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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의 근대적 글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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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여성의 근대적 글쓰기

– 󰡔여자계󰡕의 여성담론을 중심으로 –

31)

이 혜 진*

❙국문초록❙

이 글의 목적은

최초의 여성지

로 평가받는 󰡔여자계

(

女子界

)

󰡕 여성 담론에 나타난 여성 글쓰기의 특징을 살 피는 것이다

. 1917

년 일본 동경

(

東京

)

에서 재일

(

在日

)

조선인 여자 유학생 집단에 의해 편집 발행된 󰡔여자계󰡕

는 여성 자신이 편집과 발행을 주도한 잡지였다

.

본고는 우선 일본 여자 유학생들이 잡지를 발행한 과정에 주 목한다

.

여성필자가

남성과 동등한 위치

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은

글쓰기

에 대한 여성 지식인의 의식을 살필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잡지 발행 과정에서 여성필자가 지향한 문체가 무엇이 었는지 살핌으로써 잡지의 발간 목적과 문체를 선택한 여성필자의 정체성을 고찰할 수 있다

.

다음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여자계󰡕 여성담론에 나타난 글쓰기의 특징을 분석했다

.

일본 여자 유학생들은

󰡔여자계󰡕 지면을 통해 여성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며 당대 여성 사회를 반영하는 담론을 펼쳤다

.

여성필자들은 스스로를

글쓰기의 주체

이자

지식인

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 ‘

조선 여성

이라는 정체성은 버리지 않았다

. ‘

여성

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여성문제 인식은 이와 관련된 다양한 상황을 서술할 때 구 어체 문장과 내면적 심리묘사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

이러한 여성 담론에 나타난 글쓰기의 특징은 여성필자의 창작 소설에서도 재현된다

.

당대 여자 유학생들은 자신의 내면 의식을 문학 작품에 투영함으로써

,

여성의 갈등 과 좌절을 묘사하고 자아실현의 모색 과정을 드러냈다

.

본고에서는 여성 글쓰기에 나타난 문체의 특징을 통해 여성 글쓰기의 의미와 여성 문학의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

이러한 작업을 통해

최초의 여성지

로 평가받는

󰡔여자계󰡕가 지닌 문학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

주제어

]

󰡔여자계󰡕

,

일본 여자 유학생

,

신여성

,

근대적 글쓰기

,

국한문체

,

구어체

,

비유

,

감정적 표현

❙목 차❙

.

머리말

.

󰡔여자계󰡕와 글쓰기 주체로서의 여성

.

공감의 글쓰기:언

(

)

과 문

(

)

의 일치

.

여성담론의 소설적 재현

.

맺음말

* 연세대학교 강사 / tn_nt@hanmail.net

(2)

Ⅰ. 머리말

본 논문은

1917

년 일본 동경

(

東京

)

에서 재일

(

在日

)

조선인 여자 유학생 집단에 의해 편집 발행된 󰡔여자계

(

女子界

)

󰡕를 통하여 당시 최고의 여성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재일본 조선인 여자 유학생들이 펼친 글쓰기 의 면모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 1910

년대 일본에 건너간 여자 유학생들은 신지식을 배워

무인격한 동물

과도 같은 생활을 하는 조선의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을 선도하는 역할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식했 다

.

그들은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여자계󰡕라는 잡지를 발행하였고

,

사회적 차원에서의 다양한 여성문제를 잡지 안에 담아냈다

.

이전까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장

(

)

이 없었던 상황 속에 서 󰡔여자계󰡕의 등장은 여성 자신이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최초의 장을 마련했다 는 의의를 지닌다

.

본 논문에서 󰡔여자계󰡕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자계󰡕가 여성 자신이 편집과 발행을 주도한 최초의 여성지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

다양한 여성필자의 글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여자계󰡕에 대한 선행 연구는 유학생의 신여성 담론 연구1)나 여성 정체성의 변화 과정2)을 고찰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잡지의 담론을 주도했던 남성필자의 글에 집중하거나

,

잡지의 내용분석에 치우쳤기 때문에 여성필자가 󰡔여자계󰡕를 통해 펼친 글쓰기의 긍정적 측면들 을 소홀하게 다루는 결과를 초래했다

.

󰡔여자계󰡕에 게재된 여성필자의 글에 대한 연구도 나혜석

,

김명순 등 특정 개인에 대한 연구3)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잡지에 게재된 여성필자의 담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

최근 󰡔여자계󰡕 여성필자의 글쓰기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김영민의 논 문을 들 수 있다

.

4) 김영민은 유학생 잡지사 안에서 󰡔여자계󰡕가 한글체 소설의 개척과 정착에 기여한 바를

나혜석

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

지금까지 잡지의 내용분석에 치우쳤던 연구의 논점을 문체로 확 대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

여성필자의 글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여자계󰡕 여성 담론의 특징을 살펴볼 수 없다

.

따라서 본고는 이러한 선행연구를 토대로 󰡔여자계󰡕 여성필자의 글쓰기 전반 에 나타난 종합적인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

󰡔여자계󰡕 안에서 여성들 스스로

글쓰기

를 통해 어떠한 정체성의 변화과정을 겪었는지 세밀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문체도 살펴봐야 한다

.

5) 일본 여자 유학생들은 다양한 타자 안에서 자신의

1)이옥진, 「여성잡지를 통해 본 여권신장: 1906년부터 1929년까지를 중심으로」, 이화여대 석사논문, 1980; 박정애, 「1910~

1920년대 초반 여자일본유학생 연구」, 숙명여대 석사논문, 1999; 구명숙, 「󰡔女子界󰡕를 통해 본 신여성 담론과 詩」, 󰡔여성문 학연구󰡕 4, 한국여성문학학회, 2000, 53~75쪽; 이상경, 「여성의 근대적 자기표현의 역사와 의의」, 󰡔한국근대여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35~73쪽; 조윤정, 「유학생의 글쓰기, 사상의 오독과 감정의 발현: 잡지 󰡔女子界󰡕를 중심으로」, 󰡔大東文化硏 究󰡕 73,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1, 397~442쪽.

2)오태호, 「한국 최초의 여성잡지 󰡔여자계󰡕에 대한 일 고찰」, 󰡔慶熙語文學󰡕 21, 경희대학교, 2001, 143~154쪽; 소영현, 「젠더 정체성의 정치학과 ‘근대/여성’ 담론의 기원」, 󰡔여성문학연구󰡕 16, 한국여성문학학회, 2000, 121~148쪽; 박선미, 󰡔근대 여성, 제국을 거쳐 조선으로 회유하다󰡕, 창비, 2007.

3)이미화, 「나혜석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연구: 「경희」를 중심으로」, 부경대 석사논문, 2003; 이송희, 「신여성 羅蕙錫의 민족 의식과 민족운동」, 󰡔여성연구논집󰡕 17, 신라대학교 여성문제연구소, 2006, 171~198쪽; 양문규, 「1910년대 나혜석 문학의 또 다른 근대성」, 󰡔근대계몽기 문학의 재인식󰡕, 소명출판, 2007, 246~268쪽.

4)김영민, 「근대 유학생 잡지의 문체와 한글체 소설의 형성 과정」, 󰡔현대문학의 연구󰡕 41, 한국문학연구학회, 2010, 39~69.

(3)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면서 균열을 일으킨다

.

이것은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에서 기인한다

. ‘

교 육자

의 입장에서 무지한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

,

즉 끊임없이 조선의 구여성과 자신을 분리하고 싶어 하는 신 여성의 욕망은 감성적으로

조선의 여성

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당대 여성들의 정체성과 만나면서 균열을 일으킨다

.

