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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교포의 귀향 :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다시 아르헨티나로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경험한 차별과 함께 한인들 역시 원주민에 대해 가지는 차별 인식은 한인 디아스포라 내집단으로 성원들의 귀속력을 강화시킨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에서는 50년이라는 길지 않은 이민역사로 한국어와 문화 보존도가 높은 편인 데다, 한인 내집단으로 국한된 활동영역은 몇몇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세대 간 언어와 문 화 재생산을 용이하게 하였다. 1-1.5세대의 경우 상상된 것으로만이 아닌, 실제 경험 을 통한 모국의식과 애착이 여전히 생생한 반면, 한국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 에서도 최근 한국의 위상이 제고됨에 따라 '모국의 발명' 바람이 새롭게 일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교민사회에서는 현지에서 태어난 2-3세의 경우에도 ICA(Instituto Coreano Argentino, 아르헨티나 한국학교)의 정규초등교육과정, 그리고 ISC 및 여타 개신교회의 한글학교를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어와 문화에 대해 학습하며 높은 교육열 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전의 교육이 가족 내 세대 간 소통이나 현지 교민사회에서 필 요한 한인됨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면, 작금의 교육열은 현실적인 모국요인 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위상 신장은 이 들에게 상징적인 문화자본을 획득하고자 하는 매력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진 학과 취업 등에 있어 실제로도 사회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부모의 문화적 유 산이 자녀세대들의 정체화 과정에 적극 채택되면서, 단순히 언어와 같은 도구적 차원 에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한국이라는 모국의식을 체화해가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엄고은 끌라라, 30대, 의류업, 1984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90년 카톨릭입문]

- 엄고은: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나갔다가 P대에 입학했어요. 특례입 학제도가 생기면서 2세들이 한국으로 많이 나갔어요. 서반아어과에 들어갔는데 사실 마음에는 안들었어요. 원래 경영학 전공하고 싶었는데 말이 안되니까. 그래서 여기 살다 스페인어 전공으로 (한국 대학에)가는 애들이 많아요. 그래도 잘 지냈어요. 마 인드가 오픈된 것처럼 한국생활한 거랑 다른 전공 한 것도 다 뭐 좋은 점들이...

졸업하고 한국에서 회사생활 좀 하다가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있었는데, 거기는 정 식서류 없으면 사는 데 어려운 점이 많더라고요. 결국 답답해서 싫다고 하면서도 아 르헨티나로 돌아왔어요. 한국에서 살고 싶은데 너무 정신도 없기도 하고, 내가 할 만 한 일이... 오빠는 아르헨티나 싫다고 한국서 살아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만 그래도 어쨌던 내가 지금 있을 데, 가장 편한 건 여기(부에노스아이레스)예요.

1996년 '재외국민자녀 특례입학규정'이 개정되면서 해외 영주권자 자녀들의 한국 대학 입학이 용이해지자, 최근 각 대학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전공학과로 이민 1.5-2세대 라틴아메리카 출신 학생들의 귀환이주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의 아 르헨티나 진출과 관련하여 현지 채용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관련 기관 및 기업들의 지 역전문가 수요가 상승하면서 모국으로의 상징적・의식적 귀환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 에서 주목할 부분은 제도권에서 주어지는 기회들이 현실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이주세 대 간 경험과 인식을 역전시킨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시절 전후의 어렴풋한 기억 또는 그러한 기억마저 부재한 자녀세대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사회가 아닌 한국에서 부모가 살아보지 못한 모국의 현재를 경험한다. 사회경제적 발전이 정체된 아르헨티나와 교민사회를 벗어나, 옷장사와 생업전선 밖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경 험할 수 있었던 한국은 1970-80년대 부모세대의 모국과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었다.

그 경험은 부모세대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사회와 '아베샤네다 옷가게 주인'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기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이 자녀세대들에게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진학과 취 업에 있어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권 국가 출신으로 한국어가 서툰 상태에서 이들이 선 택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한국의 전방위적 경쟁구조와 빠른 일상의 리듬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한인과 차별화하여 원주민들을 형용하던 '게으름, 불성실함'과 같은 부정적 수식어를 자신에게 부여하며, 영어권, 선진국이 아닌 나라의 '이등교포'

라는 차별적 경계로 경험된다. 한국사회에서 자신이 온전한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거나 이등교포로 차별받는 상황들은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있어 물리적․심리 적 장벽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사회에서 느끼는 편안함으로부터 자신의 고향, 현재 자신의 자리가 바로 이 곳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고은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어찌될 지 모르는' 훗날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 어지며 생긴 자신감은 이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온 이후에도 초국적 삶의 선택 폭을 확장시킨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반면, 자녀들이 경험한 한국의 현재는 이주 시기를 전후로 한국으로부터 물리적・

