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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성과 자유

Ⅵ. 생명의 연속과 가능성으로서의 노년 실존 - 한승원의 경우

2) 노년의 성과 자유

한승원 노년소설에는 성에 대한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노년에도 성적 욕

망은 존재한다. 성적 욕망은 타인의 몸을 살로 만들어 내 것으로 전유하고자 하 는 시도이다. 성기능은 노화에 따라 감퇴하게 된다. 남성 노인에게 성기능의 퇴 화는 생물학적 차원의 쇠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위기와 관련되어 이해 된다. 이미 중년부터 신체 기능상의 변화가 확연하게 감지된다. 노년의 위기는 중년에서 시작된 위기의 연장이다. 「길을 가다보면 개도 만나고」의 1인칭 서술자 인 ‘나’는 중년 시절 성적 능력의 좌절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린다.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의 오경만은 자신의 결혼 실패가 아내와의 성생활에 있다고 생각 하면서 성경험을 털어 놓는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어느 겨울날 밤 방사를 치르다가 갑자기 그것이 움츠려 드는 바람에 그 행위는 어처구니없이 실패로 돌아갔었다. 놀란 아내가, 당신 왜 이래?

하고 물었고, 나는 몸을 일으키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무릎을 꿇고 엎드리 면서 그냥 칵 죽어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길을 가다 보면 개도 만나고」, 278쪽)

전에 제 첫 여자가 무지무지 이뻤습니다이. 저는 그 여자가 저를 버리고 다른 놈한 테로 갈까 싶어서 억세게 돈 벌어다가 주고 백화점에서 번쩍거리는 옷 사주고 가끔씩 꽃 사다가 안겨 주고 외식시켜 주고 생일 챙겨주고 약혼 기념일, 결혼 기념일 챙겨주 고 밤이 되면 땀 뻘뻘 흘리면서 쾌락 속을 떠다니게 해주고…… 요란을 떨면서 살았어 요. 나중에 사십대 중반에 접어드니까 체력이 달려서 마음대로 잘 안되겠더라고요.

(…) 그러다 보니 발기가 안 되거나 조루 때문에 낭패당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낭패가 거듭되니까는 그 여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두려워지니까는 그게 더 잘 안돼요. (…) 성적인 불만을 달래 주기 위해 돈도 더 많이 주고 꽃도 더 자주 사주고 외식도 더 자주 시켜주고…… 전보다 더 잘했습니다이. 그런데 얼마쯤 살다가 보니까 그 여자가 은밀하게 다른 남자를 섹스 상대로 구한 눈치더군요. 그래 이런 분란, 저런 파동 끝에 끝내 헤어졌어요. 한데 혼자 살 수 없잖아요? 그래 잘되는지 안 되는지 시 험해보곤 했던 여자하고 재혼을 했습니다이. 그런데 가버린 여자보다 십 년이나 더 젊 은 이 여자하고 살기는 더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이 여자를 마음대로 다루었는데, 나중에는 이 여자가 나를 다루기 시작했어요. 생각해 보니 나는 노예가 되어 있더라고 요. 그렇지만 나는 이 여자하고만은 헤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이. 애들 문제도 있고, 그 여자와 헤어졌는데 또 이 여자하고 헤어지다니 말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이 여자가 그 여자보다 더 얼른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자식이 있어요, 남편 몸 뚱이가 싱싱해요, 총경 되고 경무관 될 전망이 있어요? 그래서 그랬겠지요. 나도 내 주 제 파악을 하고, 이 여자하고 헤어지면서부터는 성으로부터,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

로부터 벗어나려고 요란을 떨기 시작했습니다이. (…) 저는 이렇게 사진기 가방 둘러메 고 떠돌고 있습니다이.(「사람은 무슨 재미리로 사는가」, 107-109쪽)

현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을 유혹하게 된다. 유혹의 방법으로 사르트르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한 가지는 타인이 나의 존재적인 깊이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으로 하여금 내 존재를 자신으로서는 넘어 설 수 없는 무한성을 지닌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타인에 게 가능한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타인과 세계 간의 매개로 만드 는 방법이다. 아예 돈이나 권력과 같은 능력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118)

오경만은 상대방에게 감각적 쾌락을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유혹한다.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결과 를 낳게 된다. 그의 성적 능력은 감소하고 아내에게 사회적인 성공도 보여주지 못한다. 성적 욕망은 타인이 존재하는 대타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그것은 생물 학적이거나 물리적인 구조를 넘어서서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 경험담은 성적 욕망을 생물학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타자와의 갈등도 성적 반 응과 심리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는 일과 가정에 대한 스트레스로 자신의 성적 능력이 예전과 같지 않고, 성기능의 회복을 위해 정력제를 먹거나 새로운 여자와 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보려고 시도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성행 위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과 성격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두 번의 결혼 실패 도 상대방에게 성적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오경만과 아내와의 관계는 사랑이 타인과의 투쟁임을 보여준다. 사랑은 타인을 대상화하여 나를 인정받으려는 투쟁이다.119) 나와 타인 사이에는 충돌이 발생한 다. 나는 타인의 지배력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며 타인을 나의 지배하에 두고자 한다. 반면에, 타인은 나를 노예로 만들고자 한다.120) 오경만은 아내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내와의 인정 투쟁에서 실패함으로써 자유를 얻지 못하고 구속을 받게 된 것이다. 그가 감각의 만족을 추구함에 따라 더 이상 그것을 상대방에게 만족시켜줄 수 없을 때 그는

118) 조광제, 앞의 책, 170쪽.