이러한 균열을 살피는 과정은 여자 유학생들의 글쓰기가 지닌 의미와 한계를 확인할 수 있 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당대 여성 지식인들이 어떤 문체를 택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여성필자들의 정체성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

잡지에 게재된 글의 내용과 문체를 동시에 살펴야 󰡔여자계󰡕가 지닌 문 학사적 의미를 제대로 고찰하고

,

여성들의 글쓰기가 당대 글쓰기에 미친 영향을 오롯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 이다

.

아울러 이러한 여성필자의 글쓰기가 소설에 끼친 영향관계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

여성 문학의 의의를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

Ⅱ. 󰡔여자계󰡕와 글쓰기 주체로서의 여성

󰡔여자계󰡕는

1917

6

월 말에 활판본으로 창간되어

,

6)

1927

1

󰡔女子界󰡕 第四號

”[

이후 󰡔여자계󰡕 속간 호

(

續刊號

)

라고 칭함

]

를 끝으로 계속 발간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

7)

2

호는

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

(

東京 女子留學生親睦會

)’

를 중심으로

1918

3

월에 발행되었으며

,

편집 겸 발행인은 김덕성

,

편집부원은 허영숙

,

황애시덕

,

나혜석

,

편집찬조는 전영택

,

이광수가 맡았다

.

3

호는

1918

9

월 발행되었으며 편집 겸 발행인 은 황애시덕이 맡았다

.

8)

4

호는

1920

3

,

5

호는

1920

6

,

6

호는

1921

1

월에 발행되었으며 편집 겸 발행인은 모두 유영준

(

劉英俊

)

으로 올라 있다

.

7

호는 현재 소재를 확인할 수 없으나 󰡔학지광󰡕 제

22

호 광고란을 통해 그 목차를 확인할 수 있으며

,

9)

1923

4

10

일자 󰡔매일신보

(

每日申報

)

󰡕에 실린 글을 통해 재정곤란과

여자학흥회

(

女子學興會

)’

의 활동정체 때문에 제

7

호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되지 못했음을 확

5)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필자는 앞서 「󰡔여자계󰡕 연구: 여성필자의 근대적 글쓰기를 중심으로」(연세대 석사논문, 2008)를 집필 했다. 본 연구는 󰡔여자계󰡕 여성 담론에 나타난 여성문제 인식과 서간체 글쓰기의 특징을 다룬 필자의 논문에서 ‘문체’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글쓰기 주체로서 여성필자의 정체성이 글쓰기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밝히고자 했다.

6)기존 연구에서는 󰡔여자계󰡕의 창간호가 ‘1917년 춘기 등사판’과 ‘1917년 6월 말일 활판’ 두 판본이라고 주장한다. 이 연구들은 단순히 󰡔학지광󰡕 제13호에 실린 등사판과 활판에 대한 기사만을 근거로 창간호의 판본이 두 가지임을 제시했다. 그러나 본 연구자는 1920년에 동경에서 ‘女子界 第五週年 記念式’을 했다는 기사(「女子界紀念會」, 󰡔동아일보󰡕 1920년 4월 13일, 3면) 를 바탕으로 󰡔여자계󰡕 창간호가 ‘1915년 봄에 등사판으로 발표된 소식지 형태의 출판물’과 ‘일본 당국의 인가를 받아 활판으 로 만들고 계몽성을 띈 잡지의 형태로 발간된 1917년 6월 판본’ 두 가지임을 밝혔다(앞의 논문, 11~16쪽 참고).

7) 1927년 발행된 󰡔여자계󰡕 목차를 살펴보면 “󰡔女子界󰡕 第四號 目次”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전까지 잡지가 간행된 것을 참고한 다면 ‘제8호’ 이상이 되어야 한다. 편집자가 어떠한 의도로 ‘제4호’라고 표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잡지내용 앞뒤에 광고 를 싣고 있는데, 상단에는 모두 “祝女子界續刊”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앞서 발간된 잡지에 이어 󰡔여자계󰡕가 속간되 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8)황애시덕이 편집 겸 발행인을 맡은 것은 김덕성과 나혜석, 허영숙이 1918년 3월에 졸업하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김덕성, 나 혜석, 허영숙의 졸업과 그 후 활동에 대한 기사는 󰡔여자계󰡕 제2호 「謹祝卒業」과 󰡔여자계󰡕 제3호 「消息」란(欄)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9) 󰡔학지광󰡕 제22호, 1921년 6월, 104쪽.

(4)

인할 수 있다

.

10)

󰡔여자계󰡕는 여성들의 손으로 잡지를 발간하면서

,

초기에는 󰡔학지광󰡕 등의 매체를 통해 잡지 경영의 경험 이 있는 전영택

,

이광수 등 남성필자의 도움을 받았다

.

특히 잡지 경영에 필요한 자금 문제와 원고 수집 문제 는 이들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

이후 󰡔여자계󰡕는 제

4

호를 시작으로 여자유학생만을 중심으로 한 발간을 시도한다

.

이들이 독립경영을 시도한 것은

文明의 바람이 우리의 낫츨 슷침으로 비로소 눈을 보니 벌서 남들은 여서 同等權

,

參政權을 찻노라고 애를 씀니다

.

우리는 이러한 自覺과 自任을 가지고 우리의 남자社會에서 負擔할 우리의 重荷를 萬分之一이라도 난호야 되겟다는 决心

11) 때문이었다

.

여자유학생들만 으로 󰡔여자계󰡕를 경영하게 되면서

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

는 친목회원 중에서 특별히 󰡔여자계󰡕를 헌신적으로 응원하자는 목적으로 학흥회

(

學興會

)

를 조직하게 된다

.

12) 이후 유영준을 중심으로 잡지의 발간이 진행되고

,

여자학흥회

가 여자유학생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

󰡔여자계󰡕 제

2

호부터 속간호까지의 주요작품 목록을 중심으로 필자의 성별에 따라 잡지에 게재된 작품의 수를 나누어보면 남성들의 원고가 적지 않은 지면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

이것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여자계󰡕의 편집 및 발행에 남성들의 참여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

그러나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남성 과 동등한 위치

에서 여성들이 글쓰기를 시도한 것은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

전통적으로 언어와 문자의 권 위는 완전히 남성에게 귀속된 것이었으며

,

여성들의 글쓰기와 문학 창작은 공식적으로 권고되지 않는 영역

이었다

.

13) 유교적 이념 안에서 여성의 공적인 사회 활동은 제한되었으며

,

문자 교육도

남성의 보조자 역할 을 충실히 수행

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락되었다

.

여성들에게 글쓰기는 친정이나 시집에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일상적인 범위 내에서 허용되었으며

,

그들의 글은 가족이나 친족이라는 사적인 범위 내에서 유통되는 제한적인 형태를 띠었다

.

14)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적은 지면이지만 여성필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가고

,

이전까지는 없었던

남성과 동등한 위치

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성의 글쓰기 공간을 확 보한 것

,

󰡔여자계󰡕 발행을 주도한 것은 여성 스스로가

남성

과 동등한

사람

이 되기 위한 움직임의 하나였다

.

특히 󰡔여자계󰡕 제

3

호에 실린 현상모집 광고는 여성들이 어떠한 목적으로 잡지 발행을 주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10) “동경에 유학하 됴션녀학들의 경영으로 삼사년 전부터 녀자게(女子界)란 잡지(雜誌)를 발하야 오든바 다시 됴션녀자 유학학흥회(朝鮮女子留學生學興會)를 조직하고 학업의 진흥과 학간의 친목을 도모으로셔 목뎍을 삼고 그 회의 긔관 잡지(機關雜誌)로 󰡔녀자계󰡕를 월 발하기로 하얏다 지금지 발호수가 뎨칠호(第七號)에 이르며 그 후로 졍곤란 으로 일시 중지된 모양인대(생략)”(󰡔매일신보󰡕, 1923년 4월 10일, 3면).

11) 「여러분」, 󰡔여자계󰡕 제4호, 1920년 3월, 69쪽.

