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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장수의 풍토적 조건과 풍수사상

3. 한국전통의 이상적 주거관과 건강장수 마을의 조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이상적인 주거지 선택과 주택입지관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대지의 모양, 집터 주위의 지 형지세, 토질과 수질, 주위 산수의 형태, 도로 조건 등 다양한 요소들이 집터의 선택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이 내용들은 유학자들에 의해 실용적이고 합리 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판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용문의 ‘길 흉’이라 는 평가 개념 속에는 건강장수의 조건이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위의 글에서, 주택 주위의 지형에 앞이 높고 뒤가 꺼져있으면 대가 끊긴다는 표현을 쓰고 있어서, 이러한 지형조건의 택지는 건강하게 지속적인 삶을 이룰 지 형환경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지형조 건에 대한 논의는 과학적인 채광이나 배수 조건 등을 고려해 보더라도 합리적으 로 이해와 납득이 가능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중국의 풍수서에 나오는 건강장수의 공간적, 장소적 조건과 이해 방식 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양에서 풍수와 의학의 논리체계와 토대는 같은 것이어서 서로 비유적으로 표현, 설명되고 있으며, 풍수의 환경과 의학의 건강장수는 직접적이고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시스템의 구성요소였

주택지는 집터가 평탄하고 좌우가 긴박(緊迫)하지 아니하며, 명당(明堂)이 넓고 앞이 트였으며, 흙은 기름지고 물맛은 감미로워야 한다.

무릇 주택에 있어서, 동쪽에 흐르는 물이 강과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있으면 길 (吉)하고, 동쪽에 큰 길이 있으면 가난하고, 북쪽에 큰 길이 있으면 흉(凶)하며, 남쪽 에 큰 길이 있으면 부귀하게 된다.

무릇 주택에 있어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면 생기가 높은 터이고, 서쪽이 높 고 동쪽이 낮으면 부(富)하지는 않으나 호귀(豪貴)하며,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문 호(門戶)가 끊기고,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우마(牛馬)가 번식한다.

다. 중국 명대에 저술되어 조선후기에 널리 읽힌 풍수서인 인자수지에서는 건 강한 장소의 지형적 조건을 인간사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위 인용문에 의하면, 산수의 지형조건도 잘 갖추어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명 도 번창할 수 있기에, 주거에서 지리적 조건을 잘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윗 글에서 수는 땅의 혈기니, 근맥을 통해 흐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사람으로 비 유하자면 산은 사람의 형체와 같고 수는 사람의 혈맥과 같다는 것이다. 수는 연 결성을 그 속성으로 한다. 한의학에서 인체의 경락에서 기의 흐름이 원활해야 이 어져야 사람이 생기를 골고루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켜 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수의 흐름도 면면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사람의 몸을 경락이라는 기의 운행체계로 이해한다. 풍수의 용맥 도 땅의 생기가 그 이치를 나누어 지표면 부근에 행하는 것으로, 인체의 경락과 땅의 용맥은 그런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14) 한의학서 병을 진단할 때 망기(望氣) 하고 진맥하며 이상이 있으면 혈맥을 찾아 침을 놓고 뜸을 떠서 병을 고치는 것 과 마찬가지로, 풍수에서는 산도 용맥을 보아 산천의 어느 부분이 허하고 결함이 있으면 보완하고, 지나칠 때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풍수의 일반적 원리이자 목적은 ‘풍기(風氣)를 갈무리하고 모은다.’는 말로 압 축될 수 있다. 풍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생기를 저장하는 국면을 조성하고 살기를

13) 人子須知 「論龍脈血砂名義

14)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56, 78쪽.

산을 맥으로 칭한 것은 어떠한 까닭인가? 사람 몸의 맥락은 기혈의 운행으로 말 미암아 일신의 품부(稟賦)가 달려 있는지라, 무릇 사람의 맥이 맑은 자는 귀하고 탁 한 자는 천하며, 길한 자는 편안하고 흥한 자는 위태로우니, 지맥도 역시 그러하다.

훌륭한 의사는 사람의 맥을 살펴 그 사람이 편안한 상태인지, 위태로운 상태인지, 그리고 생명의 길고 짧음을 알고,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은 산의 맥을 살펴 그 길흉미 덕을 아는 것이다.

