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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노인의 신체 경험과 노년의 수용

Ⅲ. 일상과 죽음에서의 본래성으로서의 노년 실존 - 최일남의 경우 72

2) 남성노인의 신체 경험과 노년의 수용

노년의 인지는 대개의 경우 신체를 통해서이다. 현존재는 원래 대상으로서의 신체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신체는 의지적 구조로서 ‘나는 한다’와 ‘나 는 할 수 있다’라는 잠재성으로서 나타난다.77) 신체는 지각작용의 구성적 역할을 하면서도 지각의 대상이 된다. 최일남의 「힘」은 노년의 신체에 대한 노인들의 적 응과 태도 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3인칭 서술이면서도 김 선생을 초점화자로 하여 김 선생 자신과 73세 친구인 이소장의 노년에 대한 의식을 서 술하고 있다. 이 소설의 시작은 공무원으로 은퇴하고 2년 전에 아내와 사별한 김 선생이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노인은 자신의 신체를 타자78)로서 경험한다. 타자로서의 신체는 우리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며, 우리에게 충 격을 주고 동요(Beunruhigung)를 일으킨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폭 삭았다. 세밀히 각을 떠 살피면 아직 쓸만한 부위도 있다 싶 을지 모르나 겉모양일 뿐이다. 진기 빠진 살이 물컹하기 이를 데 없어 일반버스 의자 에 몸을 부리기 무섭게 엉덩이가 마친다. 오죽하면 간호사가 볼기에 주사를 놓으며 찰 삭 때리는 소리마저 예전과 다를까. 한때는 실팍하고 풍만한 쿠션 구실 덕분에 울림이

77) 단 자하비, 후설의 현상학 , 박지영 옮김, 한길사, 2017, 178쪽.

78) 발덴휄스는 타자 경험이 갖고 있는 ‘직접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타자는 우리가 미처 받아 드리기 이전에 우리를 엄습하여 불안에 빠뜨리고 동요를 일으키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능동적으 로 접근해서 대처할 대상이 아니며, 우리는 타자의 요청 내지 자극에 따라 단지 응답해야 할 따름 이다. 타자는 우리의 일상성을 충격에 빠뜨려, 일상성에 빠져있는 우리를 밖으로 빠져나오게 한 다.(박인철, 현상학과 상호문화성 , 아카넷, 2015, 215-216쪽)

둔중했거늘 요새는 무척 가볍고 예리하게 들린다. 골다공증을 에비해둔 푼수로 버석버

각 주관의 신체 상태도 알려준다.

김 선생의 신체감각(Empfindniss)에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신체감각은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신체 외형의 변화는 단순한 미적인 형태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능상의 쇠퇴를 보여준다. 진기 빠진 살과 버석버석한 뼈의 감각은 건강 을 염려하게 한다. 물렁해진 허벅살은 간암으로 죽어가던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신체감각은 평상시에 잊혔던 죽음을 환기시키며 불안한 마음을 들게 한다.

김 선생은 자신의 신체를 지각하면서 ‘끔찍하다’, ‘두렵다’, ‘쳐다보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단어와 표현들을 사용한다. 그는 이러한 부정적 서술이외에도 ‘당연하 다 치자’, ‘조화 속을 모르겠다’, ‘골고루구나 싶다’라는 표현을 통해 현실을 받아 들이는 태도도 보인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웃음이 나온다’라는 어이없는 태 도를 취함으로써 노년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80)

버크(Edmund Burke)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고통과 쾌락에서 찾는다.81) 자기 자신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타자성의 경험은 자기 자신에게 감정상의 동요 를 일으킨다. 고통의 감정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기쁨 (delight)으로 변경된다. 김 선생도 타자로 경험된 신체에서 온갖 부정적인 두려 움의 감정을 겪게 된다. 그가 신체에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의 요소는 불쾌감을 감소시키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신체 경험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복 합적 감정82)을 갖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친밀 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신체에서 동질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친밀감의 원천은 ‘사랑’인데, 그것은 신체에 대한 기억과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김 선생은 신체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내고 해석한다. 신체는 시간의 축적이 다. 과거의 삶은 신체를 통해 기억된다. 그는 뽀얗게 살찐 손등을 보면서 죽은 아내의 말들을 떠올리거나, 평탄한 삶의 시간을 보냈던 자신의 이력을 생각한다.

또한 그는 하얗게 쇤 살을 통해서는 허세의 마음으로 살았던 지난 세월을 반성

80) 양철수, 「최일남 노년소설에 나타난 노화와 죽음의 수용과 그 의미」, 영주어문 제34집, 2016, 224쪽.

81) 이에 대한 버크의 논의는 숭고와 미의 우리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탐구 에서 다 루어졌다.(박인철, 현상학과 상호문화성 , 아카넷, 2015, 220쪽)

82) 버크는 고통과 결부된 기쁨의 복합적 감정을 총체적으로 숭고(the sublime)라고 부른다. (박인 철, 현상학과 상호문화성 , 아카넷, 2015, 35-36쪽)

하기도 한다.