12) 「消息」, 󰡔여자계󰡕 제4호, 1920년 3월, 68쪽. <여자학흥회>는 회장 유영준, 부회장 현덕신, 총무 김숙경(金淑卿), 서기 송복 신(宋福信), 동(同) 한소제(韓小濟), 회계 박경희(朴敬喜), 동(同) 황신덕, 검사(檢查) 이선행(李善行)이 주요 임원으로 구성 된다. 잡지에는 ‘劉英傳’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는 ‘劉英俊’의 오자(誤字)이다.

13) 홍인숙, 「근대계몽기 女性談論 硏究」, 이화여대 박사논문, 2007.

14) 박혜숙·최경희·박희병, 「한국여성의 자기서사(1)」, 󰡔여성문학연구󰡕 7, 한국여성문학학회, 2002, 333~340쪽; 박애경, 󰡔한 국 고전시가의 근대적 변전과정 연구󰡕, 소명출판, 2008, 200~221쪽; 김경연, 「근대문학의 제도화와 여성의 읽고 쓰기: 󰡔신 여성󰡕을 중심으로」, 󰡔코기토󰡕 67,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09, 103~106쪽.

(5)

本誌에서 이 懸賞을 募集하는 거슨

,

論文에 이서々는

,

只今 우리 女子界에 解決하야만 할 問題가 만히 잇는 바

,

널리 그 意見을 求하기 爲하며

,

應募者를 女子에 限한 거슨 女子가 스사로 女子界 問題를 생각하 며 硏究하기를 獎勵하기 爲함이외다

.

美文에 이서는

,

作文을 發表할 機會가 업는 우리 女學生에게 文章을 獎勵하리라는 이외다

.15)

󰡔여자계󰡕 편집위원들은 현상모집을 통하여 󰡔여자계󰡕의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

여학생들에게 여성문제 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

여성들의 안정적인 글쓰기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

16)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은

,

자신을 근대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 ‘

글쓰기의 주체

라고 인식할 수 있는 밑바 탕이 되었다

.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여자계󰡕 여성필자들은 당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여성담론을 펼쳤다

.

󰡔여자계󰡕에 수록된 여성 담론을 살펴보면

,

유교적이고 봉건적인

현모

(

賢母

)’

의 삶을 비판하고

근대적 현 모양처

를 주장한 글

,

17) 여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글

,

교육받은 여성의 역할에 대해 조선 여성을 계몽시 킬

교육자

로서 호명하고

,

그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글

,

문명한 여성의 겉모습만 모방하느라

현모양처

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신여성

을 비판하는 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여자계󰡕 여성필자들은 이러한 담론을 전개하면서 다양한 타자를 내세우고

,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 했다

.

18) 그들은 스스로를

남성

과 동등한 사람으로서 위치지우고

,

자유와 평등을 획득한

문명국 여성

처럼 되고 싶어 했다

.

이것은 조선의 무 지한 여성들과

신여성

을 구별하여 그들의

교육자

로서 자신을 위치하게 했으며

,

사치에 물들어

근대적 현모 양처

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신여성

과 구별 짓는 목소리를 갖게 했다

. ‘

남성

과 같은 공간에서 조선의 무지한 여성들을 향해 다양한 담론을 펼친 여성필자들은 스스로를

지식인

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사고하도록 만들었 다

.

19) 이러한 정체성은 문체선택에도 영향을 주었다

.

15) 「懸賞募集」, 󰡔여자계󰡕 제3호, 1918년 9월, 64쪽. 앞으로 모든 인용문에서 표기와 맞춤법은 원문 그대로 따르지만,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하여 띄어쓰기는 현대식으로 고쳐 인용할 것임을 밝혀둔다.

16) 󰡔여자계󰡕의 현상모집은 초기부터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창간호는 확인할 수 없으나 󰡔여자계󰡕 제2호 「投稿에 대하야」에는

“本誌의 編輯上 關係로 本社에서 부탁드린 이의게 限하야 寄稿를 밧기로 합니다. (讀者欄은 此限에 不在)”이라는 문구가 실려 있다. 즉, 잡지사에서 원고를 부탁한 사람이 아니어도 글을 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침은 󰡔여자계󰡕 제5호까 지 그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지면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이 모집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여자계󰡕에는 ‘독자란’이 실려 있지 않다.

17) 박선미는 여자유학생들이 여성의 성역할론을 전개해 현모양처라는 근대적 젠더규범을 보급시킨 과정을 분석한다. 그는 1890년대 ‘노예’ 상태의 여성을 ‘해방’하는 근대적 담론으로 도입된 ‘어머니·아내론’이 20세기에 들어와 국가·사회에서 여 성의 위상을 더욱 명확히 한 ‘국민의 어머니론’으로 전개되었고, 또한 1920, 1930년대의 일제시기에는 ‘민족[개량]의 어머니 론’으로 여성의 영역을 확장·비대화하고자 했다고 파악한다(박선미, 앞의 책, 183~229쪽). 이러한 연구는 ‘현모양처론’이 시대별로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겪었으며,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해 나갔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서 의미가 있다.

18) 개인 또는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자의 발견은 필수적이다. 주체는 다른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타자 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이 타자를 향하는 시선에 의해 정체성을 구성한다. 이것은 라캉이 말하는 ‘타자에게 인정받 기를 원하는 욕망’을 스스로에게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자크 라캉, 민승기·이미선· 권택영 옮김, 󰡔욕망이론󰡕, 문예출판사, 2004). 여성의 권리, 여성의 역할 등을 주장하는 󰡔여자계󰡕 안에서도 다양한 타자의 발견을 통한 여성 주체의 형성이 이루어진다.

19) 김영민은 󰡔여자계󰡕에 실린 한글 기사와 소설에 주목하여, 잡지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여자계󰡕가 여성을 위한 잡지이기 는 했지만 유학생 잡지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지식인 잡지였기 때문에 ‘여성’의 문자인 ‘한글’보다는 ‘지식인’의 문자인

(6)

󰡔여자계󰡕에 실린 대부분의 글을 살펴보면

한자

(

漢字

)’

20)를 포함하고 있다

.

근대시기 한문체

,

국한문체

,

국 문체의 분류 속에서 하나의 문체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의 선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

.

한문과 한글의 계층적 위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

한자는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

특히 문장 안에서 한자를 노출하는 것은 당대 유학생들에게 익숙한 문체였다

.

21)당시 󰡔여자계󰡕와 긴밀한 관계22)를 유지했던 󰡔학지광󰡕

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학생 잡지들이 다양한 형태의 국한문체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

일본 여자 유학생들에 게도 국한문체는 익숙한 지식인 유학생의 문체였을 것이다

.

23) 그들에게

한자

의 사용은 자신이

쉬운 글

을 쓰는 조선의 여성들과 구별되는

유학생 지식인

이라는 정체성이 투영된 결과였다

.

24) 조선의 여성과 구별되 는

지식인

이라는 정체성은 다음 󰡔여자계󰡕의 역할에 대한 서술에서도 엿볼 수 있다

.

(

)

심리가 부면 종교로 곳치나 오직 우리 됴션 녀회가 부 거슨 뉘가 구원며 무엇 이 약이 되리오 여긔 급션무는 학교々육과 잡지의 견식이 뎨일되 명약인 줄을 셰샹이 인증 바라

.

이 리치를 확실이 닷는 이의게 한마듸 충고할 거슨 가졍에 쓰고 남은 일푼젼으로 엿사잡수고 십 흔 셔에 우리

[

女子界 – 인용자

]

을 엿과 갓치 달고 단 사랑할 물건으로 각하시고 거운 졍셩과 일편 단심으로 보죠시면 곳 우리 녀를 기르 죵가 되어 명의 근본이 될는지도 알 수 업오니

,

그 음은 곳 그 쥬인이라

.25)

(

)

형님들이여 半島江山 內에 아직지 敎育을 밧지 못하는 女子가 얼마나 되는지 각하심닛가

?

