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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중심 우주론의 기원

우선 홍대용은 우주생성의 출발점에 太虛라는 氣의 본체를 둔다는 점에서 종래 의 유학에서 모든 사물의 운동변화, 만물형성의 기저에 陰陽의 원리가 작용한다고 보는 견해와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태허(太虛)는 본디 고요하고 비었으며, 가득히 차 있는 것은 기(氣)다.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데, 쌓인 기가 일렁거리고 엉켜 모 여서 형체를 이루며 허공(虛空)에 두루 퍼져서 돌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나니 곧 땅과 달과 해와 별이 이것이다.

대저 땅이란 그 바탕이 물과 흙이며, 그 모양은 둥근데 공계(空界)에 떠서 쉬 지 않고 돈다. 온갖 물(物)은 그 겉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다.93)

홍대용에게 있어 태허는 구체적인 만물이 형성되기 이전에 氣로만 가득 차 있는 태초의 우주공간을 말한다. 태허는 시간ㆍ공간적으로 무한한 존재로서 그 가운데 가득 차있던 氣가 일렁거리며 엉키고 모여서 비로소 형체를 이루며 공간에 두루 퍼져 돌아다니다가 처음에 이루어진 것이 바로 지구, 달, 별과 같은 天體들이란 것

92) “滿天星宿, 無非界也, 自星界觀之, 地界亦星也. 無量之界, 散處空界. 惟此地界, 巧居正中, 無有是理.” (洪 大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93) “太虛寥廓, 充塞者氣也, 無內無外, 無始無終, 積氣汪洋, 凝聚成質, 周布虛空, 旋轉停住, 所謂地月日星是 也. 夫地者, 水土之質也, 其體正圓, 旋轉不休, 渟浮空界, 萬物得以依附於其面也. (洪大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이다. 그중 땅은 水와 土로 이뤄진 것으로 그 모양은 둥근데 쉬지 않고 우주공간에 서 회전하고 있고 온갖 물들은 다 지구의 표면에 붙어서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과 땅은 氣로부터 형성되었으며 사람과 物의 생성은 바로 그 하늘과 땅에 근본 한다는 홍대용의 우주생성론의 구조를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주 자성리학의 우주생성론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張載(1020~1077)의 기 철학 우주론(太極-氣-萬物-太虛)의 구조와 닮은 모습을 보인다.

太虛에는 氣가 없을 수 없고 氣는 모여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으며, 만 물은 흩어져 다시 太虛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을 따라 나가고 들 어오고 하는 것은 모두 부득이한 것이다.94)

儒學에서 우주의 시작점을 太虛라는 氣의 본체에 둔 사람은 張載가 처음이다. 그 는 太虛卽氣라 명명하며 氣는 태허에서 생기고 모여서, 만물을 생성하며, 氣가 흩 어지면 함께 만물은 소멸하나 氣는 다시 太虛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太虛는 형체가 없는 氣의 본체다. 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변화하는 이 상의 모습일 뿐이다. 지극히 고요하여 느낌이 없는 것은 性의 근본이다. 아는 것과 깨닮음은 사물과 交感하는 하나의 느낌일 뿐이다. 느낌과 느낌이 없는 상태, 형상과 형상이 없는 상태는 오직 성(性)을 지극히 이룬 자 만이 한 가지 로 느낄 수 있다.95)

氣가 태허에 모이고 태허에서 흩어지는 것은, 마치 얼음이 물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것과 같으니, 태허가 곧 氣임을 알면 無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96)

氣의 흩어진 모습이 태허라는 것이다. 이때 태허로 나타난 氣는 존재의 속성을

94) “太虛不能無氣, 氣不能不聚而爲萬物, 萬物不能不散而爲太虛. 循是出入是陛不得以然也.” (張載 正蒙 , 「 太虛」)

95) “太虛無形氣, 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至靜無感 性之淵源. 有識有知 物交之客感爾. 客感客形與 無感無形, 惟盡性者一之.” (張載 正蒙 , 「太虛」)

96) “氣之聚散於太虛, 猶氷凝釋於水, 知太虛卽氣則無無.” (張載 正蒙 , 「太虛」)

가진다. 또 태허와 氣 는 존재형태상의 차이만 있을 뿐 물과 얼음처럼 얼거나 녹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따라서 우주간의 生滅은 있을 수 없고, 오직 一氣의 長存 만이 있다고 하였다. 즉 太虛는 無形의 영역에 속하지만 존재 이전의 혼돈상태나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라 천지를 감싸고 있는 무한한 공간이다. 이 太虛의 공간이 란 존재가 결여된 상태 혹은 아직 아무것도 형성되지 않은 先天이 아니라 연속적 존재인 氣의의 확산된 모습으로서 형체가 있는 個體的 氣로 이뤄진 만물과과 동시 적으로 존재하며 해체된 氣가 끝없이 거기에 환원되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97)

홍대용은 이처럼 太虛를 氣의 本體와 우주생성의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張載의 기철학적 견해를 수용하고 있다. 즉 종래 유학에서 설정했던 太極이라는 理의 위치 에 太虛라는 氣의 실체적 존재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氣에 실체성과 주재 능력을 부여하고 있는 氣中心的 경향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홍대용은 天體를 비롯한 우주만물을 형성하고 있는 기본요소에 氣와 그의 1차적 부산물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래서 하늘은 氣뿐이요 해는 불 뿐이며 땅은 물과 흙일 뿐임을 안다. 萬物 이란 기의 찌꺼기이고 불의 거푸집이며 땅의 군살인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조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느냐?98)

氣의 탁한 찌꺼기로 1차적 응결물질인 水ㆍ土를 말하고 있으며 불로써 쪼여서 운동을 가능케 하는 火의 에너지 원천을 거푸집으로 표현하고 있고, 땅의 군살로 땅위에 붙어 생겨나는 만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水ㆍ土의 氣로 응결된 물체는 火의 작용으로 生滅이 가능하며 그 원소들을 활성화시키는 단계의 원거리 작용에 비로소 하늘에 퍼져있는 太虛的 氣를 참여시키고 있는 것이다.

