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래로, 아시아의 무용수와 안무가들은 자국의 춤을 발전시키기 위해 서양 예술가들과 교류하려는 노력을 하였다(Brodie, 2004, p. 40). 한국의 경우 육 완순에 의해 현대무용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는데, 1990년 ADF를 한국에서 개최 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일본의 경우 1984년과 1986년에 ADF를 일본에 개 최함으로써 국제 춤 교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또한 1990년대 후반에는 서양 의 춤 교육자들과 안무가들이 아시아 전역에 초대되어 안무, 구성, 그리고 테크 닉 등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 때 많은 예술가들이 영향을 받게 되었고 (Chatterjea, 2013, p. 13), 이는 무용의 전지구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 무용 전지구화의 특징
목적인 모방과 수용은 지역적 전통춤의 본질을 퇴색시키고, 춤 동작 및 사고의 획일성, 안무가의 개성 상실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춤문화의 균일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 또한 로컬과 글로벌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전지구 화의 확산에 따라 각국의 춤 양식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지역의 전통춤이 약 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으로 새로운 춤의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하며, 동시에 이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으로 지역의 춤이 강 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첫째, 특정 춤 장르가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되 어 춤의 형태가 균질화되면서‘지역의 전통적 춤이 위축되거나 소멸’되는 현상, 둘째, 이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으로‘지역의 춤이 재부흥 혹은 강화’되는 현상, 그리고 셋째, 특정 장르와 타 장르 혹은 외부의 문화적 요소가 융합되어‘새로운 형태의 춤으로 변형되거나 생성’되는 양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가) 지역 춤의 위축·소멸
김태원(2015)은 모든 나라의 문화는 전통의 잔존과 현대주의, 그리고 후기현대 주의와의 공존을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낸다고 하였는데, 춤 예술에 있어서도 이 러한 전통성과 현대성의 갈등, 대치 혹은 충돌은 지역 춤의 위축과 소멸로 이어 지기도 한다. Robert W. Nicholls(2008)는 아프리카의 전통춤을 예로 들며, 전지구 화의 과정이 음악과 춤을 포함한 아프리카의 전통적 관습을 소멸시키고, 춤이 여 흥과 오락을 위한 세속적 활동으로 변모됨으로써 전통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2007년 싱가폴에서 열린‘세계 춤 연맹 회의(the Conference of the World Dance Alliance)’에 참가한 Ananya Chatterjea(2013)는 각국의 작품들(베트남, 싱가폴, 대만 등)의 안무를 통해 드러난 춤 언어가 꼭 유 럽계 미국인의 모던 혹은 포스트모던을 따라하는 복화술과도 같음을 비판했다.
그녀는 글로벌 환경에서 보여 지는 춤의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이야기하며, 전 지구화가 춤 미학에 관해 보다 다양한 해석을 제공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 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일본 민속춤의 경우, 19세기 후반의 근대화로 인해 근대 이전의 민속춤이 사라졌거나 훨씬 축소되는 현상을 보였는데, 당시의 근대화는 서구화와 동일시되었고, 전통 민속춤을 포함한 모든 전통은 정부에 의 해 억압되었다(Suzuki, 1995, p. 246). 태국의 경우 또한 현대 흐름에 맞는 상호
문화적인 공연이 중심이 되면서 지역의 전통춤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Damrhung, 2004, p. 101).
한국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서서히 시작된 외국춤의 유입은 점차 한국의 전 통춤에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춤 시대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전까지 우리의 전 통춤과 문화가 당연한 한국 예술의 중심이자 전체 모습이었다면, 근대화로 인한 외국춤과 문화의 영향은 한국 춤예술의 모습을 서서히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역 할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춤은 서양춤의 화려함과 기교에 밀려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1920년대 서양 공연예술의 수입과 1930년대 이르러 서양 춤과 함께 신무용이 확산되면서 일제강점 초기에 무대에서 환영받았던 기생들의 조선춤은 축소되었다. 이에 기생들은 일찌감치 유통 매체를 확보한 판소리, 가요, 신민요에 집중하게 되었고, 권번 또한 무도나 레뷰춤(Revue Dance)36)을 기생들에 게 가르치기 시작했다(김영희 외, 2014, p. 355). 1920년대 후반 이후 한국춤의 주 류로 탄생한 신무용의 경우, 서구의 춤 기법이 결합된 보다 근대화된 춤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보다 고급한 예술로 평가되었고 우리의 전통춤은 저급한 예술이 라는 인식(성기숙, 1998, p. 21)을 낳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의식은 당연히 전 통춤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모든 문화예술이 서구의 가치관, 탈 (脫) 전통적 사관에 따라 농악을 비롯한 소리춤, 탈춤, 허튼춤 등의 마을춤이 억 압되고 소멸되기 시작한 점(정병호, 2011, pp. 106-110) 또한 무용 전지구화로 인 한 지역 춤의 약화와 소멸로 볼 수 있다.
나) 지역 춤의 재부흥·강화
Chatterjea(2004)는 문화가 균일해지는 전지구화의 과정 속에서도, 지역 고유의 저항적 움직임에 의한 문화적 차이는 지속된다는 것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이러 한 방어적인 태도는 지역의 문화를 강화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전지구화 현 상에 대한 저항으로 민속춤이 재 부흥 된 터키의 경우를 살펴보면 제이백 댄스 (Zeybek dance)가 터키의 국가적인 춤으로 인식되고 장려됨으로써 민속 문화에 관한 연행과 연구가 보다 활발해지는 모습을 보였다(Turner & Khondker, 2010, p.
