보았으며 도덕성과 진실성이 온전한 본래의 순수한 마음의 보유를 ‘實’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현실상황을 무시한 채 조선중화 주의의 교만에 자족하려는 행태를 ‘虛’로 주목하고 실사구시적인 국가경영의 폐단 을 직시하고 자주국가의 富國强兵을 이룩하는 것을 ‘實’로 보았다.

儒學은 어디까지나 현실생활을 중시하고 인간사회의 문제탐구에 뿌리를 둔 학문 이다. 따라서 形而上學과 形而下學의 밀접한 연관성을 지극히 중시하는 입장에 있 으며 현실성을 이탕한 학문경향은 항상 비판과 극복의 대상 즉 ‘虛’로 간주하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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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본연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작업을 간단없이 진행하여왔다.

홍대용의 ‘虛’와 ‘實’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극복과 재생을 지향하는 가치적 개념 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홍대용의 심성론에 있어서 항상 학자의 主觀을 만들기에 대한 탐구라면 홍대용의 중화주의 비판과 새로운 우주론은 현실적인 감각을 갖추 고 정확하게 변화시켜나갈 인식대상 즉 客觀에 대한 탐구이며, 학문은 주관과 객관 을 조화롭게 잘 연결시켜주는 合一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虛’와

‘實’은 바로 이 요소에 대한 홍대용 나름의 진단과 처방이라 볼 수 있다. 홍대용의

‘虛’와 ‘實’은 儒學에서 中和로 표현되는 균형의 중시와 성리학에서 李珥의 理氣之 妙로 표현되는 조화성에 대한 지향을 한 걸음 발전시킨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런 의 미에서 홍대용의 실학사상을 經濟之學의 실천과 物性을 중시하는 의미로만 보던 시각이외에도 조화지향의 논리적 바탕으로 이론과 실천을 밀접하고 결부시키고 人 ㆍ物을 포함한 우주만물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보며 내재된 이치의 호환성 에 주목하고 相生의 道를 추구한 점의 실학사적 의의는 더욱 풍부하다고 보인다.

서로 상반되는 두 측면을 한 곳에 병렬하여 서로 비교되고, 대조되게 함으로써 작가의 뜻을 더욱 부각시키는 수법이다.23) 物/事, 事物/心身, 古/今 등의 대비를 가 져오고 敍事와 議論의 복합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문학적 형상화를 꾀할 뿐 아니라 작가의 인식을 기탁하며, 대비되는 것들이 쌍방향으로 작용함으로써 외물을 통하여 인간 내지 인간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虛 와實의 인격화는 홍대용 자신의 의론을 펼치기 위한 도구이다. 홍대용은 「의 산문답」 속 자신의 철학사상ㆍ당대 현실의 모순점 등을 나타내기 위해 채택하고 있다. 직설이 아니라 비유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비인간 소재를 인격화할 경 우 허구적인 효과를 더 유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의산문답」은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事行에 의탁해서 작 자의 의식을 전하고 있다. 작자의 중심의식은 당해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사건을 통한 작자의 의중을 제시하는 일이다.

개인의 뛰어난 재능을 강조하더라도 작가의 사상이나 문학관은 古人이나 시대적 상황에 직접적ㆍ간접적 영향을 받게 마련이고 이러한 영향은 개인의 체험 속에 깊 이 침투하여 인식의 폭을 증대시키고 가치관의 얼개를 마련하는데 기연한다. 작가

23) 王洪, 古代散文百科大辭典 , 학원출판사, 1991, 7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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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독창성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그 시대의 관습적ㆍ지배적 사고에서의 탈피이며 당대의 절실히 요구되면서도 권위주의에 억압당하고 인식의 부족으로 외면당하는 시대정신의 표출이다.24)

「의산문답」속 실옹과 허자에 대해 살펴보자. 허자는 성리학에 달통한 조선의 선 비이다. 실옹은 중국과 조선의 접경 지역 의무려산에 살고 있다. 인물의 이름을 보 면 담론의 주체가 누구인지 쉽게 알수있다. 「의산문답」은 인물의 행위나 사건보다 는 허자와 실옹의 문답에 중심을 두며, 담론의 주체는 실옹이다. 허자는 실옹에게 질책을 당하고, 가르침을 받으며 실옹의 학설을 수용하여 깨달아가는 대상이다.

