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검토 <<
2. 노인의 노동과 부양구조의 변화, 그리고 노인빈곤
노인에게 일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Haider and Loughran(2001)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고령자의 노동공급이 노동(work)으로서의 의 미를 지니는지, 여가(play)로서의 의미를 지니는지 분석하였다. 세 가지 패널데이터[Current Population Survey(CPS), Health and Retirement Study(HRS), Asset and Health Dynamics Among the Oldest Old(AHEAD)]를 분석하여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고령 자의 노동공급은 건강하고,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집중적 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이들의 근로시간은 상당 히 유연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패널 분석을 통하여 비금전적인 요소
가 고령자의 노동공급 결정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임금을 받기 위한 노동 이라기보다 여가(play)로서의, 자기만족을 위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준고령자들에게 은퇴 전의 일은 가족이나 생계 를 위한 일이었다면, 은퇴 후의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 의미 있는 일 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우국희, 2007) 고령자가 추구하는 일 의 의미는 Haider and Loughran(2001)의 연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2017년 55~79세 고령자 중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근로 희망 사유는
‘생활비에 보탬(58.3%)’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일하는 즐거움 (34.4%)’으로 조사되어(통계청, 2017), 은퇴 후의 근로 역시 가족이나 생 계를 위한 목적이 더 크게 나타난다. 과반수의 한국 노인들은 노후소득을 확보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년의 소득은 노년의 소득 원천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따라 차이 가 날 수 있다(황선재, 김정석, 2013). 김진욱(2011)의 연구에서는 노후 소득을 구성하는 노후소득원을 시장소득, 사적이전, 공적이전의 세 가지 로 구분하여 분석을 시도한 결과, 한국과 대만의 경우 공적이전 비중이 4 분의 1 정도에 머무르고 사적이전과 근로에 따른 소득의 비중이 높은 것 으로 나타났다. 박미영(2018)의 연구에서도 의사결정을 이용한 노인빈곤 결정요인 분석을 통하여 노인빈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근로 소득 유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노인의 노동이 빈곤을 해소하 는 것은 당연하나, 노동을 통한 근로소득이 빈곤을 해소해 주는 영향이 크다기보다, 빈곤하기 때문에 노인이 일을 해서 근로소득을 획득해야 하 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노인에게 나타나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은 가족의 몫이었는데(김태성, 2007; 손병돈, 1997), 왜 노인은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할까? 이미 자녀가 노부모와 함께 살거나, 노부
모에게 사적이전소득(생활비, 용돈의 형태로 지급)을 지출하여 노인의 생 활을 자녀가 책임을 지는 형태가 규범화되어 있지 않은가? 유교규범과 가 족주의는 한국을 설명하는 주요 개념이고, 유교규범과 가족주의 아래에 서 부모 부양은 자녀의 의무로 생각된다. 부모 부양의 한 형태인 사적이 전은 노인빈곤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미국, 영국은 사적 이전소득이 빈곤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이상붕, 2016), 우리 나라는 사적이전소득의 빈곤 완화 효과가 사회보험이나 공적부조와 거의 효과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이경배, 2018). 이는 사적이전소득이 한국의 노인빈곤을 해소하는 데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비슷하다. 아시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 나는 아시아적 가치인 가족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가족주의 가치 관이란 가족에게 우선성을 부여하는 가족중심적 집합주의의 규범 원리로 인식되는데, 가족주의 가치관에 가족중심적 집합주의의 규범원리로 접근 하며, 가족 우선성, 부계가문의 영속화, 부모공경의식, 형제자매 및 친척 간 사회경제적 유대의식에 대한 총체적인 가족주의 가치관을 의미한다 (김송애, 조병은, 1991). 과거 아시아 사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효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사회조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유계숙, 김제 희, 2017, p. 231). 가족의 의무와 조화에 높은 가치가 부과되었고 어린 시절 부모의 돌봄에 대한 보은의 개념으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존중과 보 살핌 제공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였으며, 연공서열을 중시하여 다 른 모든 의무 이전에 나이 든 세대에 대한 존중과 지지가 강조되어 성인 자녀 본인 및 본인의 자녀 돌봄보다 부모 돌봄이 더욱 강조되었다(유계 숙, 김제희, 2017, p. 231). 은기수(2009)는 동아시아사회조사(East Asian Social Survey, EASS) 2006년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런 아시아적 가족가치가 남아 있음을 제시하였다. 분석 결과, 한국과 일본, 대만 모두
