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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화들은 18세기 말 이후 생긴 일정한 민족국가 시스템을 통해 구조적 으로 서로 닮고 동형화되었다. 모든 나라는 국가, 행정기관, 국민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 동일한 구조를 통해 각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각 생활양식 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국가의 고유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각 국가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들었 고, 이는 세계가 다양하게 발전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Breidenbach &

Zukrigl(1998/2003, pp. 94-95). 국가의 문화 정체성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전지구화 에 따라 전통적 모습의 해체와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되는 반복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박지성(2007)은 전지구화로 인해 문화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경계를 넘어 선 혼융과 잡종으로 과거에 구축되었던 정체성이 해체되고, 새로운 문화 정체성 이 등장함을 논의했다. 문화의 전지구화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심화시키고, 지

역 문화의 정체성을 체현(體現)함과 동시에 정체성을 확장시키는 과정을 통해 전 통적으로 구축된 문화 정체성은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논의의 중심에 는 국가의 문화 정체성이 존재하는데, Stuart Hall(1992)은 세 가지 관점에서 전지 구화와 국가의 문화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였다.‘국가 정체성이 문화 균질화와 포스트모던의 성장의 결과로 침식되고 있다’,‘국가 그리고 다른 지역 혹은 특 정한 정체성은 전지구화에 대한 저항으로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그리고‘국가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지만 새로운 혼성적 정체성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우선 균질화의 관점에서 보면, 점차 외부적 환경에 노출이 증 가하면서 국가의 문화 정체성은 보존은 어려워졌고,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 전지구화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은 세계 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지구적인 네트워크와 통신체제에 의해 형성된다. 정체성이 특정 시간, 공간, 역사, 그리고 전통으로부터 점차 분리되어‘자유롭게 배회(free-floating)’(p.

303)하게 되면서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들에 직면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자유로 운 선택의 가능성을 지닌‘문화적 슈퍼마켓(cultural supermarket)’(p. 303)에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소비주의가 자 리하며, 세계로 확산된 소비주의는 문화적 차이를 감소시키고 교유한 전통, 구별 되는 정체성을 균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위험을 동시에 지닌다. 반면, 전지구화에 대한 저항으로 지역적 정체성이 강화되기도 하는데,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 (Afro-Caribbean)의 젊은이들이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을 통해 그들의 아프리카의 기원과 유산을 강화하는 움직임, 혹은 무슬림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 주의에 대한 부흥과 종교적 전통 신앙과 정치적인 분리주의를 표방하는 움직임 등이 그 예이다.

전지구화 현상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의 생산은 1970년대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인과 아시아 공동체 모두를 위한 새로운‘블랙(black)’이라는 정체성과 관련된 다. 이들은 문화적, 민족적, 언어적, 신체적으로도 공통점이 없지만,‘화이트 (white)’와는 구별되는‘다른 사람들(other)’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동질성 을 느낀다(Hall, 1992, p. 308). 블랙 정체성은 여러 가지 다양한 범주를 아우르는 통일된 개념으로, 단지 시간과 공간 안에서 형성되는 정치적 특성 뿐 아니라 다 양한 정체성들이 서로를 소멸시키지 않고 불가분으로 함께 결합되는 특성을 지 닌다. 마지막으로, 전지구화는 다양한 문화를 교차시키고 때로는 국가의 문화 정

체성을 변형시키기도 하는데, 이 때 자국의 문화는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와 융합하는 원리를 따르게 되며, 이는 문화적 절대주의 관점에서 바 라보는 문화적 순수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도록 한다. 특히 이주에 의해 발생된 새로운 디아스포라는 이러한 문화적 융합을 더욱 강화·확산시킨다. 이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으로 전통으로의 회귀가 강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또한 새로운 문화의 융합적 현상이 발생한다. 로컬과 글로벌의 조합이 어 떠한 비중과 형태로 이루어지는 가에 따라 융합의 결과는 달라지며, 전통을 강조 하는 지역의 강화는 기존의 전통과는 다른 모습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고유한 국가적 문화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문화적 경계가 상실됨으로써 외부의 강력한 문화의 힘에 지역의 문화가 흡수되고 동질화된다는 비판적 입장(Breidenbach & Zukrigl, 1998/2003, pp. 52-53, 97, 106, 166-167)과 문화적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생 성된다는 긍정적 입장((Breidenbach & Zukrigl, 1998/2003, pp. 80, 97, 101, 235, 239)으로 구분되는데, 문화의 균질화로 민족의 정체성은 약화되기도 하고, 이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으로 강화되기도 한다. 양건열(2002)은 문화 정체성의 구성 요인을 첫째, 지리적이고 자연 환경적 요인, 둘째, 계급적, 성적, 세대적, 직업적 인 사회적 요인, 셋째, 대중문화, 사이버 공간 등의 특화된 문화적 관행 및 제도 요인, 넷째, 문화적 접변 요인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성 요인들이 어떻게 배치 되는가에 따라 문화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전통적 개념 안에 서 문화 정체성은‘민족’,‘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형성되었는데, 이러 한 점에서 한국의 문화 정체성은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삶의 결 또는 양식을 의미하며, 이러한 결과 양식의 특징들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양건열, 2002, pp. vii, ix, 42).

