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회의 사례에서 나타난 집단으로서의 교회와 개인의 갈등구도는 사실 신앙생활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세대 간의 상호 평가와도 많이 겹쳐진다. 현재 ISC의 주축세력 인 50-60대의 1-1.5세들이 사회와 신앙이 통합된 종교관으로서 전자의 입장을 대변한
다면, 40대 이하의 이민 1.5세 이후의 성원들은 사회와 신앙의 각 영역을 존중하고 신앙주체로서 개인의 독자적 신앙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성원 들은 보통 전자는 어른세대로, 후자는 젊은세대로 칭한다29). 사실 교민 교회의 특성 상 어른뿐만 아니라 젊은세대도 사회와 신앙이 공존하는 종교관을 공유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는 성원들 스스로 사회와 분리되어 신앙에 전념할 수 있는 한국 교회와 ISC를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이 종교관을 일정 부분 공유하면서도 사회 와 신앙 사이에서 교회를 전유하는 방식에서는 세대 간에 차이를 보인다.
[강혜숙 테레사, 60대, 의류업, 1989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85년 카톨릭입문]
- 강혜숙: 요즘 젊은 사람들 성당에 열심히 나오지도 않아. 주말엔 놀러다니느라. 와서 도 미사에 얼굴만 내비치고 사라지잖아. 어른들은 새벽부터 나와서 미사 두 번씩 들 어가는 분도 계셔. 여기저기 뭐 (도움이)필요한 거 없나 다니면서. 나도 너무 아파서 못 움직일 정도 아니면 항상 나와 있으려고 해. 가게 아니면 거의 여기 나와 있지. 성 당에 사람이 많다고 해도 막상 필요할 때 보이는 건 어른들이지, 요즘 애들은 같이 어울리는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다들 돈 버느라, 놀러 다니느라 바빠서.
[엄고은 끌라라, 30대, 의류업, 1984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90년 카톨릭입문]
- 엄고은: 여기는 우리 또래가 갈 데가 없어. 어른들 위주인 데는 젊은 사람들이 잘 안 맞으니까 안가려 하고. 그런데 항상 필요한 때 찾는 건 우리야. 어른들은 중요한 자 리에서 안나가고 있으면서 막상 일은 우리가 할 때도 많고. 그리고 어른들은 교회밖 에 갈 데가 없는데 우리는 밖에서 할 일도, 갈 데도 많으니까 딱 여기서 미사보고 뭐 없으면 바로 나가. 친한 친구도 성당 친구들이 많은데 여기는 미사랑 EE회 모일 때 만 있고 나머진 다 나가서 해. 여기서까지 막 먹고 놀면서 취하고 그런 건 좀... 사정 이 있을 때는 동네에서 미사보고 놀러가거나 일 보러 갈 때도 있고. 여기서 안보이니 까 젊은 사람들 '신앙심이 없다, 성실하지 않다' 그러는데 아니거든. 난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더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거 같아.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60대의 강혜숙이나 30대의 엄고은처럼 일상생활에서 성원들의 인간관계는 상당 부 분 교회에 기반하는데, 어른세대와 젊은세대 사이에 일상생활의 어느 선까지 교회 안 으로 들여오는지에 대한 기준과 활동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어른세대에게 신앙 외에 사회로서의 교회는 이 관계들을 기반으로 공동체 관련 봉사와 같은 공적 활동과 함 께, 친목모임, 취미생활과 같은 사적 활동이 혼재되어 그 모든 것이 함께 이루어지는
29) 이민 1.5세대는 이주시기와 연령대에 따라 ‘어른세대’에 속하기도, ‘젊은세대’에 속하기도 하므로 사 례의 맥락에 따라 위치지우기로 한다.
동일한 시공간이다. 그렇다보니 일상생활의 제반 관계와 활동영역이 교차되며 교회 내로 집중된다. 이를테면 어른세대의 입장에서 각 활동의 성격을 떠나, 우선 자신들은 '교회에 잘 나오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른세대가 '교회에 잘 나오 지도 않는다'며 신앙적 성실성으로까지 확장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젊은세대에서 신 앙 외에 사회로서의 교회는 공적 활동에만 무게를 두고, 그 밖의 일상적․사적 활동 은 교회 밖에서 이루어진다. 젊은세대의 경우 사적 관계가 교회에서의 그것에 기반한 다 하더라도 교회는 신앙활동과 공동체에 관련한 공적 활동의 영역이며 시공간이고, 일상의 그것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신앙과 공동체적 성실도를 평가하는 기준 이 어른세대에서 교회활동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양적’ 참여도라면, 젊은세 대에서 그 기준은 활동의 내용과 적합성에 대한 ‘질적’ 참여도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이 교회 내의 음주가무와 관련된 이슈이다. 보통 각 단체나 특별행사와 관련된 공적 봉사활동 뒤에는 교회의 다목적 공간에서 식사와 더불어 음주가무를 더한 뒷풀이가 따른다. 이것이 어른세대에게는 해당 활동의 연장 인 셈이므로 여기 참여하지 않는 젊은세대 성원들은 공동체 활동에 불성실한 것으로, 젊은세대에게는 어른세대가 본 활동 이외에 교회의 시공간을 사적인 여흥의 장으로 부적절하게 전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오히려 교회 안으로 일상 영역과 사적 활동들을 끌어오는, '교회에 나와서까지' 먹고 마시며 놀이의 장을 펼치는 어른들이야 말로 젊은세대들에게는 신앙적으로 덜 성실한 성원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어른세대가 교회를 여흥의 장과 같은 사적 공간으로 전유하게 된 데는 부에노스아 이레스 사회에 이들이 찾아 즐길만한 장소가 제한적이라는 상황 배경이 있다. 단체별 주일 배식 준비와 같은 봉사활동은 늦은 저녁 시간에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간대에는 인근에서 식사와 음주를 겸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ISC가 위치 한 플로레스 한인촌 식당들은 치안문제로 보통 저녁 9시 전후로 영업을 종료하며, 한 인상가 밀집지역인 아베샤네다로 옮길 경우 이동 거리와 시간이 여의치 않다. 게다가 한인 식당과 주점들은 소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많은 수의 인원이 시간 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부재하다. 젊은세대의 경우 원주민 식당 과 펍에서 간단히 먹고 즐기는 문화에 익숙하므로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이 다양한 편 이나, 이에 익숙하지 않은 어른세대들은 주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한국처럼’
먹고 마시며 놀 만한 곳이 없기에 그 영역까지 교회 안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다. 이 는 젊은세대 또한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하는 바이기에 서로의 사고와 활동방식은 다 르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양해가 되고는 있으나, 젊은세대들이 어른세대 중심의 단 체 활동을 불편해하며 멀어지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위의 상황은 그나마 세대 간 활동이 분리되어 있어 큰 무리없이 이루어지고 있지 만, 갈등국면은 이들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활동의 규칙을 가지고 같은 활동에 참 여하는 과정에서 가시화된다.