13)

막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풍수의 명당조건으로 왜 풍기가 모여야 하는지는 전통 의학적인 측면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좋은 땅이란 일차적으로 거주하는 사람 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땅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거환경에 살풍(煞風)이 없어야 하는데 한의학적으로 만병은 풍기에서 비롯하 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한의학의 원전인 황제내경소문에서도 서술하기를, “바 람은 만병의 시초다.”15), “바람은 만병의 가장 큰 요인이다.”16), “바람이 사람을 상하게 한다.”17)는 등의 구절이 있으니 모두 인체의 병은 바람에서 비롯한다고 경계하는 내용이다.

중국 주택풍수서의 고전인 황제택경에 의하면, “무릇 집이란 음양의 중심이 고 인륜의 본보기”18)라고 하여 집의 위상을 음양의 중심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놓고 있다. “집이라는 것은 사람의 근본이며 사람이 집으로 일가를 이루는데 주 거가 안정되면 집안이 대대로 번창하고 길하나 불안하면 쇠망하고 만다.19)”라고 하여, 사람의 삶과 생활에 있어서 집이 가지는 근본적 중요성에 대한 강조와 함 께, 주거의 안정이 미치는 영향을 말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집으로 말미암아 이 루고, 집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니, 사람과 집이 서로 도와 천지를 감통(感 通)하는 까닭으로 홀로 명(命)을 펼칠 수가 없는 것이다.”20)라고 주거의 철학적 의의를 분명히 밝혔다. “택법(宅法)은 어긴 자에게 재앙을 막고 화를 그치게 함이 마치 병을 고치는 약의 효험과 같은 것”21)이라는 내용은 집과 건강장수의 직접 적인 관련성과 효과에 대해 함축적으로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집이라는 건축물은 자연지리적 장소인 집터에 기초하고 있기에, 집터는 건축 풍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황제택경에서는 비유하여 말하기를, “땅이 좋 으면 싹이 무성하고, 집이 길하면 사람이 번영한다.”22)라고 하였다. 풍수론에서

15) 生氣通天論篇 第三.

16) 玉機眞藏論篇 第十九.

17) 風論篇 第四十二.

18) 黃帝宅經: “夫宅者乃陰陽之樞紐 人倫之軌模".

19) 黃帝宅經: “宅者人之本 人以宅爲家 居若安則家代昌吉 若不安則門閥衰微".

20) 黃帝宅經: “人因宅而立 宅因人而存 人宅相扶 感通天地 故不可獨信命也".

21) 黃帝宅經: “宅法 犯者有灾鎭而禍止 猶藥病之效也".

집과 집터에 관한 건강장수의 논의에 관해 중국의 풍수경전인 양택십서(陽宅十 書)를 살펴보기로 하자. 집과 집터의 조건이 건강과 장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 여 언급된 것을 몇 가지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양택십서에서는 집의 외형, 집터의 형태, 길의 조건, 수목의 형태, 하천의 조 건, 연못 등의 조경 문제 등 다양한 조건을 건강, 장수와 관련시키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전근대시기의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노력한 경험적인 주거 지식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합리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집터에 관하여 “집(터)는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대가 끊어져 문호(門戶)가 없게 된다.”

고 하였으니, 이것은 대지의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배수나 채광의 조건에 있 어서도 집 뒤가 높고 앞이 낮은 것이 이상적인 주택지의 지형조건이 됨은 물론이 다. 또한 “집은 수목(樹木)이 모두 집을 향하려 하면 길하고, 집을 등지면 흉하 다.”는 언급도 있는데, 이것은 집과 마당의 일조조건이 양호하여 주위의 나무들 이 집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이해된다. “큰 나무가 대문을 마주하면 주인은 전염 병을 불러들인다.”는 뜻도 나무로 인한 채광의 불리한 조건으로 빚어지는 문제점 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22) 黃帝宅經: “地善則苗茂 宅吉則人榮".

집은 문 앞에 연못을 새로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주인은 대(代)가 끊어져 자손이 없게 된다.

문 앞이나 집 뒤에 도랑물이 팔자(八字)로 나누어지거나 앞뒤에서 물이 나가서는 아니 된다. 주인은 후사가 끊긴다.

큰 나무가 대문을 마주하면 주인은 전염병을 불러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