敎 育이 普及된 줄노 아심닛가

?

本地方은 曇天에 별 한 도 업는 것과 갓흐외다

.

이에 한 임은 留學하

‘한자(漢字)’를 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나혜석의 작품인 「경희」와 「회생(回生) 손녀(孫女)에게」를 분석하여, 󰡔여 자계󰡕가 한글체 소설의 개척과 정착에 기여한 바를 정리하고 있다(김영민, 앞의 논문, 39~69쪽).

20) 국한문체는 한자의 사용 빈도, 문장의 통사 구조에 따라 한주국종(漢主國從)과 국주한종(國主漢從)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 다. 임상석은 국한문체를 크게 ‘한문 문장체’, ‘한문 구절체’, ‘한문 단어체’의 세 유형으로 나눈다(임상석, 󰡔20세기 국한문체 의 형성과정󰡕, 지식산업사, 2008, 115~145쪽 참조). 󰡔여자계󰡕에 사용된 대부분의 한문은 국문의 통사구조를 바탕으로 한문 의 역할이 단어의 형태로 축소된 ‘한문 단어체’ 형태이다.

21) 이 시기 일본에서는 한문의 문장구조를 해체하고, ‘한자’를 일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즉, 한자에 일본어의 활용어미를 붙 여 일본어 어순에 맞게 ‘한자훈독’을 시행하고 있었다(이연숙, 「언어의 국민화와 한자문명권으로부터의 이탈」, 󰡔20세기 초 동 아시아의 언어관: ‘국어’와 ‘국문’을 중심으로󰡕, 근대 한국학 연구소 국제 심포지엄 자료집, 2011년 12월 9일, 1~23쪽).

22) 1914년 4월에 창간된 󰡔학지광󰡕은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의 기관지이다. 󰡔여자계󰡕 제2호 「新刊紹介」에는 “東 京의 우리 오래비 雜誌되 學之光”이라는 문장이 실려 있는데, 이를 통해 󰡔학지광󰡕과 󰡔여자계󰡕의 관계가 긴밀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23) 당대 신여성들이 국한문 글쓰기에 익숙했다는 사실은 󰡔學之光󰡕 제3호에 실린 나혜석의 「理想的 婦人」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理想이라 험은 何를 云험인고, 所謂 理想이라. 卽 理想의 欲望의 思想이라. 以上을 感情的 理想이라 허면, 此 所謂 理想은 靈智的 理想이라. 然허면 理想的 婦人이라 헐 婦人은 그 누구인고, 過去 及 現在를 通하야, 理想的 婦人이라 헐 婦人은 읍다고 生覺허는 바요. 나는 아즉 婦人의 個性에 對헌 充分헌 硏究가 읍는 故이며,  自身의 理想은 非常헌 高 位에 在험이요.” 이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나혜석은 전형적인 한문 구조를 바탕으로 딱딱한 문어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 고 있다.

24) 근대계몽기 조선에서 여성을 독자로 한 교재류의 서적들은 ‘한자’ 또는 ‘한문’이라고 하는 보편적 문자의 읽고 쓰기 능력을 여성이 배워야 할 ‘지식’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각각의 서적들은 내용이나 서술 방식은 달랐으나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이들 에게 기초 한자를 익히게 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었다(홍인숙, 「근대계몽기 지식, 여성, 글쓰기의 관계」, 󰡔여성문학연구󰡕, 24, 한국여성문학학회, 2010, 57~86쪽). 즉, 당대 여성들에게 ‘한자’ 또는 ‘한문’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지식’을 가진 자와 아닌 자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25) 무경(武卿), 「촉불이 지려는 녀계의 고통」, 󰡔여자계󰡕 제4호, 1920년 3월, 49쪽.

(7)

시는 여러분 형님들의게 더욱히 잇다고 각합니다

.

近頃에야 비로소 無敎育者와 有敎育者 사이에 有力한 媒介物이 出世함을 無盡히 깃버하며

,

즐거히 歡 迎하이다

. (

중략

)

한 우리 女子의 手段으로 되는 이 貴한 雜誌는 學校敎育을 밧을 슈 업는 一般 女子 의게 큰 先生이 되는 줄노 밋음니다

.26)

(

)

(

)

모두 󰡔여자계󰡕를 중요한 교육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 (

)

는 부패한 여자 사회를 구원하기 위한 명약으로

학교 교육

잡지의 견식

을 꼽는다

.

󰡔여자계󰡕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여성들에게 학교 교육 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 녀를 기르 죵

이며

명의 근본

인 것이다

. (

)

역시

󰡔여자계󰡕를

무교육자와 유교육자의 매개물

이라고 설명한다

.

교육받지 못한

일반 여자

를 교육시키는

선생

인 것이다

.

이러한 󰡔여자계󰡕의 역할은 잡지에 게재된 글들을 강단이나 연단에 선 강사

,

혹은 학교 선생님의 목소리와 등치시키는 방식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

이러한 상상은 여성필자들이 스스로를 계몽의 주체이자 교 육자인

지식인

으로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

그러나 교육의 목적이

가르침

에 있지 않고 그 글을 읽는 독자의

깨우침

에 있을 때

, ‘

문체

는 작가의 의식 을 드러내는 목적뿐만 아니라

,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

󰡔여자계󰡕 제

2

호 「編輯室에셔」에 실 린

本誌 特히 家庭改良

,

兒童敎育에 本旨를 삼고져 오니

라는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

󰡔여자계󰡕 필 자들이 글을 쓰는 목적은 글을 읽는 여성 독자를 깨우치고 삶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있었다

.

이러한 글쓰기의 목적은 독자를 배려한 쉬운 글쓰기를 권하는 다음 예문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

여러분 이러한 말을 드럿삽니다

.

이 女子界를 순언문으로 엿스면 엇더하냐고 말읍더이 다

.

事實 우리들도 그런 의론이 만핫셧습니다 그러나 아직 實行치 못엿으며 將次는 그러케 읍 던지 或은 순언문 附錄을 도록 經營볼가 읍니다

.

그리고 次號붓허라도 할 수 잇로 原稿를 쉬웁게 쎠주셧스면 돗켓니다

.27)

󰡔여자계󰡕의 독자들은 잡지가 순언문으로 발행되길 희망했으며

,

편집인들도 이에 동감하고 있었다

.

여기에 는 원고를 쉽게 쓰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

󰡔여자계󰡕 제

2

호부터 제

6

호까지 「投稿에 對하야」란에는

文 體는 할 수 잇는 대로 漢字를 쓰지 말고 우리글로 우리말을 쓰도록 바랍니다

.”

라는 문장이 실려 있다

.

이를 통해 󰡔여자계󰡕가

우리글

을 기호로 하는

우리말

글쓰기를 지향했으며

,

이것은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바꾼 문장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 ‘

우리글

을 표기체계로 하여

우리말

을 하듯이 쓰는 언문일치의 문장을 쓰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이것은 딱딱하고 어려운 글쓰기 보다는

,

빠르고 쉽게 이해되는 언문에 가까운 글쓰기 를 의미한다

.

실제로 󰡔여자계󰡕에는 당대 유학생 잡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글 기사와 한글 소설이 실린다

.

그 목 록은 아래

<

1>

과 같다

.

28)

26) 공주 안명숙(公州 安明淑), 「女子界를 歡迎함」, 󰡔여자계󰡕 제5호, 1920년 6월, 24쪽. 27) 「編輯室에셔」, 󰡔여자계󰡕 제2호, 1918년 3월, 76쪽.

