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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자의 연속성과 자기 해석

Ⅱ. 개별자의 자기 회복으로서의 노년 실존 - 박완서의 경우

2) 개별자의 연속성과 자기 해석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은 작중 화자가 오십년 전 한국 전쟁 전후의 시기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의 1인칭 서술자는 자신의 연애와 전쟁 전후의 혼란스럽고 힘든 삶의 이야기를 회고한다. 서술자는 20세 전후의 과거 이 야기를 회고하는 것으로 보아 70세 정도의 여성이다. 화자의 후배가 자신이 예전 에 살았던 동네로 이사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인생의 특정 시점과 장소로 돌아가 그 당시를 회상하게 된다. 이 소설은 현재의 동네의 모습과 과거의 사건 들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여 불연속 을 이루게 된다. 개별자에게는 변화된 이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종합하여 연속성 을 유지할 것인가가 과제로 주어진다. 화자는 후배가 이사 간 동네의 이름을 듣 고서는 동요한다. 그녀에게 그 동네는 잊힌 기억이면서 회피하고 싶은 장소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장소를 찾아가 보면서 회피하려고만 했던 자기 자신과 마 주서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찾아 나선다. 그녀가 살았던 동네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개발되었다. 그녀의 기억에 간직 되어 있는 모습과 현재의 실제 모습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녀가 살았던 집도 집터도 찾을 수 없고, 그 동네는 다가구 주택가로 변해버렸으며 내천은 복개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적인 것이 더해져서 예전에는 커보였던 것이 지금은 작아 보인다. 그녀는 ‘그 남자네 집’을 기억하고는 그 집을 찾아 나선다.

내 예상을 뒤엎고, 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서 홀로 초연히 그 남자네 집은 그냥 조 선 기와집으로 남아 있었다. 대문이 한길로 면한 그 길가의 다른 집들이 다 사오층 높

이의 빌딩으로 변해버려서 그런지, 한걸음 물러나 있음으로 더욱 당당해 보이던 집이 푹 꺼져 보였다. 한길을 향해 개방돼 있던 바깥마당에다 철문을 해 단 게 옛날과 달라 진 유일한 변화였다. 철문은 완강하게 닫혀 있었다. 철문 때문에 그 안의 조선 기와집 은 좌우의 빌딩들과 나란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접근을 거부하는 은둔의 자세를 취하 고 있었다. 철문은 가슴 높이부터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살로 돼 있는데도 그 안에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놓아 홍예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 는 길은 남겨놓고 나무를 심었으련만 가지가 하도 무성히 뻗어 안을 엿볼 수 있는 시 각적인 통로조차 없었다. 문득 집에도 영(靈) 같은 게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음 조 각처럼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 나는 철문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에 올라서서 키 를 돋우고 안을 기웃거렸지만 반듯한 조선 기와지붕을 확인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더 알아낼 수 없었다. 조선 기와지붕은 손이 많이 간다. 더군다나 요즈음에는 제대로 된 기와장이 구하기도 어렵다. 예전에도 기와장이 품삯은 미장이의 세 곱절은 됐다. 기술 은 안 이어받고 품삯에 대한 풍문이나 믿는 얼치기나 걸리기 십상이다. 도심에서 빌딩 숲 사이에 어쩌다 남아 있는 조선 기와지붕의 그 참담한 퇴락상을 보면 전통가옥 보존 어쩌구하는 소리가 얼마나 무책임한 개소리인지 알 것이다. 그 남자네 집은 거의 해마 다 손을 봐준 것처럼 기왓골의 선이 가지런하고 윤기가 흘렀다. 돈과 정성이 꽤 드는 까다로운 치다꺼리를 마다 않는 주인이라면 팔리지 않아서 억지로 사는 게 아니라 조 선 기와집을 사랑하는 유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 남자네 집이 주인을 잘 만났다는 게 기쁘다 못해 감동스러웠다.(박완서, 「그 남자네 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7 , 문학동 네, 2013, 57-59쪽)

그녀는 조선의 한옥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에 감동한다. 그 동네가 대학가로 변해 상업 시설이 들어서는 가운데도 그 집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한 옥은 주변의 현대적인 변화 속에서 품격 같은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것 이 변화 하는 가운데에서도 퇴락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한 옥은 한때 그녀가 연애를 하던 남자네 집이다. 그 집안은 전쟁 전후의 성공과 쇠 락의 시대 흐름을 보여준다. 그 남자와 나 모두 전쟁을 통해 가족을 잃거나 이산 의 아픔을 겪는다. 그 집안은 고위 관직에 있던 큰아들이 전쟁 중에 가족과 월북 을 했으며, 어머니는 남쪽에 남고 아버지는 북쪽으로 간 이산가족이다. 그 남자 도 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해 상이군인이 되어 그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집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 나서는 신세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의 어머니 보다 나은 신세이다. 그 남자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고 그녀 집안은 홀로된 두

과부가 있을 따름이다. 그 남자네 집의 기억은 연애 이야기이면서도 험난했던 그 시대의 기억인 것이다.

