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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어의 불명확성

「검역법」과 「감염병예방법」에서는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한 방역조치의 하나로서 증 상이 있는 환자가 어떤 질병이 진단된 후의 조치인 ‘격리(isolation)’와 전파 가능성이 있 다고 우려할만한 증상은 있으나 확진되기 전에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기 위한 ‘검역 (quarantine)’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명시적인 법적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75) 격리라는 것 은 이미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균을 가지고 있는 환자나 보균자를 대상으로 질병의 감염 가능 기간 즉 균 배출 기간 동안 환자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떼어 놓은 것을 말한다. 따라 서 현행 법률상 ‘자가격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개념상으로는 격리가 아니라 검역이라고 보아야 한다.76)

「검역법」에서의 검역이 병원체의 국내 유입에 대한 차단을 의미하는 것임에 비해, 「감 염병예방법」에서의 검역은 병원체의 해당 시․도의 유입을 차단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77) 그러나 공항이나 항만에서 국외에서 국내로의 병원체 유입을 차단하는 것과 별도의 물리적 경계와 검역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시․도 단위에서 운송수단을 검역 하는 것은 동일한 개념과 그에 따른 조치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개념의 불명확성은 「감염병예방법」이라는 법률 안에서도 강제처분으로서의 격리(제42조 제5항)와

75) 박미정․이종구, “메르스 대응조치에 나타난 법률의 문제점 고찰과 개선방안”, 한국의료법학회지 제23권 제2호, 2015, 194면. 본문의 구분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른 구분이다. <http://www.cdc.gov/quar antine/index.html> (2018. 9. 20. 방문).

76) 천병철, “감염병 위기대응체계 개선 – 감염 의심자 및 노출자 격리 관리 -”, 의료정책포럼 제13권 제3호,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2015. 10), 150면.

77) 「감염병예방법」에서 ‘검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조문이 있다. 이에 따르면, 시ㆍ도지사는 감염병 을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검역위원을 두고 검역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게 하며, 특별히 필요하면 운송 수단 등을 검역하게 할 수 있다(제61조 제1항).

방역조치로서의 격리(제47조 제3호), 예방조치로서의 격리(제29조 제1항 제14호)의 기준 과 방법을 모호하게 한다. 예컨대 “검역구역에 대기하거나 격리할 것을 조건으로 승객, 승무원 및 화물을 내리게 할 수 있다(제11조)”는 「검역법」의 조문에서 검역의 시작과 격 리조치를 구분하기란 사실상 어렵다.78) 「감염병예방법」상 검역 개념 사용의 적정성에 대 한 검토가 필요하다.

「감염병예방법」상 감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로서는 통행제한뿐만 아 니라 일시적 폐쇄와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 정지를 추가하였는데,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하여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모든 조치를 하거나 그에 필요한 일부 조치를 하여야 한다 (제47조)”는 대상에 해당하는 “감염병환자등이 있는 장소나 감염병병원체에 오염되었다 고 인정되는 장소(제47조제1호)” 또는 “감염병병원체에 감염되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적당한 장소(제47조제3호)”와 같은 장소에 대한 표현은 당연한 해석상 구체적인 범위로 보이지 않아 검역 조치와 어떻게 연관성을 가져야 하는지 불분명하다.79)

법적근거의 불명확성은 「감염병예방법」과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예컨 대,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질병에 걸린 자에게 의사의 진단 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제45조), 「학교보건법」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교를 중지시킬 수 있는 반면, 학교의 휴업은 감독청장 혹은 학교의 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제8조, 제11조, 제14조).

2. 자가격리의 타당성

감염병이 발생하면, 밀접접촉자로 판단된 경우에는 최대 잠복기 14일 동안 자택격리를 통해 증상발생 여부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을 자가격리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 고령 이나 만성질환자 또는 환자가 발생한 병원 입원자에 대해 코호트(cohort) 격리를 실시하는

78) 박미정․이종구, 앞의 논문, 194면.

79) 박미정․이종구, 앞의 논문, 194면.

것을 시설격리라고 한다. 그리고 밀접접촉자는 아니지만 기타 접촉자의 최대 잠복기 14일 동안 증상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능동 모니터링 혹은 능동감시라고 한다.80) 접촉자는 질 병관리본부로 보고된 후 관할 보건소의 관리 하에 자가격리가 이루어진다. 보건소는 해당 지역 보건소의 관리 인력이 검역소로부터 통보받은 밀접접촉자에게 주의사항을 안내하 고, 자가격리대상자에 대해 능동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질병관리본부로 보고하여 관리하는 체계가 자가격리체계이다.

