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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소득보장과 국가의 역할

국민연금 폐지론이 만만찮게 제기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과연 정말 필요한

소득보장 영역의 국민기본생활 보장(1): 노령보장 125

필수적인 제도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민연금의 존재 의의, 즉, 국민연금이 어떠한 역할, 어떠한 사회적 기 능을 수행하기를 기대받고 있는가로 부터 찾아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 후소득보장에 있어 굳이 국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운영해야 하는 필수적인 이 유가 있는가를 분명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은 노후소득상실의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여 사회연대에 기반하여 소 득을 재분배하는 주요 정책수단이다. 공적연금에는 네 가지의 소득재분배 원칙 이 작용하는데, 그 첫째는 한 개인의 생애 이시점간의 불균등한 소득을 균등하 게 재배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소득재분배는 개인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노 령이라는 불확실한 크기(노령기간)의 사고위험을 분산하는 보험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즉, 개인의 수명에 따라 상이한 노령기간, 불확실한 장수 위험을 보험 원리에 입각하여 보험가입자들이 분산하여 담당해주는 것이다. 세 번째 소득재 분배는 소득이 높은 개인으로부터 소득이 낮은 개인으로 소득이 재분배되는 것 이다. 이러한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는 공적연금에서만 보여지는 특징이지만, 모든 공적연금에서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가 필수적 요건은 아니다. 네 번째 소득재분배는 공적연금제도의 고유한 역사성과 연관된 것으로서, 가족 단위에 서 자녀가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던 것에서 사회적 단위에서 근로세대가 노령 세대를 부양하는 사회적 부양 메커니즘으로 출현하게 된 공적연금의 본질을 가 장 잘 보여주는 세대간 재분배이다. 근로세대가 노령세대를 부양함으로써 발생 하는 세대간 재분배이다. 현재의 연금위기는 인구고령화로 이와 같은 세대간부 양의 균형이 깨질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소하는 근로세대가 증 가하는 노령세대를 부양하려다 보니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대간재분배 역시 사적연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적연금의 고유한 특징이 지만, 세대내 소득계층별 재분배와 마찬가지로 세대간 재분배도 공적연금의 필 수적 요건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인 세대내 소득계층간 재분배와 세대간 재분배는 공적연금만의 독특한 요소일 뿐 아니라, 최근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공적연금 및 사적연금의 역할분담 변화,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와 시

장의 역할분담 변화, 복지혼합의 지형 변화로 일컬어지는 논의의 핵심에 놓여 있다. 사회연대에 입각한 세대내 소득재분배와 세대간 소득재분배가 공적연금 이 현재의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인가 하는 점,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대내 소득계층간 재분배 및 세대간 재분배는 어느 정도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만약 강제적(의무적) 가입이라는 국가규제만으로 사적연금도 갖출 수 있는 생애 이시점간 불균등한 소득 재배분의 강제화, 그리고 보험적 성격에 입각한 장수위험의 분산(이 조차도 선택적일 수 있지만) 등 첫 번째 및 두 번째 소득 재분배만이 필요하다면, 굳이 공적연금의 형태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국가만이 담당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의 연대의식에 입각한 고유한 역 할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쟁점은, 과연 국가가 공적연금이라는 재분배 수단을 활용하여 공적연금만의 고유한 사회연대에 입각한 소득계층간 재분배 및 세대간 재분배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가, 민간연금 도 수행할 수 있는 생애 이시점간의 소득재분배 및 장수위험의 분산을 국가가 강제화, 의무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노후소득보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라는 쟁점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가 규제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해도 좋은지, 아니면 국 가가 여전히 사회연대에 입각한 재분배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떤 기준에서 얼마만큼 수행해야 하는지 등의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 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재규정하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선진국 연금개혁을 깊이 관찰하면 찾아질 수 있다. 선진국 연금개혁의 핵심은 한마디로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가 필수적 으로 직접 책임지고 챙겨야 하는 부분과 제 2선에서 감독자, 규제자로서의 역 할을 담당해도 되는 부분을 분명히 구분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것이 공적 보장과 사적보장의 역할 재편으로 나타나고, 관점에 따라 국가역할의 축소와 시장의 강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복지국가 황금기에 과대하게 커진 노후소득보장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이용가능 자원이 제약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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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를 맞이하여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필수적 역할과 부차적 역할로 구분하는 과정이 바로 연금개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선진국의 연금개혁을 통한 공적보장과 사적보장간의 역할분담 변화의 핵 심은 공적보장의 기초보장적(basic security) 성격은 강화하는 한편, 기본욕구 이 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사적보장의 유연한 대응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직접적 책임이 노인의 빈곤방지에 목적을 둔 기초보장에 있음을 명확히 하되, 적정소득대체에 목적을 둔 기업연금 및 개인 연금에 대한 국가의 감독과 규제, 보증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공적보장에서의 국가역할 축소가 사적보장에서의 국가의 여건조성자(enabler)로서의 역할로 대 체되는 국가역할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 연금개혁의 핵심은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필수적인 역 할을 중심으로 재편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현행 연금위기에 직면하 여서도 공적연금의 고유한 사회연대에 입각한 재분배를 여전히 유지하고 중요 시 할 뿐 아니라, 사회연대적 재분배의 가장 기본전제 조건인 모든 국민이 혜 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특히 취약계층이 배제되지 않도록 노인 기초소득보장 강화를 위한 여러 정책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용가능한 자원 이 제약되는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국가가 노후소득보장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 할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이에 근거하여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