심리적으로 멀어져가는 부모세대들이 온전한 한국인으로서 상실한 시간이며 자부심이 다. 한국이 자녀세대에 모국 또는 새로운 삶의 선택지로서 제공하는 기회들이 확대된 것과 달리, 교민사회의 1-1.5세대에게 공유되는 한국과 한국인됨의 정서는 1970-80년 대 이민 당시에 정체된 채 현재 한국의 현실과 점점 더 괴리되어 갔다. 또한, 국제사 회에서 모국의 사회경제적 입지가 상승한 것과 반대로 모국인 한국에서 거주국과 거 주국 교민에 대한 인식은 이와 반작용하며, 아르헨티나라는 선택과 현지화된 삶의 방 식에 대한 평가절하로 나타난다.

[박영도 바오로, 50대, 의류업, 1988년 이주, 1980년 카톨릭입문]

- 박영도: 여기는 뭐 80년대 한국에 멈춰있는 거지. 와서 몇 십년 동안 한국에 한 번도 못나간 사람도... 한국 한 번 가려면 지금이야 30시간 안팎이지만 그 전엔 두세 번씩 비행기 갈아타고 하면... 비행기값만 해도 너댓 식구 한 번 움직이려면 천 몇 백(만 원)이 훌쩍 넘으니까. 가서 먹고 쓰는 거 따지면 몇 천(만원)은 뚝딱이야. 아무리 여기 서 먹고 살만큼 벌어도 그렇게 갔다오면 힘들지. 그리고 너무 멀어. 며칠 잠깐 갔다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니까, 그렇게 길게 가게 닫아놓을 수도 없고.

(중략)

나름 신경써서 입고 가도 식구들이 안쓰럽게 보면서 고생 많냐고... 여기서 자기들보 다 훨씬 잘 벌어 잘 먹고 사는데도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니까. 나가서 식구랑 친척 들한테 먹는 거, 뭐 사는 거에 돈 많이 써도... 한국에서 어쩌다 나오는 뉴스들이 경 제위기, 범죄, 시위 이런 안좋은 것만 나오니. 나는 여기(아르헨티나) 살고 있으니 그 런 게 마음이 안좋지. 그런데 이젠 한국 가면 나부터도 편하지가 않아. 워낙 빨리 변 하니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가면 뭘 할지도 모르겠고...

박영도의 증언은 다수의 ISC 성원들이 한국행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겪어야했던 물 리적・심리적 피로감과 함께, 그로 인해 한국과의 접촉면이 적어지면서 생기는 모국 과의 거리감을 가늠케한다. 또한, 모국에 대한 향수와 성공한 아르헨티나 교포로서 금 의환향하고자 하는 이들의 기대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친지들과의 대면에서부터 어긋나게 된다. 한편,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공간과 생 활양식에서 2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들을 만들어갔기에, 모국과 고향은 더 이상 그들이 기억하는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었다. 한국 지인이나 매체들의 부정 적 시선과 함께, 일상생활 적응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아르헨티나 교포들이 한 국으로부터 가지는 심리적 거리감을 증폭시키며 친아르헨티나 정서와 한국에 대한 차 별적 인식을 두드러지게 한다.

[동세훈 비오, 40대, 의류업, 1977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2013년 카톨릭입문]

- 동세훈: 어려서 이민 갔으니까 처음엔 나가서 한국말을 잘 못했는데, 거기다가 아르 헨티나에서 왔다고 하면 "뭐, 어디?"라고, 영어야 어디서든 쳐주는데 까스떼샤노14) 하면 좀 없이 보고. 그리고 한국은 너무 좁고 답답해. 사람들은 여유가 없이 빨리빨 리 돌아가기만 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밟고 올라서려고, 치열하게... 교포들이 와서 사 업하려고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다 닫혀있어. 배타적인 데다가 자기들끼리만 먹고살려고 하지,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적당히 좀 봐줄줄도 아는, 그런 게 없어.

동세훈은 9세에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서 유년기를 보내고 결혼 후 사업을 위해 한국으로 재이주한 경우이다. 어린 시절 모 국에서의 기억과 아르헨티나에서 축적한 자본력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한국에 돌아 온 그였지만, 성인이 된 지금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곳에서 더 이상 온전한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현실은 사업의 성패와는 별도로 그에게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보통 이주민들은 전지구적 국가 간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세에 있는 국가 로부터 보다 강한 국가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로써 이들은 이주를 통해 인 적 가치, 자산, 지역성 등의 차원에서 모국에서보다 우월한 사회적 권력을 획득한다 (Levitt and Schiller 2004). 하지만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경우 이 같은 상황을 국가 와 개인 두 차원의 스펙트럼으로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주 이전 한국에서 가졌

14) 아르헨티나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로, 스페인 중부 까스티야(Castilla) 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