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발레의 정체성
비록 발레는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지만, 발레의 테크닉, 원리와 규칙 등이 체계화된 곳은 프랑스이기 때문에 모든 발레의 용어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 다(Mara, 1966). 발레는 유럽의 궁정에서 연회의 여흥으로 추어지며 발전했기 때 문에 춤의 동작이 우아하고 위험한 멋에 강조를 두며, 점차 연극적인 춤의 형식 으로 발전되었다. 궁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이 춤을 억압적인 귀족계층의 예술형식으로 인식하기도 했지만, 발레에 특정한 사회적 체제가 반영 된 것은 아니다(Anderson, 1986). 17세기에 이르러 궁정의 연회장과 귀족의 저택 으로부터 무대 극장으로 옮겨진 발레는 점차 함께 즐기는 춤에서 보여 지는 춤 으로써 변해감으로써, 보다 전문화되고 테크닉적인 기술에 중점을 두게 된다. 아 마추어와 전문 무용수의 구분이 점차 명확해지면서 발레라는 춤예술은 오랜 훈 련에 의해서만 가능한 고난위도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일상적인 삶과는 구분 되는 유토피아적 세계와 화려함의 상징이 되었다.
대부분의 예술 장르에 많은 변화와 변형이 일어난 19세기 이전까지, 서구의 안 무 작업은 16세기부터 3세기 동안‘발레’라는 춤 양식에 귀속되어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발레의 특징은 내러티브에 의한 지속적인 논리에 의해 작품이 전개되 었고, 장식이나 의상과 같은 극적인 장치들을 포함했으며, 음악에 맞춰 추는 말 없는 동작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로의 시대적 이행은 새로운 변 화를 촉구했고, 점차 춤의 형식과 틀에 있어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Louppe, 1997/2010, p. 204).
클래식 발레에 모더니즘이 결합됨으로써 현대 발레로 전환될 수 있도록 만든 인물은 1909년 설립된‘Ballet Russes’의 감독 Diaghilev로, 당대의 여러 천재적 인 음악가와 예술가와 함께 협업을 통해 작품에 창의적 요소를 덧입혔다. 발레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20세기 초반에는 컨템포러리 발 레가 등장하게 되었고, 컨템포러리 발레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은 Ballet
68) 한국춤의 경우는 5. 한국춤 정체성(pp. 132-155)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기 때문에 본 항에서는 발레와 현대무용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Russes의 최초의 상임 안무가 Fokine이었다(Ambrosio, 2008, p. 54).
같은 몸짓 언어를 사용하고, 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 러리 발레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음악적‘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컨템포러리 발레에서는 추상적인 음악을 사용했고, 발레 슬리퍼 혹은 맨발로 추기도 했다.
또한 컨템포러리 댄스에서는 판토마임과 사실적인 체스처의 사용을 거부하고, 추 상적인 몸동작을 사용했다. 몸통, 상체와 팔의 움직임을 보다 자연스럽게 사용하 였고, 보다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구성되었다.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줄거리가 없다는 점인데, 주로 움직임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컨 템포러리 발레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안무가는 Balanchine으로, 그는 Ballet Russes에서 오랜 활동 후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 발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Ambrosio, 2008, p. 56). 발레의 동시대성을 보다 강조한 대표적 인 인물은 20세기 발레 혁명가로 불리는 Maurice Bejart로, 다양한 작품의 주제를 설정하고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현대 발레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한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토대는 발 레의 전통이었다.
나) 현대무용의 정체성
현대무용은 기존 춤예술이 지닌 관습과 틀에서 벗어나 예술적인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예술가 개인의 안무 스타일을 개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 문에, 특정한 규칙, 체계, 혹은 기술에 의해 규정되지 않으며 예술가에 의해 창조 되고 개발되는 다양한 춤의 방식을 지닌다. 이러한 특징은 미국의 현대무용가 Helen Tamiris의 “일반적인 규칙은 없다. 각 예술적 작업은 그것의 고유한 코 드를 창조한다.”(Anderson, 1986, p. 126)는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미국에서 태 동한 현대무용의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자유주의로, 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표현을 위해 움직임 또한 대칭적인 발레의 움직임에 비해 비대칭적인 움직임 이 주로 사용되었다. 초기의 현대무용은 미국과 독일에서 각각 발전되어 세계 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기존의 춤과는 다른 양식적 특성을 지닌‘새로운 춤 (new dance)’으로 인식되어졌다. 당시 Martha Graham의 컨트랙션과 릴리즈 호흡은 현대무용의 기본 원리로 여겨졌고, 이 원리를 배운 세계 각국의 무용
예술가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이 기법을 바탕으로 한 현대무용을 보급시켰다.
