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획의 역할과 합리성 개념
전통적인 관점에서 공공계획에서의 합리성은 사회문제를 기술적으로 분 석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이며 관리적(managerial) 합리성89)이 다. 이에 따라 계획은, 절차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목표 설정ㆍ 조직적 분 석ㆍ 논리적인 정책 대안 제시ㆍ대안의 조직적인 평가와 실행 관리 등의 활동으 로 나타난다(Healey, McDougall & Thomas, 1982: 8). 이 입장에 서면 공공계획의 역할은 정부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성격이 강해지고, 사회적인 이슈와 괴 리되는 정치외적 영역에서의 전문기술 분야가 된다. 그러면서도 현실세계에서는 Friedmann(1987)이 표현하듯 사회지도적 전통이 지배적이었고, 마르크스주의자 들이 경고하듯 사회의 질서(status quo)를 유지하는 “국가계획”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현존하는 공공계획의 모습이다.
89) 제2장에서 포괄적 합리주의를 논의할 때 설명했던 것처럼 이 입장에서 계획은 문제해결 과정이며, 문제는 합리적인 절차 및 의사결정 방법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성은 “주어진 상황에 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라 정의된다(Faludi, 1978: 164).
이와 같은 모순성을 극복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시대적 맥락과 참여의 이념에 적합한 이론적 기초로서 이 연구는 의사소통적 담론90)을 제시한다. 제2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비판이론(의사소통적 담론)에 철학적 기초를 두는 서구에서의 의사소통적 계획 및 협동적 계획 개념의 일차적 목표는 협량한 수단적/과학적 합 리성으로부터 초점을 비과학의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유형의 합리성, 즉 의사 소통적 합리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과 학적 객관주의가 아니라 대신 자유롭고 개방적인 논의 또는 숙의를 통해 달성되 는 개인(집단) 간의 합의(consensus)를 지칭하는 다른 유형의 객관성을 지칭한다.
위와 같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은 실천의 영역이며, 공공계획의 관점에서 는 올바른 혹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참여의 실천이다. 즉, 현실적으로 사회 구 성요소의 관계가 권력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계획에의 참여는 관계 적 형성을 통해 정책적 논의를 제기하고, 공공계획과 정책 형성의 구조적 권위에 변화를 야기하고, 종국에는 제도의 변화를 유발한다. 이와 같은 논리화는 신제도 주의적인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전해 나간 것이 협력적 계획론의 원 형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들을 종합하면 공공계획의 역할은 단순히 방향을 지시하는 호루 라기 소리가 아니라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사회발전을 위한 염두에 두는, 사회문제 해결이나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집합적 행위 지침에 대한 합 의와 실천 과정인 것이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의사소통 원칙하에 계획 관련자나 구성요소들의 참여를 통해 공공의 이익에 대해 합의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 함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같은 공공주체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역 할이 무시되거나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합리성이 무조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90) 담론은 교환되는 언표의 타당성에 대해 논증적 정당화와 검증이 시도되는 성찰적인 담화를 통해 상 호이해, 지식의 공유, 상호 신뢰와 조화에 이르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담론의 장에서 의사소통 참여자는 오직 ‘더 나은 논증(a better argument)'만을 위해 노력하는 진지성을 전제 로 한다. 이때 서로 다른 가치, 선호, 목표, 전략, 배경 등을 가진 이질적인 화자들 모두에게 정보, 지침, 주장, 규약, 기회, 권한 등이 공평하게 배분됨으로써 상호주관성이 확립된다. 이렇게 해서 담론 은 억압, 소외, 지배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화자간의 자발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영역으로 전환된다 (Habermas, 1979, 1984).
다만 공공계획은 보다 넓게 이해되고 포용되는 사회발전 이념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주도적인 역할이 보다 다양한 과정과 주 체들에 의해 검증되고 교정되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2) 참여의 원리 : 공공계획 의사결정의 방법론적 원리로서의 참여
참여적 공공계획은 정치시스템으로서의 참여민주주의와 심의(토론)민주주의 개념을 공공계획 의사결정의 방법론적 원리로 도입해야 한다.
