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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춤 정체성의 개념

춤은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원초적인 몸짓 언어로, 역사와 함께 축적되어 온 인류의 문화다. 또한 춤은‘문화적, 심미적 구현체(具現體)’(김태원, 2015, pp.

99-100)로, 개인의 감정 및 집단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예술적 매개체다. 문화란 기본적으로 특정집단 혹은 지역의 관습적 기능의 집합체(민족미학연구소, 2002, p. 91)라는 점에서, 춤 또한 특정한 사회 혹은 지역의 춤예술에 관한 관습을 내포 한다. 김태원(2011)은 춤문화란‘춤의 무대공연을 넘어서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 으로, 춤예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든 예술제도 및 정보 혹은 지식 전달이 나 그 구축의 종합체’(p. 164)라고 함으로써 광의적 차원에서 춤문화를 바라보 았다. 문화로서의 춤은 특정한 구조 안의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 른 조건과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 그것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춤이 지닌 예술 문화적 특성은 춤 정체성에 대한 개념 정의의 근간이 되며, 춤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앞서 살펴본 개인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의 개념 비교를 통해 보다 확실해진다. 개인 정체성은‘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신 존재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이는 사회정체성 이론(Tajfel, 1974, 1978; Tajfel &

Turner, 1986)과 자기범주화이론(Turner, Hogg, Oakes, Reichel, & Methewell, 1987)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인적 차원과 사회집단의 차원에서 정의내릴 수 있다. 개인은 춤이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정체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춤이 지 닌 본질적이고 예술적 특성에서부터 집단에 의해 구축된 특정 춤의 문화적이고 양식적 특성으로부터 기인된다. 춤은 단순히 육체적인 기능으로 끝나는 것이 아 니라, 인간의 심상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간의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만들고, 민족적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이 상일, 2003)을 하기 때문에 춤은 개인 정체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화 정체성과 집단 정체성을 구축하는 요인이 된다.

춤 예술이 지닌 본질적인 특성은‘춤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되고, 특 정 집단에 의해 구축된 춤의 문화적이고 양식적 특성은‘개인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춤은 타인 혹은 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춤과 어떻게 다른가?’

라는 물음과 관련된다. 결국, 춤 정체성이란‘본질적 특성’과‘문화적이고 양식 적인 특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문화적이고 양식적인 특성은 춤문화가 지닌 특 수성에 관한 것으로,‘개인 혹은 특정 집단이 속한 문화가 타인 혹은 타 집단이 속한 문화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문화 정체성의 개념과 맞닿는다. 다시 말해, 춤 정체성이란‘춤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을 포함한 특정 개인 혹은 집단에 의 해 만들어진 고유한 춤문화의 특수성’이라 개념화할 수 있다.

춤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춤이란 무엇인가’라는 춤에 대한 정의로부터 시작 되며, 특정 개인 및 집단에 의해 구축된 춤문화의 특수성이 무엇인가로 이어진 다. 다음에서는 춤이 지닌 본질적 특성, 그리고 특정 개인 및 집단에 의해 구축 된 춤문화의 특수성을 여러 차원으로 구분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나. 춤의 본질적 특성

춤이란 무엇인가? Mary Wigman은“인간의 육체를 통해 영혼의 소리를 표현하 는 예술”이라고 하였고, Maurice Bejart는“인간의 내적 세계의 표상이며, 인간 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예술 형태”라고 하였다(이순열, 2012, p. 236). Roger Copeland와 Marshall Cohen(1983)에 의하면 춤은‘공간과 시간 안의 패턴과 리듬 을 지닌 움직임’으로 정의되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광범위한 정의는 인간과 비인간의 움직임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춤을‘인간 활동의 움직임만’으로 제한하더라도 퍼레이드의 행진은 춤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또한 부족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춤을 정의하기 위해 예술에 관한 전통적 접근인‘모방 (imitation)’,‘표현(expression)’,‘형식(form)’이라는 세 가지 준거를 제시한다.

모방이론의 관점에서 예술은 자연 혹은 인간의 행동과 열정의 모방이고, 표현이론 의 관점에서 예술은 감정 혹은 소통이 이루어진다. 형식이론의 관점은 그 자체로 는 춤을 특징짓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세 가지 이론적 관점을 모두 결합 하면 춤에 대한 보다 적합한 이론을 얻게 된다(pp. 1-2). 이를 정리하면, 춤이란

‘자연 혹은 인간 행동의 모방이자, 몸짓을 통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이 들과 소통하는 특정한 형식을 지닌 예술’이다.

