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본당의날 행사를 앞둔 시기는 ISC가 제일 바쁘게 돌아가며 북적이는 기 간이다. ISC 설립을 기념하는 이 날은 원주민 주교가 집전하는 특별미사와 함께 먹거 리와 놀거리가 펼쳐지는 한맘잔치가 열리기 때문에, 교회 본당 내부(신성한 공간)는 특별미사 준비로, 한맘광장(세속의 공간)은 음식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움직임들로 분주하다. 치안 상의 이유로 야간활동에 제약이 많은 ISC에서는 기독교의 가장 큰 행 사인 크리스마스에도 주임사제가 집전하는 특전미사 외에 별다른 활동이 없기에, 본 당의날은 ISC의 전 성원이 참여하는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한맘축제에서 필요한 역할은 각 단체에 할당되어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전 신 자와 사제단이 함께 관심을 집중하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것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고위급 사제가 주관하는 본당의날 특별미사이다.
< 「한맘주보」 제1798호(2013년 9월 8일) 공지사항 중>
* 22일(일)은 '제43주년 본당의날'입니다. 추기경님을 비롯 외부 인사들이 방문할 예정
이오니 사목위원 및 제 단체들은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 쉬는 교우 모시기
- 22일(일): 미사 11:00 (9시 미사 없음)
본 행사를 앞두고 약 한달 간 주일미사를 통해 상기 공지사항이 성원들에게 전달되 는데, 위 내용과 함께 미사 중 강론 말미에 사제는 다음과 같이 주의를 당부한다.
<2013년 9월 8일, 주일미사 주임사제 강론 중>
- 주임사제(남동민): 본당의날 미사는 특별히 여기(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에서 대주교 님이 오셔서 집전하십니다. 우리 성당이 한 해 또 잘 지난 걸 주님께 감사하고 다음 해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쉽게 모실 수 있는 분이 아닌데, 한인 신자들을 좋게 잘 봐 주시니까 축하해주러 직접 오시고. 주변에 냉담하고 있는 신자들이 있으면 의미있는 이 날을 계기로 다시 교회로 나올 수 있게 데리고들 오세요. 날이 날이니만큼 많이들 꼭 참석해주시고, 자리 꽉 차게. 한인들이 옷장사하면서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는 안보여도 이 안에서(ISC) 우리 한인 신자들이 신앙생활 잘 하고 있 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게. 오셔서 '아, 잘 하고 있구나' 하실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날 원주민 신자들도 오고 하니까.
본당의날 미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제단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지 속적으로 강조되는 요소는 의례의 특별함(의미), 높은 분(카톨릭 권위자)의 방문 및 원주민 사회(외부 세계)와의 접촉, 한인 카톨릭의 신앙생활에 대한 평가이다. 특별미 사는 현지 교구와 관계없이 ISC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행사이므로 상기 요소들은 본 의례의 기획의도를 보여주는 셈이다. 주임사제의 당부내용에는 본 의례 가 어떤 기획의도 하에, 어떤 각본에 따라 완수되어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본 특 별미사는 ISC 성원들이 무탈하게 한 해를 지나온 것에 대하여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성스러운 연행으로, 평사제인 주임사제보다 더 높은 직위의 주교급 인사를 초대하여 외부로부터 영적 권위를 차용함으로써 의례의 신성성과 특별함을 더하게 된다. 이번 해에는 프란씨스꼬 교황의 후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마리오 폴리 대주교 (Arzobispo Mario Aurelio Poli)39)가 미사를 집전하며 ISC 성원들의 기대에 부응하였 으며, ‘대주교님을 모시는’ 준비로 분위기는 한껏 고양되었다.
39)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이자 아르헨티나 수석 대주교로, 2014년 2월 추기경(cardenal)으로 승격하였으며, 2013년 3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Cardenal Jorge Mario Bergolio)이 교황 으로 선임된 이후 아르헨티나 카톨릭 최고 권위자로 부상하였다.
사진16) 본당의날 특별미사- 2013년 9월 22일: 마리오 폴리 대주교(중앙) 가 미사를 집전하고 ISC 주임사제 (우)와 보좌사제(좌)가 양측에서 보 좌하며, 문한림 유배날 주교(가장 우측)가 강론 등 필요 시에 까스떼 샤노-한국어 간 통역을 지원한다.