민족의 문화 정체성은 전통문화의 계승, 외래문화의 수용, 그리고 새로운 문화 의 창조 등의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고 변화한다. 외래문화의 수용 시 주체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선택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태도는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 기 위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한국의 경우, 문화 정체성을 탐구하려는 노력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었는데,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민족의 얼과 정신을 찾 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민족의 기원, 민족문화의 독자성, 민중의 전통성 등이 주요한 관심 대상이 되었고, 민족문화론은 그 핵심이 되었다. 당시 문화운동권에

서 내세운 한국 문화의 정체성은‘공동체성’과‘신명성’이었다(양건열, 2002, pp. x- xii). 1990년대 이후, 문화가 소비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문화 정체성은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한국은 자국의 문화 정체성 확립위해 전통과 현대, 그리고 외래문화의 조화와 융합, 문화권의 신장과 문화의 균형적 발전에 초점을 둔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외국의 경우, 19세기 독일, 스위 스, 벨기에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동남아시아 신흥국가들이 민속학의 부흥, 민속 축제의 개발, 전통문화행사의 진흥을 통해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타 국가와의 교류 시‘다양성’과‘정체성’을 동시에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 는데, 유럽연합의 다양한 문화정책, 국제문화행사, 다민족박물관 건립 등이 그 예 이다(양건열, 2002, pp. xiii-xxxi).

문화는 이동하고 복합되는 가변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족문화의 개성적 성격이란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 서 고유하다는 의미는 원래부터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같으면서도 구 별되는 것을 말한다(조지훈, 1996, pp. 275-276). 이 논리에 따르면, 타문화와 구 별되는 고유한 문화 정체성은 출처와 근원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얼마만큼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이경섭(2010)은 여러 가지 외래 종교와 문화 양식들과의 접변과 융합 속에서 형성된 한국의 굿 문화67)를 예로 들며,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논할 때 있어서 순수 혈통에 집착 하기 보다는 교섭, 창조, 그리고 생산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확장되고 창출되는 새로운 모습에서 그 정체성을 탐구해야 하며, 만약 외래의 문화를 받아들여 남다 른 수준을 확보했다면 그것은 비로소 자국의 문화적 개성이 될 수 있음을 주장 했다. 굿 문화는 다른 종교문화를 관통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문화를 굿 속에 융합하였다. 전통에 토대를 두고 새로운 양식을 수용하여 지속과 변화를 거듭하여 전승되어 온 과정은 외부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긍정적 문화 의 변용과정을 잘 보여준다. 다른 문화 양식들이 굿에 수용되었다고 해서 정체성 67) 굿은 무속신앙으로부터 출발했지만, 민간신앙, 불교, 도교, 유교 등 외래로부터 유입된 다 양한 신앙들과 습합하며 변화를 이루어왔다. 무가와 춤사위 또한 외부의 문화적 요소에 영 향을 받았는데, ‘고풀이’나 ‘씻김’, ‘닦음’ 등의 무속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고풀이>, <씻김>,

<오구굿>, <길닦음> 등에 <희설>같이 불교적 배경이 농후한 무가가 끼어 있으며, 각 무가에 불교와 도교적 요소들이 들어 있어 무가의 세계 뿐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춤사위 또한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역사 속에서 여러 변화를 거쳐 존속해온 한국의 굿 문화 속에 는 한국인의 문화적 향유태도가 반영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경엽, 2010, pp. 22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