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읽는 고전작품
<한국의 고전작가와 작품세계 8>
김삿갓의 삶과 문학 담당교수 : 하정승
김삿갓 별칭:‘김립’
본명: 김병연(金炳淵, 1807-1863).
출신 가문: 안동김씨.
삿갓을 쓴 경위: 김삿갓은 1811년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났을 때 그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선 천부사(宣川府使)로 있으면서 반군에게 항복 한 일로 일가가 멸족의 화를 당하게 되었다. 그 때 나이 겨우 여섯 살이던 어린 김병연은 황해 도 곡산을 거쳐 강원도 영월 등지로 피신하였 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이후 20대가 되어서는 삿갓을 쓰고 평생동 안 계속되었던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처 음에는 아마도 죄인의 후예라는 꼬리표를 달고는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어 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었겠지만, 후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 수록 그는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아다니 는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고 점점 편해진 것 이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 더구나 그는 그냥 단순히 떠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시를 남기는 시인이었 다. 말하자면 시인으로서 살아가되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 유랑의 삶의 방식을 택 했을 뿐이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 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이 다. 더구나 시인이라면 어쩐지 세속의 부귀, 권력, 명예 등에 집착해서는 안될 것 같다.
어디든 머무르고 싶으면 머물렀다가 떠나 고 싶으면 아무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삶이 시인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삶 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김삿갓 이야말로 시인으로서의 본령에 가장 충실 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그러고 보니 동서고금의 문학사에서 훌륭 한 시인은 대개가 가난했고 나그네, 떠돌이 의 삶을 살다갔다. 당나라의 이백이 그랬고 두보가 그랬으며 맹호연, 맹교 모두 그러했 다. 어디 그뿐인가? 신라의 최치원은 중국 에서 귀국한 뒤 좌절의 아픔을 겪고 전국을 방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본격적인 삶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는 조 선시대의 김시습도 마찬가지이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중국이나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세유럽의 시인하면 떠오르는 음유시인들 역시 대개 는 방랑시인이었다. 이제 살펴볼 시는 김삿 갓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작품 중 하나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허름한 송반에 죽 한 그릇
그곳에 하늘과 구름 그림자가 비쳐있다
주인은 아무 말없이 무안해 하지만
멀건 죽에 거꾸로 비쳐오는 청산을 나는 사 랑한다오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김삿갓의 삶과 문학
시의 내용으로 보아 이곳저곳을 떠돌던 김삿갓이 어 느 가난한 농촌 마을의 한 집으로 들어가 구걸을 하 자 집주인이 허름한 소반에 죽 한 그릇을 담아 내온 것 같다. 달리 먹을 것이 없었던 집주인은 손님 대접 을 제대로 못 한 것에 대해 차마 말도 못하고 무안해 한다. 하지만 멀건 죽 그릇에 비친 하늘과 구름 그림 자를 보고, 김삿갓은 짠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그 래서 시인은 “멀건 죽에 거꾸로 비쳐오는 청산을 나는 사랑한다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김삿갓은 때로는 당대의 거들먹거리는 못난 양 반들을 풍자하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가난하고 착 한 민초들에게는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김삿갓의 삶과 문학
시인이 시의 제목을 ‘무제(無題)’라고 한 것도 의도 가 있어 보인다. 이 시는 어떤 제목으로 한정하기에 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죽 한 그릇 얻어먹는 사람이나 내주는 사람이나 모 두가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집 주인은 참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김삿갓에게 죽을 내주고 나면 어쩌면 제 먹을 것도 없었을지 모 른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무안해 한다. 김삿갓이 허름한 시골 소반에 앉아 먹었던 죽 그릇에는 하늘과 구름과 청산이 담겨 있었다. 그 하 늘과 구름과 청산의 다른 이름은 바로 정이요, 사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