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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7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분단체계는 남북한 모두에게 불필요 한 이념 대립과 군비 투자에 역량을 소모하게 만들어 번영과 사회발전에 큰 장애가 되어 왔다. 특히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권의 해체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주민들이 극심한 생활고를 경험했으 며, 이로 인해 인적 자원의 손실이 막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고 립을 벗어나기 위한 전술로 택한 핵 개발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요한 변인이 되고 있는 동시에 유엔재제로 인해 북한의 고립을 더욱 공 고히 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분단체제는 장기적인 번영에 큰 걸림돌이 된다.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강제된 분단체제 는 남한사회에서 반공주의를 강화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복지국가 를 만들어 갈 주체세력으로서 노동자를 약화시켰다. 여기에 막대한 군비 지출은 복지 확대에 투여할 재원의 압박을 가져온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 후 적극적으로 남북 평화체제 구축에 나선 것은 이렇게 분단체계가 남북 모두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 것이다.

현 정부의 5대 국정운영 목표 중 하나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남 북 모두가 번영할 수 있는 비핵화된 한반도를 지향한다. 이는 정치적인 통일이나 급진적 남북통합을 우선하기 보다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간 관계 회복 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체계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한반도 전역에 평 화가 정착되고 이를 기반으로 남북 주민들의 삶의 질이 증진되는데 있다

고 할 수 있다. 과거 분단체제에서 불필요하게 소모했던 남북의 역량을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 투여해서 궁극적인 공동번영으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로운 한반도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이 나아가 남북 주민 들의 복지 향상으로 이어지는 이상적인 목표를 평화복지체제로 개념화하 고 이를 위해 필요한 방안을 단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기획의 첫걸음 이다. 이 연구를 포함하여 5개년에 걸쳐 평화복지체제 구축 방안 도출에 필요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 가능한 정책방안을 모색해 나아갈 것이다.

평화복지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필요한 정치·군 사적 접근, 경제적 교류 외의 삶의 질을 공동으로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접 근이 필수적이다. 남북의 정치·군사적 화해가 각 지역의 주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 기득권층의 부와 권력을 강화시키는 방향 으로 귀결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평화라 할 수 없다. 적극적인 의미의 평 화는 단순한 갈등의 봉합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구성원들의 삶의 안정과 번영이 이루어져야 실현되는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이 정치·외교적 긴장 이 높은 상황에서 비정치·군사 분야에서의 교류를 정치적 관계 악화를 보 완할 수 있는 기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시에 인도주의적인 의 의를 지니고, 북한 주민들의 최소한의 생활과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 다. 또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지난 2017년 7월 4당대표들과의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순방의 성과 를 설명하면서 “인도주의적 대화는 우리가 주도하고 이 역시 비핵화에 도 움이 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박지환, 2017.7.19.). 요 컨대 북한에 대한 사회적 접근과 비정치·군사 분야에서의 교류 확대는 평 화복지체제로 나아가는 기본적인 단계이다.

전략적으로 볼 때에도 정치·군사·외교적 논의는 남북뿐 아니라 북미,

미중, 북일 등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입장들이 복잡하 게 얽혀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단독의 기획과 노력만으로는 갈등을 줄이 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군사·외교적 차원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 나아가는 과정 에서 더 미래지향적인 전략이 요청된다. 또한 정치·외교 관계와 별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개별 기구 중심의 인도주의적 접근은 보다 더 미래지향적으로 확대된 한반도 평화복지체제 구축, 한반도 사회통합 등의 관점에 기반한 전략적 남북교류로 발전될 때 장기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복지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비정치·