「의산문답」속에 허와 실을 인격화함으로써 홍대용은 자신을 감추고 객관적 입장 을 획득하면서도, 자신의 주관성, 다시 말해 본인의 목적을 충분히 드러내고 관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격화의 목적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전달하고 중개자 로서의 허자인 홍대용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실옹으 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려는 또 다른 화자인 홍대용이다.

즉 허자와 실옹은 홍대용의 철학적,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자신의 철학적, 정치적 경륜을 객관적인 화자에 의해 펴도록 하고, 또한 자신의 의견을 허자를 통해 수긍하도록 하는 방법은 그것의 진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격화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을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 바탕에 놓여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허자에게 제시한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 대부분 수긍을 하고 있지만, 의견과 주장이 민감한 문제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자기에게 닥칠 곤란함을 피해가고자 하 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추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어떤 인물이 아닌

‘실옹’ 이라는 화자를 설정한 것은 홍대용의 고도의 전략이 담겨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인격화를 통해 당시 속해있던 시대와 사회에 대하여 의식변화를 제시해주고 있다. 어지러운 시대상황과 허학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문학화되고 있다. 작자가 직접 작품속에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인 서술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虛와 實이라는 상응되는 글자를 이용함으로써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견을 효과적으로 들어낼

24) 김영동, 「연암 박지원의 소설연구」, 동국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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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었다.

2.問答體

1 )問答體의 기원 및 효용

문답체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 안한다면 홍대용이 문답체를 즐겨 사용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 만 그것이 어떤 구성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는 문학사 차 원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 지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정제되고 정착되느냐에 따라 문학작품이 되느냐, 일반 적인 대화의 기록이 되느냐가 판가름 나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기원에 대해 탐구한 논의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문답체의 기원은 楚辭 기 원설, 원시신앙 기원설, 신화 기원설 등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추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문답체의 기원을 중국 남방 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楚辭 에서 찾 는 것이다. 이 관점은 楚辭 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屈原의 「漁夫」에서 등장하는 굴원과 어부의 대화에서부터 문답체가 문학 적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漢代의 賦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고 보는 입장이 다.25)

문답체를 사용한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楚辭 에는 굴원의 「離騷」ㆍ「卜居

」ㆍ「天問」 등과, 宋玉의 「招魂」ㆍ「高堂賦」ㆍ「神女賦」ㆍ「好色賦」 등이 문답체로 되 어 있으며, 枚承의 「七發」을 필두로 司馬相如(기원전 179~117)의 「子虛賦」와 「上 林賦」, 東方朔(기원전 154~93)의 「答客難」, 班固(32~92)의 「兩都賦」등 漢賦의 대 표적인 작품들 역시 문답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楚辭 에서 이어진 漢代의 賦의 경우 후대의 문답체 산문과는 담고 있는 정서나 내용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전자의 경우 수사를 화려하게 꾸미는데

25) 權斗煥, 「이규보의 수필문학」, 현상과 인식 4권, 2ㆍ3호, 1980, 1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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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중하여 내용이 소홀한 반면, 후자의 경우는 자성과 비판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같은 문답체를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면에서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작품을 창작한 배경만 보더라도 전자의 경우는 실권자들에게 자신의 문식을 자랑 하기 위해 창작26)하였으나, 후자는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기 위함이거나, 자신의 주 장을 설득시키기 위해 창작된 작품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문체 역시 전자 는 화려하고 수식이 많으나, 후자는 논리적이고 담박하다. 그러므로 만약 楚辭 에 서 기원된 문답체가 漢代의 賦를 거쳐 후대로 이어졌다고 한다면, 문답체 라는 외 적 구성방식만 취했을 뿐, 내용이나 정신까지 본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원시종교의 종교의식에서 문답체의 근원을 찾은 것이다.

문답문학은 원시 巫의 세계에서 가장 보편화된 문학양식이다. 무가 신에게 神託하여 물으면, 이에 신은 神語로써 응답한다. 무와 신과의 문답, 이것이 바 로 인류 최초의 문학양식이라고 하는 문답문학의 시초인 것이다.27)

원시종교의 세계에서 巫가 신에게 신탁을 하면 신이 신어를 내려준다는 방식에 서 문답체의 근원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원시종교와 문답양식을 연관 지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 시키고, 문 답체 양식이 발생한 시점을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인 정된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적으로 형식화된 과정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쉽게 수 긍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문답체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고자 하는 입장이다. 조현설은 우언의 대표적 서술방식이 문답이라고 하면서, 문답체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고 있다.

