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사람들 중 열의 아홉은 의류업계 종사자’라는 주임사제의 말처럼, 해당 업계
를 중심으로 축적된 한인사회의 역사와 사건들, 그리고 이와 무관하지 않았던 ISC의 역사적 부침은 이들의 정체성과 삶의 전략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부에노스아 이레스에서 한인들이 의류업으로 성공하게 된 데는 한국식의 장시간 노동, 근면성, 전 가족 노동참여와 같은 요인 외에도, 수입이 제한적인 아르헨티나에서 기계, 원단, 완 제품 등을 한국 또는 중국 등지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인 탓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언어와 문화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일하는 습관이나 사업패턴이 비슷한 한인들 간의 협력과 연대가 점차 확대되어 갔다. 한인사회 내에서 고품질 제품을 저 가로 대량 유통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점차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생산-판매 체계가 형 성되면서 교민 간 상생구조가 마련되었다. 기존의 한인회 이외에 재아한인상공인회 (1984년), 아베샤네다 상조회(1992년) 등이 조직되면서 한인들 간 공조・협력체제는 보다 공고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인사회는 생업과 일상생활의 관계망들이 총망라 된 공동 운명체와 같은 방식으로 발전해나갔다.
근래에는 현지 한인들의 사회경제적 입지가 개선됨과 동시에 한국의 경제력과 대외 인지도가 제고됨에 따라 모국과의 관계 속에서 한인으로서의 자부심 또한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아르헨티나 이민청(Direcció́n Nacional de Migraciones)은 2013년 한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주권 특별사면령12)을 발효하였다. 최근에는 양국의 공공기관 및 기업 교류협력 사업도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류의 영향으로 현지에서 한국 영화제나 K-POP 콘서트 개최와 같은 문화교류 활동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제반 상황은 당당한 아르헨티나 사회의 성원이자 존중받는 소 수 종족(이주민 집단)으로서 한인 사회의 자신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인들의 성공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유럽계 백인들이 사회 주류를 점해온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계급화된 종족’과 같은 복합된
12) 2014년 아르헨티나 이민청은 재아르헨티나 한인회와의 협의를 통해 한인사회가 그동안 여러 분야 에서 아르헨티나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감안하여 영주권 미취득 한인들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하기로 결 정하였다. 본 조처는 한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면령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특별조치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4월 24일 이민청 내부규정을 수정하여 고용증명서 없이 입국증명서와 무범죄증명서 제출만으로 영주권 미취득 한인들에게 1년 단기 영주권을 3회 부여한 후 영주 영주권을 부여하도록 하고, 4월 29일 해당 조처를 시행하였다.
- 재아르헨티나한인회, "영주권 부여 특별조치와 관련한 기자회견 보도자료,"
http://www.korar.org/index.php?mid=notice&page=3&document_srl=48080 (2015. 2. 13 접속)
형태로 집단적 차별이 존재해 왔고, 한인들 역시 이같은 차별적 시선을 피해갈 수 없 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인들은 ‘성공한 중간상인’이라는 중개자의 위치로 인해 국가 의 위기마다 기득권과 저소득 계층 모두에게서 적대시되며 종종 여론몰이를 위한 희 생양으로 노출되어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인종・종족적 질서는 아프리카계나 라티노라는 집합적 기준 보다 차별화된 국민국가의 경계를 따라 구조화되어 왔다. 14세기부터 유럽계 백인 이 주민들이 토착민의 자리를 대신해 온 아르헨티나는 20세기를 전후로 유럽뿐만 아니라 인접국으로부터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산업구조의 하층 노동수요를 충당하 였다(Benencia 2012). 하지만 인접국 이민자들은 뻬루아노(peruano, 페루인), 볼리비 아노(boliviano, 볼리비아인), 빠라구아쇼(paraguayo, 파라과이인) 등 출신국가로부터 신분과 성격이나 성향과 같은 특질들이 상징적으로 규정되어 범주화되었으며, 경기불 안 등 국가의 위기 상황마다 사회 안정에 위협적인 존재로 주목되었다(Sabarots 2002; Matsumoto2007). 각종 언론매체들은 공공질서, 고용, 공중위생, 치안 등 사회 문제 제반과 연루시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담론들을 재생산하는데 일조하였 다. 일상으로 연장되는 차별과 배제의 수사에서는 국민국가와 인종 또는 종족의 경계 가 교차되며 이주민들의 범주를 보다 세밀히 구별한다.
[강혜숙 테레사, 60대, 의류업, 1989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85년 카톨릭입문]
- 강혜숙: 우리집도 아직 두 명 (소송에)걸려있어. 둘 다 뻬루아노인데 하나는 옷 빼돌 리다가 나한테 걸려서 잘랐는데도, 뭘 잘했다고... 이 나라는 하여튼 없는 사람들은 살기 좋은 데라니까. 볼리비아 애들은 그래도 좀 나은데...
- 연구자: 일하는 사람들 성격같은 게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요?
- 강혜숙: 그럼. 원주민들은 자존심 때문에 한국 사장 밑에서 일 안하려고 하고, 일하 기는 볼리비아 애들이... 착해. 약삭빠른 것도 있지만 성실하고 머리도 좋아서 제일 낫지. 그런데 뻬루 애들은 게으르고 농땡이 잘치고, 손버릇 안좋은 애들 많아. 소매 치기도 많고, 여기서는 원주민들도 뻬루아노들이 문제가 많다고 하니까.
- 연구자: 그런데 저는 봐도 누가 어디 사람인지 구분이 안가던데...