(8)

<표 1>

잡지 호수 작품명 저자 성별

2

호 신구츙돌의 비극 김엽

(

金燁

)

兒育에 對한 二大注意 한흥교

(

韓興敎

)

3

호 가뎡고문

(

家庭顧問

)

미상 미상

4

촉불이 지려는 녀계의 고통 무경

(

武卿

)

시간과 노력의 경계 송청

(

松靑

)

미상

中國女子의 굿은 정절 유영준

(

劉英俊

)

Pollyanna

팔늬의나

MK

生 미상

5

부인금구

(

婦人金句

)

현덕신 여

아가 우지마라 무향

(

武鄕

)

미상

중국녀자의 굿은 졀개

(

)

유영준 여

6

호 부인금구

(

夫人金句

)

현덕신 여

위의

<

1>

에서 알 수 있듯이

,

연재되는 글29)을 제외하면 총

9

편의 글이 순한글로 작성되었다

.

그 중 「兒 育에 對한 二大注意」

,

「가뎡고문」

,

「부인금구」는 여성이 육아를 할 때 알아둬야 할 정보를 설명한 글이다

.

아이를 교육할 때 주의할 점을 서양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

아기 젖먹이는 시간

,

전염병 예방을 위 한 음식 관리 방법

,

아동의 의복 만드는 내용 등을 다루고 있다

.

이러한 글은 당대 여성 독자를 교육하고자 했던 󰡔여자계󰡕의 발행 목적과도 연관된다

.

위의 목록 중 무경의 「촉불이 지려는 녀계의 고통」은 󰡔여자계󰡕 여성필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잡 지 경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아무리 좋은 문명을 전해주어도

우리가 듯고 보 지 못면 그 됴흔 문명이 우리의게 무 샹관 잇쓰리오

라는 말처럼

,

저자는 조선 여자가 자신의 책임과 의 무를 다하여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모습을 비판한다

.

 일을 가 모른다년 뉘가 알며 안 되면 곳치지 아니고 던지면 영원이 미국 홍인죵 되며 몽고

막에 즘의 활을 는 야만의 부락이 되어 남은 텬당갓흔 광명 세샹을 맛보나 우리 인간디 옥을 면치 못 거시 아니오닛

?

형님 발이 더럽다고 어 버릴 수 잇쓸가요

!

가 리익을 엇으랴 고 아니면 누가 그져 갓다 주릿

!

하여도 아니보고 리익부터 도모니 우물에 가셔 더운물 달나는 사람과 무엇이 다름니

?”

이것이 뉘가 미업게  거신가 즉 의 일을 남의 일갓치 각 것이 아니오니

?

28) 표에서 제시한 작품 목록 중 저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미상’으로 표시한다.

29) 제4호에 실린 유영준의 「中國女子의 굿은 정절」은 「중국녀자의 굿은 졀개」라는 제목으로 제5호에 연재되고 있으며, 현덕신 의 「부인금구」는 제5호, 제6호에 연재되고 있다.

(9)

우리 경험업 이 잡지을 쳐음으로 시작누라고 힘을 다엿쓰니 문의 미업 것만 각 지 마시고 젹은 미가 큰 벌을 물고 자긔 구멍으로 어드리고져  것과 갓치 일은 크고 힘은 적 은 것을  각시오

. (

중략

)

심지여 코푸러 던지며 덥고 펼치지 아니시 이도 잇으니 우리을 사랑시거든

,

이 잡지의 한 방울 졍을 러쳐 주구려

.

우리가 이 잡지을 유지여 감으로 어린 아가 어마님의 졋을 의지여 어룬이 되나 봅세다

.30)

저자는 작은 개미가 큰 벌을 물어서 나르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하는 자신들의 노고는 무시한 채

문의

미업 것

만 불평하는 독자들에게 잡지를 재미없게 만드는 원인은

의 일을 남의 일갓치 각

여 성들의 태도에 있다고 비판한다

.

부패한 조선여자 사회를 구원할

명약

인 󰡔여자계󰡕가 있어도 배우려는 의지 도 없고

,

심지어 잡지를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그 책임은 독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

때문에 저자는 글의 후반부에서 󰡔여자계󰡕의 성공은

이 잡지를 사랑시와 구람시 형님들

에게 있으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장한다

.

이러한 언급을 통해 당시 󰡔여자계󰡕 필자들이 잡지를 성공적으로 유지해 나가는데

독자의 참여 유도

를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무엇보다 잡지를 경영할 때

,

여성 독자들이

낫이 되어도 일월을 보지 못 의 활

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는 수려한

문

보다는 계몽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쉬운 글쓰기를 지향한 편집인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

우리가 󰡔여자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여자계󰡕 편집인들과 독자들은 여성 독자를 위한

독자 중심의 글쓰기

를 지향했고

,

일부 글에서나마 순한글을 시도했다

.

비록

지식인

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한자

를 버리진 못했으나

, ‘

한자

의 대부분은 단어의 의미를 나타내는 정도에 머물렀다

.

이것은 넓은 맥락에 서 보면 국문체의 확대를 통해 근대적 글쓰기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

31)󰡔여 자계󰡕에 실린 여성필자의 문체는

지식인

이라는 정체성과 여성 독자를 교육하려는 잡지의 목적 사이에서 충 돌하고 있는 신여성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

그리고 이러한 내면의 충돌은 국한문체와 순 한글의 문체선택 과정뿐만 아니라

,

여성필자들의 글쓰기 면면에서도 나타난다

.

최남선이

材料와 編輯이 아 울러 整美함은 當事者의 女性的 周密이 과연 다르다 할 것이며 一般論說 더욱 小說가튼 것은 그 描寫가 極히 周到하고 極히 纎悉하야 미상불 有髥人의 筆致에 견주어 特色이 저절로 나타낫다할러라

.”

32)라고 말한 것처 럼 여성필자의 글에는

여성

을 독자로 하는 독특한 글쓰기의 특징들이 담겨 있다

.

30) 무경, 앞의 글, 48~49쪽.

31) 임상석은 ‘당대 유학생 잡지를 통해 진행된 한문 문장체, 한문 구절체, 한문 단어체의 교체 과정과 이로 말미암은 한문의 위상 축소는 국주한종이라는 언어적 지향의 실현이면서, 한문전통의 약화와 근대적 신지식의 강화를 통한 사고과정의 변천 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임상석, 앞의 책, 218~234쪽 참조).

32) 「女子界」, 󰡔靑春󰡕 제10호, 1917년 9월, 12쪽.

(10)

Ⅲ. 공감의 글쓰기:언(言)과 문(文)의 일치

여성필자의 글쓰기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비유와 감정적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이다

.

특히

󰡔여자계󰡕 필자들은 여성담론을 전개하면서

,

여성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거나

,

논의를 전개하는 중간에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

눈을 감아 멀―리 西便을 바라보니 아름다은 나의 江山과 사모되는 二千萬 형뎨의 活動이 念頭에 뜨매 나는 갑작이 痛忿함과 可憐한 感想이 견댈 수 업시 猛烈한 形勢로 나의 마음에 侵入함을 깨다랏 나이다

(

중략

)

半島안에 잇 數百萬 女子를 生覺할 때에 女子의 一分子 된 나는 白日이 두렵고 禽獸 가 붓그러우며 先祖를 원망함과 社會를 저주하는 冷々한 呼吸이 腸子속으로브터 소사나옴니다

.

그런 故로 나는 잠간 붓을 들어 한강土 안에서 한 물을 마시며 行步를 갓치하는 갓혼 피가 석긴 나의 어머 님과 형님들 卽 우리 一般女子에게 나의 痛忿함을 告하고 여려분의 意見을 듯고저 하나이다

.33)

위의 글은 󰡔여자계󰡕 제

6

호에 실린 추국

(

秋菊

)

의 「女子의 自覺」이다

.