[이진숙 디아나, 40대, 의류업 준비, 2012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2013년 카톨릭 입문]
- 이진숙: BB회에서 인간관계가 힘들기도 했고, 다른 단체도 경험하면서 나한테 뭐가 맞는지 찾아보려고 자모회에 가봤어. 신앙을 키우는 그런 데 관심이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고 천천히... 지금 우리 애가 성당 오는 걸 너무 싫어해. 전부터 다니던 게 아니 고 이민 와서 또래들이랑 어울릴 데가 여기밖에 없으니까 억지로 데리고 나왔거든. 그 러다보니 종교적 반감만 더 커지는... 그래서 여기 생활 적응 좀 도와줄 수 있을까해서 자모회로 갔지. 그런데 이게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른거야. 일할 사람은 없고 어른들 만 많더라. 예전에 학부모였던 어른들이 애들 다 키우고 나서도 안나가고. 지금 50~60대 초창기 멤버들이 아직도 핵심으로, '큰언니' 노릇을 하는... 내가 가니까 막 내더라고. 근데 그분들은 일도 안하고 어린 사람들한테 시키는 것만 많아.
(중략)
사실 자모회 핑계로 골프모임이지, 타이틀만 걸쳐두고.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 지. 있어봐야 우리 애한테고 봉사고 도움될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만뒀어.
여기 자모회에서 '큰 언니'로 통하는 어른세대 회원들은 단체 외부 성원들로부터 나름 교회 내에서 성실히 공동체에 봉사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 아이들의 교회 생활에서 식사를 담당하거나 활동을 보조하고, 일손이 필요한 여타 활동에서도 비슷 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들의 활동은 ISC 내에서 다른 성원들에게 가시적으로 많이 노 출되어 왔다. 이진숙은 신심활동단체에서 활동하며 신앙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랐지만, 자녀가 교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모회에 가입하 였다. 하지만 내부에서 경험한 바, 어른세대 성원들은 자모회의 회합에 자주 참여하며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이는 전혀 단체의 공동체적 성격이나 활동 의 질과 무관한 사적활동의 성격이 크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모임 초창기부터 10-20여년 간 함께 활동하며 친분을 쌓아 온 어른세대 회원들에 게 현재 자모회는 친목 중심의 골프모임에 다름없다. 자녀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기에 자격 상으로 부적합한 50-60대의 어른세대 회원들은 진즉 자모회를 나갔어야 하지만, 교회에서 성원들과의 친목만을 목적으로 골프모임을 운영하자면 회합의 형식적 명분 이나 기회와 장소가 없으므로 여전히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연령에 따른 위계가 중시되는 한인 교회의 특성 상, 이들은 현재 정식 회원이 아님에도 '전관예우' 형식을 빌어 자모회의 각종 활동에 자문 역할로 참여하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자모회 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일종의 관례적인 질서의 권위주체로 역할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정작 적령기의 자녀를 두고 관련 봉사활동에 의지가 있는 젊은세대 들의 활동에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큰 언니' 역할을 하며 활동의 규칙을 만들고 지시하는 어른세대 회원들과의 공존은 그같은 방 식이 익숙치 않은 젊은세대들에게는 불합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실제 일을 해야 하는 당사자인 젊은세대 부모들이 일의 효율성이나 아이들의 흥미를 위해 제안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연장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현재 아이들 세대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세대로부 터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회원 자격 문제와 함께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제 자격 요건에 부합하는 20-40대의 회원들은 '큰 언니' 세대 중심의 자모회 자체에 참여하지 않거나 자신의 봉사가 필요한 때에만 간헐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신앙과 공적 활동의 장으로 ISC에 참여하는 젊은세대에게 있어 친목모임과 같은 사적 활동을 위해 전유되는 지금의 자모회는 단체의 본 성격에서 벗어난 것으 로, 자녀와 공동체에 봉사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활동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교회 밖에 자신의 사적 영역이 확보된 이들은 굳이 친목 골프모임 성격의 자모회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여타 단체들의 활동은 회원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기에 단체와 맞지 않을 경우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젊은세대 회원들은 자녀의 교회생활을 지원하고자 하는 ‘부모된 마음’으로, 자모회의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름의 거리두기 방식으로라도 참여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민 1.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