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단조로운 일상과 삶의 즐거움

Ⅵ. 생명의 연속과 가능성으로서의 노년 실존 - 한승원의 경우

1) 단조로운 일상과 삶의 즐거움

개별자는 일상성 속에서 퇴락하여 존재한다. 노년에서의 일상은 건조하고 지루 하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단조로운 반복이 되기가 쉽다. 노인이 처한 상황은 신체적 쇠약과 활동의 축소이다. 한승원 소설에는 노년 작가의 일상이 비교적 여 러 군데에 걸쳐서 서술되고 있다. 작품상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인 ‘나’의 일상을 구성해 볼 수 있다. 그의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은 글을 쓰는 일이며, 그 는 글을 쓰는 틈틈이 낚시와 같은 취미생활을 통해 긴장을 해소하거나 명상을 한다. 노년에는 질병이 잦아지며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노인은 자연스럽게 자신 의 신체를 관리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노년에서의 질병은 삶의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노년은 가끔씩 찾아오는 타인과 만나는 것이 사소한 즐거움이 된다.

이놈처럼 나도 앓아오고 있다. 아침은 쌀쌀하고 한낮에는 후텁텁한 기온으로 인하여 무시로 감기가 들랑거린다. 감기는 온몸 무력증과 가슴 쓰라림증과 답답증과 부정맥을 가져다 주고 콧물을 주체 못하게 한다. 게다가 담까지 생기고 기침을 하게 한다. 그래 도 쓰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나는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 보며 자판을 두들기곤 한다. 짜증과 안으로만 기어드는 음습한 우울증에 찌든 채 가을 철의 황혼 같은 현기증을 느끼면서.(「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69-70쪽)

물 담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다음 와불 앞의 향로에 향 한 개비를 불붙여 놓고 감나무 밑의 평상으로 나왔다. 나의 예감에 내기를 걸었다.

지금 오랜만의 해후를 ‘와아!’ 하는 놀라움의 상태로 끌어올려 놓으려고 일부러 예고 전화 없이 누군가가 오고 있을 듯싶다. 그 예감이 맞겠느냐 틀리겠느냐, 하는 내기.

그 내기를 거는 나에게 나는,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곤 했다. 너는 너의 주인공들하고 늘 함께 살기 때문에 고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공언하곤 하지만 너야말로 고독 한 겁쟁이다.(한승원,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잠수 거미 , 문이당, 2004, 100쪽)

이날 문절이 낚시질을 하러 나오면서 나는 소주 두 병과 초고추장과 칼과 도마를 준 비해 왔다. 내 낚시질의 목적은 뻔하다. 그것을 물에서 건져 올리자마자 소주와 함께 먹고 마시자는 것이고, 서재 안에서 쌓인 중압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한승원, 「잠수 거미」, 잠수 거미 , 문이당, 2004, 168쪽)

지난 초여름의 어느 날, 작가실로 한 영감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감나무 그늘에 놓 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해당(望海堂)이라고 옥호를 붙인 작가실

앞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들판을 에둘러 국도가 흘러가고 그 길 너머로 바다가 드러누워 있다. 나는 서재에서 일하다가 마당으로 나가면 늘 거기에 앉아 들과 바다를 내려다보곤 했다. 어떤 때는 쌍안경을 가지고 나와서 갯벌에서 조개 잡는 사람들과 키 조개를 캐는 어선들의 움직임과 고기 떼들을 따라 어지럽게 나는 물새들을 살피기도 한다. 감나무 밑의 평상은 명상하고 사유하는 자리이다.(「잠수 거미」, 174쪽)

키케로는 노년이 비참해지는 이유 네 가지를 나열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삶의 즐거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117) 노년은 감각적 쾌락이 사라지는 시기이다. 노인 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그들의 육체는 쉽게 피로해지며 통 증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한다. 노년에는 술 담배 등과 같은 직접적인 쾌락이 금 지되기도 하고 걷는 것과 같은 일상적 활동이 제약되기도 한다. 그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감각적 즐거움이 완전히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한승원 자신도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데, 「잠수 거미」에 등장하는 1인칭 서술자인 ‘나’는 질병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식사와 절제가 자신에게 맞는 삶의 재미라고 말한다. 한승원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인 지식인의 활동은 특별히 노년이라고 제약을 받지는 않는다. 그의 일상은 일에서 오는 긴장과 답답함이 존 재하지만 자신의 신체적 한계 내에서 자신의 신체를 돌보며 자신에게 적절한 즐 거움을 찾으려고 한다. 그는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명상과 휴식을 통해 일 상의 답답함을 해소한다.