메르스 사태 때 자가격리는 격리의 적당한 장소가 ‘환자 각자의 집’이었다는 점은 공공 보건당국이 자신들이 제공하거나 알선해야 할 적당한 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채 혹은 정 작 중요한 병원․병동격리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자가격리라는 편법을 동원하고 이에 불응하면 벌금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 적81)은 수긍할 만하다. 더 큰 문제는 감염병이 감염의심자의 거주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 고 행정구역의 구분에 맞추어 전파되지도 않기 때문에 거주지기준의 전파차단조치는 신 속대응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82) 더욱이 자가격리 수칙은 오로지 대상자의 자율적 협조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는데, 격리대상자의 올바른 이해와 수칙 준수가 뒤따르 지 않는다면 효과적인 감염병 전파의 차단도 어려워진다.

감염병 발생 후 검역, 격리조치, 치료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방역조치는 그 조치의 신속함도 중요하지만, 조치의 근거나 절차적 정당성 또한 충분히 갖추어져야 한다. 법률 에 의해 위임을 받아 정한 지침에 의해서 정책이 집행될 경우에는 신속성은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전에 예측 가능한 내용으로 명시되지 않은 지침으로는 감염환자는 물론 검역 대상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83) 방역초기에 격리대

80) 천병철, 앞의 논문, 150면.

81) 이계수, “메르스와 법: 전염병의 법률학”, 민주법학 제58호, (2015. 7.), 241면.

82) 예컨대 메르스 유행 시기에는 1일 최고 6,729명의 의심환자가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되었는데, 격리대상자의 주소지관할 해당보건소 인력이 매일 격리대상자들을 모니터링 하였다. 격리대상자가 거주하 고 있는 해당보건소는 서울시의 일괄적 인 통솔이 아닌 각 자치구의 행정절차에 따라 대응했기 때문에 지 체와 혼선은 피하기 어려웠다. 박미정․이종구, 앞의 논문, 196면.

83) 실제로 자가격리를 실시하기 전에 밀접접촉자들의 주거환경요인 등을 사전에 검토하거나 격리대상자들에게 격리조치를 위한 고지절차나 이를 수행하기 위한 법률에 근거한 공무수행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박미정․이종구,

상자 선정기준은 미국 질병관리통제센터(CDC)의 가이드라인을 따라던 것과는 대조적으 로 검역과 격리 원칙은 미국의 엄격한 기준을 고려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84) 이는 국내 유입이 우려되는 해외 유행 감염병을 공무 수행자들만 알아야 할 사항으로 간주한 것으 로서 격리나 검역 대상자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은 감염병 관리체계라고 할 수 있다.85)

3. 격리처분의 정당성

앞의 논문, 196면.

84) Title 42 - The Public Health and Welfare, Chapter 6A - Public Health Service, Sub chapter Ⅱ - General Powers and Duties, Part G - Quarantine and Inspection. <http://www.cdc.gov/quarantine/index.html> (2018. 9. 20. 방문).

85) 박미정․이종구, 앞의 논문, 196면. 이점은 다수 공중의 정당한 목적을 위한 제한을 명문화한 시라쿠사원 칙(Siracusa Principle)에도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시라쿠사 원칙 : ⓛ 해당 제한은 법의 의거하여 명시되고 이행된다. ② 제한은 합당한 일반이익목표(legitimate objective of general interest)를 위해서이다. ③ 제한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하다. ④ 동일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침해나 제한의 성격이 다른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⑤ 자의적으로, 즉 비합리적이 거나 다른 형태의 차별적인 방식으로 선택 혹은 부과되지 않는다.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uncil, Siracusa Principles on the Limitation and Derogation Provisions in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U.N. Doc. E/CN.4/1985/4.

<사례 1> 격리조치와 인권보호

“제발 한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게 해주세요.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25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숨을 거둔 80번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35)의 부인이 지 난 12일 한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부인은 게시글에서 보건당국이 ‘전염력이 없 다’고 판단하면서도 남편의 격리를 해제하지 않은 데 대해 “(남편의) 기저질환인 악성 림프종 치료를 위해 형제 동종이식을 해야 하고, 동종이식 전 처치를 하려면 음압실에서 나와야 하는 데 격리돼 있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국내 마지막 메르스 환자’

였던 그의 남편은 결국 아내의 절규를 뒤로하고 2주도 안 돼 영영 눈을 감았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이날 “80번째 환자가 6월7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이후 서울대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아 오다 유전자검사상 음성과 양성이 반복됐고, 기저질환인 악성 림프 종 치료 중 경과가 급격히 악화돼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유족들의 절규와 항의에는 “격리조치 가 진단과 검사에 불편함을 줄 수는 있지만 치료를 방기하지 않았고 이러한 사실을 환자 가족 들에게 여러 번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할 만큼 했다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이날 “80번째 환자가 6월7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이후 서울대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아 오다 유전자검사상 음성과 양성이 반복됐고, 기저질환인 악성 림프 종 치료 중 경과가 급격히 악화돼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유족들의 절규와 항의에는 “격리조치 가 진단과 검사에 불편함을 줄 수는 있지만 치료를 방기하지 않았고 이러한 사실을 환자 가족 들에게 여러 번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할 만큼 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