이 글은

야만

이라는 명칭과

下等之 國

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 여자의 자각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

저자는 조선 여자를 생각할 때

白 日이 두렵고 禽獸가 붓그러우며 先祖를 원망함과 社會를 저주하는 冷々한 呼吸이 腸子속으로브터 소사나

온 다며

,

조선 여자에 대한 인식의 체감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34)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 것은 저자가 경 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여성문제를 바라보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

저자는

야만스러운

조선의 일상 모습 을 제시하면서

,

어릴 때 여자아이의 이름을

쇄지 도야지 복실이 얄이

등으로 짓는 것과 자신도 어릴 때

소녀

로 불렸던 기억

,

조선여자들의 한심한 생활과 여성들을 무시하는 남성의 구체적인 모습35) 등을 서술한 다

.

이것은 저자가 반도 안에 있는

女子의 一分子

로서 직

·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다

.

저자에게

여성

문제는 체감적인 문제였다

.

단순히

여성

의 문제이기 전에

나의 어머님과 형님들

을 포함 한

우리

의 문제였던 것이다

.

이러한 인식은 여성문제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보다는 내면화하는 계 기가 되었다

.

저자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조국의 형제들을 생각하다 갑자기

통분함과 가련한 감상이 견딜 수 없이 맹렬한 형세로 나의 마음에 침입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저자가 자신의 글에 비유적이고 감정 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은 자신을 둘러싼

나의 어머님과 형님들

의 모습을 보고 분통함을 느낀 것을 고 33) 추국(秋菊), 「女子의 自覺」, 󰡔여자계󰡕 제6호, 1921년 1월, 8쪽.

34) 조윤정은 󰡔여자계󰡕 필자들이 일본에 있으면서 ‘조선’이 갖는 지정학적 위상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조선 안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서양이나 일본 여성들‘보다’ 무지한 조선 여성들, 전족을 한 중국 여성들‘만큼’ 불쌍한 조선 여성들”과 같은 비참한 처지로 묘사하며 슬픔을 느꼈다고 말한다(조윤정, 앞의 글, 411~414쪽).

35) “아부터 저녁지 술이나 먹고 長鼓나 치다가 해가지고 밤이 들면 흥야라 소리를 지르며 비턱~ 집으로 도라와 (중략) 근 심하며 歎息하다가 疲困한 몸을 쉬이노라고 不安을 품고 잠들어 자는 안해를 事情업시 뛰드리며 쓸데업는 소리를 하여 괴 롭게 하다가 술이 깨이면  그 모樣으로 하야 오고가는 歲月을 허송하는 許多한 者와 花투와 투錢으로 財産을 업세고 家 庭을 亡하게 하는 者들이 우리 사회에는 太半이나 되고 (중략) 白髮이 되여 죽음이 재촉하여오나 먹지도 안코 입지도 안으 며 내 아과 내 이 工夫를 하려고 애를 쓰며 애걸하듯 간청하나 술먹고 담배먹으라고 돈은 줄 지언정 工夫하라고는 銅 錢한푼 안주는 寒心한 人生이 우리 멧 천 代 遺傳되는 富者의 習慣임니다”(앞의 글, 11쪽).

(11)

(

)

하기 위하여 글을 썼기 때문이다

.

특히 감정적 표현들을 사용한 부분이나 체험적인 예를 제시하는 부분 은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듯이 구어체의 긴 문장을 사용하는데

,

이것은

한강土 안에서 한 물을 마시며 行步를 갓치하는 갓혼 피가 석긴

동질성을 가진 여성 대중을 호명하며 글을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

여성의 문제를 체감하고 이에 대한 감정을 비유적으로 제시한 글은 󰡔여자계󰡕 제

5

호에 실린 유영준

(

劉英 俊

)

의 「半島靑年女子에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유영준은 조선 여자를 거느릴

대장의 직분

이 있는 청년여자가 자신의 직분을 자각하지 않고

,

행동하지 않는 모습을 강하게 비판한다

.

역적간신 사기취하 罪人에 不負하 下對를 밧으면서도 이것이 쓰고 단 것도 분간치 못하고 멧 푼 못되 러진 문자로 對面 능멸에 수욕을 당하면서도 스서로 밋 속업고 가 궁글은 靑年女子 야 너이에 갓튼 빗흔 변하여 에도 보기 시른 빗치되고 香氣 변하여 구린 가 되엿스니 三千 里 江山에 두루찻 花客들이 너이에 模樣과 를 맛흘적에 낙심천만하고 너이에 판영은 변하여 작 별이 되갓스니 아

!

압호다 벼락갓치 주야로 아름다온 너히를 부르 소 드럿가 못드럿가 못듯

 너히들아 너히에 이팔청춘 아름다온 기상과 二十가절이 부중 부하엿스니 其美麗 것이 무삼 소용잇나 春坡巖上의 無味 無色 昨年에 피엿든 마른 을 뉘라 보랴 이십가절이라도 자랑할 것이 업

 枯草에 한을 먹음어 잇 너히 드를지어다

.36)

저자가 바라보는 반도청년여자의 모습은 무시 받고

,

죄인취급 받으면서도 그 달고 쓴 것을 분간치 못하고 속없이 굴며

,

부패할 대로 부패한 자랑할 것 없는

무미 무색한 작년에 피었던 마른 꽃

이었다

.

유영준이 이토 록 감정을 실은 구어체 문장으로 청년여자를 비판한 이유는 이것이

청년여자

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 다

.

유영준은 조선여자가 망하면 청년여자도 망하고

,

집이 망하면 가족과 조선이 망한다고 보았다

.

37)

,

조 선 여성의 문제는 청년여자의 문제인 동시에 자신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때문에

이런 가이업

조선 여성의 실상을 체감하면서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청년여자의 모습에

너 비를 팔며 어머 니에 고기를 요구하 자라

.”

라고 분노한 것이다

.

조선여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본 유영준의 시각은 조선 여자의 교육에 무관심하거나

,

여자의 천 재

(

天才

)

를 무시하는 모습에 대해

아−슬프다 지온 길을 한번 도라보니 비창한 각은 머리터럭 마다 소사올나온다

.”

38)라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

이러한 감정적 표현이 가능했던 것도 자신이 조선에서 태어난 여성으로서 간접적으로 조선 여성의 모습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

39) 그러므로 유영

36) 유영준(劉英俊), 「半島靑年女子에게」, 󰡔여자계󰡕 제5호, 1920년 6월, 8~9쪽.

37) “全盛의 시에 지가 靑年女子야 朝鮮女子에 生成興亡이 너히 무리에 잇난 것을 닷가 못닷가 가 망하면 너

이도 망하고 너이가 망하면 나도 망하고 라 女子가 망하면 男子가 망하며 남자가 망하면 여자가 망하며 집이 망하면  라 가족이 망하며 가족이 망하면 朝鮮이 망하며 라서 조상이 망한다.”(위의 글, 10~11쪽).

38) 위의 글, 8쪽.

39) “엇한 부인에 말을 드른즉 자기 가장은 만찬회니 아참찬회니 날이 동방에 일 붓터 셔편에 질 지 淸酒에 흥을 익이지 못하여 도야지에 뫼주 먹은 자미를 볼지라도 부인이 부인회에 참녀하갓다고 회비 이삼십전만 요구하면 얼는 그 가 장은 말하기를 󰡔집 비이고 아을 울니며  네가 가면 무엇 알갓다고 쇠경 피란경 외이듯 왓다갓다만 하랴고 하나!󰡕하며 뒤발노 문을 차고 나간다 하니 나 각하기를 이런 가장은 사랑치 안니여도 가하다고 단언합네다 여보시요 한 번 마즈

(12)

준에게 여성 문제의 해결은

깁흔 관게가 서로 잇 너히와  몸이 朝鮮에 출한 以上

함께 짊어지고 나 아가야 할 공통의 과제였던 것이다

.

여성

문제에 대한 체감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같은 지식인 유학생을 독자로 하는 글쓰기에서도 나 타난다

.

