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사적집행의 의의

문서에서 법과 경제학 (페이지 82-86)

공정거래법의 집행에는 공적집행(public enforcement)과 사적집행(private enforcement)이 있다. 공적집행은 공정거래위원회 혹은 법무부 등 공정거래 당국에 의한 법집행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정거래법 집행의 거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공적집행은 대부분 위법행위에 대한 금지명령(injunction)과 이에 병과되는 벌칙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사적집행은 공정거래법상 위법행위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해당사자가 손해 배상(damage compensation) 차원에서 가해자를 대상으로 사적소송(private litigation)을 제기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제56조는 사업 자 또는 사업자단체는 공정거래법의 규정을 위반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에는 당해 피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고,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는 그 피해자에 대하여 고의 또는 과실 이 없음을 들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청구권 의 재판상의 주장을 제한하고 있는 동법 57조는 손해배상청구권은 공정거래 법의 규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시정조치가 확정된 후가 아니면 이를 재판상 주장할 수 없고,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를 행사할 수 있는 날부터 1년을 경과한 때에는 시효에 의하여 소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 확정을 손해배상청구권의 전제 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순수한 사적소송을 금지하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위법한 행위로 확정한 사건만을 사적소송의 대상으로 허용하고 있다. 특히 시정조치 확정의 의미가 시정권고 이상의 시정조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공정 거래위원회에서 경고 또는 무혐의처리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을 근거로 한 사적소송이 원천 봉쇄될 수 있다.1)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정거 래사건 중 혐의가 있다고 인정된 사건의 2/3 이상이 경고처분을 받았고, 여 기에 무혐의처리된 사건을 합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의 상당부 분이 사적소송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적소송을 중심으로 한 공정거래법의 사적집행이 우리나라에서 거의 이 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해야 하는 손 해배상청구권의 제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정거래법에 대한 인식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을 행정부의 행정행위로 인식하

1) 공정거래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 확정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지만 민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여 공정거래법상 피해자가 공정거래법에 의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제한행위에 따른 경제적 피해의 정 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원의 실정을 감안할 때 설사 손 해배상소송을 제기한다고 하여도 충분한 손해배상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2)

<표 1> 사건유형별․조치유형별 시정실적

(81년∼95년 말 현재) 조치

유형 고발 과징금

부 과

시정 명령

시정 요청

시정

권고 경고 계

시장지배적

사업자남용행위 - - 13 - 5 5 23 기업결합 1 - 2 - - 403 406 경제력집중

억제위반 2 20 41 - 8 65 116 부당공동행위 3 11 46 - 28 78 155 사업자단체경쟁

제한행위 8 1 165 - 34 202 409 불공정거래행위 39 128 943 - 676 1,663 3,321 부당국제계약 - - - - 71 2,196 2,267 불공정약관 - - 38 19 137 1 195 불공정하도급

거래행위 39 - 459 - 66 1,518 2,082 계 92 160 1,707 19 1,025 6,131 8,974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연보 , 1996년판, p. 349.

사적소송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공정거래위원회나 법무부와 같은 행정부 에 의한 공적집행 없이도 공정거래법이 자동집행(self-enforcing)되도록 만든 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에 1890년에 셔먼법이 제정된 이후 의회가 셔먼법 집행을 위해 예산을 전혀 배정하지 않았고, 또 1903년까지 법무부가 셔먼법 집행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미국의 경우에 공정거래법이 주로 민간 부문에 의해 자동집행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공적집행이 이루어지더라 도 광범위하게 집행이 이루어지도록 입법의도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2) 지금까지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단 1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정거래사건 과 관련한 법원의 태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을 보여준다.3) 이처럼 미국의 공정거래법은 초기 상당기간 동안 사적집 행에 의존하였지만 실제로는 사적집행도 활발하지는 않았다. 1914년까지 사 적소송에 대한 자동집행은 별로 실적이 없었고, 사적소송에서 원고의 승소확 률도 10%를 넘지 못했다.

