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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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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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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학습활동

<한국의 고전작가와 작품세계 4>

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담당교수 : 하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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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선죽교에서의 죽음으 로 고려 왕조의 마지막을 지킨 만고의 충신으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얼마 전 남북 교류의 하나로 시 작됐던 일반인의 북한 여행에서 개성관광이 인기를 끌었는데, 개성 여행에 참가하면 선죽교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숭양서 원(崧陽書院)을 방문한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포은을 높게 평가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 정몽주는 정치가, 학자, 문인으로서 도 모두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혁혁한 족적을 남겼다.

정치가로서의 포은은 고려말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웠던 조정 을 지켜가면서 복잡하게 얽힌 정계를 이끌었다. 학자로서의 포 은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계승자로 고려말 성리학의 확립 과 전개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인으로서의 포 은은 뛰어난 여러 편의 시와 문장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당대 문단의 핵심적인 인물들과 교유를 나누고 주목할 만한 문학 활 동을 하여 한국문학사에서 고려말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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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정몽주는 문신이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전쟁에 참여하였다. 대체로 여진이나 왜구와의 전쟁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면, 1363년(공민왕 12) 포은 나이 27세 되던 해에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 指揮使) 한방신(韓方信)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화주 (和州)에서 여진과 전투를 벌인 것이 첫 출정이었다.

그 후 1380년(우왕 6) 44세에 조전원수(助戰元帥)의 직 책으로 이성계를 따라 전라도 운봉에서 왜구와 전투 를 벌여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1383년(우왕 9) 47 세 때에는 동북면조전원수(東北面助戰元帥)가 되어 다시 이성계를 따라 여진 정벌전투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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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전쟁에 참여하거나 또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 더라도 전장(戰場)의 풍경과 정서를 읊는 시를 한시사 에서는 보통 ‘변새시(邊塞詩)’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고적(高適)이나 잠삼(岑參) 같은 이가 변새 시로서 유명한 시인들인데, 변새시에는 대체로 변방의 쓸쓸함과 고즈넉함, 고독감과 처량함 등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에 소개할 포은의 시 역시 이같 은 변새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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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지난해에 바닷가에서 말에게 물 먹이고

올해엔 함주 객사에서 한가위를 맞이하네

산천이 아득한 곳 풀과 나무 시들고

밝은 달은 하늘에 가득하고 맑은 경치 흐르는데

모랫벌 위의 뭇 장막은 고요히 말 없건만

사방에서 변성(邊聲)이 일어나 시름짓게 하는구나

장군은 털장막 높은 곳에 홀로 누워있고

장사는 차가운 쇠갑옷 입고 슬피 노래하는데

장막 앞의 서생은 잠도 자지 못하고

적막한 깊은 밤에 그림자만 조문하네

쓸쓸히 일어나서 서남쪽을 바라보니

뜬 구름만 하늘을 가로질러 철령에 잇닿았네

봄바람에 돌아갈 계책 또다시 틀렸구나

부소산 앞에는 마른 잎만 날리고

오늘밤의 한가위 달은 지난해의 달인데

지난해의 나그네는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였네

뜰 안은 쓸쓸하여 귀뚜라미 울어대고

부엌은 냉냉하여 아이종 굶주리네

어제 아침 아우가 편지 보내 왔는데

백발의 노모께서 보고 싶어 하시면서

부귀와 공명은 너의 일이 아닌데

해마다 객지살이 언제야 그치겠냐

내년에는 또 어디에서 밝은 달을 맞이할지

남창 가에 홀로 앉아 시를 읊조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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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去年飮馬滄海頭 咸州客舍遇中秋

山川迢迢草木落 明月滿天淸景流

平沙萬幕寂無語 邊聲四起令人愁

將軍獨臥氈帳高 壯士悲歌鐵衣冷

帳前書生亦不眠 寂寞夜深相弔影

悄然興望望西南 浮雲橫空連鐵嶺

春風歸來計又非 扶蘇山前黃葉飛

今夜中秋去年月 去年客子猶未歸

庭除蕭索蟋蟀語 廚竈凄凉童僕飢

前朝舍弟附書至 白髮慈親願見之

功名富貴非汝事 客路年年有底期

明年何處逢明月 獨坐南窓自詠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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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인용시는 1364년(공민왕 13) 8월 한가위에 咸州(지금 의 함경도 함흥)의 객사에서 보름달을 바라보며 지은 작품이다. 포은은 그 전년도인 1363년에 한방신의 종 사관으로 화주에서 여진을 정벌하는 전쟁에 참여하였 고, 이 해 2월에는 한방신․이성계 등과 함께 여진의 삼 선(三善)․삼개(三介)와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문집의 연보나 행장에는 여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의 1364년 행적은 자세하지 않으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포은은 화주에서 한방신의 종사관으로 있었던 것처럼 함주에서도 어느 장군의 종사관 정도로 참여하고 있 었던 듯하다. 함주 역시 화주와 마찬가지로 여진과 대 치하고 있는 변방의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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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제 3구에서 6구까지는 마치 쥐 죽은듯이 고요한 전장의 막 사를 그리고 있다. 풍요롭고 따뜻한 보름달이 천지를 환하 게 비추고 있지만, 막사는 그저 고요하기만하다. 가끔씩 들 려오는 변방의 여러 소리들이 무서운 정적을 깨뜨릴 뿐이 다. 시인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을 이루지 못 한다. 제 10구 “적막한 깊은 밤에 그림자만 조문하네”는 늦 은 밤에까지 홀로 깨어있는 시인의 고독과 자의식을 단적 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아무리해도 잠들지 못하자 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남쪽의 하늘을 바라본다. 서남쪽의 하 늘은 그립고 보고 싶은 가족이 있는 곳이다. 오늘 바라보는 저 보름달은 분명 작년의 그 달이지만, 시인은 변방의 전장 에 있은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있다. 서남쪽 하늘에는 구름이 철령까지 잇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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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삶과 문학

제 13구 이하로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 리움을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아우가 보내온 편지를 읽으면서 사무친 그리움을 눈물로 달랜다. 그리고 남 창 가에 홀로 앉아 시를 읊조리면서 내년에는 저 달을 고향에서 바라보는 꿈을 꾼다. 이 시는 여러 편의 포은 시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종군시(從軍詩)요 변새 시(邊塞詩)라고 할 수 있다. 변새시에 등장하는 일반적 인 의경(意境)인 전장의 황량함과 쓸쓸함, 고즈넉함, 처절한 외로움, 알 수 없는 비애감, 그리움 등이 이 시 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있으니 변새시의 전형이라고 보 아도 좋다. 특히 한가위의 보름달을 서두에서부터 말 미까지 계속해서 등장시켜 시의(詩意)를 진술하는 매 개체로 삼고 있는 솜씨 또한 매우 뛰어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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