원주민 세계와 분리되어 한국식의 카톨릭 전례와 문화를 고수하며 지내는 상황에 서, 성원들은 종종 자신들이 머무르고 있는 현재의 위치, 아르헨티나 사회로부터 ISC 의 종교적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기대를 보인다. "아르헨티나에서 카톨릭이라고 해도, 우리끼리 문 닫고 앉아서 바깥이랑 따로 돌아가는 데, 그걸 누가 알아줘? 여기 한인 성당 있는지도 몰라." 강우석(70대, 이민 1세대)은 아르헨티나로 이주 후 카톨릭 이 국교라는 이유로 입문하였던 터라, 본인 스스로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성원됨을 자 신하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교 회에서 대부분 성원들은 일상적으로 원주민 사회와 교류 없이 지내면서도, 이처럼 어 떤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경험을 통해 아르헨티나 카톨릭 사회의 성원임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기획된 연행이 바로 원주민 사제가 집 전하는 특별미사이다, ISC의 사제 인사체계가 한국 교구에 속해있는 상황에서, 이 특 별한 미사의 집전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에 속하는 외부 카톨릭계의 권위를 빌려옴 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카톨릭의 통일된 직제 체계에서 주임사제와 비슷한 직 위의 원주민 사제를 초대하는 것만으로는 평상 시 미사의 일상성을 뛰어넘는 특별함 에 대한 성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일상의례에서보다 높은 직 위의 카톨릭 권위자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연행의 특별함이 완성되고, 성원들은 '과연 누가 오실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본당의날은 아르헨티나의 카톨릭 권위자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ISC 내부로 들어 와 한인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직접 보고 듣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다. 따라서 이 날 대주교가 ISC에서 받게 되는 인상과 이후의 전언은 원주민 사회에서 한인 카톨릭에 대한 평판에 주효하게 작용한다. 많은 성원들은 현재 ISC가 까삐샤(capilla, 공소)가 아닌 이글레시아(iglesia,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배경도 전임자들, 특히
현 프란씨스꼬 교황이 주교 재임 시절부터 ISC와 교류하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인 것 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 날은 한인 카톨릭의 신앙적 진정성을 평가받는 날과 같으 며, 모든 준비는 '잘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재현하고 이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한 대비 체제로 돌아간다. 짧은 순간의 의례를 통해 ‘잘하고 있음’을 연출하는 방법은 주 임사제의 당부처럼 본 미사에 ‘자리가 꽉 차게’ 많은 인원이 참석함으로써, 한인 카톨 릭의 규모와 결집력, 성실성을 간접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를 즈음하 여 주일미사 등을 통해 관계자들은 지속적으로 미사 참석을 당부하고 냉담자들을 교 회로 이끌기 위해 직접 방문하거나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영적 봉사 또한 활발 히 이루어진다. 이 날도 평소 본 미사(오전 11시)의 1.5배 가량인 약 400여 명 성원 들이 미사에 참석하여 자리를 가득 메우며 '잘하고 있음'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내었다.
사진17) 본당의날 특별미사:
당시 많은 성원들이 한맘잔치 준비를 위해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평소 주 일미사의 2배 이상 인원이 참 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가하면 특별미사는 한인 카톨릭공동체 설립을 기념하는 자리이니만큼, 미사 집 전자의 축사와 함께 그간 한인 카톨릭들의 신앙생활 및 종교적 행보에 대한 평가가 전달되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성원들의 입장에서는 1년간의 시험성적표를 받아드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있다. 이 날도 대주교는 강론 중에 아르헨티나 이민사회에서 의 류업을 통해 성장한 한인들의 성취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며, 그와 같은 신앙적 개척정 신을 통해 한인 카톨릭이 이루어낸 성과 또한 높이 평하였다. 더불어 원주민사회에서 교류해 온 한인 카톨릭 선교사들과 ISC 사제단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을 통해 전해 들은 한인 카톨릭의 신실함과 신앙실천에 대해 언급하였다. 사실 이 날 강론 중 한인 카톨릭에 관련된 내용은 축하의 자리에서 전하는 보통의 의례적 인사말과 크게 다르 지 않았다. 하지만 권위자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한 한인 카톨릭에 대한 평가는 본 미사가 기획된 의도에서 보면 내용을 떠나 연행 자체에서 갖는 의미가 강하다.
[마대성 바오로, 30대, 의류업, 1991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92년 카톨릭 입문]
- 마대성: 예전에는 이렇게 안했어요. 계속 원주민 신부님들이 오시고 그런 것도 아니 고, 필요할 때 상황 따라 어쩌다 가끔. 그냥 되는대로 우리끼리. 근데 뭐 이젠 좀 제 대로 해보자는 거죠. '우리 이렇게 잘하고 있다'라고 보여주는. 사실 앞으로는 또 어 떻게 될지 몰라요. 이런 식으로 좀 변해갈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어디 쉽겠어요? 젊 은 사람들도 자꾸 줄어들고... 쉽게 변하지 않을 거예요.
마대성은 본당의날 의례 이후 ISC 성원들의 태도가 보다 원주민 친화적으로, 또는 시대 변화에 맞춰 변해갈 것이란 기대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20여년 간 ISC에서 생활해 온 그는 최근의 특별미사가 ISC의 실제 변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위해 기획된 연행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주교의 미사집전이 형식 적인 차원에서 ISC가 원주민 카톨릭 세계와 하나됨을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면, 한인 카톨릭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이들의 독자성에 대한 인정이라는 상징성이 강하다. 사실 이 날도 대주교와 10여명의 소수 원주민들의 입장만이 허용되었고, 행 사내용은 외부로 공표되지 않았으며 교회 대문도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히 닫혀있었 다. 전후 상황을 보면, 마대성의 말처럼 본당의날 미사의 주된 목적은 카톨릭으로서 하나됨의 확인뿐만 아니라, ISC의 독자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측 면이 없지 않다. 결국 본 의례에는 후자를 위한 기획을 통해 사회적 연행으로서의 역 할 또한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