󰡔여자계󰡕 여성필자들은

여성

’, ‘

부인

혹은

우리

[

新女子

]’, ‘

형님

등 다양한 여성 독자를 호명하며 여 성담론을 펼쳤는데

,

그 중

우리

[

新女子

]’

혹은

형님

이라고 불리는 여자 유학생을 향한 글이 여러 편 실려 있 다

.

그 목록을 나열해 보면

,

「大門을 나신 兄弟들의게」

(

박순애

,

2

),

「卒業生諸兄의게 들이는 말」

(

현덕 신

,

3

),

「新女子의 自覺」

(

전유덕

,

4

),

「業을 맛츠시는 여러 兄님들의게 올림」

(

박승호

,

5

),

「女子 界를 歡迎함」

(

안명숙

,

5

),

「새로 오신 여러 형님에게」

(

이양선

,

6

)

등이 있다

.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교 육받은 여성이 조선 여성을 계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고

,

이러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신여 성을 비판한다

.

재미있는 부분은 앞에서 살펴본 추국

(

秋菊

)

이나 유영준의 글처럼 조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다양한 감정적 표현이 사용된 점이다

. “

,

우리 女子의 過去를 回顧면 누구 다 一般으로 칼로 어이 듯 心 苦를 禁치 못지요

.”

40)

, “

甚至於 禽獸에게 참아 못 待遇를 밧든 生覺을 면 치가 님니다

.”

41)

, “

全身 에 소름을 돗치난 거슨 그들의 불샹 모양이오

,

머리를 지근지근 르는 거슨 半島靑年의 압길이오 精神이 아득 거슨 「우리가 將次 엇지할가」 함이외다

.”

42)라는 표현처럼 여성필자들은

「ㄱㄴ」도 몰나서 男便에 학 대나 밧고 오직 하는 것은 우물 안에 인는 고기모양으로 집속에서 울며 밥이나 짓고 바느질이나 할 

43)

저네들

을 생각하며 소름이 돋고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 “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참지 못하엿

44)

.

이러한 감정표현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성필자들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조선

여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자각했기 때문이다

.

물론 교육받지 못한 조선의

저네들

과 그들을 선도할 직분이 있는 유학생 여성 의 위치에 대한 구분이 글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나

,

이러한 구분이 같은 땅에서 태어난

조선 여성

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

우리는 各自身이 朝鮮女子됨을 아는 同時에 우리 使命을 自覺야 一身의 苦樂을 不係고 後進들 이 밟고 건너 生命樂園으로 드러갈 石橋가 되엿스면 엇덜요

?45)

新學問을 배호러은 우리는 新生活의 길을 努力하며 된장국과 김치 세쪽이 우리에게 큰 힘과 希望의 目的을 達케 할 것이라고 生覺하고 이를 달케 먹고 漸々 치워오는 此時 日本에서 치운 잠을 덥게 자며

면 두 번 리고져 하 그이에 마음은 에 미런한 디식으로 하다가 도려혀 를 밧기 쉽지요 그런고로 만사에 디식을 구하며 뵈여야 그 경우에 쳐리 방법을 아 거시오, 긴합니다.”(앞의 글, 11쪽).

40) 박순애(朴淳愛), 「大門을 나신 兄弟들의게」, 󰡔여자계󰡕 제2호, 1918년 3월, 25쪽. 41) 위의 글, 25쪽.

42) 현덕신(玄德信), 「卒業生諸兄의게 들이는 말」, 󰡔여자계󰡕 제3호, 1918년 9월, 3쪽. 43) 이양선(李良善), 「새로 오신 여러 형님에게」, 󰡔여자계󰡕 제6호, 1921년 1월, 2쪽. 44) 현덕신, 앞의 글, 3쪽.

45) 박순애, 앞의 글, 26쪽.

(13)

우리는 朝鮮女子이란 精神을 일치 말고 우리의 나갈 길과 나란 精神을 일치 말기를 努力하여야 되겟슴 니다

.46)

각 자신이 조선여자 됨을 아는 동시에 우리 사명을 자각

하라는 문장처럼 당대 여자유학생에게

지식인

이 라는 자각과

조선여자이란 정신

은 함께 지녀야할 정체성이었다

.

때문에 여성필자에게 여성문제는 단순히

저네들

의 문제가 아닌

, ‘

여성

이라는 동질감을 지닌

우리

의 문제로 다가왔던 것이다

.

이러한 인식은 여성문 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보다는 내면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

여성문제를 지적하거나 해결방법을 제시할 때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하도록 만들었으며

,

동질감을 지닌 상대방에게 말하듯이 구어 체의 문장으로 서술되도록 이끌었다

.

특히 서술어의 사용과 문장 어미의 사용은 당대 여성문제를 논하는 남 성필자들의 글쓰기와 구분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

다음 예문을 살펴보자

.

近日社會에셔 우리

(

新女子 – 인용자

)

를 向하야 批評하는 말이 참 만습니다

.

或 엇던 이는 우리를 嚴 히 責望도 하시고

,

엇던 이는 忠告도 해보시고 그러다 못하야 乃終에는 아조 所望 업다고 絶望하신 이 도 잇지오 네

!

果然 그럴듯도 합니다

.

우리는 그네를 怨妄할 슈도 업습니다

.

그것이 다 事實이니

.47)

近日 世人이 新敎育을 밧엇는 죠션 女子에게 對 評論을 드르면 女子界를 建設기는고사고 도로혀 千萬層 깁흔 陷井으로 러칠가 怯납니다

.

여러분도 아마 드르시지요

?

近者에 女子들은 學校大 門안에

,

발 드려노으면 虛榮의惡魔가 其腦속 第一位를 占領으로

(

중략

)

悖惡 行動이 太甚다 합니다

.

이와 것흔 批評이 비치듯는 줄 여러분 다 아시지요

?

그러면 엇더케 生覺하심니

.

事實上 全部 女子가 다 그러라고는 할 수 업셔도 寒心 일이 如干아닌즐압니다

.48)

위의 예문들은 춘강

(

春江

)

전유덕과 박순애가

우리

혹은

신교육을 받았다는

지식인 여성을 호명하며 쓴 글이다

. ‘

비평

,

책망

,

충고

,

건설

,

학교

우리글

만으로도 의미 파악이 쉬운 단어들을 한자로 쓰고 있으나

,

이것은 비슷한 담화 공동체 사람인

신여자

(

新女子

)’

에게 향한 발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 다

.

,

여성 필자들에게 교육 받은 여성은 계몽할 대상이 아닌

,

비슷한 지식과 글쓰기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담화 공동체였기 때문에 굳이 이들을 향한 발화에서

한자

를 배제한 쉬운 글쓰기를 지향할 필요가 없었던 것 이다

.

특징적인 것은 대화체에 가까운 서술어의 형태이다

.

특히

!

果然 그럴듯도 합니다

.”, “

여러분도 아마 드르시지요

?”, “

이와 것흔 批評이 비치듯는 줄 여러분 다 아시지요

?”

등의 문장은 저자가 호명하고 있는 수신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용을 하며

,

저자가 글의 수신자인 형님들에게 직접 이야기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

이러한 작용은

편지

가 문자로 기록되지만

,

대화적이라는 측면과 흡사하다

.

46) 이양선, 앞의 글, 2쪽.

47) 春江, 「新女子의 自覺」, 󰡔여자계󰡕 제4호, 1920년 3월, 30~31쪽. 48) 박순애, 앞의 글, 25쪽.

(14)

편지

는 같은 시공간 안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감각으로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편지를 쓰기 때문에

,

편지에 기 록된 발신자의 구어적 문체는 수신자가 읽는 순간 발화자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효과를 생산한다

.

49) 이 글 역시 이러한 효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어적 문체라고 할 수 있다

.

특히 서술어의 어미는 듣는 이와 말하는 이의 관계가 계층적 서열이 없는 동료적 관계임을 짐작하게 한다

.