119) 위의 책, 147쪽.

120) 위의 책, 150쪽.

인정투쟁에서 실패하게 되고 만 것이다.

성적 욕망에는 타인이 개입된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부재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은 타인의 현전을 향해 부르고 있다고 말한다. 오경만은 은퇴 전 자신이 수 사했던 성과 관련된 사건을 들려준다. 그의 성적 이야기들은 과거의 타자들을 불 러내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대화는 잡담이 된다. 노인들은 에로틱한 독서, 외설적인 예술작품, 음담패설에서 쾌락을 찾기도 한다. 노인들은 자신의 청년기와 장년기에 경험했던 에로틱한 세계에 대한 향수 를 간직하고 있다. 노인들은 에로틱한 세계들을 다시 생생하게 되살리고 싶어 한 다.121)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부유한 한 남성이 미모의 여성들을 관리하면서, 그들 중 몇몇의 여성의 나체를 사진 찍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몰래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감상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영사실 한쪽 벽에는 여체의 곱고 신비로운 부분들만을 찍은 흑백 사진, 컬러 사진 여남은 장이 붙어 있었다. 두 개의 정구공을 나란히 대어 붙여 놓은 것 같은 유방, 티 베트의 만다라처럼 확대해 놓은 젖꽃판, 조각가가 흰떡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늘씬한 다리와 발, 백자 항아리 같은 엉덩이, 갈색 거웃이 숲처럼 무성한 사타구니, 삘기처럼 미끈한 손, 거대하게 확대해 놓은 손톱 하나, 그리고 누군지 알아볼 수 없도록 뒤에서 찍은 탐스러운 갈색의 머리칼, 하얀 귓바퀴…….

그 옆의 바람벽에는 슬라이드 필름 상자들과 비디오테이프들 백여 개쯤이 진열되어 있었고, 맞은편에는 대형 모니터, 컴퓨터, 암갈색 장식장 안에 담긴 오디오, 비디오 환 등기가 놓여 있었다.(「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112쪽)

여기저기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찍어 낸 것들 가운데서 가장 에로틱하면서도 곡진한 대목들만 골라 편집하면서 그는 싱싱한 음악을 깔았다. 셀린 디옹, 사라 브라이트만의 목소리 혹은 고혹적인 트럼펫으로 연주한 악곡들…….

그는 가끔 그 테이프들 중 하나를 꺼내 재생시켜 놓고 감상하곤 했다.(「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118쪽)

노인들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성적 만족을 얻기도 한다. 노인들의 경우 ‘바라보 기’와 ‘애무’가 성 행위의 주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오경만이 들려주는 이야기

121) 시몬 드 보부아르, 앞의 책, 445-446쪽.

도 직접적인 성행위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속 인물은 사진을 찍고 감 상하거나 편집한 비디오를 음악과 함께 들으면서 성적 만족을 얻는다. ‘보기’와

‘듣기’를 통해 감각적 쾌락을 즐긴다. 육체의 일부분을 사진 찍고, 이것을 확대하 고 감상한다. 성적 만족을 위해 신화적, 문화적 코드들이 도입된다. 여성의 몸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외설적인 몸이 아니라 우아한 살을 감 각하려고 한다. 우아한 몸은 도구 연관에서 벗어난 몸이다. 가장 우아한 몸은 현 사실적으로는 벌거벗어 있지만 벌거벗음이 보이지는 않는 몸이다. 드러내면서 감 추고, 감추면서 드러낼 때 그 살은 우아한 몸이 된다. 이러한 성적 만족은 상대 방이 없이도 성기관의 사용 없이도 성적 만족을 얻는 방식이다.

노년은 성적 능력이 감퇴하는 시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적 욕망이 완전히 사 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쾌락을 위해 성 기관들을 활용하는 것은 성생활의 일 면에 불과 하다. 성적 욕망은 성기관이 생리적으로 성숙되기 이전에도 나타나고, 성기관이 없는 경우에도 존재한다. 성적 욕망은 탄생과 더불어 나타나 죽음을 통 해서만 사라진다.122) 노인의 성 기관은 퇴화하고 성욕은 감퇴할 수는 있다, 성적

노년은 성적 능력이 감퇴하는 시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적 욕망이 완전히 사 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쾌락을 위해 성 기관들을 활용하는 것은 성생활의 일 면에 불과 하다. 성적 욕망은 성기관이 생리적으로 성숙되기 이전에도 나타나고, 성기관이 없는 경우에도 존재한다. 성적 욕망은 탄생과 더불어 나타나 죽음을 통 해서만 사라진다.122) 노인의 성 기관은 퇴화하고 성욕은 감퇴할 수는 있다, 성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