우언의 문답형 서술방식에 대해 신화는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주지 하듯이 신화는 기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만물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홍수나 한발과 같은 자연현상을 왜 일어나는가? 신화는 이런 물음을 통해 마련된 세계에 관한 인류 최초의 인식을 이야기로 구성하고

26) 송우설, 「중국우언전기의 원류 – 사부와 열전을 중심으로」, 中國學論叢 1, 국민대 중국문제연구소, 1985, 46면.

27) 김인호, 「중국 문답문학의 고찰」, 중국어문학 33, 영남중국어문학회, 199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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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물론 상당수의 신화들은 질문을 괄호 쳐 두고 대답만으로 이야기를 구 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화가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문답으로 구성된 문답형 서사라는 점을 부정 할 수는 없는 것이다.28)

그는 이어서 신화의 문답체가 列子 ㆍ 莊子 등에 수록된 우언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모든 신화가 질의응답 형식을 취하고 있 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있다. 물론 많은 신화가 세상의 시작이 라든가 만물의 기원에 대한 답변을 기록한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모든 신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그 질문과 답변이 작품의 외면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상징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더욱 모호해지게 된다.

필자는 문답 양식의 기원은 書經 ㆍ 論語 ㆍ 孟子 ㆍ 莊子 ㆍ 列子 등 고대의 경전 저서에서 문답체의 기원을 찾고자 한다.

먼저 書經 은 천자의 질문에 대한 신하들의 응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논어 에 보이는 문답 형식의 기술은 師承관계를 중시하던 고대의 지식 전수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29) 이들 저서가 문답체를 사용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이라는 점에서 문답체의 표본이 마련되었다고 본다. 이 두 문헌이 당대 지식인들에게 미친 사상ㆍ사회적인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문장 기술 방식을 잇는다는 것은 이 상할 것이 없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莊子 「內集

」 만을 대강 살펴보아도 「逍遙遊」편의 堯 임금과 許由, 惠子와 莊子와의 대화, 「齊 物論」 편의 南郭子綦와 顔成子游, 齧缺과 王倪와의 대화, 「養生主」편의 庖丁과 文 惠君, 老子의 제자와 秦失과의 대화, 「人間世」편의 孔子와 顔回, 葉公子高와 孔子와 의 대화, 「德充府」편의 孔子와 常季, 子産과 申徒嘉, 魯나라 哀公과 孔子, 惠子와 莊子와의 대화, 「大宗師」편의 南伯子葵와 女偶, 子貢과 孔子, 顔回와 孔子와의 대 화30) 등 문답체가 莊子 에서 가장 비중있고, 특징적인 서술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답체는 寓言의 대표적인 구성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우언의

28) 조현설, 「지혜, 신화와 우언을 잇는 고리」, 고전문학연구 26, 한국고전문학회, 2004, 31면.

29) 조현설, 위의 논문, 2004, 각주 28 참조.

30) 안병주ㆍ신호근 譯註, 莊子 1, 전통문화연구회, 2001, 13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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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해 살펴보면, 莊子는 「寓言」 편에서 莊子 33편의 요지를 寓言ㆍ重言ㆍ 巵言이라 말하였다.

寓言은 전편의 열에 아홉이요, 重言은 전편의 열에 일곱이며, 巵言은 날마다 하는 말로서 모든 물론에 화합하는 것이다. 우언이 열에 아홉이나 되는 것은 밖의 것을 빌어 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친아버지가 그 자식을 위해 중매 서 지 않음과 같으니, 친아버지가 칭찬함이 그 아버지 아닌 이가 하는 것만 못하 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탓이 나리나 남의 탓이니, 자기와 더불어 같으면 응하 고 자기와 더불어 같지 않으면 반대하며, 자기에 동조하면 옳다 하고, 자기와 달리 하면 그르다 하는 것이다.31)

곧 莊子는 우언이란 화자의 직접적인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 또는 사물의 입을 끌어들여 이야기해야 잘 믿는 청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상을 설득시키는 효과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수사방식임을 밝힌 것이다.32) 현대 국어사전에서 ‘우언’

의 사전적 의미가 “교훈적, 풍자적인 내용을 사물에 빗대어 엮은 이야기”라고 정의 되어 있는 것도 莊子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우언의 정의에 부합하는 홍대용의 「의산문답」을 살펴보면 허자와 실 옹의 대화로써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莊子가 이야기 한 우언과 맥이 맞닿아 있다.

