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방송광고시장의 이익집단

어떤 제도나 규제가 명백하게 부당하거나 비효율적임이 입증되었 다는 사실이 곧 그러한 제도나 규제가 개선되거나 폐지됨을 의미하 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혁(reform)은 관련된 여러 이익집단들의 이 해관계에 현저한 변화를 가져다주는데, 특별히 개혁으로 인해 손해 를 보게 되는 이익집단이 개혁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은 극히 자연 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러 한 저항을 설득하거나 극복하는 데 따른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지불해야 한다. 개혁에 대한 저항이 강해서 개혁에 따른 거래비용이 개혁의 사회적 편익보다 크다면 비록 현재의 제도가 효율적이지 못 할지라도 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개혁으로 인해 손해를 본다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즉 개혁의 피해 자는 곧 현재의 부당한 제도로 인한 수혜자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 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광고정책이 부당하거나 혹은 비효율적이 라는 사실은 곧 현재의 제도하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있는 이익 집단과 부당하게 손해를 보고 있는 집단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방송 광고정책의 합리적 개선은 새로운 수혜자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당한 수혜자와 부당한 피해자를 원래의 자연 스런 상태로 돌려놓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현재 소위 KOBACO체제로 칭해지는 우리나라의 방송광고정책은 분명 정당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는 곧 KOBACO체제를 지지하는 이익집단들은 현재 부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개혁을

제6장. 이익집단 분석 175 지지하는 이익집단들은 현재 부당하게 손해를 입고 있음을 의미한 다. 과연 어떤 이익집단들이 개혁으로 인해 그들의 (부당한) 기득권 을 상실하고 어떤 이익집단들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이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 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1) KOBACO체제의 수혜자

우선 KOBACO체제의 수혜자들은 KOBACO, 문화체육관광부와 정치권, KBS, 지역민방 및 종교방송사 등과 같은 경쟁력 없는 중소 방송사, 신문사, 그리고 공익자금(방송발전기 금)의 수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SBS는 개국 초기에는 수혜자 집단에 포함되었으나, 현재는 피해자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KOBACO 자신이 현재의 방송광고제도의 최대 수혜자임은 새

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포함한 정치권이 규제의 수혜자임도 극히 일반적인 사실이므로 추가적인 설명은 필 요 없을 것이다.

KBS는 공영방송이란 이유로 시청료 수입의 배타적인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타 상업방송들과 마찬가지로 광고수입도 얻고 있다. 방송 및 방송광고시장이 경쟁적이라면 공익성을 추구해 야 하는 KBS는 일반 상업방송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효율적인 경영과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 제작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 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시장경쟁이 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방송사의 존립과 수입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물

176 KOBACO체제 비판 및 미디어렙 경쟁도입

론 이미 제4장의 이론적 모형에서 밝혔듯이, KOBACO의 요금규제 는 지상파 TV 3사의 수익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KBS도 KOBACO체 제의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KBS의 대주주가 정부라는 점에서 KBS가 결코 KOBACO체제에 반대하거나 경쟁도입 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인바, KBS를 일반적 정치권과 함께 현 체제 의 수혜집단으로 분류함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종교방송사들은 특별한 종교적 목적에 의해 설립된 방송사들이 다. 이들 종교방송사들이 보편적인 시청자나 청취자를 확보하지 못 하는 것은 설립목적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KOBACO는 스스로를 미디어렙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안정적인 광

고수입을 보장해 왔다. 물론 KOBACO가 없었더라면 종교방송사들 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즉 종교방송사 들이 경쟁력이 약한 것은 KOBACO의 규제와 지원 때문이기도 하다 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방송사들이 KOBACO체제의 주요 수혜자라 는 사실은 분명하다. 최근 KOBACO체제의 종식과 미디어렙 시장에 의 경쟁도입의 움직임에 대해 기독교와 불교 등 주요 종교계들이 모 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은 이들이 KOBACO체제의 수혜자 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신문사들도 현 방송광고제도의 중요한 수혜자이다. 방송광고요금

이 KOBACO의 통제하에 지속적으로 억제되는 동안 신문광고요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물론 광고료 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 한 현상은 신문사들이 광고주를 확보하는 데 오히려 장애요인이 된 다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방송광고 분야에서는 광 고료나 그 밖의 수단들을 통해 광고주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사전적 으로 봉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총 광고시간도 엄격하게 제한되어

제6장. 이익집단 분석 177 있기 때문에 광고료 차이에 의한 신문광고에 대한 수요감소는 발생 하지 않고 있다. 만일 방송광고시장이 자율화되어 광고료가 상승하 게 되어도 광고효과가 월등하게 높은 방송광고에 대한 수요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이는 곧 기업들이 신문 등 타 매체에 사용할 광고비를 줄일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인 식하여 신문사들이 KOBACO체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KOBACO체제의 수혜자들은 바로 오랫동안 소위 공익 자금을 지원받았던 많은 단체 및 개인들이다. 이들은 공익자금이 어 떠한 정당성을 가지고 조성되었는가를 판단함 없이 자금지원을 받 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재의 체제를 지지하는, 즉 현재의 체제 에 포획된(captured)이익집단들인 것이다. 공익자금이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2) KOBACO체제의 피해자