1914년에 공정거래위원회법(Federal Trade Commission Act)과 클레이튼 법(Clayton Act)이 통과됨에 따라 공정거래법 집행의 상당부분이 공적집행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기관에 의한 공적집행은 위법행위를 정부가 밝혀주기 때문에 여기서 드러난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사적소송이 뒤따르 는 효과를 낳아 사적소송도 같이 발달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클레이튼법 제4조는 사적소송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조항들을 담고 있는데, 이는 공정거래법상 위법행위에 의해 피해를 입은 어 떤 사람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승소할 경우 피 해액의 3배배상, 소송비용, 그리고 변호사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클레이튼법에 이 조항이 도입된 이후에도 공정거래관련 사적소송이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다가 196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4)

그러면 사적집행은 왜 필요한가? 공정거래법상의 벌칙조항에는 금지명령 (시정권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벌금, 징역 등이 있다. 법률상의 과징금과 벌금의 상한액이나 징역의 상한(3년)은 상당히 무거운 편이지만 이러한 벌칙 이 실제에 있어서는 가볍게 부과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위법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제도상으로 매우 강력한 집행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행에 있 어서는 과소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이유는 첫째,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력한 제재수단을 가 하는 경우 해당 피심인의 반발이 우려될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가 사건에 대한 강력한 위법성 입증능력이 있고, 동 행위를 규제하는 규제근거의 해석에 자신이 있는 경우에는 피심인의 반발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 피심인이 동 사건을 법원에 제소 하였을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패소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적절한 집행강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과소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권을 사실상 독

3) Kenneth Elzinga and William Breit, The Antitrust Penalties: A Study in Law and Economics, Yale University Press, 1976, p.67 참조.

4)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사적소송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연방대법원이 사적소송에 있 어서 위법행위자의 책임범위를 확대하고, 사건절차상의 장애요인을 제거한 데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격카르텔과 관련한 사적소송의 승소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심인에게 징역형과 같은 강력한 제재수단을 사용하 기 위해서는 피심인을 검찰에 고발해야 하는데 검찰이 공정거래법 관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원치 않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에 규제권을 넘겨주 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과소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설사 사건 의 위법성이 확실하고 반경쟁적 성격이 강하여 법원이 사건을 다루게 되는 경우에도 법원이 공정거래사건의 경쟁제한성을 평가절하하는 경우에는 공정 거래사건에 강력한 제재수단이 사용되지 못할 수 있다.5)

<표 1>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공정거래사건 중 과징금이 부과되거나 고 발조치되는 사건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과징금은 불공정거래행위와 경제 력집중억제 위반에, 고발은 불공정거래행위와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와 관련 한 사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공정거래법의 목적인 경쟁촉진 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공동행위나 사업자단체의 경쟁제한행위에 대해서는 규제실적도 적을뿐더러 규제강도도 낮은 편이다. 불공정거래행위 와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에 고발조치가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동 행위들의 경쟁제한적 성격 때문이라기 보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피 심인들이 시정조치를 잘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규제의 빈도와 강도가 높은 불공정거래행위,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 경제 력집중억제위반행위 등은 위법행위의 적발이 용이하고 이해당사자가 분명하 므로 피해구제와 위반행위억제가 용이하다. 반면에 공동행위와 사업자단체 의 경쟁제한행위는 위법행위의 적발이 대단히 어렵고 피해자가 불특정다수 인 경우가 많아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적집행만으로는 일반적으로 법이 과소집행될 가능성이 있으며, 경쟁제한 성이 강하지만 적발이 어려운 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어렵고, 공적집행 비용의 한계때문에 과소집행될 가능성이 있으며, 관료들의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집행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적집행은 공 적집행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연구의 대부분은 어떤 행위가 과연 반경 쟁적인지 아니면 친경쟁적인지를 판단하는 것들이고, 법학에서는 공정거래법 의 해석상 어떤 행위가 위법한 행위인지 혹은 적법한 행위인지를 판단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벌칙이 어떤 형태이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수준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

5) 이러한 경향은 미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Elzinga and Breti(1976)의 연구에 의하면 1966년부터 1974년 사이에 징역형을 선고받은 18개의 사건의 실제 복역기간은 불과 12.8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당시의 법정최고형인 징역 1년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벼운 형량이다.

Elzinga and Breit(1976), 전게서, pp.34∼37 참조.

문서에서 법과 경제학 (페이지 8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