莊子 와 함께 이른 시기의 우언을 수록하고 있는 열자 와 韓非子 역시 문답 형식이 대표적인 서술 방식으로 채택되어 있으며, 孟子 나 墨子 를 비롯한 전국 시대의 저서 역시 천자나 제후의 질문에 사상가 遊說家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 되어 있다. 다양한 지식과 담론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에는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필 요한 수사기교가 발달하기 마련이다.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자신의 논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피력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답형식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홍대용의 문답 체 역시 主論性이 강하다는 사실은 전국시대 여러 저서의 영향관계를 증언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춘추전국시대에 크게 유행한 문답체 산문은 이후 唐宋古文家들에 의 31) “寓言十九, 重言十七, 卮言日出, 和以天倪. 寓言十九, 藉外論之, 親父不為其子媒, 親父譽之, 不若非其父 者也. 非吾罪也, 人之罪也. 與己同則應, 不與己同則反, 同於己為是之, 異於己為非之.” (莊子, 莊子 「寓 言」)

32) 안병설, 「선진우언의 특질」, 어문학논총 3, 국민대 어문학연구소, 1984, 8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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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계승된다. 韓愈(768~824)와 柳宗元(773~819)으로 대표되는 당대 고문가는 육 조시대부터 이어진 浮華하고 美麗한 형식미를 갖춘 騈麗文 풍조에 반기를 들고, 질 박한 先秦兩漢 이전의 문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사용하 는 문장을 古文이라고 하였는데, 논ㆍ설ㆍ문ㆍ변 등의 문체로 문답식 구성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한유와 유종원의 고문운동은 그 명맥이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晩唐에 이 르러 唯美的 문학 풍조에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러한 문학 풍조는 宋初까지 그 위세를 떨친다. 그러나 宋이 창업기반을 다지고 새로운 사회기풍을 조성해 나가 자, 유미적 문풍은 반대 세력에 의해 강한 공격을 받게 된다. 歐陽脩(1007~1072) ㆍ蘇軾(1036~1101)ㆍ王安石(1021~1086) 등에 의해 다시 불붙기 시작한 고문운 동은 곧 중국문단을 점령하였으며, 한유ㆍ유종원의 고문정신을 이어받아 문학창작 에 힘을 쏟았다. 宋代 고문가들 역시 문답 형식을 이용한 문학을 다수 창작 하였는 데, 歐陽脩의 「秋聲賦」, 蘇軾의 「赤壁賦」 등은 문답 형식을 사용한 宋代 문학의 대 표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답체 산문은 춘추전국시대의 경전 저서에서 그 연 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문학적 성취가 뛰어난 莊子 ㆍ 列子 등에 수록된 이른 시기의 우언은 후대 문답체 산문의 전범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이후 문답체 산문은 당송 고문가들에 의해 계승되어 다양한 문체를 통해 구현되었고, 고려초 당송고문 이 우리 문학사에 소개되면서 문답체 역시 함께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2 )問答體 형식

