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ISC의 세속적 룰에 구속받지 않는 외부로 시선을 확장시키며 독자적으로 활동영역을 개척하려고 시도한다. 닫힌 교회 ISC에서 담장 밖으로 진출하 는 것은 온전히 종교적 대의를 추구하며 실천하는 신실함의 주요한 단서로 설명된다.
개인 차원의 외부 활동이 보통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별적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반 면, BB회의 봉사는 단체 자체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차 원의 지원과 참여를 통해 점차 ISC를 대표하는 활동으로 자리잡아왔다. 현지 카톨릭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와 개인 차원에서 충족시키지 못해온 성원으로서의 의무를 BB회가 대신하고 있기에, 여타 성원들은 담장을 나가는 봉사활동에 대해서는 간섭없 이 그들의 실천을 존중하고 지지를 보인다. ISC에 소속된 개인들은 이같은 직․간접 적 지지로써 BB회의 성과를 '우리 한인성당‘ 전체적으로 의미있는 공동체의 것으로 공유한다. 그리고 BB회의 활동을 한인 카톨릭의 공동체적 기여로 아우름으로써 전체 ISC와 성원 개개인은 아르헨티나 카톨릭 사회에 가지는 부담을 덜게 된다.
[강우석 제리노, 70대, 의류업 외, 1971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71년 카톨릭입문]
- 강우석: 단체들 중에서 BB회가 고생을 제일 많이 하지. 왜 거지부대라고들 부르잖 아. 김치도 만들고 하면서 그만큼 어려운 분들 도와드리는... 그리고 그렇게 나가서 참신앙을 실천한다는 게 필요하지만 쉬운 게 아닌데, 그만큼 욕심없이 신앙적으로 열
심히 봉사하는 단체들이 드물어. 여기서 힘 자랑이나 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아 니면 뭐 필요한 게 있어서 나오는 사람들 중 누가 그 위험한 빈민촌에 가려고 하나.
그리고 거기서 봉사해봐야 알아주지도 않는데. BB회에서 하는 봉사들은 우리 한인성 당 전체적으로 의미있는 일이야. 여기 안에서 사람들한테 치이느니 차라리 혼자 병원 이나 원주민 성당 나가서 조금씩이라도 봉사하는 분들도 있고...
성원들의 활동반경인 한인사회를 넘어서 사업적 이해관계와 일상의 정치적 경합에 관계없는 원주민 사회와 교류하고 이에 기여하는 것은 명예나 권력에 집착하는 세속 적 욕구와 대별되어 이들의 신앙적 진정성을 차별화하는 논리로 이야기된다. 손익계 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한인사회 밖 활동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빈민촌과 병원 등 지에서의 활동은 일 자체가 고되고 현장 역시 위험지역으로 알려진 곳이 많기 때문에 신실함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신앙 실천으로 평가된다.
BB회의 대외 봉사는 교회에서 옷가지나 생활용품, 먹거리 등을 모집하여 연 2회,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앞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빈민촌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에게 전달하는 활동이다. 매년 10월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행사인 '루한 청년도보순례(La Peregrinación Juvenil a Pie a Lujan)' 참여를 제외하면, 구호품 전달은 교회 차원 에서 원주민 사회와 교류하는 유일한 대외활동이다. 물품은 한인 선교사들이 활동하 고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인근의 XX와 YY, 북부의 ZZ 세 지역으로 전달되는데, 원거리에 있는 ZZ의 경우 화물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인근의 두 지역은 회원들이 직접 현지로 물품을 운반하여 관계자에 전달한다. XX와 YY는 타 지역의 원주민이나 인근 국가 이주민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로 진입하기 위해, 또는 진입과 정착에 실 패하여 거주하며 형성된 빈민촌으로, ISC와 교류하는 한인 수녀 각각 한 명씩 해당 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ISC 성원들의 일상과 별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범지대로 인식되어 기피해야할 지역으로 회자된다. 따라서 본 활동은 ISC의 일상과는 요원한 장외 활동으로 성원들의 관심이 높지 않으며, ISC 내부의 정 치논리가 개입되지 않는 상황은 봉사의 신앙적 진정성을 담보한다.
그런가하면 김치봉사 때와는 달리, 원주민 대상 봉사에 대한 ISC 내부의 갈등들 또 한 BB회 신앙 실천의 진정성과 대외 활동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게 된다.
[박영도 바오로, 50대, 의류업, 1988년 이주, 1980년 카톨릭입문]
- 박영도: 빈민촌 봉사도 말들이 많아. 왜 한인성당에서 한인을 도와야지 원주민을 돕 느냐고. 그런데 아무리 형편이 안좋아도 한국 사람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좋은 이불 깨끗이 빨아서 갖다드려도 "내가 거지냐?"면서 쓰던 거라고 기분 나빠해, 새 것 아니 면 받지도 않고. 옷은 입고 다니면 서로 누가 주고받은 건지 다 알게 되고. 사실 그 만하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단 거지. 한인들 뭐 잘들 살잖아. 아무리 힘들다 해도 굶고 못입는 게 아니니까. 진짜 필요한 사람들한테 가는 게 맞지. 여기 빈민촌 원주 민들 보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게 말도 못해. XX나 YY 수녀님들 계신 데 가보면 봉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구나 싶어 느끼는 게 많아. 우리도 이민올 때 그 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 많았잖아. 그런데 여기서 옷장사 해서는 돈도 꽤 벌고 먹고 살만해지고. 그게 다 이 나라에서 여기 사람들 상대로 장사해 먹고살게 된 건데 그 고마움을 왜들 모르는지. 그냥 '우리(한인)'밖에 몰라. 잘 풀리게 해주신 (하느님)은 혜에도 늘 감사해야 하지만, 이 나라랑 이 나라 사람들한테 보답하는 차원에서도 그 렇고 결국은 다 같은 카톨릭이고 하느님 자녀인데... 착각들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좀 더 풍족한 사람들이 작게라도 같이 나누는, 함께 사는 도리를 하는 거지.