우리는 평소 연설이나 토론을 하거나

,

예의를 갖춰 상대방을 설득

·

비판 할 때

‘~

라는 종지형 보다는

‘~

/

습니다

’, ‘~

라는 존칭을 사용한다

.

,

앞에서 언급한

그럴듯도 합니다

.”, “

그것이 다 事實이니요

.”, “

陷 井으로 러칠가 怯납니다

.”, “

드르시지요

?”, “

여러분 다 아시지요

?” “

엇더케 生覺하심니

.”, “

寒心 일이 如干아닌즐압니다

.”

등의 서술어는 우리가 격식을 갖춰 대화할 때 사용하는 말들과 유사하다

.

이것은 여성 대 중을 호명하며 그들의 자각과 각성을 주장하는 남성들의 글과 비교하면 그 특징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

男子도 短處가 잇스니 男女의 短處를 서로 補充하여야 社會의 進步發達이 完全이 되여간다는 말이 한 大旨요 女子는 特히 感情의 支配를 만히 밧는 故로 그것이 原因이 되여 여러 가지 失敗가 繼起하니 女性을  여러분은 特히 이 點에 注意하야 感情의 短處를 理性으로 補하라는 말이다 그러자면 女子는 理性修養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理性修養은 知識을 넓힘에 在한다

.50)

나의 婦人의 覺醒이 時急타함도 이러한 信念에서 나옴이외다

.

卽 今日의 舊家庭은 自由와 平等을 沒 却한 專制主義下에 成立되야 家長과 妻子의 關係가 맛치 偉人이라는 惡魔와

,

無知蒙昧한 民衆의 關係 과 갓흐니 이에 婦人이 覺醒하고 子息이 自覺하야 爲先 自由平等의 平主的家庭을 建設한 後라야 民族 的 世界的 解放을 엇을 수가 잇다함이외다

.51)

위의 두 예문은 서춘

(

徐椿

)

과 제월

(

霽月

)

염상섭의 글이다

.

두 예문 모두 동질성을 지닌 집단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충고하기 보다는

,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계몽하고 각성시키듯이 건조한 문장을 통해 글 이 전개된다

.

앞서 살펴보았던 여성 필자의 글보다는 딱딱한 느낌을 준다

.

특히

感情의 短處를 理性으로 補 하라는 말이다

.”, “

知識을 넓힘에 在한다

.”, “

이러한 信念에서 나옴이외다

.”, “

解放을 엇을 수가 잇다함이외다

.”

등의 문장은 청자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정론적인 논문 원고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

이처럼 당대 남성필자들이 건조하고 강건한 문체로 여성문제를 논한 것은 그들이 여성문제를 인식하는 방 식이 당대 여성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

당대 남성필자들은 極熊

[

최승만

]

우리 社會에 重要한 問題가 不少 하게 잇지마는 그 中 가장 緊急하고 硏究하지 안이하면 안이 될 問題는 只今 내가 말하려는 바 女子問題올시 다

.”

52)라고 인식했던 것과 같이 여성문제를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인식했다

.

53)

,

여성문제를 정치

,

49) 권용선, 「1910년대 ‘근대적 글쓰기’의 형성과정 연구」, 인하대 박사논문, 2004, 99~102쪽 참조. 50) 徐椿, 「男女相互補短에 就하야」, 󰡔여자계󰡕 제6호, 1921년 1월, 16쪽.

51) 霽月, 「婦人의 覺醒이 男子보다 緊急한 所以」, 󰡔여자계󰡕 제2호, 1918년 3월, 36~37쪽. 52) 極熊, 「女子解放問題」, 󰡔여자계󰡕 제4호, 1920년 3월, 9쪽.

53) 조윤정은 전영택을 포함한 남자 유학생들이 “조선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 제 3자의 입장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여자해방 담 론을 공유하지만, 남성들의 문제의식은 관망자로서의 비애 느끼기에 그친”다고 주장한다(조윤정, 앞의 글, 415~416쪽 참

(15)

경제문제와 같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였으며

,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계몽담론의 틀 속에서 여성문제에 접 근했다

.

여성문제를 내면화하기 보다는 객관화하여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

.

전영택은 「女子敎育論」54)이라는 글에서 여자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비판하고 여자교육의 필요 성을 주장한다

.

그가 여성해방과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은

우리

혹은

의 문제로 체감했기 때문 이 아니라

,

정권해방

,

직업해방

,

노예해방

,

학문해방 등과 더불어 현대문명이 나아가야 할 길 중 하나였기 때 문이다

.

55)이러한 시각은 염상섭의 글에서도 이어진다

.

󰡔여자계󰡕 제

2

호에 실린 霽月

[

염상섭

]

의 「婦人의 覺醒 이 男子보다 緊急한 所以」는 부인의 각성이 긴급한 이유를

8

개로 나누어 그 필요성을 역설한 글이다

.

나의 觀察하는 바로 論하면 우리―生物의 一部인 人類의 努力은 生物의 本能的 要求되는 自由의 獲 得 卽 모든 것에 對한 解放을 遂行實現하랴 함에 잇고

,

向上發展은 그 結果라 하고자 하나이다

. (

중략

)

나의 婦人의 覺醒이 時急타함도 이러한 信念에서 나옴이외다

.

卽 今日의 舊家庭은 自由와 平等을 沒 却한 專制主義下에 成立되야 家長과 妻子의 關係가 맛치 偉人이라는 惡魔와

,

無知蒙昧한 民衆의 關係 과 갓흐니 이에 婦人이 覺醒하고 子息이 自覺하야 爲先 自由平等의 平主的家庭을 建設한 後라야 民族 的 世界的 解放을 엇을 수가 잇다함이외다

.(

띄어쓰기 인용자

)56)

저자가 여자의 각성을 주장하게 된 것은 인류의 모든 노력이 해방에 있으며

,

부인의 각성이 자유

,

평등적 가정을 건설하고 민족적

,

세계적 해방을 얻는 데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現代社會가 女子의 努力을 要求함은 世界列强의 共通한 事實이요 男子의게 讓步치 안을만한 能力이 잇음도 一般識者이 公認하 는 바이니

57)라는 저자의 말처럼 사회적인 변화에 발맞추어 나아가고

,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자 의 각성은 반드시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

이것은 여성필자가 조선 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직

·

간접적 으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고

(

)

하기 위해 여자의 각성을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이유이다

.

󰡔여자계󰡕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글을 실은 만큼 잡지 안에서 남성필자와 같은 정론적인 글쓰기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

近來 우리 朝鮮 女子界의 文化가 漸々 發展되여가 不遠間 우리 朝鮮이 우리 女子의 文化로 因하 야 錦繡江山이 될 줄노 確實히 自信하는 라

.

現今 朝鮮 女子 敎育 程度를 삷힐진 普通 小學校 中

고). 이처럼 당대 남자 유학생들이 여성문제의 책임을 다시 여성에게 돌리고, 자신은 제 3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과정은 여 성 혹은 조선 여성을 남성과 구별하여 하위로 배제시키고, 여성문제를 ‘조선’의 문제, 혹은 ‘조선 여성’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54) 「女子敎育論」은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여자계󰡕 제2호 「來號豫告」란에 실린 “朝鮮의 女子敎育論…(중략)…秋湖”라는 언급을 통해 전영택임을 짐작할 수 있다.

55) “現代文明의 特徵은 「解放」이라 합니다. 政權解放, 職業解放, 奴隸解放, 學問解放, 女子解放―이거시 오늘날 文明의 精神이 라 할 수 잇습니다. 그러면 朝鮮에서도 여자를 해방할나면 몬저 교육을 하여야 될 것이오.”(「女子敎育論」, 󰡔여자계󰡕 제2호, 1918년 3월, 7~8쪽).

56) 霽月, 앞의 글, 36~37쪽. 57) 위의 글, 38쪽.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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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적인 세계사의 파악을 유도하여 세계사

approach)을 통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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