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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근대 뛰어넘기

IV. 공동체운동의 다면적 특성과 변화경향에 대한 분석

3) 한국식 근대 뛰어넘기

오늘날 서구의 공동체운동은 이미 근대적 합리주의, 물질중심의 산업주의, 국가 주의와 개인주의를 경험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개인들의 협력적 실천으로 공

48) 일본의 생활클럽생협이 지역정당운동으로 분화하여 지역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가나가 와네트워크 등의 ‘네트’운동의 ‘대리인 제도’, ‘3선 제한 제도’ 등이 이러한 상황을 설명 해준다.

동체가 형성․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토대는 공동체운동에서도 개인과 개인, 개인 과 전체와의 관계 설정이 나름의 공동체적 틀로 짜여지고 운영에 있어서 프로그램 화가 많이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의도적 계획성(intentional)이 높고, 그에 뜻 을 같이하는 개인들의 집합 형성과 변화․해체, 발전과정이 개인과 사회에서 자연 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오랜 도시사회 전통 속에서 공동주거운동 (Co-Housing) 등 다양한 도시 공동체운동 또한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오랜 중앙집중의 역사와 농촌 공동체의 급속한 붕괴, 불패의 성장․개발 신화, 서구를 따라가는데 급급한 후발 주변부적 정체성 등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어 물질적 산업화의 폐해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실천이 조직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농촌․가족 공동체의 긍정적인 면 을 전통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그러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공존하며, 사회적 학습을 받아온 합리적 요소뿐 아니라 공동체적 정서가 여전히 개인들에게 추억처럼 남아있다. 이는 공동체운동에 좋은 기반으로 작용하기도 하 며 극복해야 할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를 국가보다 가족과 친족 공 동체 등 전통적인 공동체적 관계에 의존하여 풀어가고, 또는 그 관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에 있다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 못하다는 이 세대의 한계임과 동시에 기회인 것이다.

우리의 시대적 조건은 공동체적 관계망 짜기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서구의 조건과 여전히 공동체적 관계망으로 삶이 짜여져 있는 남미나 동남아 시아의 대다수 사회단위에서 새삼스레 의도적인 생태공동체를 구성할 필요가 없는 조건과는 분명 다름이 있다. 우리 사회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따라서 우리 사 회 공동체운동의 양상은 서구의 계획공동체를 건설하는 방식과 전통적인 마을공동 체를 복원하는 방식의 중간에서 어느 쪽에 좀더 치중하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만 들어진다. 기존의 농촌․도시마을을 지역공동체로 회복하는 활동 방식, 귀농자들이 많아진 지역에서 협력적인 인적 연대를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활동 방식, 이미 쇠락한 과소지역이나 오지에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건설하는 방식 등 여러 경로로 시도되고 있다. 계획 공동체와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장점을 살려 이루려하는

관계망을 지역공동체 운동이라 할 수 있고 홍성의 홍동면, 남원의 실상사 들녘 산 내면 등에서 지역공동체를 변모하는 활동이 활발하다.

이 시대 한국식 에코토피아 만들기는 마을 공동체의 시대적 복원 프로젝트로서 지역공동체 만들기이며, 이는 우리 사회의 살아갈 길이기도 하면서, 우리의 긍정적 요소를 활용하여 역사적 시간과 지구적 공간에서 문명전환의 돌파구로 작용할 전 범(典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 계획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가기에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도 사람이 지만 땅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만한 곳은 이미 마을이 들어서 살아온 곳이 기에 경제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공동체를 펼칠 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 기에 쇠락하는 그 마을들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공동체적 삶의 그물을 짜나가는 것 이 우리 사회에서는 공동체 건설의 또 다른 경로가 되는 것이다. 과소한 농촌 지 역으로 가서 지속가능한 농업 기반을 형성하고 대안적인 교육과 복지 체계를 만들 어 지역 공동체로 꾸려 가는 것이 공동체 건설의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공동체운동이 이탈과 접합의 과정이라 할 때, 근대적 개인으로 서있지도 않고 사회제도가 나의 삶을 보장해주지도 않으니 이탈은 쉽지 않고, 선례로 삼을만한 모델도 다양하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

‘이탈 과정의 완충지대’이다. 공동체의 삶으로 나아가는 이탈 과정에서 두려움과 어려움을 경험하고 극복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완충지대이다. 기존 관 계의 해체와 대안을 재구축하는 중간지대로서 몰락해 가는 오지 농촌지역49)은 현 시대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운동의 전략지대라 할만하다.

한편, 앞서 생활세계에 대한 논의를 하였지만, 하버마스의 생활세계 논의를 보 더라도 한국의 경우 합리화된 체계의 새로운 질곡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왜곡된 근대화과정에서의 왜곡된 체계의 민주화와 합리화를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49) 사례연구 대상으로 언급되지 않은 ‘한농복구회’는 전국 10여 곳의 오지에 자리를 잡고 전체적으로 2만여 명의 주민들이 유기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규모의 공동 체이다. 이들이 전국의 오지를 찾아 들어간 이유는 사회와 일정한 경계를 두고 땅값이 싼 자연 속의 대지에서 주변 영향을 받지 않으며 유기농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종교적 성향으로 인해 보편적인 모델로는 부적합하다.

볼 수 있다. 이는 하버마스가 대상으로 했던 고도한 합리성의 새로운 질곡의 문제 와는 다르다(조희연, 2004). 그럼에도 세계체제에 노출된 한국 사회의 생활세계는 매우 취약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공동체운동은 세계체제에 식민화된 생활세계를 방어하고 재구축하며, 국가 체계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의 합리화를 이 루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50). 그만큼 현재 형성되고 있는 공동체운동 은 사회적 뒷받침이 거의 없이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이 지점에서 공동체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전략적으로 연대해야할 필요가 제기된 다. 또한 시민사회 형성 정도가 우리보다 늦은 그러나 우리와 같이 생활세계가 신 자유주의 체계에 노출된 제3세계 나라들에게 우리 공동체운동의 경험과 발전 과정 은 풍부한 운동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