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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에서 개발협력이 본격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전쟁으 로 인한 피해국의 재건과 신생독립국의 빈곤 및 기아가 국제관계의 주요한 의제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개발협력은 미국 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의 세력 확대 및 저지를 목적 으로 활발히 추진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진영 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안전보장 개념의 국제개발 협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한편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195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원조를 시작으로 저개발국에 대한 각종 원조를 통 해 사회주의 체제를 확대하는 도구로 활용하였다(주동주 외 2009).

이 시기 신생독립국들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지배국들은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적 부담과 냉전체제라는 국제적 맥락 아래 양자 협력을 토대로 국제개 발협력의 틀 안에서 경제적 원조를 활발히 추진하였다. 따라서 미국과 서유 럽 국가들의 전후 복구와 구식민지 지원을 계기로 공적 개발원조는 오늘날 저개발국들을 위한 개발협력정책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농업·농촌부문의 개발협력은 산업화 정책에 집중된 국제사회의 전략에 의해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 개발분야로 인식되지 못하였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을 대표하는 두 진영 간의 대결을 기반으로 선진 국과 저개발국 사이의 경제적인 격차의 해소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

각되면서 동서 간의 평화공존기조의 방향을 원조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 기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안전보장보다는 경제개발 달성과 남북 사이의 경 제격차 해소가 원조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된 시기이다. 이 시기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제창한 ‘제1차 UN 개발 10년’이 채택되면서 저개발국의 연간 경제 성장률을 5%까지 증가시키기 위해 개발원조를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할 것 과 각 선진국이 GNI 중 1%를 저개발국 원조에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1960년 원조에 대한 협의 및 정책조정을 목적으로 유럽경제협력기구 (OEEC)산하 개발원조그룹(Development Assistance Group, DAG)이 설립되었 으나, 이후 OEEC가 OECD로 개편되면서 DAG 또한 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로 개편되었다. 이 시기에는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협력이 급 증한 시기로 DAC가 주축이 되어 공여국의 개발원조 노력과 정책에 관한 평 가, 의장 보고서, 원조통계 편찬 등이 시작되었다. 또한 1960년대 말부터는 주요 공여국을 중심으로 고위급회의를 개최하여 저개발국의 농업개발과 식 량생산에 대한 지원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전반적인 국제사회의 경제성장 기조가 산업과 농업을 필두로 구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농촌 부문의 개발협력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도구라는 사회적인 개념이 도입되 어 생산, 유통, 연구 등 일련의 과정을 국가주의(Nationalism)로 추진하는 경 향이 지배적이었다.

1970년대는 세계경제의 침체로 인한 국제개발협력의 후퇴시기라 할 수 있 다. 당초 목표하였던 저개발국의 5% 경제성장은 달성되지 못하였고, 공여국 의 GNI 대비 1%의 원조 또한 저조하여 경제적인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1973년 발생한 제1차 오일 쇼크로 시작된 세계경제의 침체로 공여국의 원조 감소는 외부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저개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 쳤다. 더불어 과거부터 축적된 채무 및 외화 부족현상으로 저개발 국내의 절 대빈곤 수치와 소득격차가 급증함에 따라 일부 저개발국에서는 선진국의 부 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의견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저개발국의 농촌지역은 제1차 오일쇼크로 세계경제의 침체, 물가상승, 외 부의존도 급증, 누적 채무상환 능력 약화 등의 다양한 문제로 인해 다년간

생산능력이 저하되어 식량위기마저 경험하게 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였 다. 따라서 기존의 개발전략인 한 지역의 경제력에 의해 자동적으로 주변 지 역에 긍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이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전지역 거주민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개발전략에 채택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는 개발의 주요 목적이 인간 자체에 있다 는 인간 중심의 개발전략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중점적으로 제기된 이슈는 농촌지역의 자연재해 및 가뭄에 따른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 략이다. 이 시기는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목표를 설정하여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또한 저개발국의 식량자급률 향 상에 중점 지원하는 개발협력사업이 추진되었다.

1980년대는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로 인해 저개발국의 누적된 채무 문제가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최빈개도국에 대한 채무경감 조치를 합의하고, 세계은행과 IMF는 저개발국 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시장을 왜곡하는 정부의 개입정책이며, 시장기구 와 민간기업의 역할증대가 개발의 관건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하였다(KOICA, 2008).