한편 개혁으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되는 집단들은 MBC, SBS, 광고 주, 시청자로 대별된다. MBC는 오랜 기간 지상파방송사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 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쟁 력 우위가 광고수입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현 체제의 피해집 단으로 볼 수 있다.52)한편 SBS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민방으

52)물론 최근에는 MBC가 타 방송사들보다 항상 더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지는 않 . 그러나 지난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평균적으로 볼 때 MBC의 시청률이 타 방송사들의 시청률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로부터 MBC가 광고수입의 상대적 손해 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178 KOBACO체제 비판 및 미디어렙 경쟁도입

로 출발했다. 따라서 개국 초기에는 광고의 효과가 다른 지상파방송 사들보다 낮고 그에 따라 광고료도 낮게 책정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KOBACO의 일률적 광고요금 정책에 의해 (단 계적 조정을 거쳐)타 방 송사들과 같은 수준의 광고료를 받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막대한 광고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SBS가 짧은 시간에 기존 지상파방 송사들과 대등한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KOBACO의 요금 규제로 인한 수입보장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 나 중요한 사실은, SBS는 더 이상 KOBACO체제의 수혜자가 아니 라는 점이다. 개국 초기에는 분명 KOBACO의 요금규제로 인해 혜 택을 받았지만,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타 방송사들과 대등한 경쟁력을 가진 방송사로 성장한 지금은 SBS 역시 KOBACO체제의 피해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미 제4장의 이론적 모형에서도 밝 혔듯이, KOBACO의 요금규제는 지상파 TV 3사의 수익을 낮추고 있 기 때문이다. 더욱이 더 근본적으로 KOBACO의 거래 및 요금규제 는 방송사의 자율적 영업권을 박탈하는 것인바, 요금규제의 혜택이 사라진 지금, 자율적인 광고 및 방송 영업을 할 수 없는 SBS는 분명 MBC와 함께 KOBACO체제의 피해자가 된다.

광고주가 현 체제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광고요금이 시 장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규제되고 있어 광고주에게 이익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광고요금이 무조건 낮은 것이 반드시 광고 주에게 유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광고주가 광고요금을 지불하는 것 은 광고의 효과가 광고비 지출의 손실보다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고주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불한 광고비가 그 이상의 효과를 창출하는가에 있다. 그러나 이미 제4장에서 밝혔듯이, KOBACO가 광고요금을 낮게 규제함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도 함께 저하되었고,

제6장. 이익집단 분석 179 이는 광고효과가 떨어짐을 의미한다. 즉 광고요금을 낮추면 광고효 과가 그만큼 낮아져서 그 긍정적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는 광고비와 광고효과 간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광 고주가 합리적 광고전략을 수립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광고산업을 통해 징수되는 준조세, 즉 방송발전기금과 KOBACO에 게 지불되는 수수료는 모두 광고주의 부담이다. 이러한 준조세의 부 담이 사라지고 광고요금이 광고의 효과를 제대로 반영한다면, 그리 고 광고시장이 자율화되어 광고주가 자발적인 판단과 선택에 의해 광고를 수요할 수 있게 된다면 광고주의 이익이 높아질 것은 분명 하다.53)

시청자, 즉 소비자는 늘 그렇듯이 부당한 규제의 최대 피해자가 된다. 이는 시청자들은 곧 모든 국민들이란 점에서 그리고 동시에 사회후생이란 결국 소비자의 후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국민들은 물론, 강제 징수되는 시청료를 제외하면, 방송이나 광고를 시청하는 데 아무런 직접적인 대가를 지불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 재는 광고요금이 시청률과 상관없이 결정되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에게 더욱 질 좋은 방송을 공급하여 시청률을 높일 인센티 브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방송 광고시장에 경쟁이 도입되어 방송사들이 본격적으로 시청률 경쟁을 하게 되면 방송의 내용은 더 욱더 시청자 중심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시청률 경쟁에 따른 다소 의 부작용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시청률 경쟁은 필연적으로 시청 53) KOBACO체제하에서 광고주가 이익을 누렸는지 손해를 봤는지는 물론 개별 광고 주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광고주들을 대표하는 광고주협회가 지속적으로 KOBACO체제를 반대해 왔을 뿐만 아니라, 광고비 상승보다 광고효과에 상대적으 로 더 민감한 대형광고주들은 방송광고시장의 자율화를 더 원하고 있어, 평균적으 로 볼 때 광고주들은 KOBACO체제의 피해자로 간주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