아시아적 가족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은 일본보다는 강하지만 대만과는 비슷하거나 대만보다 약간 약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국의 경우 가족주의 가치관이 지배적인 사회구조였으나, 산업화 과 정을 거치면서 가족구조가 급격히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부양에 대한 가 치관 역시 빠르게 변화하였다. 김두섭, 박경숙, 이세용(2000)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체계가 미미한 환경 속에서 노인의 경제 및 의료복 지를 가족에게 주로 의존하여 왔으나 가족부양체계의 물질적이고 규범적 인 기초가 변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중년층의 세대관계 인식에 따라 노 후대책 마련에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중년층이 전통적인 세대관계를 유 지할 경우 자신의 노후 생활에서도 가족의 부양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노 후대책을 마련하는 데 소극적인 반면, 노부모 부양관이 약한 중년층은 자 신의 노후생활에 대하여 독립성을 강조하고 스스로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김두섭 외, 2000). 결국 이러한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 현대의 자녀들은 부모 부양을 보은의 차원보다는 실 질적인 부양 및 돌봄에 대한 상호 필요의 양방향 교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고,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구적 가치관의 확산으로 성인 자녀 본 인 및 본인의 자녀에 대한 돌봄이 부모 돌봄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유계 숙, 김제희, 2017).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 변화의 결과로 가구 구조가 변화하 고, 사적이전소득도 줄어들고 있다. 임완섭(2015)이 통계청 가계동향조 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노인가구는 2006년 22.0%에서 2013년 27.5%로 증가하였고, 이 중 노인단독가구와 노인부부가구가 11.3%
(2006년)에서 17.5%(2013년)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빈곤노인가구의 사 적이전소득의 비중은 2006년 38.1%에서 2013년 23.4%로 감소하였고, 비빈곤노인가구 역시 12.9%(2006년)에서 9.1%(2013년)로 감소하였다.
현재는 가족주의 가치관이 점차 감소하며 노인의 사적 부양체계 역시 무 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균수명 연장, 인구구조 고령화와 같은 사회현상은 노인 부양에 대한 가족의 역할과 기능에 변화를 가져왔고(최혜경, 2000; 송다영, 2005; 김 유경, 이여봉, 최새은, 김가희, 임성은, 2015), 이는 곧 소득이 없는 빈곤 노인의 증가로 나타났다(강형민, 2018). 결과적으로 노인빈곤 문제가 사 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노후소득 보장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국가 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Rein and Turner, 1999; 강형민, 2018에서 재인용). 그러나 한국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며 노부모 부양에 대한 의식이 빠르게 변화한 것에 비해 사회보장체계의 발전은 그 속도를 함께 하지 못하였다. 진재문, 김수영, 문경주(2014)는 공적이전의 빈곤율 및 빈곤 갭의 감소 효과는 미미한 반면, 사적소득이전은 빈곤율을 약 13.5%
포인트 감소시키고, 빈곤 갭은 약 3분의 2 가까이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 타났다고 보고하면서, 노인가구의 빈곤에 대한 경감은 사회보전에 따른 공적소득이전보다는 사적소득이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 다. 이상붕(2018), 임완섭(2015) 역시 노후소득보장제도의 미성숙과 급 여 수준의 불충분을 언급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 속도와 제도의 변화 속 도 차이에서 노인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주의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노인의 빈곤 해소를 위한 공적 책임이 증대하였다. 석재은, 유은주(2007)는 ‘가족부양 우선원칙’에서 ‘사회부양 우선원칙’으로 주 부양의 책임 주체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부 양의 자연적 토대인 가족부양 기능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 부양이 효의 실 천이 아니고 강제적 의무 수행이 되는 사회에서 부양부담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후 노인빈곤에 대처 하기 위한 소득보장제도가 발전하고 있으나, 권혁진 외(2018)는 현행 공
적연금 제도하에서는 장기적으로 대부분의 노인이 공적연금만으로는 최 소한의 노후소득도 마련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하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 체율 인상만으로는 미래에 노인빈곤이 획기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 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는 노인빈곤을 가족 내에서 해소할 수 없고, 공적인 노후소득보장 체계 역시 노인빈곤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아시아 국가의 경험에 미루어 한국의 방향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