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 중국의 대북정책: 지속과 변화
중국의 북핵 문제 관련 정책은 일련의 변화과정을 겪었다. 적극 적인 개입에서 절절한 개입, 그리고 공정한 조력자에 이르기까지 일단의 기간에 걸친 정책조정을 겪었는데, 그 핵심은 6자회담과 유 엔의 구도 하에서 비핵화 제안을 지지하는 것이다.
가. 대북정책의 역사적 배경
중국은 2002년 10월에 관련국들의 지지 하에 6자회담의 주최국 이 되었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는 중국이 이 문제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20세기 말까지 중국의 대한반도 정 책의 기조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제1차 북핵 위기 의 발발 때와 같이 2002년 10월 북핵 위기가 재차 발발 했을 때 미 국과 북한의 갈등이 상승했고, 한반도의 정세가 갈수록 위급해졌 다. 중국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중국 발전 과정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몇몇 당사국들의 제의 하에 개 입하여 조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이 제2차 북핵 위기의‘국제 적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중국 외교 역사상 전환적 의의 를 갖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의 반세기여 동 안 중국의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불간섭’의 원칙을 준수하여 외 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그다지 주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아왔 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등소평이 제시한‘평화공존’의 외교원 칙을 따르면서 다른 나라를 함부로 비판하거나, 다른 나라를 비난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다른 국가의 일에 최소한으로 관여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에 발발한 제1차 북핵 위 기 때에도 이와 같은 원칙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2002년 10월에 발 발한 제2차 북핵 위기는 중국이 그동안 지켜왔던 관례를 깨고 적극
적으로 개입하게 하였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역사적인 요인도 작 용했지만, 현실적인 이익에 대한 고려도 한몫을 했다. 북한은 중국 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지정학적 인접국이어서, 북한에 대해 일종 의 책임의식을 가져왔다. 냉전 이후 중국의 국제정치관은 일련의 변화를 겪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중국이 안보 와 발전이익을 중시함에 있어서, 중국이 세계대국으로서 반드시 세 계의 평화와 안보 및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국제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우리는 또한 연구자의 입장에서 중국의 북한정책 변화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중국이 한반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이다. 1995년부터 북한에 극심한 자연재해 가 있은 후, 서구에서는 북한 붕괴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중국에 서도 이 시기부터 북한의 내정과 외교가 한반도 연구의 주요 대상 이 되었다. 1990년대 말, 중국은 북한과 미국, 일본 등 서방국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문제 연구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 다. 이는 바로 1990년대 이후, 중국이 한반도 문제와 강대국 관계 및 이 문제가 동북아 지역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많은 고려 를 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목표는 평화와 안정을 유지 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외교 측면에서는 주로 2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 지하기 위해 전개하는 활동이고, 둘째는 한반도의 안보정세를 개선 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었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 있어 수동적인 참여에서 적절한 개입을 거쳐 공정한 조절자의 모습 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된 것도 핵확산 금지와 지역안정을 꾀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6자회담 개시 이래로 중국의 대북정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표출
되었다. 첫째, 북·미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다섯 차례의 6 자회담에서 중국은 모두 북·미 간에 직접적인 대화를 지지하고 촉 진했으며, 이 방법이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전제조 건이라고 믿었다. 둘째, 어떠한 무력적인 방식의 해결책에도 반대 하면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일관적으로 견지 했다. 셋째, 북한 제재 확대에 반대하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 험 직후, 중국은 원칙적으로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에 동의 했지만, 북한의 핵보유나 핵확산 금지 정책에 관한 제재에만 동의 를 하였고, 북한의 내정에 관련되거나 북한 주민의 기본생활에 영 향을 미치는 제재에는 반대를 했다.
6자회담과 유엔의 다자구도 하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지역안정에 유리한 모든 결의와 의안들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북한 에 대해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하여 중북 변경무역의 정상화와 변 경지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견지했다. 또한 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 러시아 등 관련 국가들과 북핵 문제의 해결에 대해 양호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유지했는데, 이는 중국이 지역안정을 유지하고 비 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특수하고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었다.