ISC의 외부활동과 관련한 갈등은 보통 신앙실천의 영역을 한인사회로 한정짓는 성 원들과의 이견에서 비롯된다. 이들에게는 일상생활의 반경과 그 안에서 맺는 관계들 이 종교적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면 이들의 일상 속 관계와 질서는 봉 사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는 형편이나 봉사 물품의 수준을 두고 오가는 평가와 체면 경쟁은 빈자(貧者) 구제라는 BB회 설립목적에 반해 신앙의 본질 을 더욱 왜곡시킨다. 따라서 이들의 비판은 BB회의 활동이 ISC 외부의 범카톨릭 세 계로 확장될 때 오히려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반론의 근거가 된다.
박영도의 이야기에서 아르헨티나와 원주민들에게까지 확장된 이웃의 범주는 범카톨 릭 세계에서 자기 위치에 대한 깨달음, 즉 국가와 인종, 계급과 같은 차이를 초월한 믿음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나된 세계시민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통해, 신 앙인으로서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차별화시키는 전략으로 구사된다(Levitt 2007:
85). 이들에게 카톨릭 세계는 성속이 복합된 차원에서 한인과 원주민을 가르는 일상 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야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주민 사회로 진출 한 BB회는 ISC 내에서만 활동하는 이들과 달리 범카톨릭 세계의 시민됨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한국을 떠나 현재의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은 혜에 대한 감사는 ‘주님’에게뿐만 아니라 범카톨릭 세계로서 아르헨티나 사회라는 세 속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종교적 보은의 서사는 세속적 일상에서의 사회
적 의무로 재해석되어, 아르헨티나와 한인공동체 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수혜자인 한 인들이 실천해야 할 성원된 의무로써 이들의 외부 진출을 정당화한다. 또한 현실적으 로도 먹고 살만한 수준의 ISC 성원들을 지원하기보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부터 어려 운 빈민촌 원주민을 지원하는 것은 종교적 이상을 뒷받침하는 합리적인 방어논리로 사용된다. 이처럼 BB회의 대외봉사를 두고 나타나는 내부 갈등은 그들의 ‘영적이면서 도 현실적인’ 세계관을 부각시키며 BB회의 대외 활동에 신앙의 무게를 더한다.
하지만 영적봉사활동이 기도와 같은 영적 매개를 통해 세속적 욕구와 기대들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신앙실천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것과 달리, 노동이나 물자 지원 등 물리적 활동 기반의 봉사는 모두 사람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그 안에 는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일상적 관계와 기대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ISC 내부에 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한인 카톨릭의 세속적 기대, 즉, 원주민 사회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자기 내면의 정치성이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드러나면서, 이들 스스로 표방한 범카톨릭인으로서의 차별화된 세계관과 신앙적 진정성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BB회 빈민촌 구호품 전달 작업’ (2014년 6월 28일 필드노트 중)>
오늘 YY에서는 구호품과 성금이 쓰이는 가정폭력 피해여성(이주민)과 자녀들을 위한 쉼 터를 둘러보았다. 회장님이 이동 중 슬쩍 언질을 주신다. "현장을 보여준다는 건 뭔가 기대 하는 게 있단 건데. 한인성당이 다른 데보다 여유있는 걸 아니까. 우리라고 넘치게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 상황은 회장님 예상대로 흘러갔다.
구호품은 페리아(feria, 시장)를 열어 판매하고 수익금은 쉼터 운영비로 사용된다. 정책 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성당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되지만 여전히 운영은 어려운 상황이 다. 수용여건 상 5-6달 후에는 쉼터를 떠나야하는데 일자리와 숙식 등 연계 지원이 없다보 니 결국 다시 피해가정으로 돌아가게 되고 폭력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일자리를 구해 독립하더라도 보통 빈민촌 인근의 생활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수입이 시원찮은 데다, 가해자가 찾아내 다시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원주민 수녀님은 한인들이 까삐딸(Capital, 수도)에서 옷가게를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점원이나 가사 도우미로 이들을 고용해준다면 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한인들이 주 정부도 못하는 일을 하게되는 것이라 덧붙이신다. 쉼터 분들의 기대에 찬 시선이 회원들에 게 꽂히고, 부회장님이 성당 분들 옷가게나 음식점에서 일손이 부족하므로 연계하여 지원 하는 걸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 하자, 다른 분들이 슬쩍 옷자락을 잡아끌며 제지하신다.
쉼터 측에서는 제안을 매우 반가워했지만 회원들은 썩 편치않은 표정이다. 상황을 살피던 한 빠라과이 여성이 자신은 까삐딸에서 일해 본 적이 있다며 도꾸멘또(documento, 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