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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운동의 규범적 개념 재구성

II. 공동체운동의 개념과 이론 논의

4) 공동체운동의 규범적 개념 재구성

공동체에 대한 전통적 논의와 생태론, 신사회운동론, 서구의 공동체운동 경험으 로부터 도출된 논의, 동양과 한국의 생명론적 전통 등 앞서의 논의들을 이 연구에 서 다루고 있는 공동체운동에 대한 개념으로 정리하고 재구성해보자.

우선, 이 연구에서는 Hillery가 도출한 지역성, 상호작용, 연대의식이라는 전통 적인 공동체의 세 가지 주요요소를 수용하여 이러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공동체 운동을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해 연대의 식을 고양하여 스스로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적인 일련의 활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이 시대가 변화된 사회․자연 조건에 따른 패러다임의 전환기임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공동체운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이해하 고 또 운동을 이끌어갈 규범적 개념을 논의할 수 있다.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지역성은 공동체운동의 기반이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공동체 운동의 규모와 범위를 말하기도 한다. 공동체운동은 직접 대면적인 관계를 중시하 며 그 관계를 통해 개인과 전체가 더불어 변화․발전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일정 한 지역 규모를 감안하여 운동이 전개되고 규모와 확장되면 분화하는 경향을 갖는 다. 그렇다고 공동체운동이 지역에 안주하고 고립하는 것은 아니다. 자급자족을 지 향한다 하여도 그것이 100% 자급자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와의 관계가 더욱 개방되는 이 시대에 그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외부와 물질과 에너지의 낭비적인 교류는 줄여가되 경험과 정보와 연대의식은 더 많은 교 류가 이루어질 것이다. 자급자족을 이루려는 것은 공동체와 개인이 자기결정권을 높이고 이상의 실현을 위한 자기조직화를 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성은 열려있으되 공동체운동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 의 경계로 필요하다. 이 지역은 땅(地)이고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는 장이다. 이 관계 속에서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사회의 지속성을 확보한다. 인간과 자연 의 관계는 바로 생태론이고 전환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이에 공동체운 동의 기반으로서 지역은 생태론적 차원으로 발전해간다.

둘째, 상호작용은 단순히 무엇을 주고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호작용하 는 주체들은 무엇인가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열린 관 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서로가 서로에 의존하고 서로를 돕는 상호의존과 상호부조의 성격을 갖는다. 상호작용은 경쟁이 아닌 협력을 의미한다. 상호의존과 상호부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방식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생명 론적으로 ‘너’가 없으면 ‘내’가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인간은 공동체로 살아왔고, 공동체로 살려고 하며, 공동체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사회적 관계이고, 그것은 단순히 상호작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더불어 변화하고 성 장하는 공동체적 관계인 것이다. 상호작용의 전환적 지향은 공동체적 관계이다.

셋째, 연대의식은 동질감과 소속감을 갖는 정서적 교감일 뿐만 아니라 우주적, 영적 교감이기도 하다.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동기부여가 이루어지는 의식의 고양 이기도 하고, 나아가 공동체적 삶 속에서 인간의 의식을 변화하고 계발하는 것은 공동체운동이 가지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발전된 인간의 의식은 인 간의 차원을 넘어선 인식의 확장이다. ‘내’가 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세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의 깨임이며, ‘우주적 각성’이다.

연대의식의 패러다임 전환은 바로 영성인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패러다임 전환기의 공동체운동을 잠정적으로 정의하면,

“지속가능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일정한 지역단위에서 협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공통의 연대의식을 북돋우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지속가능한 인간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다는 것은 인간중심적이고 이원 론적 규정이 아니라 인간은 이미 자연의 일부분이며 생명으로서 자연의 한계를 지 니고 있고 자연과의 관계,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전제로 한 다. 또한 지역은 규모와 관계, 생태성의 토대이고, 상호작용은 상호호혜적, 협동적 의존 관계의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며, 공통의 연대는 만물의 관계론적 인 식을 확장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연대의식은 협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상호작용과 연대의식은 나선 순환형의 경로로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와 앞서의 지속가능성 논의를 정리하면 아래 <그림 1> 과 같다.