2009년에 들어와서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한·미 간의 군사동맹이 강화되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과 위 성발사가 재개되었으며, 핵실험이 새롭게 시도되었다.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중국은 적극적인 노력으로 유엔의 구도 하에 대북제재 입장을 조율하고, 각국이 이성과 자제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을 호소함으로써 위기가 격화되지 않도록 했다.
또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중국의 우다웨이 부부장은 북핵 문제 관련 국가들을 방문하여 서로간의 입장을 조절하여 북핵 문제의 위 기가 통제 가능한 범위에 있도록 노력다.
나.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역할과 그 영향
국가 이익과 관련된 판단은 그 국가가 처한 역할을 확정하는데 달려있다. 한 국가는 다양한 역할 가운데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에 따라 다른 국가 이익이 결정되고, 거기에서 서로 다른 국가 의 행동이 유발된다.
6자회담에서 중국은 방관자, 중재자, 참여자의 세 가지 역할(방 관자, 조정자 및 참여자)의 선택에 직면해 있었다. 방관자는 조용하 게 변화를 기다리는 정책이다. 미국과 북한이 던지는 패를 지켜보 면서 주동적으로 북한 핵문제에 실질적인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다. 이러한 역할 하에서 중국의 정책은“자신과 무관한 일이면, 거 들떠도 보지 않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재자는 직접적으로 북핵 문제의 협상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건 의를 제시하여 회담의 조건으로 삼고, 쌍방 간의 분쟁해결의 실마 리를 잡아서 협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역할 하에서 중국의 정책은 바로 북·미 간의 분쟁의 기조를 잡아 조정해주는 것이고, 북·미 간 의 평화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참여자는 이해상관자로서, 직접적으로 북핵 문제의 협상에 참여 하여, 자신의 이익에 유리하면서 동시에 협상에도 유리한 실질적 건의를 제출하고, 회담의 내용과 일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역할 하에서, 중국의 정책은 북·미 간의 평화를 지탱할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면서 중국 의 발전에 있어 안정적인 주변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재자 와 참여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질적인 제안이 북·미의 입장에서 출발하느냐 아니면 스스로의 이익에서 출발하느냐의 차이이며, 중 국의 국가이익을 충분히 반영했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북핵 위기의 발생에서부터 1997년 미국, 북한, 중국, 한 국이 이른바 4자회담을 개최하기 전까지, 중국은 당시의 외교이념
과 국가실력에 대한 고려에서, 조용하게 변화하는 바를 관찰하는 정책을 취했다. 즉, 방관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미국과 북한이 내 놓은 패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동적으로 북핵 문제에 대해 실질적 인 관여를 하지 않았다.
중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4자회담에 참여한 것은 중국이 북핵 문제에 있어 방관자에서 조정자로 변화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 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4자 회담부터 6자회담의 제3차 회담에 이 르기까지 중국은 스스로를 조정자의 역할로 규정하였다. 중국의 전 외교부 부부장 왕이(王毅)가 과거 기자 회담에서 한차례 언급했듯 이, 중국은 주최 측으로서, 스스로의 지위와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 는데 유의하였다. 그 행동은 크게 세 가지를 포함하는데 첫째, 각 국이 적극적인 으로 나서도록 만드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이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도록 하여 회담이 심화되도록 하 는 것이다. 둘째, 각 국가들이 서로를 존중하도록 반복적으로 설득 하여서 각 국가들이 제시한 해결방안을 진지하게 대하고 연구하도 록 만드는 것이다. 셋째, 교착된 국면이 나타날 때 신속하게 절충안 을 내놓아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것이다.
제4차 6자회담 때부터 중국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변화시 켜서 참여자의 역할로 이행하여 9·19 공동성명의 초안을 작성하였 고, 제4차 6자회담 후에 개최된 브리핑에서 처음으로 참여자의 역 할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였다. 외교부 대변인 친강(秦剛)은 중국이 이번 6자회담의 주최국이자 참여자라고 지적했다. 주최국으로서 중 국 측은 회의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의 편의를 제공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이 참여자로서 다른 국가들과의 토론에 있어서 적 극적으로 임하고, 다른 국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회담이 긍정적 인 진전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중국이 비록 참여자로서 6자회담에 참 여하였지만, 중국의 역할은 참여자라는 정의가 요구하는 바에 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