더불어 이 시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에서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대규모의 긴급지원 필요성이 대두되자 국제개발협력분야에 서 NGO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는 공여국들의 관료적 대응과 비효율적 운 용 때문에 기아로 인한 피해는 더욱 증가하였기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의 대 응이 더욱 절실히 요구가 되었다. 하지만 공여국, NGO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곤 및 기아 등 국제사회의 문제는 개선되지 못했다. 또한 협력대 상국의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정치적 능력, 정책 결정과정에서의 투명성 등 이 요구되는 선정(Good Governance)의 중요성과 개발주체로 참여하는 주인 의식 등이 강조되는 개발협력의 중요성도 주요 이슈로 대두되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주요 현안들의 대응을 위해 OECD/DAC 고위급회담을 통해 ‘발전을 위한 개발전략 및 프로그램과 원조조정을 위한 시사점’에 대한 원칙을 채택하고 협력대상국의 조정능력 강화에 주력하였다. 농업·농촌부문

의 개발협력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기술협력과 공여국의 초청연수 및 훈련 프로그램을 통한 인적자원 개발에 주력하였다. 한편 전반적인 원조의 효율성 제고와 경제침체기의 공여국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원조에 대한 평가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였다(OECD/DAC 2006).

1990년대는 소련의 붕괴로 인해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정치적 양극화가 해 소되는 시기로 세계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하였다. 세계화가 진전되기 시작하 면서 범지구적 문제들인 누적 채무, 통상, HIV/AIDS, 인구, 지구환경, 여성, 빈곤문제 등 포괄적 분야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주목할 점은 경제성장 위주의 개발협력을 추진한 결과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열대림 파괴 등의 환경문제가 범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다는 것이 다. 1990년대 개발협력의 정책방향과 우선 과제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 속가능한 성장과 참여적 개발이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1996년 OECD/DAC 고위급 회담에서 21세기 개발협력전략에서는 사회개발, 경제적 풍요, 환경의 지속 가능성 등을 향후 ODA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여 공여국의 협력을 요청 하였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주요 의제의 촉진을 위해 참여적 개발과 선정 (Participatory Development and Good Governance)을 핵심과제로 판단하고 정 부역할의 중요성, 도덕적 가치 및 역량강화 등에 초점을 두었다. 특히, 국제 사회에서는 개발협력의 경험을 토대로 선정(Good Governance)이 원조효과를 증가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라 평가하고 협력 대상국의 선정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도입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회개발과 인간안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제 개발협력의 최종 목적이 인간의 자유 확대, 복리 증진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사회개발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UNDP의 인간개발보고 서에서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인간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 존재하는 분야로 식품, 건강, 환경, 개인, 지역사회, 정치, 경 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하지만 사회개발 및 인간안보 를 위협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빈곤으로 인식되면서 인간의 잠재능력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빈곤이 초래된다는 시각에 입각하여 식량안보 및 농

촌개발에 초점을 두는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1996년 세계식량정상 회의(World Food Summit)가 FAO의 주도로 개최되어 식량안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각국 정부가 기아의 근본원인인 빈곤 극복을 최우선 국가정책으로 시행하는 정치적 의지를 확립하였다. 이는 향후 ‘식량안보에 관한 로마 선언 및 행동계획’을 채택하여 빈곤퇴치와 평화유지, 식량안보를 위한 국제개발협 력 실현 및 제도개선 등을 각 국가에 촉구하고 2015년까지는 영양실조 인구 50% 감소를 결의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OECD/DAC는 ‘21세기 개발 협력전략(Shaping 21st Century: The contribution of development cooperation)'을

촌개발에 초점을 두는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1996년 세계식량정상 회의(World Food Summit)가 FAO의 주도로 개최되어 식량안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각국 정부가 기아의 근본원인인 빈곤 극복을 최우선 국가정책으로 시행하는 정치적 의지를 확립하였다. 이는 향후 ‘식량안보에 관한 로마 선언 및 행동계획’을 채택하여 빈곤퇴치와 평화유지, 식량안보를 위한 국제개발협 력 실현 및 제도개선 등을 각 국가에 촉구하고 2015년까지는 영양실조 인구 50% 감소를 결의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OECD/DAC는 ‘21세기 개발 협력전략(Shaping 21st Century: The contribution of development cooperation)'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