군사·외교적 과제는 무엇일까? 정치·군사·외교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단 계적 평화협정이 중요한 과제라면 사회적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남북 간 의 사회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사 회격차가 지금과 같이 크게 벌어진 상태로 유지될 경우 남북의 생활 경험 차이에서 발생하는 상호 이질성은 계속 확대될 것이고 이는 상호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번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남북을 포함한 전반적인 한반도 내의 사회격차는 구성원들 의 박탈감을 가져오고 삶의 만족도를 저해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사회격차란 사전적 의미로 개인마다 수입, 재산, 생활양식, 정치적 영 향력 등이 서로 다른 정도를 의미하며, 이로 인한 격차사회는 중류 계급 이 붕괴하여 사회 구성원의 빈부, 생활수준 따위가 양극화 하는 사회를 지칭한다(다치바나키 도시아키, 2013). 즉, 사회격차는 소득 격차만이 아 니라 정보격차, 의료격차, 교육격차 등 보편적 인권의 보장과 향유에의 차이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개념이다. 사회격차는 비단 오늘의 한국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미래의 남북한 통합사회

를 상상해 본다면 한반도 차원에서 전개될 다양하고 깊은 문제성을 보유 한 개념이기도 하다.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2018년 기준 남한의 국가 예산 규모는 27억6천3백만 달러인데 반해 북한의 국가 예산 규모는 8천 2백만 달러에 불과하다(통계청, 2020, p. 214). 국민총소득(GNP)은 북 한이 35조8천9백5십억 원인데 반해 남한은 1,905조8천3백8십억 원으 로 50배 이상 차이가 난다(통계청, 2020, p. 109). 이를 인구를 고려하여 계산한 1인당 국민총소득은 한국이 북한에 비해 약 26배가 높다. 2020 년 현재 남북한의 경제 사회적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북한 사회 안에서는 어떠할까?

북한은 오랜 시간 자립경제를 표방하고 글로벌 차원의 교류협력에 매 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소위 ‘시장 화’의 시간을 거의 30여 년째 보내고 있다. 시장경제가 제공하는 경제적 풍요는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으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배태한 북한의 시장도 시장화 이후 이전보다 나은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순 있지만, 모든 주민들이 공평하게 누릴 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장화 이후 북한에서도 소득 격차가 발생하고 소득 격차는 부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고, 부의 불평등은 기존 북한 사회가 관행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권력과 신분과의 재결합을 통해 다양한 사회격차를 발생시킬 수 있다.

최근 북한 연구 동향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2003 년 북한에서 종합시장(market place)이 등장한 이후 관련 연구들은 북 한에서 시장을 매개로 한 장사활동이 소득차이를 발생하고 이 중에서도 사회주의 속에서 생성된 붉은 자본가로서 ‘돈주’라는 개인 축재 상인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는 거시적 측면에서 북한 사회의 계층·세대·지역적 격차를 논하기도 하고, 미시적 측면에서 소득·주거·교육·정보·건강 부문 의 격차를 추적 분석하고 있다. 물론 연구자 마다 사회격차를 논증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사회균열의 측면에서 갈등과 정쟁의 점화를 논하 는 한편 사회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계층의 등장과 선진사회로의 이행 을 논하기도 한다.

5년에 걸쳐 진행될 본 연구기획에서는 남북한 사회통합의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현재의 북한 사회를 ‘격차(gap)’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중기 연구를 통해 북한의 생활실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남 한의 생활과 비교하여 격차를 측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1차 연구 에서는 남북한 격차해소를 위한 교류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북한 사회의 거시적 균열지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공식구조와 비공식 구조를 넘나들 면서 구조를 횡단하는 미시적 주민생활의 실태와 이에 따른 불평등에 포 커스를 맞춰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생활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구조적 파행을 분석하며, 향후 남북한 통합사회 건설을 위한 격차해소 방안을 도출하는데 학술적·정책적 기여를 하고자 한다.

덧붙여 본 연구에서는 북한 사회를 분단체제에서 정치적 통일이 필요 한 한민족국가로 간주해 온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모색 한다.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특성과 동시에 저개발국가로서

덧붙여 본 연구에서는 북한 사회를 분단체제에서 정치적 통일이 필요 한 한민족국가로 간주해 온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모색 한다.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특성과 동시에 저개발국가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