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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계획과 마치즈쿠리 :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부록 1 : 도시계획과 마치즈쿠리 :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1. 서론

현재 일본사회는 메이지유신과 쇼와전후와 더불어, 일본근대사의 3대 전환기 의 하나를 체험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쇼와전후의 부흥에 있어서 위력을 발 휘한 낡은 시스템이 무너지고 이것을 대신하여 21세기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 행하는 중이다. 메이지유신도, 쇼와전후도 개국과 패전이라는 강한 외부의 힘을 바탕으로 강요되어진 시급성을 요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계화라는 강력하지만 순간적 긴박성은 없는 외부의 힘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개혁의 과정이 되고 있다.

앞의 도식은 도시․환경관리에도 들어맞는다. 도시계획으로 대표되는 낡은 시 스템에 대해, 마치즈쿠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전하고, 그 충돌 속에서 21세기 도시․환경관리시스템이 구축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맹아는 이미 보일 락 말락하고 있고, 우리들은 그 역사의 한 복판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 고의 목적은 이 낡은 시스템과 새로운 시스템을 각각 확인하고 그 충돌의 알맹이 를 음미함으로써, 장래 전망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2. 도시계획과 마치즈쿠리의 용어와 개념

1) 도시계획과 마치즈쿠리

우선 도시계획과 마치즈쿠리에 대해 각각 용어와 그 개념을 명확히 해 보자.

도시계획이라는 용어는 1913년 세키 하지메(關 一) 교수가 처음 쓰기 시작한 일 본어이다. 그러나 이 원고에서의 도시계획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도시계획이 아니고 일본 법정도시계획, 즉 법률에 의해 규정되고 행정에 의해 운영되는 도시 계획 시스템이다.

한편 마치즈쿠리는 용어로서는 1952년 후에타 시로(增田四郞)교수가 만들어낸 전후의 일본어이다. 앞의 도시계획과는 대조적으로 마치즈쿠리의 개념은 매우 다의적으로 애매하다. 많은 사람이 각각의 상황에서 자신의 개념에 따라 사용하 고 있다. 현재 마치즈쿠리라는 단어는 적극적 이미지를 갖고 넓게 사용되고 있 고, 그 결과 더욱더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보면, 마치즈쿠리로서 확인가능한 사람들의 활동실태는 확실 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 전후 민주주의 한가운데서 탄생하고 지역커뮤니 티를 중심으로 하는, 자신들의 생활을 자신들이 결정하고 싶다는 주민활동으로 서 성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더욱 크게, 사회에 있어서 재서비스의 생산 소비의 원리라는 점에서 보면, 정부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시민사회 또는 NPO의 원리 에 바탕을 둔 활동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마치즈쿠리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치]와 [즈쿠리]의 두 요소로 나누 어 생각하면 편리하다. 이 두가지 요소는 독특한 뉴앙스를 감추고 있고, 또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 [마치]는 대상에 관한 개념이고, [좁은 지역]을 의미한 다. [즈쿠리]는 방법에 관한 개념이고 참가를 의미한다.

2) [마치]란

[마치]는 넓은 지역, 즉 국가나 종종 도시전역에 대비하여 좁은지역의 공간과 시스템을 의미한다. 현재, 특히 도시계획과 건축분야에서는 주민의 일상생활에 서 접하는 물적공간을 의미하고, 가구나 지구 등 일정의 작은 구역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처럼 전통적으로 도시계획법, 건축법이 관계하는 물적 영역만 아니고, 지역복지와 생애학습, 그리고 지자체 개혁 등의 비물적영역도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양자가 상호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개념의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적인 공간스케일 자체가 아니고 관점, 즉 거기서 전개된 생활자로서의 가치나 관점에 있다. 그것은 종종 정부나 기업, 전 문가의 관점이 아니고 일반인의 관점이다.(특히 고도성장기에 경시된 가정을 중 심으로 하는) 생활자의 시점이다. 생활체험이야말로 시민, 주민의 발언력의 바탕 에 있는 힘이다. 그 발상은 강한 의미가 있다.

3) [즈쿠리]란

[즈쿠리]는 이러한 대상을 자신들이 만든다는 방법에 관한 개념이다. 여기서 만든다라는 것은 어떤 건물을 건설하여 끝내는 일회성 행위가 아니고, 그때그때 만든 하드, 소프트한 것을 유지관리하고 개선해나간다는 영속적 행위를 의미한 다. 그것은 만든다는 것에 의미를 갖는 결과중시의 자세가 아니고, 계속 만들어 나간다는 과정중시의 자세이다.

그 ‘만든다’라는 의미는 ‘손으로 만든다’라고 하는 편이 꼭 들어맞을지도 모른 다. 종래는 시장과 정부의 전문가가 독점적으로 만든 것을 자신들이 손으로 만든 다는 놀라움과 기쁨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치즈쿠리는 조 례 만들기나 국가 만들기 등 종래 시민이 개입하지 않거나 할 수 없었다고 생각 된 영역에서의 활동과 궤를 하나로 하는 것이다.