노인의 신체 경험에서 느끼는 감정은 노년의 삶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우리 의 일상적 삶은 실제적으로는 합리성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감정의 복합체인 ‘근 본적인 기분(grundlegende Stimmung)’에 의해 지배된다고 할 수 있다. 김 선생 이 두려움에서 기쁨으로의 전환의 감정과 친밀감은 노년의 일상적 삶의 형성에 바탕이 된다. 이러한 감정은 노년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늙음의 신체적 현상에 대해 혐오스럽게 바라보면서도 노화된 신체를 긍정하면서 수용한 다. 신체 경험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태도는 노년의 일상을 지배하는 근본 바탕이 된다.

타자로서의 신체 경험에 대해 수용적인 노인이 있는 반면에 노화에 대해 적극 적으로 대처하는 노인도 있다. 일부 노인은 노쇠 현상에 맞서 저항하거나 투쟁적 인 모습을 보인다. 운동은 노화 현상을 지연시킨다. 신체 단련을 통해 근력을 기 르고 신체기능을 향상 시킨다. 운동은 질병과 신체 기능상의 저하로 인한 고통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신체의 무능력함으 로 인한 자기소외를 극복하게 해준다. 세상 사람은 신체적 쇠약에서 노화의 증거 를 찾으려고 한다. 이 소장은 김 선생과 동네 약수터에서 만나 사귀게 된 노인이 다. 그는 보험회사 출장소 소장으로 은퇴하였으며 노화하는 신체에 적극 맞서 대 응하는 인물이다. 이 소장의 근력과 힘은 자기 자신이 노인이 아님을 입증한다.

턱거리 시합에서 보여준 이 소장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세상 사람의 감탄과 찬 사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입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역동적이며 에 너지가 넘친다. 그는 운동으로 노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저항한다.

그의 육체는 견고하고 매끈하다. 칠십 노인이라고 얕보았다간 큰코 다친다. 중키에 적동색으로 오종종한 얼굴만 놓고 따지면 갈데없는 영감태기 십상이겠으나 실속은 어 림없다. 완력 악력이 특히 세다. 우습게 여겨 팔씨름 따위를 청해 덤비다가 대번에 나 가 떨어지는 젊은놈 여럿 보았다. 따라서 이 소장의 몸매는 옷을 벗었을 때 더 정체성 이 확연히 드러난다. 세모꼴로 다져진 상체가 먼저 부럽다. 뼈와 살이 알맞게 들러붙어 윤곽이 보일락말락한 갈비 아래 배는 숨을 들이킬 것도 없이 쏙 들어갔다. 오른팔에 힘을 먹여 꺾을 때 드러나는 알통의 단단함이라니. 약수터에서 바벨을 들어올릴 때 본 두 다리의 탱탱한 근육질이라니…….(「힘」, 80쪽)

이 소장의 몸은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몸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그의 몸은 견 고하고 매끈하다. 그의 몸의 이미지는 김 선생의 늙은 몸의 이미지와 대비된다.

형태의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젊은이의 몸이 미적 기준이 된다. 노인에 게 맞는 이상적이고 수용 가능한 몸의 미적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장의 몸은 자신이 남성임을 입증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 가 교통사고로 하체 기능을 상실했으며 그의 아내는 딴 사람과 산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근육질 몸이 남성성을 상실한 것에 대한 보 상 심리의 노력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 소장이 건강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에 대해 김 선생은 부정적으로 평가 한다. 초점화자인 김 선생은 기본적으로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노화 현상을 거스르는 것은 노인의 탐욕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장의 지나친 건강에 대한 과시 는 부담스럽고 거북하다.

다만 부담스럽다. 이 소장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건강론 설교가 때때로 거북하다.

(…)

김 선생에겐 이 소장의 그런 육질이 때때로 탐나고 때때로 싫다. 지금은 선망의 시 간인 셈이어서 빈약한 자의 몸을 슬픈 눈으로 핧아대지만 미구에 평가절하하지 말란 법이 그러므로 없다. 쇠퇴의 아름다움을 거슬러 억지로 근력을 기르고자 안간힘 쓰는 노인의 탐욕을 경멸하리라 짐작한다.(「힘」, 80-81쪽)

그런 그에게 도무지 쇠잔할 줄 모르는 이 소장의 찰진 건강이 어떤 때는 버겁다.(「

힘」, 96쪽)

김 선생의 짐작인데, 그는 늙은이들의 저런 힘 자랑이 딱하다. 이 소장에 대한 감정 도 마찬가지다. 공연히 천박하게 비칠 때마저 있다.(「힘」, 95쪽)

고르고 골라 턱걸이 시합을 통해 당신의 강골을 과시하는 날 갈 건 무어 있느냐는 말을 보태려다 참는다. 그렁그렁 버티는 나도 당신 앞에만 서면 갑자기 주눅 드는 마 당에, 가족들이 온통 수심에 차 있을 그 집 사정도 생각해얄 게 아니냐는 말을 꿀꺽 삼킨다.(「힘」, 86쪽)

노인의 신체는 젊은이의 신체와 다르다. 노인의 신체는 운동으로 단련되었다 하더라도 일정 정도의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소장은 턱걸이 시합에서 우승을 하

노인의 신체는 젊은이의 신체와 다르다. 노인의 신체는 운동으로 단련되었다 하더라도 일정 정도의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소장은 턱걸이 시합에서 우승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