問答體의 파악은 「의산문답」의 이해와 깊이 관련되므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問答體는 한문학에서 論辯類의 한 양식이다. 論辯類는 오늘날로 치면 논설문 정 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論辯類의 폭은 대단히 넓다. 論辯類에는 작은 갈래들이 있 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論ㆍ辯ㆍ難ㆍ議ㆍ解ㆍ原ㆍ對ㆍ文ㆍ喩ㆍ問 가운데 對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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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은 어떤 주제를 설정하면서 묻는데 대한 대답의 형태를 띤다. 그러므로 문답식의 문장이 된다. 문답을 가리켜 철학의 기적 이라고 했다는 그리스 시대만이 아니라 이 문답의 방법은 동양에서도 일찍부터 학문과 교육의 가장 보편적 방식이었다.33) 이 문답의 방식은 말하자면 소설적이기보다는 훨씬 극적인 문학 형식이다.34) 문답 식 표현의 중심에는 대화가 있다. 대화는 서사의 한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 사건의 전개 및 그 양상을 제시할 수 있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35) 즉 대화 를 통해 작중 인물의 동작 행위를 설명하고 심리를 해부하며, 대화를 통하여 등장 인물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하여 토의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독자의 의문과 질문으로 인해 자신의 의도한 대로 논 리적 전개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바로 문답법은 그 구조상 논리성을 띠는 것은 당 연한 귀결인 것이다. 문답체의 기본적인 구성이 각기 대립적인 위치에 선 두 성격 이 벌이는 극적인 갈등으로 연결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대 화가 많이 쓰인다. 특히 문답체는 서로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사상차이나 성격의 상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寓意 전달이라는 우언문학의 본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문답체는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독백형태의 표현이 있고, 가장 보편적인 兩人의 문답식이 있다. 兩人의 문답식 표현을 통한 서술 방법의 내용을 독자에게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과 난해하고 논란이 많은 문제를 문답체 방식으로 풀어가는 방법은 상대방과 독자의 설득이 용이하고 깨우침에 이르게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1인칭 필자에 의한 서술이 가져올 수 있는 일 방성에서 벗어나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생동감 있게 중심인물들의 행 위를 묘사하고, 상이한 인물의 대결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으므로 여타의 다른 문학 장르보다 대화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귀 결이라 하겠다.

이러한 문답방식 중 특히 「의산문답」은 論語 ㆍ 孟子 ㆍ 莊子 와 같은 한문산 문의 문답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답체 산문 중에서도 「의산문답」은 莊子 의 글쓰기와 매우 흡사하다.36) 「의산문답」은 莊子 의 허구적 인물에 의한 문답체

33) 김태준, 洪大容과 그의 時代 , 203면.

34) 김태준, 洪大容 評傳 , 218면.

35) 김용구, 김의숙 문장의 이론과 실제 , 청문각, 1996, 169면.

36) 송영배, 「홍대용의 상대주의적 사유와 변혁의 논리 – 특히 莊子 의 상대주의적 문제의식과 비교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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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모방하면서, 허구적인 서사 방식을 구사한다.37)

「의산문답」은 전적으로 묻고 답하는 틀에서 유연하게 대화의 틀을 시도하고 있 다고 할 수 있으며, 서술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어 있다. 서술자는 두 사람의 대화 중간에 개입한다. 「의산문답」은 배경이나 인물의 행적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이런 점에서 작품 바깥에 기대지 않고도 작품 안에서 자족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며, 작품 안에 독자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산문답」의 내용은 당대의 학문 풍토, 성리학을 궁구하는 儒者들의 태도에 대 한 비판과 아직 조선 사회에 퍼져나가지 않은 천문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에 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은 조선사회에 보편화된 사고가 아니라 생소한 것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하는 소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문답에 의한 서술 방법은 「 의산문답」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적절한 서술 방식 이라 할 수 있다. 인물의 행위보다는 허자와 실옹의 토론에 중심을 두며, 문답을 주고받는 허자와 실옹이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정보교류 차원을 넘어선 대화 가 오간다. 이들은 문답을 통해 서로의 의견과 가치관을 피력한다. 대립적인 관계 를 설정함으로써 서로의 상대되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질문과 대답이 일회적으 로 끝나지 않고, 허자의 질문에 실옹이 답하고, 실옹의 질문에 허자가 답하면서 연 속적으로 제시되는 유형이다. 질문과 대답이 연속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어느 정 도 극적이면서 서사적인 경향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문답이 여러 번 반복될수록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 진전될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허자는 실옹과의 문답 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답은 오히려 실옹의 꾸중이라고나 할 구성으로 되어있다. 실상 두 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느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의견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대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일

심으로 」, 한국학보 12, 일지사, 1994.