36) 레뷰(Revue)란 드라마, 희극, 오페라, 발레, 재즈 등 음악과 춤을 섞어 추는 무대예술로, 레뷰댄스는 이 레뷰에서 추는 춤을 말하며, 캉캉, 탭댄스, 쇼에서 추어지는 춤이 그 예이다 (김영희, 2013).
77). 뉴질랜드의 경우 National Kapa Haka 대회를 통해 전통춤 카파 하카의 정통 성과 형식을 지키고 있는데, 춤의 혁신과 통합을 배재한 채 행사를 개최하고 있 다(Graham, 1995, pp. 125-128). 아프리카 또한 서구적 관념의 영향으로 인해 오 락적인 것으로 제한되는 춤의 기능을 복원하기 위해‘춤의 문화적 보존’이라는 아젠다를 내세우며 아프리카의 전통춤이 국가적 차원에서 부활될 수 있도록 노 력하고 있다(Nicholls, 2008, p. 56). 이처럼 전지구화로 인한 외부 춤문화의 유입 은 때로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비판적으로 인식되어지며, 지역의 전통춤과 문화가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되고 강화하는 움직임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용 역사가 Ira Tembeck은 다른 춤과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퀘벡(Quebec)의 무용가와 안무 가들이 외부 세계에 오염되지 않는 그들의 춤문화 순수성을 최근까지 강조하였 고 설명했다(Jordan & Grau, 2000, p. 6).
전지구화가 한민족의 전통 문화를 위협한다는 관점에서 전통의 보존과 전수가 강조되고, 춤 예술에 있어서도 전통 문화의 고유성 및 특수성을 찾으려는 움직임 이 강화되기도 하는데(김경애 외, 2001, pp. 287-290), 한국의 전통춤과 문화를 보 존, 강화, 개발하기 위한 사회적·대중적 관심의 증가는 1970년대로 올라간다. 일 본 식민지 시대 전통문화의 단절을 겪었던 한국은 1960년대 이후 민족주의적 관 점에서 근대화와 동일시되어온 서구화에 대한 반동의 움직임을 보였고(윤지현, 2013, p. 44), 1970년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민속예술을 문화재로 지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재 발굴 작업을 통해 국민들이 민속예술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민속춤, 궁중춤 등 한국 전통춤의 유산 발굴과 민족문화 진흥사업으로 인해 많은 춤 예술가들이 전통의 춤 어휘에 주목하게 되었고, 당시 연극, 미술, 음악 등의 예술계에 퍼진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국 전통 문화의 중 요성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김경애 외, 2001, pp. 184-185, 197;
정병호, 2011, p. 109). 지속적인 외래춤의 유입과 그로 인한 예술가들의 현대화 를 향한 열망은 서구의 춤 어법을 활용한 창작 활동에 초점을 두게 하였고, 전통 춤의 입지는 줄어드는 듯 보였지만, 2000년대 이르러 다시 변화를 맞았다. 그동 안 창작춤에 가려진 우리춤의 반동의 일환으로 전통무에 대한 부활의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김태원(2015)은 이러한 움직임을 전통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보다 전문적인 전통춤 기획자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통춤이 극장예술로서 성장한 것과 우리 전통춤의 미(美)에 대한 서민 관객층의 진지함,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전통예인들의 전문성이 서로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보았다.
다) 지역 춤의 변형·재창조
Cheryl Stock(2005)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춤 장르와 형식이 혼재하는 세계 춤 시장에서 춤꾼은 다른 나라 혹은 민족의 춤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춤의 정체 성을 구축하게 된다고 주장했고, Vivienne Rogis(2005)는 무용에 있어서 전지구화 는 문화적 균질화를 야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무용수들이 겪 은 다양한 경험에 의해 서로 다른 과정과 결과들이 새롭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현재 한국의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많은 전통무의 경우 조선시대 한성 준에 의해 집대성된 무대화되고 양식화된 춤들로, 무용 전지구화의 관점에서 보 면 한국의 민속적이고 전통적인 로컬의 몸짓 위에 무대 양식이라는 서구의 글로 벌적 문화 요소가 덧입혀져 그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재창조된 우리만의 새로운 전통의 모습이다. 한성준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전통 위에 다시 꽃 피우게 된 것이 바로 신무용이요, 이 신무용의 연결선 상에서 탄생한 것이 한국창작춤으로, 한성준의 춤이 무대양식이라는 외부적이고 형식적인 틀을 중심으로 전통을 변형 시킨 것에 비해 신무용과 한국창작춤은 전통적 춤의 기반 위에 발레, 현대무용 등 서구 춤이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는 테크닉 뿐만 아니라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 의상, 음악, 무대 등을 비롯한 무대예술로서 지니는 총체적인 틀 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창조의 폭과 범위은 훨씬 커졌다.
1950년대 말 등장한 부토의 경우, 토착적인 예술과 독일의 신무용(Neuer Tanz) 과 미국식 해프닝이나 퍼포먼스 등 서구의 예술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형 태의 현대 춤으로, 안무가 Tatsumi Hijikata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사진, 무언 극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위적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초기 부토의 성격을 확립해갔다. 땅을 밟는 움직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는‘Toh’의 의미와 같이, 발 을 통한 땅으로부터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부토는 아시아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컨템포러리 댄스다(Bollard & Moore, 1991). 서구 주도의 춤 경향을 답 습하는 것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다각적인 변화의 흐름을 일본인 무용가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표현 방식과 색깔로 담아낸 부토는 20세기 중엽 이후 세계의 춤 주류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심정민, 2007, pp. 52,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