현대무용은 형식과 인습에서 탈피하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신체예술로 돌 아가려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고,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표현주의와도 밀접한데, 작품의 핵심과 본질은 춤을 추는 행위 주체이 며 장식적인 움직임 보다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움직임을 중요시 여겼 다(김신일, 1999). 각 예술가들마다 지닌 개별적인 표현성과 특성을 가치 있게 여기고, 정해진 순서와 법칙이 없다는 점에서 예술적 다양성이 추구되었고, 이 러한 점은 컨템포러리 댄스의 특성과도 맞닿는다.
발레와 비교하여 초기 현대무용은 공중보다는 땅을 강조했으며, 발레의상에서 강조되는 주름장식과 육체적 매력에 대해서는 가치를 두지 않았다. 독일의 Herald Kreutzberg, Ted Shawn, Charles Weidman, 미국의 Lester Horton 등을 제 외하고 초기의 현대 무용의 개척자들은 대부분 여자였는데, 움직임의 표현성이 강조되는 현대무용은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예술적이고 사회적 형식으로부터 독 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Anderson, 1986).
다) 컨템포러리 댄스의 정체성
약 40년 정도의 기간 동안 구축되고 발전되어 온 컨템포러리 댄스는 뚜렷한 형태 혹은 모습으로 규정지을 수 없지만, 새로운 영역에 대한 모든 실험과 도전을 허 용하고,‘극도로 최신적인(terribly up-to-date)’(Philippe, 2010, p. 18) 경향을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어떠한 장르적 개념도 스타일적 개념도 아닌 컨템포러리 댄스는 단지 당대의 춤현상에 대한 포괄적인 칭호이기 때문에(김태원, 2011, p. 511), 특정 춤 의 장르나 형식에 국한되지 않으며, 동시대성을 추구하며 추어지는 모든 춤을 의미 한다.
20세기의 안무 작업에 있어서 가장 두르러진 변화는‘안무 형식과 구조의 양 적이고 질적인 다양성’(Louppe, 1997/2010, p. 204)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각 개인이 가진 특성을 작품에 반영하고 녹여내는 것을 중시하였던 초기 현대무용 선구자들의 자유로운 작업 성향으로부터 그 발단을 찾을 수 있다. 1950년대에 이 르러 현대무용이 지닌 자유성과 실험성이 보다 강화되기 시작하였는데, Merce Cunningham을 선두로 하여 현대무용은 포스트모던댄스로의 시대적 전환을 이루
게 되었다. 이후 1960년대 70년대 뉴욕의 실험적 무용이 두드러지게 급증하면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 탐색과 동시대적인 안무에 초점을 둔 작업들이 지속 적으로 이루지면서(Anderson, 1986) 컨템포러리 댄스의 개념이 태동하게 된다. 동 시대성이 컨템포러리 댄스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인식 이 생성되고 확산되기 시작한 포스트모던댄스의 시기를 컨템포러리 댄스에 포함 시키는 것은 광의적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여겨지며, 협의적 관점에서는 1970, 80년 대 유럽에서 일어난 새로운 춤의 사조를 그 시작으로 보는 관점들(하영신, 2012, pp. 11-15; Philippe, 2010)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usanne Traub(2001/2005)는 컨템포러리 댄스의 특징을 이질적인 춤 양식과 안 무 방식의 융합이라 하였는데, 클래식 댄스, 모던댄스, 포스트모던댄스, 탄츠 테 아터 등에서 구분되던 특징들이 서로 동화되어 다(多)규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기 때문에 컨템포러리 댄스는 범주화되거나 역사적으로 분명히 분류될 수 없으 며 지극히 혼성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Claudia Rosiny(2007a)는 무용 전문가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컨템포러리 댄스에 있어 미디어의 사용, 개념적이고 행위적 양식에 있어 비(非)무용으로의 확장, 다른 하위 문화적 요소로서 움직임 의 사용 등에 관해 춤의 실제적 행위에서 뿐만 아니라 이론적 맥락에서 컨템포 러리 댄스에 접근했다. 그녀는 컨템포러리 댄스는 행위자의 확장으로 공연자와 관객 혹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춤에 극적인 요소가 더해지 면서 인간의 감성과 사회적 테마가 결합되며, 다국적 예술가들의 협업과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상호교류, 안무 작업에 있어서 다양한 문화예술적 양식을 결합하 는 장르간의 크로스오버 및 이종혼성(heterogeneity) 등의 특징을 포함한다고 하 였다. 또한 이러한 다양성은 무용의 전지구화에 따라 점차 강화되고, 예술적 양 식의 혼합에서 보여 지는 다원주의와 다매체성은 동시대적 예술 작품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춤의 어법은 클래식 댄스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움직 임까지 활용하고, 동작 개발에 있어서는 접촉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이용 하며,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작품에 수용한다. 컨템포러리 댄스에 있어 움직임과 춤은 더 이상 표현(expressions)이라는 행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안무 과정(choreographic process)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 존재한다.
최근 20여 년 간 국제무용축제에서 소개된 대표적인 작품들을 바탕으로 논의 된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향과 특징들은‘음악’,‘내러티브’,‘컨셉댄스(conce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