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벌어졌던 수많은 이슈와 사회갈등을 생 각한다면, 게다가 2003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명칭을 “참여정부”라 했 던 것까지를 상기한다면 과연 이 시대는 “참여시대”라고 일컬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정황만으로 한 시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 지 않은데, 왜냐하면 우리는 상황적 맥락에서 이 시대가 표방하고 있는 가치관을 정확히 포착해서 그 속에 담긴 현재의 사회조직 및 운영의 메카니즘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규범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회는 “참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개 또는 세 개 의 시대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첫 시대는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계획으 로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관통하는 “권위주의 억압 하
에서의 저항시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대는 1980년대 후반기와 1990년대 (직선제 개헌, 시장개방, 지방자치 부활, IMF)를 지나는 동안의 “시민운동 등 참 여확대” 시대가 아닐까 한다. 이 두 번째 시대와 명백히 구분이 될 수 있는지 의 심스러운 셋째 시대는 “2002년의 붉은 악마, 노사모, 인터넷세대”가 촉발시킨 참 여정부40) 이후 “사회갈등이 봇물처럼 터진”41)시대인 것 같다.
이와 같은 시대 구분은 역시 우리나라의 정치적 변동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다. 즉, 1960년대 이후 1987년까지는 개발주도형 국가체제하 경제성장과정에서 갈등이 억압되거나 잠재된 형태로 진행되었고, 특히 유신체제 아래서는 인권의 존중과 자유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이른바 6.29선언을 계기로 이후 80년 후반부터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42) 그동안 의 정치적 억압구조로부터의 분출구가 형성되고 국민들의 사회적 요구가 빠른 속도로 표출되고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정부의 통제가 느슨해졌기 때문만은 아니고 새로운 이론 (담론), 의식과 가치관이 내재된 전체적인 변동의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송호근 (2003)은 우리나라의 1960-70년대는 국가가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는 국가 패 러다임이었고 1980년대에는 경제가 국가(정치), 사회를 주도하는 가운데 대항문
40) 송호근(2003)은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 “2002세대”라고 정의하고 그 기저에는 20대, 30대의 새 로운 세대가 새로운 변동의 자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1993년 문민정부, 1998년 국민의 정부에 이어 2003년에 등장한 참여정부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선거운동이 대 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향후의 국정운영에서도 국민의 참여 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에서 ‘참여정부’라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청와대 홍보자료) 41) 우리나라 사회갈등의 양상은 억압형 ⇒ 잠재형 ⇒ 표출형 ⇒ 확산형으로 변동하여 왔으며 현재는
표출형과 확산형의 과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국무조정실 내부자료).
42) “민주화”는 매우 주관적인 용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주화 수준은 1987년을 계기로 급속히 성숙해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매년 자유민주주의의 등급을 발표하는 세계적인 민주주의와 인권 NGO인 Freedom House에 의하면 한국은 1987년까지는 전혀 자유롭지 못한 나라에서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최초로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 2등급,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 3등급, 평균 2.5등 급을 받아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간주되었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문민정부가 집권한 1993년에 시민적 자유 등급이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상향조정되면서 평균 2.0등급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러나 그 후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다가 2004년 12월 [Freedom in the World 2005] 보고서에서 한국의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 등급을 2등급에서 최고등급인 1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고 시민적 자유는 2등급을 유지함으로써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종합등급을 1.5등급으로 올려 놓았다.(임혁백, 2005에서 재인용)
화가 형성되는 과정이었으며,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문화가 경제, 사회를 주 도하고 국가(정치)는 이것의 종속변수가 되어버리는 문화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패러다임 변동의 핵심원리는 경제성장에 맞추어 정치 와 사회분야의 변화가 야기되어 정치, 사회분야와의 불균형(혹은 간극, gap)을 메 우는 방향으로 변동이 진행되는데, 문화가 “간극 메우기”를 주도(gap hypothesis)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영역(political sphere)에서는 참여의 확대가 발생하고, 경제영역(economic sphere)에서는 “시장합리성, 시장경쟁”이 증대하며, 사회영역 (societal sphere)에서는 “사적 이익의 극대화와 이해갈등”이 발생한다고 본다.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위와 같은 변동론적인 설명의 이면에는 사 회철학적인 새로운 담론들이 개입되어 있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정치적 변동과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 비판이 론, (신)제도주의, 탈근대주의, 신자유주의 같은 담론들이 다양하게 제기되어 왔 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사회구성원의 전반적인 의식과 가치관을 변화 시키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특히 참여의 확대라는 현상과 관련해 서는 비판이론적 담론이 보다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이론은 앞에서 살펴본 서구와 우리나라의 계획이론의 변동을 이끄는 지적 자원이기도 한데, 그 핵심 주장은 결국 사회구조와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verstehen)”와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을 통한 주체성(life world)과 정체성의 회복이다.43)
참여의 확대 현상에 숨어있는 새로운 의식과 가치관에는 물론 님비(NIMBY) 현상과 같이 이익집단의 이기주의나 기회주의적 속성 등이 개입되어 있기도 하 다. 그러나 새로운 담론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사회적 의식과 가
43) 1960년대 미국사회를 풍미했던 다원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각 사회계급은 동일한 목표를 갖기보다 는 경쟁을 하고, 현시대의 계획 및 정책결정 과정은 이러한 사실을 감추어 힘없는 계층의 이익을 무시 하려 한다고 보았다(Davidoff, 1965). 같은 현상을 보는 마르크스주의적인 해석은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 지배계층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공공정책․계획을 구사하여 사회의 지배구조를 재생산한 다고 보았다. 비판이론에서 보는 관점은 의회주의ㆍ국민주권주의ㆍ직접적 시민참여 등과 같은 민 주주의 이념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적 진실을 왜곡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민주주의 이념이 기득권층에 의한 계획체계를 “보편적인”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Habermas, 1973) 이다.
치관에는 “사회적 계약”이라는 현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공익과 사회복지의 약속, 그리고 기술적이고 관료적 제도 등의 이면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던 사 회적 모순과 왜곡에 대한 인식이 포함된다. 또한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적으로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으로서 자신 또는 자기가 속한 집 단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환경에 대해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실천의지를 가지 게 되는 것이다.44)
이처럼 멀게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에 들어선 우리나라 사 회에서의 참여 분출과 확대의 의미는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또한 문화적이고 규 범적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의미들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환경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공공계획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한 시대적 맥락으로서 고려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