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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위치와 종교 : 한인 종교공동체의 의미와 역할

면서 ISC 성원들 중에도 현재 자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고 있으나 자녀들은 미국, 캐나다, 한국 등지에 분산거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이들의 삶의 지 형도는 현재 모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점하는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위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들까지로 연장되며 보다 복합적인 위치와 관계망들을 그 려낸다. 연구자가 만난 ISC 성원들 대부분이 "이 곳(아르헨티나)에 뼈를 묻을 생각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업일선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지역을 불문하고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겨 가족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는 이들의 바램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 지형도는 더욱 복잡하게 그려진다. 다선적 이주회로 위의 삶에 있어 고 향은 사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실제의 물리적 공간보다는, 점점 특정한 실체로 설 명할 수 없는 인식과 심상들로 묘연하게 존재한다.

한편, 소수자나 이민자라고 해서 현지사회의 차별에 기죽기보다 한인들 스스로 ‘아 쉬울 것 없이’ 원주민사회에 섞이지 않으며 거리를 두려고 하는 이유로는 이민의식의 부재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사회의 후진성 또한 지목된다. 한국과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들의 경제적 성취와 비교해 아르헨티나의 더딘 성장과 사회 병폐에 대한 인식은 사업장에서 접촉하는 제한적 관계와 경험들을 통해 전체 원주민 사회로 확장되며 한 인과의 경계를 가름한다. 여기에서 이민의식의 부재는 더 나은 삶의 대안과 지점을 찾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고향에 대한 갈망과 지향이며, 아르헨 티나 사회와 더불어 원주민들에게까지 연장된 후진성에 대한 인식은 부에노스아이레 스 또한 궁극적으로 이들이 있을 온전한 자리가 아니라는 차별화된 자신에 대한 존재 인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과 인식 하에 이들은 모국도 거주국도 아닌 부에노스아 이레스의 한인사회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긍정하고 온전한 성원됨을 담보할 소속의 지점을 모색해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경제적 적응을 위한 과도기를 지나, 현지사회에서 향후 어떠한 방식으 로 자신들의 위치를 수립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15년 이민 50주년을 맞아 한인회 등 주요단체들을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한인이민사 편찬, 한인타운 개발과 같이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긍정과 대・내외적 인정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불법적인 착취계층이란 오명과 함께 머물렀던 중간상인 소수자 (middlemen minority)의 위치에서 모범 소수자(model minority)로 거듭나기 위해, 각종 사회문제에의 참여와 지원 또한 확대되고 있다. 이 곳에 단지 머무르거나 지나 쳐가는 이들이라도 이제는 정주자로 남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인사회의 역사와 경제 적 입지로부터 성취・부여된 성원됨의 무게에 대하여 공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한 다는 공감대는 ISC 내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반 세기, 한인 내집단의 보호와 결속에 급급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 디아스포라로서의 대내외적 인 정과 함께 원주민 사회와의 공존과 상생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한인사회 내・외부적으 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과도기를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이민 초기부터 최근까지 상호 차별인식을 통해 원주민 사회와 거리두기를 유지해 온 한인사회가 시도하는 작금의 위치 재설정을 아르헨티나 원주민 사회로의 통합의지와 직결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기실 최근 한인사회에 공유되는 사회적 책임의식과 참여는 원주민 사회와 기존의 거리는 유지하되, 상호 차 별을 상호 인정으로 전환하여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성원권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정치전략에 가까워 보인다.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사의 과도기적 시점에서 일련의 소속됨이 지속적으로 실천되 는 집합점과 성원권의 경계에 대한 탐색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함께 이들이 그려내는 디아스포라의 위치를 보다 세밀히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사회의 경우 종교적・종족적 박해나 정치적 망명과 같이 동일 한 이산의 원인과 동기가 부재하였고 애초에 목표한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면 원하는 곳으로 떠나겠다는 잠재적 심리가 작용하고 있어, 교민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 계와 잦은 구성원 변화로부터 지속적인 관계구축과 상호 신뢰형성에 한계가 있었다.

한인회와 같은 주요단체들 역시 와해와 통합의 과정을 반복하며 주축으로서 원활히 역할하지 못하면서 교민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힘을 집결시킬 수 없었다(손정수ㆍ장영

철 2005). 한인에 대한 원주민 사회의 차별과 부정적 여론공세, 타 이주민 집단과의 갈등이 의류업계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집단적으로 경험되며 한인사회 내부의 결집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 역시 간헐적이고 산발적인 움직임에 그 치며 연속성을 갖지 못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사회의 이같은 특수성은 외부로부터 종족과 계급의 차원에서 집합적 총체로 표상되는 한인 사회가 실상 내부적으로는 분절적이며 개별화된 집단들 로 이루어진 군집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초국가적 세계의 일상 속에서 한인들이 자기 위치를 찾아 기획하는 소속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인사회 내 인접한 집단들 이 각각의 경계를 구성하는 차별화된 과정들에 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차별화된 과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선 강한 종교적 아우라가 감지된다.