그는 시를 좋아할 뿐 아니라 외우고 있는 시가 많았다. 가로등 없는 골목길을 오 리 를 십 리, 이십 리로 늘여서 걸으면서, 또는 삼선교의 포장마찻집의 새파랗고도 어둑시 근한 카바이드 불빛이 무대 조명처럼 절묘하게 투영된 자리에서 그는 나직하고도 그윽 하게 정지용‧한하운의 시를 암송하곤 했다. 그는 그 밖에도 많은 시인의 시를 외우고 있었지만 내가 누구의 시라는 걸 알고 들은 건 그 두 시인이 고작이었다. 포장마찻집 에서는 딴 손님이 없을 때에만 그런 객쩍은 짓을 했기 때문에 주인남자도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다 듣고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한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나에겐 그 소리 가 박수보다 더 적절한 찬사로 들였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

그가 가장 자주 틀어준 음반은 <보리수>였다. 그 가사는 고3 때 배운 독일어 교과 서에 나오는 시였다. 암 부룬넨 포어 뎀 토레 다슈타트 아인 린덴바운, 이히 트러임트 인 자이넴 샤텐 조 만헨 쥐센 트라움, 그 가사에다 그가 허밍을 넣는 걸 듣고 있으면 나는 온 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 시절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나.

그 시절이 우리에게 정말 있기나 있었을까.(「그 남자네 집」, 73-75쪽)

연애의 추억에 대한 회상은 개인적인 기록이면서 시대의 기억이 된다. 그들은 시를 노래하고 음악을 들었다. 시의 감상을 사치라고 말하는 가겟집 주인의 말은 가난했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그러한 행위가 시대를 견디게 해 주었다고 회고한다. ‘보리수’는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작용한 다. ‘보리수’ 노래는 그녀의 욕망이 담겨 있는 노래가 된다. 그 나무는 실제 지금 의 ‘그 남자네 집’에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보리수’는 그녀가 젊어서 여행하던 시절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던 이상적인 나무이기도 하다. ‘보리수’는 그녀 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실제와 이상과 욕망을 모두 포함한다.

개별자는 시간의 변화 속에서 이질적인 것들과 관계하며 종합한다. 그녀는 현 재와 과거 사이의 변화와 차이를 인식하며 그러한 것들을 종합하려고 한다. 그것 은 하나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보리수’나 ‘연탄불’은 그 중의 하나이 다. 그녀는 어디선가에서 끼쳐오는 연탄불의 냄새를 맡는다. ‘연탄불’은 그 남자

와의 연애 시절 즐겨 갔던 칸델라 불빛의 포장마차와 관계되며, 겨울이면 매일 갈았던 자신의 결혼 생활과 관계되며, 현재 유행 중인 복고풍의 식당과 관련된 다. 그녀는 ‘연탄불’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의 시차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들의 차 이를 인식하며 연속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 남자네 집 바깥마당의 무성한 나무가 보리수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도 망치듯이 그 집 앞을 벗어났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하고 지금은 땅 밑을 흐르는 안 감냇가를 중심으로 그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그 남자의 부음을 들은 지도 십 년 가 까이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에게 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영원히 구슬 같은 처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어디선 가 연탄불 냄새가 났다. 휴전이 되고 연탄불은 급속히 확산돼 내 결혼생활은 연탄불과 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끼쳐오는 냄새는 그런 지겨운 냄새가 아니라 카바이드 냄새도 섞인 그리운 냄새였다. 나는 부유하듯 다리에 힘 빼고 그 냄새에 이끌렸다. 연탄 갈비라고 간판을 붙인 집에선 화덕을 주룬히 추녀 끝에 내 놓고 불이 괄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복고풍이 마침내 연탄불에까지 이른 모양이다.

가게 안은 어둑해 보였다. 옛날 집 대문처럼 해 단 널빤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 비질을 하고 있던 남자가 다섯시가 지나야 저녁 영업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실내 어디 에도 카바이드 칸델라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 데나 앉아서 좀 쉬고 싶었지만 청소를

가게 안은 어둑해 보였다. 옛날 집 대문처럼 해 단 널빤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 비질을 하고 있던 남자가 다섯시가 지나야 저녁 영업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실내 어디 에도 카바이드 칸델라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 데나 앉아서 좀 쉬고 싶었지만 청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