패러다임의 전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 중심적

관점 공동체 개념 요소 지리적 영역 사회적 상호작용 공통의 연대

인간 삶의 터전 인간 관계 방식 인간의 정서적 측면

󰀻

자본주의 세계화생태위기 ⇨ ⇦ 생활세계 식민화

󰀻

산업 사회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신(우주)과 인간의 관계 생태․

생명론 관점 확장․심화된

공동체 개념 요소 생태 공동체 영성

생태적 관계․地 사회적 관계․人 영성적 관계․天

󰀶 󰀵

지속가능성 원칙 생태적 균형 (생태성)

세대내 균형 (형평성)

세대간 균형 (미래성)

󰀻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

<그림 1>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공동체운동 개념의 재구성

이러한 공동체운동 개념의 확장과 심화를 통해 변화된 현실에 조응하는 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해석과 전망을 가질 수 있다.

공동체운동은 영성적(天, Spiritual)․생태적(地, Ecological)․사회적(人, Social) 삶을 통합적으로 실현하는 전략적 실천의 장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공동체의 초 기 형성단계에서는 치우쳐 발생할 수는 있어도 지속가능성의 전망을 가지기 위해 서는 조화롭고 균형 잡힌 변화․발전이 요구된다. 공동체가 영성에 치우치면 종교 적 배타성에 머물기 쉽고, 영성이 부족하면 지향점을 공유하지 못하고 자중지란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생태에 치우치면 안빈낙도의 개인적 삶에 머물기 쉽고, 생태

적 실천이 부족하면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사회(공동체)에 치우치면 생명의 다 양성을 잃기 쉽고, 사회적 삶이 부족하면 소외를 극복할 수 없다. 이렇듯 세 가지 요소가 정립(鼎立)할 때 생태공동체의 지속성이 확보되며, ‘자기 조직하는 생명의 다차원적인 그물망’(김지하, 2003)으로서 세계를 열어 갈 수 있다.

세 가지 요소 가운데 우리가 잃어버린 지 가장 오랜 것이 영성이다. 생태적 실 천은 생태위기의 확산․심화와 더불어 널리 퍼지고 있으나 영성적 실천은 종교까 지 상품화되는 현실에 비추어 여전히 막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영성은 땅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우주 진화의 기운과도 같아서 이에 대 한 각별한 인식과 실천이 요구된다.

영성의 회복과 계발은 ‘모든 자연과 삼라만상이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으로 무교(巫敎, 샤머니즘)적 관점에서 한국적 영성을 계발하는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만물에 깃들인 신성(神性) 느끼기’를 프로그램화할 것이 제 안되기도 하였다. 또한 최치원의 글씨로 남은 신라시대의 풍류도(風流道)의 ‘접화 군생’(接化群生)에서 김지하 시인은 ‘뭇 생명과의 교감과 소통’을 표현하는 생명의 가장 큰 특성인 관계성(接), 순환성(化), 다양성(群), 영성(生)을 읽어내었다. 그는 또 생명운동의 실천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된 삶과 사회의 총체적 변혁운동으로 서의 문화운동, 생명문화운동의 의미를 보다 더 강조하기 위해 율려운동을 제안하 기도 하였다(김익두․윤형근․주요섭, 2001:84쪽)

동양과 우리 사회의 전통 사상 및 이를 계승한 생명론, 그리고 서구의 생태론 과 공동체운동 실천 경험 및 논의들이 미래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열어 가는데 이 처럼 조응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에 공동체운동이라는 생명의 약동이 실현되 어 드러나기 시작하였으니,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생명론의 표현 을 빌면, 후천개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우리 공동체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데 유용한 잣대를 제공한다. 4장에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