춤의 정체성 파악에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은 춤의 형태, 기능, 의미, 그

리고 춤에 내재된 문화적 구조와 특질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신상 미, 2007, p. 331)으로, 이러한 다양한 차원의 논의는 춤 정체성에 대한 보다 구 체적 이해를 돕는다. 평론가 John Martin(1983a, 1983b)은 춤을‘소통의 수단(a means of communication)’,‘자기표현 혹은 감정의 표현 양식(a form of self-expression or an expression of emotions)’으로 바라보며,‘개인이 합법적이고 지성적 방법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을 신체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고 전환하는 예술’이라고 춤을 정의했다. 또한 동작을 넘어 정신과 감 정을 의미하는‘메타키네시스(metakinesis)’의 관점에 근거하여 춤을 바라봄으로써 춤의 영역을 신체에서 정신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20세기 춤이론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주장을 내세운 철학자 Susanne K. Langer(1983)는 춤에 있어서 실제 (actual)와 가상적(virtual) 요소를 분리하고자 했다. 춤이 신체 움직임을 통해 인간 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Martin의 관점과 맥을 같이 하지만, 그녀에 게 춤은 무용수 자신의 실제 감정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환영의(illusionary) 혹은 가 상의 움직임이며, 예술가가 직접 겪은 경험들이 작품에 표현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상징적인 표현 양식으로 창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였다(pp.

28-36).

평론가 André Levinson(1983)은 춤을 모방도 표현도 아닌‘신호(sign)’로 보고, 그 자체로 외적이고 순수한 기능(pure function)으로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평 론가 Paul Valéry(1983)는 춤이란 단순히 운동, 오락, 장식적인 예술, 혹은 사회적 활동이 아니라, 인간의 에너지와 감성이 결합된 삶 그 자체로부터 파생된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이는 일상적 삶과 다른 시공의 세계로 전환된 인간의 몸짓으로, 춤 의 기원과 본질을 비현실적이라고 바라보며 춤은 인간의 현실적이고 실제적 세계 와 대조되는 자기충족적인(self-contained) 세계를 창조한다고 하였다. 철학자 Nelson Goodman(1983)은 춤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 주목하였는데, 여러 이미지들 은 예시(exemplification), 표현(expression), 묘사(representation), 기술(description)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양식화되거나 전환됨으로써 예술로 상징화된다.

무용예술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한 김말복(1995)은 그동안 춤 정체성에 관한 논 의는‘춤이란 무엇인가’라는 춤에 대한 정의를 중심으로, 무용현상의 본질에 대 해 안무(구조)와 움직임의 질(특질)로 나누어 다루어져 왔다고 하였다. 그녀는 보 다 근본적 차원에서 춤의 정체성에 접근한 학자들을 소개한다.‘춤 예술의 본

질’에 대한 문제를‘움직임의 질(quality of movement)’의 개념으로 풀어나간 Gerald Myers는 움직임의 특질들을 성격, 키, 체중, 매너리즘, 노력, 감수성, 신체 의 전체 혹은 부분 등의 요소의 종합적 결과라고 바라보았고, David Best는‘춤 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움직임 표현과 의미의 관 계’를 통해 춤을 규정하고자 했다. 또한 Maxine Sheets는 춤의 정체성을 파악하 는데 있어 인간의‘체험된 경험’을 중요시 여겼다. 그녀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기존의 춤 형태에 불만을 표시하고 무의식 상태에서 창조되는 즉흥적 움직임을

‘내적인(internal)’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했다(pp. 87-98).

중요무형문화제 제 27호 승무 예능 보유자 이애주는 춤의 본질에 대해“몸에 내 마음이 실려서, 마음에 따라 몸짓이 움직이는 것”(이애주, 2010.4.6),“공연은 춤의 일부일 뿐이고, 삶 자체”(이애주, 2011.5.9),“사상과 철학이 몸놀림으로 드 러난 것”(김경미·손어진·김민희, 2013.1.21),‘몸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실현하 는 삶의 예술적 형상화’,‘생산활동이며 창조활동’,‘개인의 삶을 사회역사적 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상미학적 표현이자 수단’(이애주, 1989)이라 정의하며, 인 간 존재로서의 생명력과 개인 삶의 역사성을 예술적 몸짓으로 드러냄으로써 자 기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을 춤이라 보았다.

이상의 논의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춤은 인간의 사고와 감정 을 몸짓으로 드러내는 예술적 행위이며, 춤이 때로 현실적 경험과 분리된 가상의 감정과 세계를 표현할지라도 그 근거가 되는 것은 삶을 통해 축적된 인간의 감 각과 경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참혹한 전쟁의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탄 생된 일본의 부토는 인간의 역사적 삶에 의해 구축된 의식세계와 예술적 몸짓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된다. 단, 인간이 지닌 생명성을 아름답게 표현 하기 위해 예술이 행해진다는 전통적인 서구 미학적 개념을 거부한 것이 바로 부 토의 사상으로, 길고 쭉 뻗은 신체, 가볍게 날아오르는 도약과 점프, 흔들리지 않 는 무게 중심과 균형감각 등 발레가 지닌 형식미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부토는 인간의 몸짓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보다 심연의 정신세계에 주목하며, 죽음에 대 한 공포, 두려움, 인간의 연약함, 삶에 대한 회의적 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때문 에 춤은 아름다움을 위한 동작의 형식적 조합이 아닌 삶이 지닌 어둡고 고통스 러운 부분까지도 기괴하게 드러내는 초현실주의적 예술이 되며, 일상적 삶과 대 조되는 무의식의 세계, 반(反)유토피아, 인간의 저항적·반항적인 정서를 포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