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학습활동
<한국의 고전작가와 작품세계 4>
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담당교수 : 하정승
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선죽교에서의 죽음으 로 고려 왕조의 마지막을 지킨 만고의 충신으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얼마 전 남북 교류의 하나로 시 작됐던 일반인의 북한 여행에서 개성관광이 인기를 끌었는데, 개성 여행에 참가하면 선죽교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숭양서 원(崧陽書院)을 방문한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포은을 높게 평가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 정몽주는 정치가, 학자, 문인으로서 도 모두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혁혁한 족적을 남겼다.정치가로서의 포은은 고려말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웠던 조정 을 지켜가면서 복잡하게 얽힌 정계를 이끌었다. 학자로서의 포 은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계승자로 고려말 성리학의 확립 과 전개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인으로서의 포 은은 뛰어난 여러 편의 시와 문장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당대 문단의 핵심적인 인물들과 교유를 나누고 주목할 만한 문학 활 동을 하여 한국문학사에서 고려말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 고 있다.
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정몽주는 문신이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전쟁에 참여하였다. 대체로 여진이나 왜구와의 전쟁이었다.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면, 1363년(공민왕 12) 포은 나이 27세 되던 해에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 指揮使) 한방신(韓方信)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화주 (和州)에서 여진과 전투를 벌인 것이 첫 출정이었다.
그 후 1380년(우왕 6) 44세에 조전원수(助戰元帥)의 직 책으로 이성계를 따라 전라도 운봉에서 왜구와 전투 를 벌여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1383년(우왕 9) 47 세 때에는 동북면조전원수(東北面助戰元帥)가 되어 다시 이성계를 따라 여진 정벌전투에 참여하였다.
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전쟁에 참여하거나 또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 더라도 전장(戰場)의 풍경과 정서를 읊는 시를 한시사 에서는 보통 ‘변새시(邊塞詩)’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고적(高適)이나 잠삼(岑參) 같은 이가 변새 시로서 유명한 시인들인데, 변새시에는 대체로 변방의 쓸쓸함과 고즈넉함, 고독감과 처량함 등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에 소개할 포은의 시 역시 이같 은 변새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지난해에 바닷가에서 말에게 물 먹이고
올해엔 함주 객사에서 한가위를 맞이하네
산천이 아득한 곳 풀과 나무 시들고
밝은 달은 하늘에 가득하고 맑은 경치 흐르는데
모랫벌 위의 뭇 장막은 고요히 말 없건만
사방에서 변성(邊聲)이 일어나 시름짓게 하는구나
장군은 털장막 높은 곳에 홀로 누워있고
장사는 차가운 쇠갑옷 입고 슬피 노래하는데
장막 앞의 서생은 잠도 자지 못하고
적막한 깊은 밤에 그림자만 조문하네
쓸쓸히 일어나서 서남쪽을 바라보니
뜬 구름만 하늘을 가로질러 철령에 잇닿았네
봄바람에 돌아갈 계책 또다시 틀렸구나
부소산 앞에는 마른 잎만 날리고
오늘밤의 한가위 달은 지난해의 달인데
지난해의 나그네는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였네
뜰 안은 쓸쓸하여 귀뚜라미 울어대고
부엌은 냉냉하여 아이종 굶주리네
어제 아침 아우가 편지 보내 왔는데
백발의 노모께서 보고 싶어 하시면서
부귀와 공명은 너의 일이 아닌데
해마다 객지살이 언제야 그치겠냐
내년에는 또 어디에서 밝은 달을 맞이할지
남창 가에 홀로 앉아 시를 읊조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