[조우재 베드로, 50대, 의료업, 1977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모태신앙인]

- 조우재: 이민사회에서는 어떤 소속감이 필요해요. 심적으로나 생활면으로, 언어랑 문 화차원에서도. 여기는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한국 교민이 2만 명 내외인데, 우 리 성당 교적인원이 3천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고, 게다가 개신교회에 다니는 인 원은 그것보다 몇 배 이상 되는데, 불교까지 합하면 기형적으로 많기는 하죠. 그리고 이민사회는 좁다보니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적으로, 종교별로 그룹이 이루어지는 형국 이라 할 수 있어요. 그만큼 한인끼리 안에서 모여 살고 필요한 부분을 충족하려는 것 이기도 하고요. 교민사회에서는 믿을 사람 없다고 하는데, 교회나 어떤 종교 안에서 는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2014년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35개 개신교회와 1개 카톨릭교회, 3개 불교사 찰, 1개 천리교회 등 공식적으로 총 40개 한인 종교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16). 하지 만 대형 개신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소규모 공동체들의 경우 통계에 잡기 어려워 상 기 수치에서 제외되었음을 감안한다면, 현재 한인 개신교회 수는 약 100여개에 가까 울 것으로 추산된다. 현지 종교공동체 관계자들은 규모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형 개 신교회의 경우 많게는 몇 천에서 몇 백 여명까지의 신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교회와 사찰의 수만 보더라도 2-3만여 명의 전체 한인이 각각 하나 이상의 종교공동 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전한다. 연구자와 접촉한 교회 안팎의

16) 아르헨티나 한인상인연합회 및 한인회 내부 비공개자료 참조

한인들 또한 자신과 가족, 주위의 지인들 대부분이 종교 공동체의 성원으로 활동한다.

이처럼 한인사회는 종족과 종교의 지형도가 겹쳐질만큼 매우 종교 지향적인 디아스포 라의 위치를 구성하고 있다.

종족공동체로서 종교는 문화적 연속성과 함께 이주경험에서 오는 상실감이나 불안 정성에 대해 심리적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 한다. 동시에 디아스포라 성원들이 거주국 사회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유연성 과 사회적 인정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외부 사회에서 직면하는 적대감이나 차별의 경험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일련의 완충지대로서 기여한다(Hirschman 2004). 부 에노스아이레스 한인사회에서 역시 종교는 이주 초기부터 이같이 심리적이며 물리적 중간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종교 이외에 지속성을 갖고 신뢰할 수 있는 종 족공동체가 부재해왔다는 현지의 특수성 또한 많은 한인들이 종교공동체로 편입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일견에서는 기형적으로 높은 수치의 한인 종교공동체는 이 곳 한인사회의 폐쇄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주 초기 종교공동체를 중심으로 한인사회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점차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성 원들 간 갈등이 고조되자, 원주민 공동체로는 진입하지 못한 채 한인교회의 여러 분 파가 형성되면서 한인사회 내부의 종교세(勢)만 부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인 1.5-2 세의 경우에도 언어나 문화적응의 수준에서 충분히 원주민 교회로 편입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교민사회 내부에 머무는 경향이 있어 이 같은 현상에 일조하는 바가 크다.

디아스포라에게 있어 종교공동체는 이처럼 공동체 내외부의 질서와 가치, 성원들의 기대와 욕구들이 복합적으로 투영된 산물로서의 총체적 사회, 그 자체이다. 구심점 없 이 개별적이며 유동적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위치와 정체성을 이해 하고자 할 때, 종교공동체는 보다 집약적인 공간과 활동 내에서 축약된 총체로서의 한인사회를 펼쳐내 보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 종교공동체들에게서 나타나는 폐쇄 성 또한 이들이 원주민 사회와의 거리두기로부터 설정된 위치에서 확인되는 특징임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그들의 정체성 혹은 디아스포라의 위치를 설명하는 하나의 정치 적 표식이자 생산적 실천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다양한 영적・세속적 질서와 가치들 이 공존하며 경합하는 장에서 종교는 일련의 대표적이며 합의된 자질들을 수렴하고 공동체적 윤리로 구현하는 생산자이자 권위체로서 역할한다. 하지만 이들의 폐쇄적