홍대용의 元素說은 重層的 의미를 가진다. 홍대용에게 있어서 氣는 우선 太虛를 이루고 있는 기본 질료로서 원초적 의미에서의 기본원소이고 日과 地는 氣의 기본 적인 응결체이기 때문이다.

97) 허남진, 「조선후기 기철학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13면 참조.

98) “是知天者氣而已. 日者火而已, 地者水土而已. 萬物者, 氣之粕糟, 火之陶鎔, 地之疣贅. 三者闕其一, 不成 造化, 復何疑乎.” (洪大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땅은 만물의 어미요, 해는 만물의 아비이며, 하늘은 만물의 할아버지다.99)

中層的 구조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태허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물질의 기본원소는 氣 하나뿐이며, 氣의 聚散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火ㆍ土ㆍ水이고 火는 태양의 빛과 열을 포함한 운동의 에너지원천으로 되고 土ㆍ水는 質을 이루어 있으며 火의 영향 으로 土ㆍ水로 이루어진 地가 만물을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火ㆍ土ㆍ水 모두가 氣 의 일차적 원소이며 물질구성의 기본원소가 되는 것이지 결코 氣와 더불어 병행하 여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氣는 火ㆍ土ㆍ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이 다. 즉 太虛의 큰 범위에서 조합과 분열을 계속하는 氣와 그 氣의 火ㆍ土ㆍ水의 종 합영향을 造化라고 한 것이다. 만물이 생성운동하여 수십억이 흘렀지만 태허의 氣 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우주팽창을 거듭하며 넓은 범위 내에서 지속적으 로 작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 2 )地圓說

홍대용의 三元素說의 관점에서 도출된 것이 바로 宇宙論이라 하겠다. 지구의 둥 근 모양과 자전으로부터 시작하여 宇宙無限論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천문학과 물리 학에 근접하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의산문답」의 허자와 실옹 간의 대화를 통해 서 그 논리를 구체화 시켰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 하였는데, 지금 부자는 ‘땅의 체(體)가 둥글다.’ 함은 무엇입니까?100)

曾子가 말하기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난다.’ 하였으나, 이것은 四角을 서 로 가리워낼 수 없는 것인데 그 말만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었다. 대개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난다는 것을 어떤 자는 천지의 덕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또 너도 옛사람이 전해 기록한 말을 믿는 것이 어찌 직접 목도하여 실증하기만

99) “地者萬物之母, 日者萬物之父, 天者萬物之祖也.” (洪大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100) “古人云天圓而地方, 今夫子言地體正圓何也?” (洪大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하겠느냐? 진실로 땅이 둥글다면 四隅ㆍ八角ㆍ六面이 모두 평면이고 변두리는 낭떨어지로 되어 마치 담이나 벽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가?101)

허자의 天圓地方에 대한 질문에 실옹은 지구는 둥글다(地圓說)고 하는 단순하지 만 당시로는 파격적인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허자로 대표되는 기존 학계의 전통적 인 우주관을 정면으로 해체한다. 아래서 받쳐 주는 물이 없으면 땅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진 것이란 허자의 오류를 지적한다. 허자는 전통적인 우주관인 天圓地方에 따 라 직육면체 모양의 땅이 물 위에 떠 있는 우주의 모습을 생각했었고, 또한 땅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위에 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天圓地方의 상하개념, 즉 사람이 땅위에 거꾸로 서 있을 수 없고 추락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개념이었다. 만유인력 개념이 없을 때였지만 홍대용은 땅의 상공에 서 땅 위를 향하여 작용하는 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떨어진다는 것은 지구의 상 공에서 땅 위에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地가 球라면 그것은 自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홍대용 이론의 또 한 가지 논리였다. 홍대용은 地圓說에 대해 서 아래와 같이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온갖 물의 형체가 다 둥글고 모난 것이 없는데 하물며 땅이랴!102)

이것은 다른 사물의 형체를 통한 단순한 유비추리로서, 논리가 그렇게 과학적이 라고는 할 수는 없다.

심하다. 너의 둔함이여! 온갖 물의 형체가 다 둥글고 모난 것이 없는데 하 물며 땅이랴!

달이 해를 가리울 때는 日蝕이 되는데 가리워진 體가 반드시 둥근 것은 달의 체가 둥근 때문이며, 땅이 해를 가리울 때 月蝕이 되는데 가리워진 체가 또한 둥근 것은 땅의 체가 둥글기 때문이다. 그러니 월식은 땅이 거울이다. 월식을 보고도 땅이 둥근 줄을 모른다면 이것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그 얼

101) “曾子有言曰, 天圓而地方, 是四角之不相掩也, 此其言有自來矣. 夫天圓而地方者. 或言其德也, 且爾與其 信古人傳記之言, 豈若從現前目訂之實境也? 苟地之方也, 四隅八角六面均平, 邊際阧絶, 如立墻壁?” (洪大 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102) “萬物之成形, 有圓而無方, 况於地乎!” (洪大容, 湛軒書 內集 卷4, 「毉山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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