참여민주주의는 정치적 분업론에 의해 소외되고 배제되어온 시민의 주권을 되 돌려주는 사회질서를 뜻한다. 즉,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의 선출에만 참여하는 것 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구성된 정부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이를 통해 혁신과 발전을 추구한다. 따라서 공공계획은 과거의 폐쇄적인 정치구 조 하에서는 전달되지 못했던 소수파,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의 목소리에 대한 통로를 다양하게 개방하고 시민공론장의 형성을 적극 지원하는 기능을 포함해야 한다.
심의(토론)민주주의는 정부와 시민들이 대화, 토론, 심의를 통하여 자신의 견 해를 수정하고 상대방의 견해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합의된 집단의사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의사소통의 장벽을 허물고, 대화통로를 제도화해야 한다. 심의(토론)민주주의는 공공성이 높은 사회 문제를 다룸에 있어, 혹은 공공계획의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 기회나 참여자 수와 같은 참여의 ‘형식’
못지않게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영역 내에서 ‘공적인 심의과 정’을 통해 얻어진 참여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본다(Hayward, 1995: 220-221).
무엇보다도 참여민주주의와 심의(토론)민주주의 메카니즘은 공공적 정당성이 투표과 이해관계의 결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심의(authentic deliberation)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에 있다고 본다(Cohen, 1997). 왜냐하면 참여자들 스스로 가치 체계와 선호를 변화시켜나가면서 집합적 의사를 형성해나가도록 하는 심의의 확
장이 의사결정의 정당성과 책임성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심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서 처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선호와 가치 체계를 변화시켜가면서 합의 형성의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내는 전환능력은 참 여․심의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또 다른 장점이다.
<그림 4-2> 하버마스의 토의정치 과정
출처 : 김원용(2003).
(3) 계획의 목표 : 다양한 사회가치 반영과 사회정의에 대한 고려
앞서 공공계획의 역할은 사회발전의 방향을 가늠하는 합의와 실천의 과정이라 규정했는데, 여기에는 사실 매우 합의하기 어려운 사회적 가치들 간의 충돌가능 성이 사상되어 있다. 가치관의 분화와 사회 및 정치과정 안에서의 갈등양상은 시 간이 지날수록 더욱 복잡하고 심화되어 가는 것이 현 실정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가치를 반영하는 공공계획”이란 공허한 이념적 구호처럼 들릴 수도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전락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참여적 계획의 규범은 모든 계획을 동시에 반영하자고 주장하기 보다는 합의와 협상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배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원전폐기물시설과 같은 기피시설은 단기적으로는 그 반대급부를 책 정하여 문제를 해결하되, 장기적으로는 핵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결과에 따 라 방향을 다시 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나 정부가 표방하는 균형, 환경, 자립, 분권, 세계화 등 다양한 가치들은 그 각각이 우리나라 사회발전을 추동(推動)하는 에너지원일 것이다. 문제는 공공계획이라는 견인차 가 그러한 가치들이 부르짖는 제각각의 방향지시 속에서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
해 편향 없이 운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 반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 공간적 불평등을 받고 있는 소외 된 사람들을 위한 공공계획의 실행이다. 포괄적 합리주의 공공계획의 입장에서 는 하나의 공공계획이 집행대상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였으 나, 지금의 시대적 맥락은 복잡성(complexity), 다양성(diversity), 차별성 (difference), 다원성(pluralism)과 같은 키워드로 표현되는 현실공간이다. 따라서 공공계획이 가지는 혜택 또는 피해의 귀속성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공공계획의 화두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정의는 경제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시장 메카니즘 의 결과(market outcome)와 성(gender)적 불평등, 지역적 불평등 등의 문제에 대한 교정 장치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공공계획에서의 사회공간적 불평등은 공공계획 프로그램이나 공공정책의 희소성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공공계획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실행대상 자체의 다양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공공계획의 특정 수준에 도달하고자하는 목적자체가 다양한 대 상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불평등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게 된다. 따라서 공공계 획 자체가 그 실행과정과 집행된 결과물에 대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가능
일반적으로 사회정의는 경제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시장 메카니즘 의 결과(market outcome)와 성(gender)적 불평등, 지역적 불평등 등의 문제에 대한 교정 장치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공공계획에서의 사회공간적 불평등은 공공계획 프로그램이나 공공정책의 희소성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공공계획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실행대상 자체의 다양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공공계획의 특정 수준에 도달하고자하는 목적자체가 다양한 대 상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불평등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게 된다. 따라서 공공계 획 자체가 그 실행과정과 집행된 결과물에 대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