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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공정성 및 다양성 47)

현재 우리나라 방송광고시장은 KOBACO에 의해 광고거래와 요금 이 철저하게 규제되고 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방송(광고)시장에는 방송의 공공재로 인한 시장실패가 사적 재화인 광고에 의해 완벽하 게 해소되어 시장실패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정부가 방송광고 의 거래와 요금 등을 규제할 이론적 당위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KOBACO에 의한 방송광고시장 규제를 옹호하고 방 송광고시장에서의 자율화 혹은 경쟁도입을 반대하는 많은 주장들이 있는데 그중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민방 및 종교방 송 보호론이다. 현재 지역민방과 종교방송의 광고요금은 규제가 없 을 때의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규제되어 있고, 높은 광고요금 으로 인한 수요부족은 소위 끼워팔기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따라서

KOBACO체제가 사라지고 방송광고시장에 경쟁이 도입되면 그동안

보호받아 왔던 군소 종교방송들은 광고판매 부진 혹은 광고수입의 저하로 인해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더는 존립하기 어렵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방송의 다양성이 훼손되어 결국 공익이 저해된다는 주장이다.

47)본 절은 김재홍(2005)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제5장. 자율화 반대논리 비판 161

(1) 방송의 다양성과 공익

방송이 전달하는 것은 크게 정보와 흥미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 보제공은 사실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할 것인데 만일 정보가 독점 적으로 제공된다면 시청자들은 그 정보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판단 할 비교대상을 갖지 못하여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를 갖게 될 위험성 이 높아진다. 시청자들이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갖는 것은 더 합 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공익을 증진시킨 다. 따라서 방송의 독점, 즉 정보의 독점적 제공은 공익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방송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정보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방송의 다양성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시청자들의 선호가 다양 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선호를 가지고 있어 흥미와 만족 을 느끼는 프로그램들이 서로 다른데, 만일 방송프로그램이 다양하 지 못하다면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통해 얻는 흥미와 만족은 그만 큼 떨어지게 된다. 프로그램의 종류가 다양해야 하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과 승용차들이 팔리고 서로 다른 소비자들이 서 로 다른 선택을 하면서 공익이 증진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결국 공익적 차원에서 방송의 다양성에 관한 핵심은 시장이 방송 의 다양성을 보장하는가에 있다. 더 구체적으로, 경쟁이 허용되면 군소 방송사들이 도태되고 그에 따라 방송의 다양성이 약해져 사회 후생이 저해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KOBACO를 통한 지역민방 및 종교방송의 보호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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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품차별 이론의 시사점

경제학의 상품차별(product differentiation)이론은 시장은 공익을 극 대화하는 최적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다양하지 못하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소비자의 다양한 선호가 만족되지 않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다양하면 이 역 시 공익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은데 그 이유는 다양성 증진의 편익(benefit)에 비해 그 비용(cost)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 어 소형 승용차가 100종류가 있고 101번째 새로운 모델이 판매된다 면 101번째 새로운 모델 제공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만족도 증가보 다는 그 차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더 커서 사회적으 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양성 증대의 편익과 비용이 일치되는 최적의 다양성 수준이 존 재할 것인데 시장은 이러한 최적의 다양성을 항상 보장하지는 않는 다는 것은 경제학의 잘 알려진 결과이다. 그렇다면 지역민방 및 종교 방송의 존재는 부족한 방송의 다양성을 높이는 공익적 현상인가 아 니면 방송의 다양성을 억지로 유지하는 반공익적 현상인가? 경제학 의 연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시장검증(market test)’라는 답을 제시한 다. 현재의 다양성 수준이 ‘부족한 것인지(too little)’ 아니면 ‘과도하게 많은 것인지(too many)’를 판단할 능력이 정부에는 없기 때문에 그냥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차선이라는 것이다.48) 시장검증이 최적의 다

48)물론 최적의 다양성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 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장 극단 적인 경우로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에 막대한 초기투자비용이 소요되어 단 한 개의 기업만이 존재하는 것이 사회후생의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소위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인 경우에는 단지 두 개의 기업일지라도 다양성이 과

제5장. 자율화 반대논리 비판 163 양성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인위적으로 다양성을 억제하거나 만들 어내는 데 따른 공익저해보다는 더 낫다는 것이다.49)