마치즈쿠리가 만드는 대상은 단순히 개인적인 취미의 대상이 아니고, 공공적

인 것이므로, 다수의 관여자가 존재한다. 그 문맥에서 관련되는 것은 [참가]이다.

그것은 단순한 알리바이에서 자기결정에 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단계가 있는 참 가이다.

이러한 좁은 지역과 참가를 본질적 특징으로 하는 마치즈쿠리가 왜 출현했는 가하면, 그것은 종래의 도시계획이 그 양자간의 관계가 결핍되어 시대의 요청에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겠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하에서 는 우선 마치즈쿠리의 구체적인 진전의 흔적을 추적하고, 다음으로는 도시계획 의 구조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3. 새로운 시스템으로서 마치즈쿠리

1) 구니타치(國立)시

마치즈쿠리를 제창했던 후에타교수가 살고 있던 구니타치시 다이카쿠동(大學 町)에서는 당시 풍속업소관계자로부터 주거환경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이 전개 되고 있었다. 이 운동은 도시계획상 지구제도의 하나인 문교지구 지정을 요구하 여 시민유지가 행정기관에 청원한 운동이었다. 그 결과 1952년 280ha의 시가지 (동시의 약 34%)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민발의에 의해 문교지구로 지정되었다.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시민운동에서의 [마치]로서 의식된 공간은 문 교지구 자체가 아니고 구니타치시라는 지자체 전역이었다. 아직 지구고유의 관 점보다도 지구지정의 중요한 주체인 지자체 전체가 강하게 의식되고 있었던 것 이다. 즉 [좁은 지역] 중시라는 관점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운동에서의 [즈쿠리]는 관료발의를 기다리지 않고 시민이 주체적으로 발의하여 이 주장을 도시계획결정에 까지 가지고 간 것 이다. 이것은 매우 시대 선도적이고 유래가 없는 사례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도 시계획의 틀 안에서 운동이어서 구법 체제 전체에 도전한 것은 아니다. 그 결과 목표가 달성되자 이 운동은 급속히 잠잠해지고 영속적인 환경보전을 위한 계기

로 전개되지 못했다. 결국 구니타치시는 도시계획에 있어서 시민발의라는 귀중 한 점을 제외하면, 전통적인 도시계획에 대한 근원적인 도전이 되지 못했다.

2) 사회복지협의회

주목해야할 것은 1950년대에 [마치즈쿠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활약한 것은 물적계획가가 아니고 비물적분야의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는 사회복지협의회 운 동이다. 이 조직은 미국의 커뮤니티 조직을 일본 지방에서 실천했기 때문에, 후 생성의 손에 의해 사회복지의 민간자립적 조직으로서 전국의 현과 시정촌에 설 치되었다.

사회복지협의회는 밝은 마치즈쿠리를 추진하는 등, 당시 지자체가 할 수 없었 던 영세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 때 추진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마치즈쿠리]라고 불렀지만, 그 실태는 정확히는 관제마치즈쿠리 운동이었다. 현 재 사회복지협의회는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복지행정의 말단을 담당하는 행정일 선으로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협의회에게는 [마치]란 지자체 그 자체였다. 그것보다도 좁은 지역의 지구가 고유의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협의회에게는 [즈쿠리]란 지자체 행정을 보완하기 위한 민간의 심부름이라는 극히 초보적인 참 가형태였다. 그것은 민간의 자립적인 조직이라는 설립목표와는 상당히 먼 것이 었다. 시민활동으로서는 시민의 자립성이 치명적으로 빠져있었다. 현재는 이조 직의 움직임을 주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3) 사카에히가시(榮東)

이상이 1950년대의 흐름이고 1960년대에 이르면 사카에히가시의 사례가 대두 된다. 이것은 마을만들기가 물적 세계로 되돌아가 도시계획과 처음으로 부딪힌 흥미가 깊은 사례이다.

1958년 경 나고야시 중심부 사카에히가시에 사는 이불가게 주인인 미와타 하 루오(三輪田春男)씨는 자기 주택겸용상점을 포함한 근린재개발 운동을 시작하였 다. 건축출신 연구자, 행정관들이 호응하여 볼런티어가 되었다. 1964년 나고야시 의 도시계획과는 무관하게 165ha의 사카에히가시지구 재개발 마스터플랜을 제안 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도시재생에 대해 자극적인 정보가 전달된 상태이어서 건축․도시 계획학계에서는 기존시가지의 재개발에 대해 관심이 높아져 있었다. 제안된 마 스터플랜에서는 현재의 그만그만한 시가지를 전면적으로 제거하여 수퍼블록 형

당시 미국의 도시재생에 대해 자극적인 정보가 전달된 상태이어서 건축․도시 계획학계에서는 기존시가지의 재개발에 대해 관심이 높아져 있었다. 제안된 마 스터플랜에서는 현재의 그만그만한 시가지를 전면적으로 제거하여 수퍼블록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