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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한국 사회의 급속한 경제발전시기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던 가족의 기능과 역할이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급격하게 약화되 고 다양한 사회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해왔으며, 사회의 학대 및 폭력의 증 가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WHO에 의하면 폭력(violence)을 “물리적 힘 또는 권위의 의도적인 사용, 위협이나 혹은 실제적 사용을 모두 포함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사 용이나 다른 사람 혹은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사용을 모두 포함하는 것 으로서 손상, 죽음, 심리적 해, 발달 저해 혹은 박탈 등을 초래하거나 초 래할 위험이 매우 높은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기초하여 WHO는 폭력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자해․자살 혹은 이러한 시도 및 자기학대 등 자신에 대한 폭력, 둘째, 가족구성원 혹은 파트너 간 의 폭력과 학교폭력, 시설 내 폭력 등 타인 간의 폭력을 포함하는 대인 간 폭력, 셋째, 사회적 갈등에 따른 집단 간 폭력, 전쟁 등 정치적 폭력, 경제

적 폭력 등을 포함하는 집단 간 폭력으로 분류된다.

본 연구는 그중 두 번째 범주인 가족과 타인을 포함하는 타인 간 폭력 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학대 및 폭력에 대한 생애경로적 접근은 개별적 이고 대상별 접근의 분절성을 넘어 학대의 순환적 구조(Cycle of vio-lence)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나 가정 내 폭력은 일반적인 의미의 집단 간 폭력에 비하여 연속성, 습관성, 순환성을 가진 다는 측면에서 차별성이 있으며, 그 순환성의 고리는 일련의 생애사적 과 정에 대한 종단적 접근을 통해서만 분석되어질 수 있다. 즉, 생애발달적 관점은 가족을 주 단위로 하여 가족의 생활주기(family life cycle)에 따 라 부모-자녀관계의 역동성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한 다. 이로써 생애사적 접근은 다양한 대상별로 별개의 것으로 나타나는 폭 력의 상호연관성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의 요인, 과정 및 결과에 대한 통합 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기존의 생애경로적 접근은 가족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반면, 본 연 구는 아동의 청소년기 생애발달과정에서 ‘학교’라는 공간의 중요성에 주 목하였다. 학령기 이후 아동들은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 간을 보내게 되며, 선행연구는 가정과 학교 공간에서의 폭력 및 학대 경 험의 전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에서의 학 대 및 폭력경험은 부모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구성원 간의 수평적 또 는 수직적 폭력의 전이가 일어날 수 있는 반면, 청소년기 학교에서의 폭 력 및 학대의 경험은 폭력의 수평적 전이를 특징으로 하며 가정폭력과 대 별되는 고유한 특수성을 가진다. 따라서 본 연구는 아동의 성장과 발달의 주 공간으로서 가정과 학교에서의 폭력 및 학대 경험을 중심으로 생애경 로적 접근법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사회학습이론은 생애과정에서 나타나는 학대 및 폭력의 기제를 설명하

고 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Violence begets violence)”는 언명이 시사하듯 아동기 사회화과정에서 경험된 폭력 및 학대는 학습되고 내면 화 또는 외연화된다. 가정은 학교, 직장, 지역사회 공동체, 그리고 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사회의 권력불평등은 가 정이라는 생활공간 내에서도 반영되고 구조화되어 작동한다. 오랫동안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외면되어 왔던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 력 및 학대는 권력관계에 기초한 지배나 억압의 사회적 관계가 가족 내 연령별 위계와 성별 차이에 따라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의식세계가 생활경험을 통한 사회적 학습에 의해 재구성된다고 보는 사 회학습이론(Bandura,1973)은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경험되는 다양한 학대 및 폭력의 경험을 보다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다. 중복학대경험에 대한 선행연구는 아동기의 경험이 생애사 전반에서 가지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학대 피해 아동은 성년기에 이 르러 부부폭력 또는 노인학대(부모학대)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회학습이론은 이를 폭력의 내면화와 모방학습의 측면에서 해석한다. 즉, 아동은 학대 및 피해의 경 험을 통해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도덕적으로 내면화하고 폭력의 전략 및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의 학습과 내면화 과정을 거 친 아동은 성장기에 가정 또는 외부세계나 사회에서 분노와 좌절, 무력감 에 직면했을 때 가족원에 대한 가해행위나 폭력으로 학습된 폭력의 경험 을 외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학대를 경험한 아동의 경우 폭 력 피해자로서의 예속성, 순응성, 수동성, 무력감을 학습하고 내면화하여 성인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적극적인 방어와 대응능력을 결여한 채 습관적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사회학습이론은 생애사 전반을 관통하는 학대 및 폭력의 연속적 순환구조를 통해 작동하

는 기제를 설명해 줌으로써 학대 및 폭력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