정보제공이나 흥미제공이란 관점에서 방송시장에는 이미 매우 다 양한 매체들이 존재한다. 지상파 TV와 라디오, 지역민방과 종교방 송, 케이블 TV와 위성방송, 그리고 인터넷 방송과 같은 새로운 방송 매체들이 있다. 그 밖에도 방송시장과 대체관계를 가지면서 경쟁하 는 다양한 매체들, 즉 신문, 잡지 등을 통해서도 정보와 흥미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방송매체의 숫자가 최적인지에 대해 서는 이미 지적한 것처럼 그 누구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민방과 종교방송들을 인위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분명 시장검증에 위배되는 정책이다. 광고요금을 높게 책정하고, 팔리지 않는 광고시간을 강제로 판매한다는 것은 지역민방과 종교방송의 광고에 대한 광고주들의 선호가 매우 약함을 의미한다. 광고주들이 지역민방과 종교방송의 광고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이러 한 방송의 청취율이 높지 않아 광고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고, 청 취율이 낮은 이유는 지역민방과 종교방송이 시청자의 다양한 기호 를 잘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중소방송사들로 인한

도하다는 점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은 이러한 극단적 자연 독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10개 혹은 17개의 방송사가 최적이라는 식의 판단 은 정확성보다는 오류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49)과당경쟁, 중복투자 등을 이유로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정부의 흔한 관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러한 경쟁제한 규제는 수없 이 많았지만, 삼성자동차의 시장진입을 억제했던 정부규제는 많은 사람들이 기 억할 것이다. 당시 과도한 다양성을 이유로 삼성승용차의 진입을 억제했지만, 금은 삼성승용차의 등장이 국내 승용차의 다양성을 높이고 다른 자동차회사들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점에 반론이 없을 것이다. 삼성승용차의 사례는 정부가 최적 의 다양성을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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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증대와 그로 인한 청취자들의 후생증진 효과는 이들을 인위 적으로 보호하는 비용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3) 보편적 서비스 이론의 적용가능성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란 소득수준, 지리적 조건, 신체조건 등 소비자의 특성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제공받아야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보편적 서비스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하는 개념으로서 어떤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부가 법률 등에 규정하거나 혹은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흔히 전력, 통신, 우편, 교통 등과 같은 기본적 서비스들이 보편적 서비스에 해당되는데, 우리나 라의 경우 시내전화, 전기, 우편, 대중교통 등이 보편적 서비스로 간 주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산간지방이나 전라도 낙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막대 한 비용이 소요된다. 높은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러한 지역에 제공되는 전력은 다른 지역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것 이 경제원리에도 맞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전력요금이 너무 높아 전력사용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 소비자들이 생길 것인데 이러한 현 상은 전력이 보편적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다. 그래서 발생하는 비용과 상관없이 산간지방이나 낙도나 도심이 나 동일한 수준의 요금으로 전력을 공급해서 모든 국민들이 보편적 으로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내전화요금을 낮게 유 지하는 것이나, 거리에 상관없이 우편요금을 동일하게 책정하는 것 등은 모두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정부정책의 결과이다.

제5장. 자율화 반대논리 비판 165 그렇다면 방송은 보편적 서비스에 해당되는가? 필자의 주관적 판 단이지만 전력이나 전화 등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삶에 매우 중요한 기본서비스란 점에서 방송에도 보편적 서비스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지상파 TV는 온 국민이 누구나 시청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낙도나 산간지방에서도 지상파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지국 등을 설치하는 것은 공익차원 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종교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간주할 수 있느 냐인데, 종교방송은 당연히 보편적 서비스에 해당될 수 없다. 종교 방송은 특정 종교단체가 자신들의 신앙적 목적을 위해 만든 방송이 다. 물론 종교방송이 일반 방송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 다. 그러나 만일 종교방송이 종교적 내용이 아닌 일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방송의 본질을 잃은 것이다. 즉 기존의 타 방송과 차별성이 없는 일반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종교방송 의 보호는 방송의 다양성 증진 혹은 보호라는 목적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따라서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말이다.

종교방송의 차별성은 역시 종교적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의 제공 에 있다. 그렇다면 종교적 프로그램은 모든 국민이 소득수준, 지리 적 조건, 신체적 조건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서비 스에 해당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종교적 프로 그램은 특정 종교를 가진 일부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방송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조차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필수적 방송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보편적 서비스의 관점에서 볼 때도 종 교방송의 인위적 보호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