한편, 「잠수 거미」에서 ‘나’의 이웃집 영감은 항상 답답함을 호소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상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한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내와 자식과 모두 사별하고 혼자 산다. 그는 타인들 과 정서적인 교류가 없으며 정서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삶의 재 미는 육체적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에게는 술과 노름과 여자가 있어야만

117) “나는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네 가지 이유를 발견하게 되네. 첫째,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 게 만들고, 둘째, 노년은 우리의 몸을 허약하게 하며, 셋째, 노년은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며, 넷째, 노년은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네. 자네들만 좋다면, 이런 이 유들이 과연 얼마나 타당하고 옳은 것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세.”(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천병희 옮김, 숲, 2005, 29쪽)

한다. 그는 이웃 할머니의 집안일을 도와주고는 술김에 성추행을 한다. 그는 도 덕적 지탄을 받고 마을 공동체에서는 소외되고 할머니의 자식들로부터는 폭행을 당한다.

「나 오늘 누구하고든지 한 판 안 붙으면은 숨 막혀 죽을 것 같네. 속에서 이런 주먹 같은 불덩어리 한나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네이. 딱 한 판만 붙어 뿔세. 나 이 돈을 단판에 다 잃어뿔더라도 두말 않고 그냥 뽈딱 일어서 뿔란께잉?」

웃어 대던 나는 두 손을 엉덩이 쪽으로 짚으면서 하늘을 향해 턱을 쳐들었다. 흰 구 름들 사이로 쪽빛 하늘이 조각나 있었다.

「영감님, 저 하늘을 좀 보시오. 숨이 막히면은 저는 저것을 봄스롬 숨을 쉬곤 합니 다.」

나도 모르는 새 불쑥 이 말을 내던졌다. 그 말을 해놓고 나는 속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말이라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순간에 자기를 먼저 그 말의 세계로 들어 서게 한다. 나는 그 말을 해놓고 놀랐다. 그것은 선문답 같은 것이었다. 나도 이제부터 는 숨이 막히면 저 하늘을 쳐다보곤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늘은 진한 쪽빛으로 채 색되어 있고 텅 비어 있었다. 그 비어 있음은 세상이 원래 비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 이었다. 지구와 달과 태양과 수많은 별들이 생겨나기 이전 세상은 텅 비어 있었을 것 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구름처럼 일어났다가 비어 있음 속으로 사라져 가지 않으 면 안 된다. 그 쪽빛으로 텅 비어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좋은 약이 있겠는 가. 그 이상으로 숨통을 시원하게 틔워주는 것이 있겠는가. 나로 하여금 그 생각을 하 게 해준 그 영감이 고마웠다.(「잠수 거미」, 187쪽)

그는 일상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비본래적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는 정서적으로 지원해줄 가족이나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과 이웃 으로부터도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일상은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연 속일 뿐이다.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것은 감각적 쾌락의 순간적인 만족이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로서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 하다. 노년의 작가인 서술자는 이웃집 영감에게 하늘을 쳐다볼 것을 조언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배려하는 기술이다. 하늘은 세상이 원 래 텅 ‘비어 있음’을 말해 준다. ‘비어 있음’은 세상의 창조와 소멸의 원리이다.

모든 것은 ‘비어 있음’에서 생겨 ‘비어 있음’으로 돌아간다. ‘비어 있음’을 이해하 는 것은 한정된 개체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한다. 감각적 쾌락의 만족은 현존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세상과 나는 고정된 것도 서로 다른 것도 아닌 텅 ‘비 어 있음’ 그 자체일 뿐이다. 세상과 자아의 본성을 이해함으로써 본래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또한,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에서는 고등학교 후배가 작가인 ‘나’를 찾아 와 노년의 일상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 소설은 1인칭 서술자인 노년의 작가와 50대 후반인 고등학교 6년 후배와의 대화를 통해 노년의 삶의 모습을 전 해준다. 그들은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누지만, 노년의 일상의 건 조함과 지루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어떻게 노년에서의 일상이 퇴락하지 않 고 본래적인 삶이 가능할 것인가. 그들의 대화의 소재는 삶의 재미이다. 작가의 후배는 공직에서 은퇴하여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인물이다.

「선배님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십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부들은 주꾸미 한 마리, 낙지, 망둥이, 꼴뚜기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배 위에서 밤을 새운다. 절벽에 사는 독수리는 오늘 어디서 살 통통 찐 암컷 쥐나 암토끼나 까투 리를 잡아 자신과 새끼들의 배를 채울 것인가를 궁리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골목길에서 붕어빵을 굽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맛나게 붕어빵을 굽고 한 개

「골목길에서 붕어빵을 굽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맛나게 붕어빵을 굽고 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