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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세계인식의 상호작용

작가의 세계인식은 문학의 형식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작가의 눈으로 재해석 된 세계가 문학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세계인식이란 그를 둘러싼 시간 적ㆍ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되는데, 우리가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적 배 경에 따른 홍대용의 사상적 기반이다.

조선후기의 지식층은 성리학을 끊임없이 변용시키면서 현실을 비판하거나 특정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 하였다. 홍대용의 사상은 그러한 노력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홍대용의 사상적 기반을 논할 때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洛論的 분위기에 성 장하면서 洛論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론과 문학관을 전개 하였다는 점이다. 여기

서 주목할 점은 낙론이 가진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한층 더 발전시 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홍대용의 「의산문답」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의산문답」의 주인공을 살펴보면 허자는 오행의 근원과 삼교의 진리를 달 통하여 인도를 경위로 하고 물리를 달통한 조선의 선비이다. 성리학에 달통한 자가 허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허자라는 이름과 행적은 「 의산문답」이 지향하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방향을 암시해준다. 인물의 이 름과 행적을 연관 지으면 성리학은 곧 허학이 된다. 홍대용은 서두에서부터 당대의 통념을 뒤집는다.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인 성리학을 허학으로 취급한 것이다.

한문학에서는 철학적 논쟁을 보여주는 문답체 산문이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홍대용은 문답체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전통에서 한걸음 나아가 문답 체에 서사의 옷을 입힘으로 해서 자신의 논변을 보다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받아들 일 수 있게 하였다. 홍대용은 허자의 초상이라 할, 조선의 고루한 성리학자들이 자 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깨우칠 수 있도록 극적 서사를 통해 학술적 논변으로 인도한다.

실옹은 허자의 상식을 깨뜨리기 위해 먼저 성리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깨뜨린다.

성리학에 의거해 말하고 행동하는 허자에게 그것이 얼마나 이름만 추구하며 격식 만 차리는 공허한 짓인지를 알려준다. 그렇게 한 후 오래된 습속에 회의하는 허자 를 보자, 실옹은 본격적으로 허자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새로운 학설을 이야기 한다. 이제 허자는 자신이 들어왔던 그리고 믿고 있던 지식과 세게 인식에 근거해 질문을 던지고, 실옹은 이를 깨뜨리는 혁신적인 발상의 학설로 대답한다.

실옹의 담론은 천지와 인간, 역사와 문명의 大道에 대한 설명이다.126) 대개 인간 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는 관심이 달라진다. 그래서 실옹은 그 본원이 되는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하 늘과 땅, 星界와 地界, 서양과 중국, 華와 夷 등 중세적 구획을 가로지르는 천지자 연과 역사와 문명의 대도를 설명한다.127)

중세적 지식과 관념은 사람과 사물, 天과 地, 화와 이를 위계적으로 바라본다. 중

126) 이경보, 「존재론과 윤리론의 갈등 - 홍대용 사상의 철학적 기초」, 한국실학연구 11, 한국실학학과, 2006, 206면.

127) 고미숙, 나비와 전사 , 124면.

세적 세계 구획에 의하면 사람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은 다르며, 하늘이 땅을 駐在 하며, 중국은 세계의 중심으로 사람의 오랑캐들을 다스린다. 중세인들은 이 두 세 계 사이의 차별적 구획을 의심해 본적이 없다. 사람, 하늘,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요, 기준이라는 것을 절대적 진리 혹은 절대적 사실로 당연시하였다.

실옹은 이런 고정 관념을 격파한다. 실옹은 사람과 사물, 하늘과 땅 성계와 지계, 서양과 중국, 중국과 오랑캐 사이의 중심을 해체한다. 이 세상에 절대적 중심은 없 다. 사람과 사물을 구획하는 경우, 사람으로서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로서 보면 사물이 귀하며, 하늘로서 보면 사람과 하늘이 똑같다. 이와 같은 논리는 하늘과 땅, 우주의 뭍별과 지구, 서양과 중국, 중국과 오랑캐 사이의 구획에도 똑같이 적용된 다. 이 두 세계는 사실상 똑같다. 누가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서로의 위계가 달라 진다. 중심은 맥락에 따라 이동할 뿐이다.

이렇게 절대적 중심을 해체하는 순간, 천지자연과 우주도 달리 보인다. 사물도 사람처럼 仁義禮智信의 오상을 갖추고 있다. 사람과 사물의 위계가 없듯, 하늘과 땅의 위계도 없다. 지구는 하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이 모났다는 이전의 천문지식은 잘못되었다. 땅은 둥글며, 자전한다. 인간이 세계의 중 심이 아니므로 이 우주에는 하늘과 지구만이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해와 달과 지구 는 별의 일종으로 나란히 놓여 있고, 별 밖에 또 별이 있으며, 이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무수한 세계가 존재한다. 지구가 뭍별 중의 중심이 아니듯, 중국이 세계의 중 심이 아니다. 중국 밖에는 서양과 같은 다른 나라들도 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 은 중국을 중심으로 할 때 생겨난다. 중국도 오랑캐도 똑같다. 오랑캐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도 오랑캐이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실옹이 논변한 담론들은 절대적 중심을 상정하는 중세적 세계 인식을 깨기 위해 배치된 것이다. 실옹의 人物均論, 宇宙無限論과 地轉說, 華夷論은 철학사에서, 과학 사에서, 정치사상사라는 분야로 나누어 살피면 각각의 담론이 독립적이지만, 이 담 론 안에는 세계인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세 축으 로 이해된다. 인간과 자연과 문명이라는 축이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이다.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연, 문명을 통합적으로 성찰해야한 만다. 人物均 論, 宇宙無限論, 地轉說, 華夷論은 통합적으로 살펴야지 각각을 떼어서 이해하면, 그 설득력이 약해진다. 궁극적으로 실옹은 중심을 해체한 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

이다. 중심을 해체하면, 우리는 늘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 뭇별과 지구, 서양과 중국, 중국과 오랑캐의 사이에서 사고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두 세계의 차이를 가로지르며 세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실옹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이 바로 이것 이다. 사이에서 사고하라. 허자의 실옹이 마주친 곳이, 실옹의 거주지가 왜 중국과 오랑캐의 경계지역인 의무려산인지 이제 더 분명해진다.

「의산문답」이 철학, 과학, 정치사상에 관한 이론을 담은 책이라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막상 읽어보면 문학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에 놀라게 된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이 그야말로 이야기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치밀한 논증과 실험, 관측에 의해 객관적인 사실만 이야기하기보다 때론 빗대고 때론 과장 하는 방식 대문에 「의산문답」을 진지한 사상적 저서가 아니라 일종의 우화로 보는 경우도 있다.128) 이 경우엔 우화가 창조적이고 과장된 표현에 기초하므로, 삶을 반 성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정도의 의미부여에 그쳐야지 우화의 내용을 학술적 사실 과 이론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창조적인 표현과 체계적이고, 논증적인 표현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담론을 학술적 사실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은 엄 정하게 나누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창조적 표현이 학술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홍대용은 심오하고 놀라운 학술적 논의를 꼼꼼하게 증명하거나 체계적인 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난해하고 이론적인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유추 나 추론과 같은 논증에 의해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법은 학문에 대한 진정성 을 결여한 것이라 아니라 학문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이다.

128) 임종태, 「무한우주의 우화 - 홍대용의 과학과 문명론」, 역사비평 71, 역사문제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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