- 강혜숙: 아무래도 뻬루애들은 피부가 좀 까무잡잡하고 다르게 생겼지. 원주민들은 거의 백인이잖아. 볼리비아나 빠라구아쇼는 그 중간 정도?
이처럼 현재 의류업에 종사중인 ISC의 성원들 또한 '태만하고 도벽이 있는 뻬루아
노', '약삭빠르지만 성실하고 머리 좋은 볼리비아노'라는 식으로 자신의 일상경험을 통해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이 이민자들에 대해 국가별로 차별화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 들을 공유한다. 호칭은 나라별로 구분되며 일련의 국가적 차이를 전제하는 듯하지만, 그 차이가 사회경제적 성취와 연결된다거나 피부색으로 출신국가를 판별하는 가시적 기준이 존재하는 현실은 인종, 종족, 계급 차원의 영역들이 국민국가의 경계와 수사 안에 스며들어 있음을 시사한다.
통상 아르헨티나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차별적 관계구도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로 대별되면서 원주민 일방의 차별로 서사된다. 하지만 한국 사장 밑에서 일하기를 꺼려 하는 아르헨티나 원주민의 경우처럼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 즉 사회경제적으로 강자와 약자가 전복된 상황에서 한인에 대한 차별은 인접국 이주민들에 대한 그것과 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간다. 꼬레아노, 한인들 또한 종족, 계급, 국가의 경계가 교차된 복합적 수사들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지만, 아르헨티나 원주민과 인접 국 이주민 사이에서 중개인 또는 중간상인 소수자(middlemen minority)라는 양가적 위치는 강혜숙의 사례처럼 이들의 특수한 현실을 구성한다.
이주 초기 한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하층 원주민과 인접국 이주민들이 거주 하는 비샤(villa, 빈민촌)에 자리를 잡고 이들과 이웃하여 의류삯일을 분담하며 우호적 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한인들이 동 업종에서 고용주 및 중개 인 계층으로 성장하면서 노동력으로 흡수된 이웃들과의 마찰은 문화적 차이, 노사갈 등과 같은 여러 형태로 가시화되었고, 법적으로 금지된 가내수공업 형태로 운영되는 사업장 또한 관계당국과 현지 언론에게 의식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한인들의 경제활 동은 점차 양성화되었지만 노동집약형 의류생산업의 특성 상 노사・고용문제가 계속 되면서 피고용인들과의 대립구도가 장기화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불법체류자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저임금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온 한인들은 당국의 주요 표적 이 되며 불법적인 착취계층으로 담론화되었다(이교범 1992; 손정수ㆍ장영철 2005;
Bialogorsky 2010). 1990년대부터 한인들에 대한 현지 사회의 적대감은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으며, 미등록 이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한인 업주들에 대한 보도는 2000년대까지 전체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 이미지들로 그려갔 다(Park 2014). 이는 한인들의 입지가 더 이상 사회계급 차원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일련의 종족성에 대한 해석과 평가로까지 확장되어 재단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1980년대 말 경제악화, 2001년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사태, 그밖에 외환파동이 일었던 시기마다 한인들 사이에서 미국, 한국 등지로 재이주 붐이 일면서, 아르헨티나 현지사 회에서 이들의 성원됨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한인들의 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아르헨티나 사 회에 대한 비판적 현실인식은 교민들 사이에 전과 다른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중간 상인이라는 영향력 있는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서 한인들 또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 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현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키워갔다.
[강우석 제리노, 70대, 의류업외, 1971년 이주,재이주경험자, 1971년카톨릭입문]
- 강우석: 뻬론(Juan Doming Perón) 정권에서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나라 살림이 어 려워졌어. 산업화도 안되고. 그때 육류나 곡물 수출 엄청났는데, 그 정권에서 해외로 엄청 빼돌렸지. 크리스티나(정권), 지금도 똑같아. 권력자나 이민자만 그러는 게 아니 라 일반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외화 빼돌리고 여차하면 나갈 준비하는 게 이 나라야. 한국 교민들도 마찬가지인거야. 이민 와서 돈은 여기서 벌고 번 돈은 안정적인 한국이나 미국에 투자하고. 한국인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원주민들도 외국 으로 투자하는 건 마찬가지지. 부동산은 다 외국에 사두고 돈 벌면 이 땅 떠나는 사 람들 많아. 그런데 사람들 탓할 수도 없어. 사실 이 나라 구조자체가 국내투자가 불 가능한 상태니까. 돌아가는 꼴이 엉망이긴 해.
강우석은 현지 사회 한인들이 자주 이탈하는 원인을 아르헨티나 자체의 불안정한 사회・경제구조에서 찾으며, 이러한 양상은 원주민과 여타의 이주민들 사이에서도 만 연한 것으로, 한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크리스티나(Cristina Elisabet Fernández de Kirchner) 정권13)의 부정부패, 횡령, 탈세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연구자가 만난 한인들은 강우석과 같이 자신 또는 한인들을 ‘안정적인 한국이나 미국’
이라는 분리된 지점에 위치지우며, 타자화된 아르헨티나 사회의 문제들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다. 근래에는 한인과 관련한 언론의 편향적 보도나 오보에 대해서도 한인
13) 2015년 12월 10일, 공화주의제안(Propuesta Republiciana, PRO)당 출신의 마우리시오 마끄리 (Mauricio Macri)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좌파에서 우파성향의 정권으로 교체되었 다. 현지 한인사회에서는 좌파 성향의 정권들이 장기 집권하면서 내부 부정부패와 더불어 포퓰리즘 정책 을 고수함으로써 경기침체와 치안악화 등 사회불안을 야기하게 되자, 아르헨티나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국가위기로까지 밀려가선 안된다는 민심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