37) 「의산문답」의 허구적 사사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소 다르다. 김태준 ( 홍대용 , 한길사, 1998)은 허구적 사사가 텍스트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철학소설로 본다. 김정호(「홍대 용 「의산문답」의 정치사상적 특성과 의의」, 동양정치사상서 6, 2006)는 허구적 서사가 텍스트를 통합 한다고 보고 「의산문답」의 담론들이 모두 정치적 비판으로 수렴된다고 보았다. 조동일(「조선후기 인성 론의 혁신에 대한 문학의 반응」, 한국문화 12,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91)과 박희병(「홍대용 연구 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검토」, 진단학보 79, 진단학회, 1995)도 서사적 수법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고 평가하지만 텍스트를 하나의 구조체로 보는 입장에서 조동일은 서사적 서술로, 박희병은 철리산문으 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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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적 우위에 선 인물이 그렇지 못한 상대방에게 일러주는데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외형상 논설문의 형식을 보이기는 해도 홍대용 입장에서 「의산문답」을 설명문, 나 아가서 訓戒文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자신이 이미 깨달은 사실을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한 독자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옳은 길로 가도록 독려하면 그만이다. 당대의 고 명한 성리학자 조차 진리로 인정하게 하는 문답체를 구사하였기에 독자를 쉽게 설 득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홍대용이 문답을 택한 의도이다. 만일 논쟁적인 글 을 원했다면 論이나 辨ㆍ說등을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답 형식의 說에도 실옹 과 허자간의 문답이 드러나지만 이 경우에는 허자의 역할이 실옹의 이야기를 경청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해 강한 반론을 펴는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실옹은 그에 대한 재반격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계속 강화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문답체를 내걸게 된다면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고정되면서 긴장감은 상당 히 줄어든다. 그러나 인물간의 대화를 통해 마치 자신이 대화를 나누는듯한 현장감 을 줌으로써 독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홍대용은 자신의 생각을 보다 논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시킬 수 있었고, 아울 러 상대방을 설득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결국, 두 인물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구성이라는 점에서는 문답이나 說이 동질 적이지만, 그 대화의 질에서 있어서는 문답과 說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겠 다. 이점은 본질적으로 두 인물간의 대결을 기본으로 하는 서사문학에 다가갈 가능 성이 있는 것이지만, 문답의 경우는 어느 한 등장인물의 뜻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 했으며, 이런 논설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의산문답」은 문답체를 통해 마치 연극의 대본처럼 작품 전체에서 각 항목마다 유기적인 논리성과 연관성을 갖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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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설적 구성

1 )허구적 인물과 배경

홍대용이 허자와 실옹이란 가상적 인물과 의무려산 이라는 공간을 내세운 이유 에 대해서 보통 연구자들은 사회적 비난을 피하면서 자유롭게 현실을 비판하려는 정치적 고려에서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다고 본다.38) 의무려산 이라는 공간에 대해 서도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인 지명이긴 하지만 조선도 중국도 아닌, 어떤 선입견도 조성되지 않은 산을 배경으로 해서 자유롭게 새로운 논의를 펼치고자 했다는 것이 다.39) 「의산문답」에서 강도 높게 성리학을 비판하고, 중화중심주의의 어리석음을 지적했으니, 정치적 고려 때문에 허구적 장치를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비난을 줄이기 위한 포석으로 가상의 공간을 설정했다고 보면, 허자와 실 옹, 의무려산은 홍대용의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고도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허자와 실옹이 실제 인물인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젊은 날의 홍대용이 허자란 인물에 투영되어 있든, 중년의 홍대용이 실옹에 투영되어 있 든 허자와 실옹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의산문답」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상관이 없다.

허자는 묘사된 그대로 현실을 창도할 수 없는 무능한 성리학자, 권력과 사리사욕 에 이용되는 유학의 원리들, 고루한 습속에 젖어있는 선비들이었다. 홍대용이 허자 를 통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당대의 조선사회를 억누르던 고루한 지식ㆍ편견ㆍ 습속 등 총체적인 삶의 방식과 태도였다. 홍대용은 허자를 통해 성리학의 현재와 조선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선사회의 총체적 삶의 방식과 태도를 의심하 게 만든다. 허자는 서사 안에서 비판받고, 회의하며 인식의 전환을 이룬다.

실옹은 현실의 고루한 지식과 편견을 깨고, 삶의 전환을 이룬 자이다. 실옹은 중 국 선비인지 조선 선비인지 분명하지 않다. 실옹이 살고 있는 의무려산이 중국도

38) 조동일, 「조선후기 인성론의 혁신에 대한 문학의 반응」, 韓國文化 12,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91, 74면.

39) 조동일, 위의논문, 7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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